노아 아들들 역사 (창11:1)
본문
언어계시의 한 부분으로서 이 부분은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시기에 속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홍수 후의 여호와 하나님의 경륜에 빛을 비추고 있는 한에서 우리는 이것을 후기 사건의 해명으로 정당히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이 족보는 11장에 가서야 그 구분의 기원이 나오는 방언, 종족, 나라를 말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리 쓰여진 것입니다.비록 족보상의 순서와는 다르게 셈의 족속이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이 족보 전체가 세속적인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즉, 이는 구속의 족보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족보에 나타난 사상은 얼마 안가서 셈족속이 구속의 종족을 이룰 것이나, 다른 나라들도 성역사(Sacred History)의 영역에서 영원히 작별을 고하게 되는 것 이 결코 아님을 보이는 것입니다. 때가 차면 신의 개입이 그들을 회복시켜, 그들을 거룩한 영역에로 다시 포함시킬 원칙을 표현하려고 그들의 이름이 열거된 것입니다. 창 11장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동방으로 이주하다가 시날 땅에서 한 평 야를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서 정착해서 살았다' 그들은 거기에 거대한 탑 과 성을 쌓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하여 벽돌을 만들고 그것들을 철저히 구웠 습니다. 그들은 그 끝이 하늘에 닿게하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탑(망대)은 성의 부속물로서 짓자는 것의 주요 대상은 성입니다. 여기서 성은 도시 보다는 국가의 의미입니다. 당대는 국가의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요 한 성을 중심으로 국가를 이룩했 습니다. 즉 11장에서 하나의 나라 건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 유는 자기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 12:1-3 앞에는 셈-데라의 족보가 나오고 11:1-9 앞에는 노아 후손의 족보가 나옵니다. 홍수 후 노아 후손의 역사는 홍수 이후의 새 인류 의 역사입니다.
10장에서는 홍수 이후 인류가 어떻게 세계로 흩어지는가를 나타내는데, 그 다음이 바벨탑 사건이라고 하면 홍수 이후 인류의 새로운 역사의 특성을 드러내주는 전형적인 대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수 이후 은혜를 입은 노아 후손의 새 역사는 시날 평야에서 자기 이름들을 내 기 위한 것으로 특성됩니다. '하늘에까지 닿는 탑'이 상징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자세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도전하고 반항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 여줍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상태를 흩어버리셨습니다. 저주하셨습니다. 11장의 사건은 자기네들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주를 의미합니다(땅을 떠나도록 한 것, 바 벧론 포로는 하나님이 흩으신 저주의 대표적인 예). 인간 왕국은 왜 저주로 끝납니까 사람들이 세우는 나라는 왜 하나님 보 시기에 악합니까 창세기 6장의 문맥으로 살펴봅시다. 창 6:5절에는 인간은 그 마음에 생겨먹은 꼴이 원래(항상) 악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생각의 근원이 악한 것입니다. 인간은 속속들이 썩었습니다. 완전히 썩 은 상태 즉, 핵심까지 완전히, 또한 평생 동안 악했습니다. 즉, 전적 타락, 부패하여 전혀 돌이킬 수 없었던 상태란 말입니다. 이것이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서 시작되는 아담의 역사로부터 악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두 쓸어버리기로 하셨는데 노아만이 은혜 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8:22에 보면 사람의 내적, 심적 부패성은 치료되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시며,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저주하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홍수의 근본 원인인 '사람의 악함' 이 홍수 후에도 없어지지 않은 채인 것을 아시고 잠정적인 말씀을 하신 것 입니다. 새 인류는 그 근본부터 심판과 멸망이 자초되도록 되어 있다는 말 입니다. 탑의 성격은 그것이 종교적인 건축물인지 어떤지는 상관 않고도 그 의미가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해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의 새 역사가 결국 바벨탑에서 드러나듯이 인간들이 스스 로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함으로써 근본적인 마음의 악이 처리되지 못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악의 표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흩어짐).
그러므로 인류의 보편역사는 저주와 심판의 역사입니다. 근본적 으로 악한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결국 망하는 것을 보 여주는 것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벌이는 어떤 노력이 나 왕국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불러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구원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멸망받음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언어의 혼잡:의사소통의 단절은 인류사의 분열이며 특히 그 내적분열을 의미합니다. 고대사회는 농경사회이므로 땅과 유리될 수 없는 때이기에 자 신의 정착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역병, 기근, 전쟁 등 목숨을 내놓는 그런 사건시만 자신의 땅을 떠나는데 따라서 정착지 땅을 떠나는 것은 저주를 뜻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언어의 통일성을 깨뜨리기로 결정하셨고 그후에 사람들을 지면에 흩으셨다고 기록되고 있을 때 이 신적인 재판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어지게 하셨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초기 언어는 사멸되어 민족들의 언어의 재료들 속에로 파묻혀 버렸지만, 결과를 초래한 죄가 은혜의 능력에 의해 극복되고 소멸될 때 모든 구속받은 자에게 알기 쉬운 새방언의 영광스러운 형태로 언 젠가 영생으로 또 다시 재생될 것입니다. 이 소망의 형태와 담보물은 기독교의 첫 오순절에 성령님을 교회에 부어주신 방언의 은사로 주어졌는데, 그때 에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다른 방언이나 새 방언으로 말하였으며 따라서 하늘 아래에 있는 각 나라 백성들이 그들 자신 의 언어로 이해하였습니다.
창 11:10부터는 셈-데라의 족보입니다. 노아의 술취한 사건과 셈의 행동 을 통해서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립니다(창 9장). 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라'고 노아가 셈을 축복합니다. '.의 하나님'이라는 표현 이 최초로 나타나는데 '셈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셈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나는 네 하나님 되고 너는 내 백성'인 것인데 특별한 관계를 표현할 때 쓰 이는 말입니다. 노아의 세 자녀로부터 나온 한 족속이 지상에 많은 나라로 흩어져 다른 언어들을 말하는 민족이 되었다는 것을 기술하고난 후에 이야기는 다시 셈 에게로 돌아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까지 직선으로 그의 자손들을 추적하 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셈으로부터 벧렉을 거친 데라 족속의 직접적 인 후손임을 보여주기 위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족보에서 우리는 홍수를 전후하여 생명의 기간에 매우 중 요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즉, 홍수 이후의 족장들은 홍수 이전의 족 장들보다 평균적으로 절반 밖에 살지 못하였으며 또한 벧렉의 평균 수명의 기간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950세를 살았던 노아는 완전 히 옛 세상에 속하였고 또한 홍수 이전에 난 셈은 600세까지 살았지만, 아 르박삿은 438세 밖에 살지 못하였고 셀라는 433세, 그리고 에벧은 464세 살 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벧렉에 이르러서는 239세로 줄어들었고 르우도 겨우 239세, 스룩은 230세, 나홀은 148세 이상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개의 큰 대사변 즉, 홍수와 인류가 여러 국가 들로 분리된 사건이 생명의 기간을 단축시키는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자는 지구의 기후의 변동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사람들의 습관의 변화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간은 감소된 반면 에 아이들은 이에 비례하여 보다 일찌기 탄생되었습니다. 셈은 그의 아들을 100세에 낳았고,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는 30세에 그리고 70세까지 아이 를 못낳은 데라까지 계속됩니다. 결과적으로 인류는 그 수명이 짧아진데도 불구하고 분산 직후에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 나갑니다. 26절에서 족보는 5:32절에 있는 족보와 같이 데라의 세 아들의 이름으로 끝나는데 이들 모두가 계속되는 역사 즉 선택한 가족의 아버지로서의 아브 람, 리브가의 조상으로서의 나홀과 롯의 아버지로서의 하란과 밀접한 관계 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7-32절에 있는 족보의 자료들은 족장의 역사에 대한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는 서두는 단지 27-32절에 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음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기사 전체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25:12절과 19절에 있는 이스마엘과 이삭의 '족보'들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상이한 족보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또 다시 27절에 언급되어 있는 데라의 세 아들에 대해 계보적인 주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브람 과 그의 가족에게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과 나홀은 그들의 친척 중에서 아내를 취합니다. 아브람은 그의 이 복 누이 사래(20:12)와 결혼했는데, 다음에 나오는 구절을 보고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나홀은 그 의 형제인 하란의 딸 밀가와 결혼했는데, 밀가는 그에게서 리브가의 아버지 인 브두엘을 낳습니다. 족장의 역사의 특징 이제 수 많은 족속들로 성장한 노아의 아들들의 후손들의 분산은 한편으 로 언어와 생활 방식, 습관이 다르고 서로 엉켜진 여러 나라를 필연적으로 낳게 하였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민족들이 하나님께 대해 가지는 상이한 태 도 속에 내포된 우상 숭배의 종자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 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린(롬 1:23) 이방주의 의 다신교적 종교로 확장시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모든 생물을 파괴시키는 저주로 더 이상 땅을 치지 않으시고(8:21-22), 또한 죽음을 초래케 하는 도덕적 부패 를 그 앞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데서 방지하셨다면, 그는 반드시 이 자 발적으로 형성된 국가들 곁에 그의 구원을 수납하고 보존시키기 위하여 스 스로 한 국가를 형성하실 것이며 또한 세상에 세워진 왕국과는 반대로 사람 과 그 자신의 생동적이고 구원적인 교제를 위한 한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기초는 그의 백성과 그의 고향으로부터 부르시고 구별시키 실 때, 그리하여 특별한 지도에 의해 그를 세계의 구원이 오게 될 국가의 조장이 되게 하셨을 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놓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에 의해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최상의 특징을 취하였으며,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만 구원의 창시자와 참된 생명에로의 인도자로 나타내셨습니다. 한편 다른 국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능력에 따라 그들 자신의 과정을 추구하도록 방 치되었는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방법대로는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없이는 영혼의 평화와 참된 생명의 축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 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참조; 행 17:27). 그러나 이 독점성 (exclusive)은 처음부터 만인구원설의 씨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이 축복을 받게 되도록 하기 위 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2:1-3).
그러므로 인류의 신적 지도가 아브라함 의 소명에서 취하였던 새로운 형태는 한편으로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축복 하셨던 셈의 족속에 속하였다는 사실과 또한편으로 단지 혼자만이 부르심 을 받지 않고 그의 아내와 결혼한 사람으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 하여 세상의 일반적인 발전과 연관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고려해 볼 때 신적 계시의 지속성은 인류 발전의 계획이 창조 그 자체에서 수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보증된 반면에, 아브라함의 소명은 새 시대의 시작을 소개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새로운 기초들이 새로워져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면 비록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배가 노아의 남아있는 후 손들 가운데서 보다도 더 순수한 형태로 셈의 가족들에게서 보존되기는 했 지만,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데라의 집에서까지도 우상 숭배에 의해 타락되 어 있었습니다(수 24:2-3).
또한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하신 나라의 조상이 되게 되어있었지만,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따라서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새로운 가족이 그에게서 나오리라고 기대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새로운 시작으로서 족장의 역사는 가족의 역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데, 그 가족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장차 오는 이스라엘 을 위해 근거를 예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가족으로부터 성장케 되어 있었고 또한 족장들의 생애에서 그 특징이 결정되고 그 발전이 예시되 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역사는 특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고 불리운 세 족장에 의해서 표시되는 세 시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선택된 가족의 통일이 12족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족장에게서 한편으로는 거룩한 나라의 선택과 한편으로는 이스 라엘의 생활의 성격과 지도의 전적인 형성이 그것들의 완전한 전형적 현현 에로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주축들이었는데, 족장들에게 주어진 모든 신적인 계시들과 그들이 받았던 모든 지도들은 그 주축에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계시들은 거의 독점적으로 약속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또한 이 약속들 이 족장들의 생애에서 성취되는 한 그 성취들 자체는 먼 거리에 또는 가장 먼 미래를 위해 보존된 궁극적이고 완전한 성취의 예언들과 담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지도는 그 목적을 위하여 약속에 응답한 신앙의 부르심 을 가졌는데, 그 약속은 그 자체를 이 지상 생활의 모든 변화들 가운데 유 지시켰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또한 그 말씀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보이는 현재의 것을 포기한 신앙은 족장들의 근본적인 특징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희생과 인내, 자기를 부인하는 순종으로써 이 신앙을 나타 내고 유지시켰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는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롬 4:11).
이삭도 역시 인내하고 바라는데 있어서 강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 은 약속의 축복을 얻기까지 여러가지 고통스런 상황 가운데서 신앙으로 씨 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이삭은 견디는 믿음의, 그리고 야곱은 씨름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족장들은 신앙으로 행함으로써 그들에게서 나와 그들을 통하여 축복을 받게 될 모든 족속들을 위한 믿음의 전형들이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 께서 그의 은혜의 선택을 따라 세우시기로 결정하신 민족의 조상들이 되었 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아브라함을 구원의 매개체로, 작정된 나라의 아버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셈의 족속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에만 제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역시 아브라함이 약속된 씨를 얻을 목적으 로 자기 아내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사람의 뜻으로 낳았던 이스마엘을 추방 시킨데서 표현되었으며, 또한 불모의 사라의 태에 부여된 새 생명과 그녀의 후속적인 임신 그리고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탄생에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하나님의 선택)은 더욱 분명하게 리브가가 이삭 에게 낳은 쌍둥이 아들에게서 현현되었는데, 그 두 아들 중에서 장자 에서는 버림을 받고 동생 야곱이 약속의 상속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들의 출생 이전에 선언되었던 이 선택은 이삭의 계획들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었으며, 따라서 에서가 아닌 야곱이 약속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장래에 대한 한 전형으로 일어났는데, 이는 이스라엘로 하 여금 아브라함에게서 내려온 육신적 자손이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지 않고, 신앙 가운데서 신적인 약속을 붙잡고 그들의 이전 조상의 신앙의 발 자취를 따라 행한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 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참조; 롬 9:6-13).
그런데 창 12:1-3 앞에는 셈-데라의 족보가 나오고 11:1-9 앞에는 노아 후손의 족보가 나옵니다. 홍수 후 노아 후손의 역사는 홍수 이후의 새 인류 의 역사입니다.
10장에서는 홍수 이후 인류가 어떻게 세계로 흩어지는가를 나타내는데, 그 다음이 바벨탑 사건이라고 하면 홍수 이후 인류의 새로운 역사의 특성을 드러내주는 전형적인 대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수 이후 은혜를 입은 노아 후손의 새 역사는 시날 평야에서 자기 이름들을 내 기 위한 것으로 특성됩니다. '하늘에까지 닿는 탑'이 상징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자세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도전하고 반항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 여줍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상태를 흩어버리셨습니다. 저주하셨습니다. 11장의 사건은 자기네들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주를 의미합니다(땅을 떠나도록 한 것, 바 벧론 포로는 하나님이 흩으신 저주의 대표적인 예). 인간 왕국은 왜 저주로 끝납니까 사람들이 세우는 나라는 왜 하나님 보 시기에 악합니까 창세기 6장의 문맥으로 살펴봅시다. 창 6:5절에는 인간은 그 마음에 생겨먹은 꼴이 원래(항상) 악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생각의 근원이 악한 것입니다. 인간은 속속들이 썩었습니다. 완전히 썩 은 상태 즉, 핵심까지 완전히, 또한 평생 동안 악했습니다. 즉, 전적 타락, 부패하여 전혀 돌이킬 수 없었던 상태란 말입니다. 이것이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서 시작되는 아담의 역사로부터 악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두 쓸어버리기로 하셨는데 노아만이 은혜 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8:22에 보면 사람의 내적, 심적 부패성은 치료되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시며,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저주하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홍수의 근본 원인인 '사람의 악함' 이 홍수 후에도 없어지지 않은 채인 것을 아시고 잠정적인 말씀을 하신 것 입니다. 새 인류는 그 근본부터 심판과 멸망이 자초되도록 되어 있다는 말 입니다. 탑의 성격은 그것이 종교적인 건축물인지 어떤지는 상관 않고도 그 의미가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해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의 새 역사가 결국 바벨탑에서 드러나듯이 인간들이 스스 로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함으로써 근본적인 마음의 악이 처리되지 못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악의 표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흩어짐).
그러므로 인류의 보편역사는 저주와 심판의 역사입니다. 근본적 으로 악한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결국 망하는 것을 보 여주는 것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벌이는 어떤 노력이 나 왕국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불러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구원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멸망받음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언어의 혼잡:의사소통의 단절은 인류사의 분열이며 특히 그 내적분열을 의미합니다. 고대사회는 농경사회이므로 땅과 유리될 수 없는 때이기에 자 신의 정착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역병, 기근, 전쟁 등 목숨을 내놓는 그런 사건시만 자신의 땅을 떠나는데 따라서 정착지 땅을 떠나는 것은 저주를 뜻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언어의 통일성을 깨뜨리기로 결정하셨고 그후에 사람들을 지면에 흩으셨다고 기록되고 있을 때 이 신적인 재판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어지게 하셨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초기 언어는 사멸되어 민족들의 언어의 재료들 속에로 파묻혀 버렸지만, 결과를 초래한 죄가 은혜의 능력에 의해 극복되고 소멸될 때 모든 구속받은 자에게 알기 쉬운 새방언의 영광스러운 형태로 언 젠가 영생으로 또 다시 재생될 것입니다. 이 소망의 형태와 담보물은 기독교의 첫 오순절에 성령님을 교회에 부어주신 방언의 은사로 주어졌는데, 그때 에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다른 방언이나 새 방언으로 말하였으며 따라서 하늘 아래에 있는 각 나라 백성들이 그들 자신 의 언어로 이해하였습니다.
창 11:10부터는 셈-데라의 족보입니다. 노아의 술취한 사건과 셈의 행동 을 통해서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립니다(창 9장). 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라'고 노아가 셈을 축복합니다. '.의 하나님'이라는 표현 이 최초로 나타나는데 '셈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셈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나는 네 하나님 되고 너는 내 백성'인 것인데 특별한 관계를 표현할 때 쓰 이는 말입니다. 노아의 세 자녀로부터 나온 한 족속이 지상에 많은 나라로 흩어져 다른 언어들을 말하는 민족이 되었다는 것을 기술하고난 후에 이야기는 다시 셈 에게로 돌아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까지 직선으로 그의 자손들을 추적하 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셈으로부터 벧렉을 거친 데라 족속의 직접적 인 후손임을 보여주기 위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족보에서 우리는 홍수를 전후하여 생명의 기간에 매우 중 요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즉, 홍수 이후의 족장들은 홍수 이전의 족 장들보다 평균적으로 절반 밖에 살지 못하였으며 또한 벧렉의 평균 수명의 기간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950세를 살았던 노아는 완전 히 옛 세상에 속하였고 또한 홍수 이전에 난 셈은 600세까지 살았지만, 아 르박삿은 438세 밖에 살지 못하였고 셀라는 433세, 그리고 에벧은 464세 살 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벧렉에 이르러서는 239세로 줄어들었고 르우도 겨우 239세, 스룩은 230세, 나홀은 148세 이상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개의 큰 대사변 즉, 홍수와 인류가 여러 국가 들로 분리된 사건이 생명의 기간을 단축시키는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자는 지구의 기후의 변동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사람들의 습관의 변화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간은 감소된 반면 에 아이들은 이에 비례하여 보다 일찌기 탄생되었습니다. 셈은 그의 아들을 100세에 낳았고,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는 30세에 그리고 70세까지 아이 를 못낳은 데라까지 계속됩니다. 결과적으로 인류는 그 수명이 짧아진데도 불구하고 분산 직후에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 나갑니다. 26절에서 족보는 5:32절에 있는 족보와 같이 데라의 세 아들의 이름으로 끝나는데 이들 모두가 계속되는 역사 즉 선택한 가족의 아버지로서의 아브 람, 리브가의 조상으로서의 나홀과 롯의 아버지로서의 하란과 밀접한 관계 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7-32절에 있는 족보의 자료들은 족장의 역사에 대한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는 서두는 단지 27-32절에 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음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기사 전체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25:12절과 19절에 있는 이스마엘과 이삭의 '족보'들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상이한 족보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또 다시 27절에 언급되어 있는 데라의 세 아들에 대해 계보적인 주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브람 과 그의 가족에게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과 나홀은 그들의 친척 중에서 아내를 취합니다. 아브람은 그의 이 복 누이 사래(20:12)와 결혼했는데, 다음에 나오는 구절을 보고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나홀은 그 의 형제인 하란의 딸 밀가와 결혼했는데, 밀가는 그에게서 리브가의 아버지 인 브두엘을 낳습니다. 족장의 역사의 특징 이제 수 많은 족속들로 성장한 노아의 아들들의 후손들의 분산은 한편으 로 언어와 생활 방식, 습관이 다르고 서로 엉켜진 여러 나라를 필연적으로 낳게 하였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민족들이 하나님께 대해 가지는 상이한 태 도 속에 내포된 우상 숭배의 종자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 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린(롬 1:23) 이방주의 의 다신교적 종교로 확장시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모든 생물을 파괴시키는 저주로 더 이상 땅을 치지 않으시고(8:21-22), 또한 죽음을 초래케 하는 도덕적 부패 를 그 앞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데서 방지하셨다면, 그는 반드시 이 자 발적으로 형성된 국가들 곁에 그의 구원을 수납하고 보존시키기 위하여 스 스로 한 국가를 형성하실 것이며 또한 세상에 세워진 왕국과는 반대로 사람 과 그 자신의 생동적이고 구원적인 교제를 위한 한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기초는 그의 백성과 그의 고향으로부터 부르시고 구별시키 실 때, 그리하여 특별한 지도에 의해 그를 세계의 구원이 오게 될 국가의 조장이 되게 하셨을 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놓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에 의해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최상의 특징을 취하였으며,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만 구원의 창시자와 참된 생명에로의 인도자로 나타내셨습니다. 한편 다른 국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능력에 따라 그들 자신의 과정을 추구하도록 방 치되었는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방법대로는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없이는 영혼의 평화와 참된 생명의 축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 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참조; 행 17:27). 그러나 이 독점성 (exclusive)은 처음부터 만인구원설의 씨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이 축복을 받게 되도록 하기 위 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2:1-3).
그러므로 인류의 신적 지도가 아브라함 의 소명에서 취하였던 새로운 형태는 한편으로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축복 하셨던 셈의 족속에 속하였다는 사실과 또한편으로 단지 혼자만이 부르심 을 받지 않고 그의 아내와 결혼한 사람으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 하여 세상의 일반적인 발전과 연관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고려해 볼 때 신적 계시의 지속성은 인류 발전의 계획이 창조 그 자체에서 수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보증된 반면에, 아브라함의 소명은 새 시대의 시작을 소개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새로운 기초들이 새로워져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면 비록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배가 노아의 남아있는 후 손들 가운데서 보다도 더 순수한 형태로 셈의 가족들에게서 보존되기는 했 지만,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데라의 집에서까지도 우상 숭배에 의해 타락되 어 있었습니다(수 24:2-3).
또한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하신 나라의 조상이 되게 되어있었지만,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따라서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새로운 가족이 그에게서 나오리라고 기대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새로운 시작으로서 족장의 역사는 가족의 역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데, 그 가족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장차 오는 이스라엘 을 위해 근거를 예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가족으로부터 성장케 되어 있었고 또한 족장들의 생애에서 그 특징이 결정되고 그 발전이 예시되 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역사는 특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고 불리운 세 족장에 의해서 표시되는 세 시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선택된 가족의 통일이 12족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족장에게서 한편으로는 거룩한 나라의 선택과 한편으로는 이스 라엘의 생활의 성격과 지도의 전적인 형성이 그것들의 완전한 전형적 현현 에로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주축들이었는데, 족장들에게 주어진 모든 신적인 계시들과 그들이 받았던 모든 지도들은 그 주축에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계시들은 거의 독점적으로 약속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또한 이 약속들 이 족장들의 생애에서 성취되는 한 그 성취들 자체는 먼 거리에 또는 가장 먼 미래를 위해 보존된 궁극적이고 완전한 성취의 예언들과 담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지도는 그 목적을 위하여 약속에 응답한 신앙의 부르심 을 가졌는데, 그 약속은 그 자체를 이 지상 생활의 모든 변화들 가운데 유 지시켰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또한 그 말씀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보이는 현재의 것을 포기한 신앙은 족장들의 근본적인 특징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희생과 인내, 자기를 부인하는 순종으로써 이 신앙을 나타 내고 유지시켰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는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롬 4:11).
이삭도 역시 인내하고 바라는데 있어서 강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 은 약속의 축복을 얻기까지 여러가지 고통스런 상황 가운데서 신앙으로 씨 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이삭은 견디는 믿음의, 그리고 야곱은 씨름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족장들은 신앙으로 행함으로써 그들에게서 나와 그들을 통하여 축복을 받게 될 모든 족속들을 위한 믿음의 전형들이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 께서 그의 은혜의 선택을 따라 세우시기로 결정하신 민족의 조상들이 되었 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아브라함을 구원의 매개체로, 작정된 나라의 아버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셈의 족속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에만 제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역시 아브라함이 약속된 씨를 얻을 목적으 로 자기 아내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사람의 뜻으로 낳았던 이스마엘을 추방 시킨데서 표현되었으며, 또한 불모의 사라의 태에 부여된 새 생명과 그녀의 후속적인 임신 그리고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탄생에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하나님의 선택)은 더욱 분명하게 리브가가 이삭 에게 낳은 쌍둥이 아들에게서 현현되었는데, 그 두 아들 중에서 장자 에서는 버림을 받고 동생 야곱이 약속의 상속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들의 출생 이전에 선언되었던 이 선택은 이삭의 계획들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었으며, 따라서 에서가 아닌 야곱이 약속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장래에 대한 한 전형으로 일어났는데, 이는 이스라엘로 하 여금 아브라함에게서 내려온 육신적 자손이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지 않고, 신앙 가운데서 신적인 약속을 붙잡고 그들의 이전 조상의 신앙의 발 자취를 따라 행한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 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참조; 롬 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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