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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를 축복하신 하나님 (창8:1-11:9)

본문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방주 속에 있는 노아와 그 가족들을 권념하 시고, 축복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노아를 권념하시고, 홍수로 파괴된 세상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세우시고, 노아와 그 후손들이 땅에 번성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번성하자 다시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께 반역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그들을 온 땅에 흩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연약한 인생들을 권념하시 고,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영접할 수 있 기를 기도합니다.
I. 노아를 권념하신 하나님 (8:1-19) 홍수 심판으로 인해 사람들을 비롯하여 코로 숨쉬는 모든 짐승들과 생물들을 다 죽었습니다. 방주 속에 있는 노아와 그 가족들과 생물들 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 이 지나도 물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넉 달이 지나고 다섯 달이 다 되어도 홍수 심판은 계속되었습니다. 온 세상을 덮은 물이 창일해 있 었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1절을 보 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셨습니다. 권념하다(remembered)는 말은 '생각하다'는 뜻으로 완전히 잊어버렸다가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들을 위하여 행동을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출 2:24, 6:5).
1) 하나님 께서는 노아를 결코 잊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노아 를 생각하시고 구체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2-5절을 보십시 오.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니 물이 감하여졌습니다
(2). 여기에서 바람이라는 말은 1:2의 하나님의 신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홍수 심판으로 황폐케 된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습니다
(3). 물이 땅에서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4). 홍수 심판이 시작된 지 150일 후, 7월 17일에 방 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물이 계속 감하여 10월 1일에는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5). 그후 40일이 지나서 노아는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았습니다 (6-7). 까마귀는 땅이 마르기까지 날아다니며 왕래하였습니다.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8,9). 비둘기가 돌아왔다는 것은 아직 땅이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였습니다. 다시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았습니다(10).
그런데 그날 저녁 에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11). 이것은 물이 감하였고, 나무에 새 잎새가 돋아난 것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길조(吉兆)였습니다. 노아는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 어 놓았습니다(12). 그러나 비둘기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비둘기는 마르고 깨끗한 정착지를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노아는 방주 속에서도 계속하여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7:4, 10, 8:10, 12).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지키고, 제 7일에 안식하였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601세 되 던 정월 초하루가 되자 지면에 물이 걷혔습니다. 노아는 방주 뚜껑을 제치고 지면에 물이 걷힌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땅이 완전히 마르기까지는 다시 두 달이나 걸렸습니다(14). 2월 27일에서야 땅이 다 말랐습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 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왔고, 모든 짐승들도 새들도 다 나왔습니다. 노아는 만 1 년 10일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방주에 있는 자들을 권념하시고 안전하게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 은 노아와 구원의 언약을 맺으시고(6:18),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자와 맺으신 언약을 한 시도 잊으시지 않으시고, 가 장 안전하고 가장 좋은 때에 권념하시고, 구체적인 구원의 손길을 뻗 으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이 불행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고생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루속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나 축복된 새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노아를 권념하신 하나님께서는 애 굽에서 고역으로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념하사 출애굽 시키셨 습니다(출 2:24,25). 그들을 안전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 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자녀들을 눈동자와 같이 살피시며 권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 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4,15)." 우리도 믿음으로 살지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징계만 하시는 것 같을 때 하나님 이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면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가, 왜 가정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하는 불신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미가 젖먹이 자식을 잊지 않고 불쌍히 여김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녀들을 잊지 않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노아를 권념하시 고, 이스라엘을 권념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결코 잊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권념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시 121:4).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광풍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참된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노아를 축복하신 하나님 (8:20-9:29) 20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는 말은 성경에서 처음 나옵니다. 노아는 1년이 넘도록 방주 속에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이는 마치 퓨리턴들이 아메리카 대 륙에 건너가서 제일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 해에 자녀 교육을 위하여 학교를 짓고, 삼 년째 그들이 거할 집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그들의 그 믿음을 기뻐 받으시고, 오늘날의 미국이 되게 축복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모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취하여 번 제를 드렸습니다.
2) 노아가 번제를 드린 것은 감사와 속죄의 의미가 있습니다. 노아는 자기와 가족들을 무서운 홍수 심판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깊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과 새롭게 시작될 후 손들을 위해서 희생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어떤 결심 을 하셨습니까 "다시는 사람을 인하여 땅에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 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것은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6:5,6). 노아의 후손들도 본질적으로 악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부패 하여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홍수로 세상을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악으로 인해 무질서와 혼돈이 가득 했던 세상을 다시 한번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노아를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9:1절을 보십 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인류 가 다시 온 땅에 번성하여 충만케 되기를 희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아 담에게 주신 축복 중에 "땅을 정복하라, . 다스리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창 1:27,28).
2절에 보면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 대신 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 에 붙이었음이라."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짐승과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인간도 채식을 했고, 동물도 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 세계의 질서가 파괴되었습니다. 동물도 인간과 함께 패괴하 게 되었습니다(창 6:12). 짐승이 짐승을 잡아먹는 먹이사슬이 형성되 고, 약육강식의 처절한 생존 경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짐승 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9: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 축을 제외한 모든 짐승들에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본능을 주셨습니다. 짐승들의 생사 여탈권을 사람에게 부여하심으로 사나운 맹수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여 육식을 할 수 있도록 허 락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되리 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지구의 환경은 홍수 심판 이후에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궁창 위에 있던 물이 필터 역할을 하여 외계로부터 오는 인체에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하고,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짐으로 지구 환경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었고, 세포 가 빨리 노화되어 인간의 수명이 급속도로 짧아졌습니다. 그래서 천 년 가까이 오래 살던 인간들이 홍수 심판 이후에는 점차 줄어들어 120 년을 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육식을 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을 두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고기 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라" 피는 곧 생명입니다. 피는 생리학적 으로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에 산소를 나르고,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해 주어서 살아 움직이게 해 줍니다. 피는 곧 생 명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와 생명 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을 피채 먹는다는 것은 생 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큰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분명한 질서를 세우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도록 명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이 생명 되는 피채 고기를 먹게 되면 생명 자체에 대한 존엄성을 잃게 되고, 인간의 생명도 함부로 죽이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 게 육식을 허락하시면서 가장 염려하신 것이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5,6a절을 보십시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 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 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형제 살인한 후에 그 후손들이 서로 피 를 흘리며 강포가 충만해진 세상을 홍수로 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 역사를 시작하는 노아에게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길 것을 명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짐승은 물론이고, 사람도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의 피를 흘릴 것"이는 말씀은 살인자를 사람들 손에 맡겨 심판하실 것을 명하 신 것입니다. 홍수 이전에는 죄인을 심판할 공식적인 법률이나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법과 정부의 필요성을 인정하시고 허락하셨 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법이나 제도도 근본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인간의 생명을 존귀히 여기십니까
6b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 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 있 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위대한 것은 덩치가 크기 때문 이 아닙니다. 덩치가 크기로 말하면 맘모스나 코끼리를 따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가치는 노동력이나 물질적인 가치로 측량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 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존엄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비록 타락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엡 4:23,24, 롬 8:29).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 3:10)"
그러므로 우리 신자 들은 인간의 생명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보험금 을 타기 위해서 남편을 청부 살해하기도 합니다. 꾸지람하는 아버지를 야구 방망이로 쳐죽이는 자식도 있습니다. 또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매 년 100명이 넘습니다. 한국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일년에 8000명 이 넘습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적으로 하늘과 땅과 바다에 대형 사고 가 끊이지 않는 사고 공화국으로 알려졌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우리들의 의식 구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존귀히 여긴다면 운전을 난 폭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존귀히 여긴다면 건축을 날림으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귀히 여긴 다면 두부에 석회를 섞고, 도토리묵에 인공 색소를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 지 못할 때, 이 세상은 무질서와 혼돈, 부정과 부패, 살인과 강포가 충만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신자들은 생명에 대 한 존엄성을 잃지 않고,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믿음으로 살 아야 합니다.
슈바이쳐는 당시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철학 박사요, 신학 박사로서 20대 에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나이 30세에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 밀림 속 에 들어가 질병으로 죽어 가는 흑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일대일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죄로 죽어 가는 한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끔 한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희생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을 살리 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하는 것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귀 한 일인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내가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갈 4:19).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을 귀히 여기는 믿음으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 한 모든 생물들과 영원한 언 약을 세우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 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본 문에 언약이라는 말이 7번이나 반복됩니다(9,11,12,13,15,16,17).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으로 노아의 마음속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제하 시고, 인류 역사에 대한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증 거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고,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 니라(13)."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비가 온 후 하늘에서 땅으로 뻗 어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때마다 홍수 심판에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현재도 살 아 계시며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지 않으실 하나님을 기억하였 을 것입니다. 9:18-29은 노아의 남은 여생이 어떠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 벗고 누워 있었습니다. 마침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 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했습니다(22). 고했다는 말은 "즐거이 말했다"는 뜻으로 아버지의 허물과 약점을 비 난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가 평소에 믿음으로 사는 아버지를 존경치 않았으며, 그의 경건치 못한 죄가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옷을 취하여 자기들 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서 들어가 아비의 하체를 덮어 주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허물과 약점을 감싸주며,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을 잃 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의인이 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던 노아가 어떻게 이런 허물을 남긴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사건을 빼지 않고 상세하게 기록한 목적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말해 주고자 합니다. 노아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 시대의 죄악 과 싸우며 믿음을 지킨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후 에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그 수치를 드러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축복을 받은 후에 믿음의 중심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 줍니다. 또한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방심하면 큰 허물 과 죄를 남길 수밖에 없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의 날 에도 영적 긴장을 풀지 않고, 더욱 깨어서 투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술이 주는 병폐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술은 노아와 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도 쓰러뜨릴 만큼 엄청난 힘 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 23:29-35을 보면, 술은 우리에게 재앙을 가 져오고, 근심케 하며, 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원망하는 말, 까닭 없 이 폭력을 휘두르게 합니다. 또 자제력을 잃게 만들고, 방탕한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술과 정욕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의 말대로 보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나서 자기 죄악을 생각하며 눈물로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25-27절 말씀은 노아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자손들의 장 래 일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 의 종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가나안의 후손들이 가장 비천한 일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은 여호 수아 시대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멸족되었습니다(수 9:23, 삿 1:28-30). 또 노아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 (26). 이는 셈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내다보고 예 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또 노아는 하나님께서 야벳을 창대케 하시고, 셈의 장막에 거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야벳의 후손들은 그리스와 로마 등 유럽 사람들을 가리 킵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아주 창성했으며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셈 의 장막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최초의 예언이었습니다(엡 2:14). 노아는 홍 수 후에 350년을 살았고 950세에 죽었습니다(28,29).
Ⅲ. 언어를 혼잡케 하신 하나님 (10:1-11:9) 10,11장은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와 왜 인류가 특별한 언어를 가진 여러 종족으로 나뉘어 졌는가를 말해 줍니다. 1-5절은 야벳의 후손들 입니다. 이들은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등으로 이들은 지중해 북쪽에서 소아시아 여러 곳으로 흩어져 열방들이 되었 습니다. 또 6-20절은 함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 스바, 하윌라 등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프리카와 남부 아 시아 지방 전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 자손 중에 니므롯 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상에 처음 있는 영걸이었습니다(8).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교만 되이 행하며 여호와를 거스려 행한 자였 습니다. 그의 이름은 "반항"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 시하고, 억압과 횡포를 행한 자였습니다. 그는 바벨, 에렉, 앗갓, 갈 레에서 시작하여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 레센 등 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는 최초의 제국주의 창설자입니다. 학자들에 의 하면 그가 바로 바벨탑을 쌓기 위해 진두지휘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21-32절에는 셈의 후손들이 나옵니다. 셈이라는 말은 "한 인간의 생명" 이라는 뜻입니다. 셈은 히브리인의 온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21). 이들은 이스라엘, 이스마엘, 에돔, 미디안 족속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페르시아만의 동북 지방, 앗시리아, 수리아, 유브라데스 강 유역 ,서남 아시아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셈족은 아시아 남 부 지방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노아 자 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열국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이상을 볼 때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세상을 심 판하셨지만 노아의 후손들을 놀랍게 축복하시고, 번성케 하셔서 인류 역사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11:1-9은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온 땅에 흩으신 사건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 를 만나 거기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넓은 평야에 정착하여 큰 도 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쌓고자 했습 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 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 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이 말씀을 보면 이 시대는 자연과학 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에 이집트와 수리아에서는 흙으로 벽돌을 찍어 햇볕에 말려서 사용했습니다. 또 다 른 지역 사람들은 돌을 깎아서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벽돌 을 구워서 돌같이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 였습니다. 건축 역사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이런 과학 기술로 성과 대를 쌓으면 하늘 꼭대기에 닿을 수 있다는 자신감 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보다 자연과학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이나 된 것처럼 교만을 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말했습니다. 성 과 대를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내자,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또 온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고자 했습니다.
니므롯은 홍수 심판을 내 리신 하나님께 반항이라도 하듯이 높은 성과 탑을 쌓아 하나님을 이기 려 했습니다. 또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대개 탑의 꼭대기에는 우상 에게 드리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는 곧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피 조물과 썩어질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 버린 우상 숭배의 단을 쌓고 한 것이었습니다(롬 1:21-23).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께서는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 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하셨습니다.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은 혜를 한 곳에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 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 잡케 하심으로 의사 소통이 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니므롯이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습니다. 서로 의 사 소통이 되지 않으니 자연히 흩어져서 가족 단위로 모여 살게 되었 습니다. 이로 인하여 종족이 갈라지게 되었고, 소수 종족들은 그 수를 늘리기 위해서 자식들을 많이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어 온 땅에 큰 민족들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므롯의 교만과 불경건을 낮추시고, 바벨탑들은 짓다가 그냥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바벨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기 때 문이었습니다(9).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인간의 도모 도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70년 전에 공산주의는 유물론을 주장하며 하나님없이 유토피아를 건설할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 이상 (理想)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을 가장 가난한 거지 나라들로 만들어 뿔뿔이 흩 어지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세상이 점점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생태계가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자연과학이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여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인간의 도모는 스스로 모순을 드러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크신 뜻과 섭리 가운데로 세상을 인도해 가십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권념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 로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죄 가운데 죽어 가는 양들의 생명 을 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승리의 날에 영적인 긴장을 풀 지 않고, 더욱 깨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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