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주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28:1-10)

본문

아프리카 우간다의 이디아민이 폭정을 하고 있었던 1973년 부활주일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셈판기 목사가 7천명 성도들 앞에서 부활주일 설교를 마치고 목양실로 돌아오자 비밀경찰 5명이 뒤쫓아와 총을 겨누었습니다. 순교를 각오한 셈판기 목사는 '오늘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소. 죽기전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한 후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인솔자는 대원들을 데리고 조용히 나가고 있었습니다. 부활신앙은 모든 상황을 이기게하는 승리의 원동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은총이 부활절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먼저 축원합니다.
 본문은 막달라마리아을 비롯한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왔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지고 그 위에 앉은 천사가 "너희는 무서워말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부활신앙은 보여져야 됩니다. 천사는 오늘 우리들에게 부활의 신앙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와서 죽으셨던 주님의 누우신 곳을 보라.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비어있는 무덤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빈 무덤에서부터 설명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3대성인을 예수, 공자, 석가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공자와 석가는 수한이 다 되어 죽어 공자는 중국의 사천성에 묻혀 분묘를 남겼고, 석가는 인도의 부다가야에 매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시 살아나심으로 자신이 누웠던 무덤을 빈무덤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덤을 바라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슬픔에 잠기게 되거나 자신의 미래의 죽음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무덤을 빈 무덤으로 만들어놓은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무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천사가 하늘로 내려와 이미 빈무덤이 되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밖으로 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무덤이 비어있음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덤앞에 있는 묘비의 대부분은 "누구 누구가 여기 누워 있다"라는 글이 많이 있습니다. 허나 예수님의 묘비에는 글자로 쓴 것도, 새겨진도 아닙니다. 오직 천사의 입으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는 빈 무덤의 증언뿐이 었습니다. 무덤은 인간들을 슬프게 만듭니다. 그래서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의 무덤을 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도 부활하신 주님의 빈 무덤을 바라보는 순간 멈추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 게으른 의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부인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왕진가방을 들고 뛰어갔습니다. 환자의 방에 들어간 의사는 조금후 급히 나와 환자의 남편에게 송곳을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헌데 의사는 다시 나와 큰 목소리로 "끌과 망치를"하고 소리칩니다. 점점 더 심해져가는 아내의 신음을 듣다 못한 남편은 의사에게 "도대체 무슨 병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아직 나도 모르겠소. 왕진가방이 열려야 알겠는데 가방이 열리지 않으니 알 수가 없소"라고 하더랍니다. 그는 환자를 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열리지 않는 가방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제대로 열려야만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닫혀져있는 신앙이 있습니까 아직 무덤에 죽어 누워있는 신앙이 있습니까 주님의 부활과 함께 부활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갈릴리로 가야하는 사명을 보아야 합니다
빈 무덤앞에서 부활을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사는 빨리 갈릴리로 가라고 합니다. 부활의 기쁜소식을 전해야할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부활의 기쁜소식은 실망의 발걸음으로 갈릴리로 떠난 예수의 제자들에게 전해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족이 베로 묶인 채 살아난 나사로를 풀어놓아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영적생활에서 거듭났다고 말하면서 활동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수족이 묶여진자와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신앙과 함께 세상가운데 묶여져 있던 삶에서 풀어 놓아져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부활을 모르는 자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 실망하고 사는 자들이 살고있는 갈릴리 마을로 달려가야만 합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해보십시오. '살자'로 바꾸어집니다. '죽자'의 인생속에 부활신앙이 들어가게 되면 '살자'의 인생으로 전환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은 죽자의 인생이 아니라 살자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부록이 아니라,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 그자체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은 인간의 삶을 소생기키며, 치료하고, 일어나게 하여, '죽자 죽자'의 인생을 '살자 살자'의 인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흑인여가수 마리아 앤더슨은 1955년 그녀의 나이 55세에 흑인가수로는 처음으로 메트로폴리탄에 출연, 관중을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속에서도 세계정상에 우뚝서게 된 그날, 그녀는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나의 시선은 고난과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였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실망, 상처와 슬픔속에 있는 갈릴리사람들을 찾아가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을 전해야만 됩니다. 부활의 복음을 가슴에 안고 지체없이 달려가는 부활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의 마음속에 부활로 인한 평강과 승리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워야할 무덤을 바라볼 때 생기는 공포를 없애주시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누우셨던 곳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시체로 누워계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무덤으로 갔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그녀에게 보여주심으로 그녀로 하여금 큰 기쁨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평안이요, 기쁨이요, 승리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까닭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흐리멍텅하거나 어둡지 않습니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곳입니다. 부활이란 사는 것이지 죽어가거나 죽은 것이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부활신앙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있는 곳을 생명이 있는 곳으로, 평강이 있는 곳으로, 승리가 있는 곳으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만 함께 하시면 사탄은 이빨빠진 사자와 같이 될것이며 무장해제당한 포로와 같을 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구주로 삼고 그 주님과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평안과 평강을 소유한 참 승리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승리는 내것일세' 외치는 자가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속에서 사는 자는 죽어도 생명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겨울 나뭇가지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은 것같이 보일 뿐입니다. 그 가지는 새봄과 함께 다시 싹이 나고, 잎이 자라, 꽃이 피어 열매를 맺습니다. 바닷가에 어느 교회의 여름수련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참석한 교인들에게 조개껍질을 하나씩 주워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왜 조개껍질이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갖자기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담임목사님은 그 답들을 다 들은 후 "다 틀렸습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껍질이 된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니 분리될 수 밖에 없고 쓸모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부활의 새생명을 얻지 못한 자, 영원한 생명이 없는 자는 껍질인생일 뿐입니다" 이리 저리 껍질로 굴러다니는 인생들이 되지 마시고 이제는 부활신앙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활동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심령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을 부정하는 일은 사실 믿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부활신앙은 내적승리를 가져오게 하며, 내적승리는 외적승리까지 가져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무덤비명은 "내가 여기 누워있다"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지 아니하다"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그를 믿는 우리들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로 생각하는 자의 삶속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습니다.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의 시청률조사를 했습니다. 방송국측은 농구팬이 무척많이 가지고 있는 UCLA대학이 이긴경기를 녹화해서 경기가 끝난 이틀후에 방영을 해보았더니 시청률이 생방송과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자기편이 이긴 경기는 조마조마한 긴장이나 불안없이 마음을 푹 놓고 볼 수 있어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사의 결과 승리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이겨놓고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미 승리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활신앙을 확실히 소유하십시오. 그리하여 안에서도 밖에서도 승리하는 축복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86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