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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믿게 하옵소서 (요1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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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불신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으로 사람들이 잘 살게 되었지만 정은 예전같지 않고 어디에 기댈만한 구석은 조금도 안보이고,어리숙한 곳이라고도 전혀 보이지 않는 약아빠진 처세만 보 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불신의 사회일수록 믿을 만한 것을 더욱 찾기 원하는게 사람 의 본성입니다. 원래 사람들은 모여 살기에 되어졌기에 사람들은 기댈 만한 사람이 없으면 애완견과 같은 짐승에게라도 기대려고 하는가 봅니다. 기술이 발달한 서구나 일본에서 점성술이나 점보는 것이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 옛부터 믿음의 대상은 바뀌어 왔어도 없어지지는 않 았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믿음의 대상을 찾는데 우리는 진리이며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저들로 하여 금 엉뚱한 곳으로 부터 믿음의 대상을 찾게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세상으로 하여금 믿게 하는 일 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세상에서 보존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15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부터 데려가기를 원 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남겨두시고 보존하기를 하나님께 구하셨 습니다. 즉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과 등지는 삶을 살 것이 아닌 세상에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헬라어의 미완 료형으로, '끊임없이 살피고 훈련시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성도 들이 세상에서 별도의 장소에서 편한 안식만을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되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 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둘째,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남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해져야 하며, 거룩한 외면의 거룩이 아닌, 내적 변화와 속사람의 깨끗해짐입니다. 거룩은 연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위로부터 부어 지는 '거룩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빨래를 할 때 세제를 넣지 않고 빨래를 하면 때가 빠지는데 한계가 있는데, 세탁기에 넣고 돌리거나 손으로 부벼도 속의 때는 빠지지 않고 더 숨어버려서 찌든 때가 돼버 리지만, 세제를 부으면 화학작용이 일어나 때가 흡착되어 잘 빠지게 되듯이, 우리가 거룩을 연습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의 은혜,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 이루어지게 됩니다.
셋째, '한 몸' 이 되어야 세상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군 에서 장병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내게 질문하는 몇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즉 '교파가 왜 그렇게 많고, 교회끼리는 이웃에 있어도 친밀 한 인사를 나누지 않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 을 볼 때 어느 부분은 몹시 살이 쪘고, 어떤 부분은 몹시 말라 기형적 으로 비뚤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개체들이 모인 집합소가 아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 의 연합소입니다. 생명의 나눔은 한 지체의 아픔을 모두의 아픔으로 느끼며 자신의 불편을 참아가며 도우는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는 시는 불가능 한 이상향을 노래한 것이 아닌 실제로 삶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것입니다. 섬김과 나눔이 일회성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의 모습이 되 게 합시다. 그리고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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