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에서 맞이하는 부활 (마28:1-10)
본문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가 설교를 하고 있는데 한 이슬람 사람이 "우리는 당신들이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소.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담겨 있는 관이 있고 또 무덤이 있소. 정말 마호메트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예루살렘에 가보시오, 빈 무덤 밖에 없지 않소." 그때 스텐리 존스 박사는 "고맙습니다. 당신의 말이 진실인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빈 무덤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인간의 과학적인 두뇌로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동원된 사람이 무려 백만 명이나 된다. 그 중에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철학자, 고고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방사선 과학자등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건이다. 인간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누같이 희었다"고 말씀한다. 인간의 제한된 두뇌로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부활의 사건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부활의 사건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이 온 세상에 퍼진 것을 보라. 생명력이 있기에 온 세상에 부활의 복음이 퍼지고, 뿌리를 내리었다. 1999년 통계에 의하면 성경이 2233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은 예수 부활의 생명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생명의 사건이다. 하나의 정신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삼일 운동의 정신이 우리에게 살아있어야 한다고 한다.
4.19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좋은 정신이 우리에게 계승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하나의 정신이 우리에게 계승되는 정도가 아니다. 예수의 부활 때문에 내가 부활하게 되는 직접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바울은 이러한 내용을 열매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사과가 열리는 나무는 계속해서 사과가 열리게 되어 있다. 처음에 사과가 열리다가 세월이 조금 지나면 배가 열리고, 또 지나면 감이 열리는가 처음에 사과가 열리기 시작했으면 그 나무에서는 계속해서 사과가 열리게 되어 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첫 열매가 되었으니 끊임없이 우리에게도 생명의 열매가 열리게 될 줄로 믿는다.
그러기에 예수 부활, 나의 부활. 예수 승리, 나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예수 부활 나의 부활, 예수 생명 나의 생명, 예수 승리 나의 승리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을까 예루살렘의 로마 정부가 예수님을 그렇게 괴롭혔는데,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가서 "봐라, 내가 이렇게 부활해서 너희들에게 분명히 복수하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을까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던 예루살렘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짠"하고 보여주셨으면 훨씬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고, 먼저 왜 갈릴리로 가셨는가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174킬로나 떨어져 있는 거리로 가서 만나자고 하셨을까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갈릴리라는 곳의 특징을 알면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중심지이었다면, 갈릴리는 이방인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사야가 외치기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마 4:15-16) 예수 부활의 복음은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들만을 향한 복음이 아니다. 예루살렘을 넘어선 모든 이방인들을 향한 승리의 소식이요, 생명의 소식이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가셨다. 이방인들을 향하여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고 가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얼마나 많은 힘과 용기를 주는지 모른다. 이방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음이다. 그러기에 나에게까지 이 복음은 위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공간을 넘어서 위대한 영향을 미치고, 2000년 전 시간의 차이를 넘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루살렘에 거하던 특권계층 몇 사람만을 위한 복음도 아니었다.
인종을 넘어서, 시대를 넘어서, 지역을 넘어서, 교육의 수준을 넘어서, 빈부의 격차를 넘어선 예수 부활의 사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나 같은 사람도 예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될 수 있고, 예수 승리가 나의 승리요, 예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이 갈릴리가 이방의 지역일 뿐만 아니라, 갈릴리는 예루살렘에 비해 여러모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갈릴리에 사람들은 많은 상처, 실패, 고통, 좌절의 아픔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우리들끼리만"의 생각이 있었다. 갈릴리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대하는 집단 왕따의식이 팽배하였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라셨는데, 나사렛 출신이라고 하니 나사렛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빨리 갈릴리로 가서 만나자고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시달리고 상처받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경험한 자들에게 찾아가서 주님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해 갈릴리로 달려가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에 갈릴리에는 중풍병자도 많았고, 앉은뱅이 환자도 있었고, 앞을 볼 수 없는 자들도 많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상처받고 억눌려 살던 사람이 많았던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그곳에서 만나기를 원하셨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곳으로 가셨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에 으뜸가던 제자요, 너의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을 받았던 신임 받은 제자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저런 사람은 나와 상관없다고 고백했던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믿음의 패배자이었다. 영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영적인 좌절로 몹시 괴로워했던 베드로이었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가서 고기나 잡아 생계를 유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갈릴리 호숫가에 그물을 내렸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밤을 맞이하였다. 베드로가 맞이한 상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이었고, 물고기를 잡는 일도 완전히 실패한 캄캄한 밤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 갈릴리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배의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신다.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제자들을 불러 함께 그물을 들어 올린다. 세어보니 백쉰세마리를 잡았다.
갈릴리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다. 좌절하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다. 힘이 없어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삶에 지친 사람들,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갈릴리로 급히 오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갈릴리에서 맞이하는 부활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의 현실은 많은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는 갈릴리와 같은 곳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로 오셨다.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성도들의 병상을 심방하였다. 많은 환자들이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여학생인데 골수암으로 몹시 고통 중에 있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였다. 어느 권사님은 암세포가 뼈까지 퍼져서 고통 중에 있는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느 집사님은 1차 치료를 잘 마치고 퇴원하여 부활주일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이야기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곳은 마치 갈릴리와 같은 곳이다. 좌절하기 쉬운 곳, 절망하기 쉬운 곳, 포기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그곳에 찾아가셨다. 우리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찾아가셨다. "나 같은 사람까지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갈릴리로 찾아가셨다.
경제위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을 잃고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 많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시간이 많으면 오히려 돈을 쓸 곳이 더 많아진다. 너무나도 쉽게 자존심이 상한다. 직장을 잃은 아픔. 마치 갈릴리와 같은 곳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이러한 현장에 찾아오셨다. 갈릴리에서 맞이하는 부활이 되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기 바란다.
우리가 살면서 나름 데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실패할 수도 있다. 사업을 하여 성공해 보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하여 실패하여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실패라는 아픔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갈릴리와 같이 아픔을 경험하는 곳이지만 그곳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와 주셔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엄청난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가 18초 마다 여러 가지 범죄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걸어가다 억울하게 끌려가서 이유없이 맞는다. 돈을 빼앗긴다. 착하게 사는 사람이 억울하게 자기의 가진 것을 빼앗기는 아픔을 경험할 때도 있다. 우리가 사는 우리 현실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이러한 현장에, 갈릴리와 같은 곳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께서 복음을 처음 시작하신 곳도 갈릴리요,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처음 만난 곳도 갈릴리이다. 갈릴리는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다. 그곳에서 다시 부활의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갈릴리에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갈릴리에 찾아오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영동지방에 산불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보았다. 황폐해진 곳이지만 바로 그곳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구제역으로 농가에 많은 고통을 당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같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사 영원한 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줄로 믿는다.
갈릴리로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도 찾아가셔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인간의 과학적인 두뇌로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동원된 사람이 무려 백만 명이나 된다. 그 중에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철학자, 고고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방사선 과학자등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건이다. 인간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누같이 희었다"고 말씀한다. 인간의 제한된 두뇌로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부활의 사건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부활의 사건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이 온 세상에 퍼진 것을 보라. 생명력이 있기에 온 세상에 부활의 복음이 퍼지고, 뿌리를 내리었다. 1999년 통계에 의하면 성경이 2233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은 예수 부활의 생명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생명의 사건이다. 하나의 정신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삼일 운동의 정신이 우리에게 살아있어야 한다고 한다.
4.19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좋은 정신이 우리에게 계승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하나의 정신이 우리에게 계승되는 정도가 아니다. 예수의 부활 때문에 내가 부활하게 되는 직접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바울은 이러한 내용을 열매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사과가 열리는 나무는 계속해서 사과가 열리게 되어 있다. 처음에 사과가 열리다가 세월이 조금 지나면 배가 열리고, 또 지나면 감이 열리는가 처음에 사과가 열리기 시작했으면 그 나무에서는 계속해서 사과가 열리게 되어 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첫 열매가 되었으니 끊임없이 우리에게도 생명의 열매가 열리게 될 줄로 믿는다.
그러기에 예수 부활, 나의 부활. 예수 승리, 나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예수 부활 나의 부활, 예수 생명 나의 생명, 예수 승리 나의 승리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을까 예루살렘의 로마 정부가 예수님을 그렇게 괴롭혔는데,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가서 "봐라, 내가 이렇게 부활해서 너희들에게 분명히 복수하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을까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던 예루살렘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짠"하고 보여주셨으면 훨씬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고, 먼저 왜 갈릴리로 가셨는가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174킬로나 떨어져 있는 거리로 가서 만나자고 하셨을까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갈릴리라는 곳의 특징을 알면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중심지이었다면, 갈릴리는 이방인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사야가 외치기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마 4:15-16) 예수 부활의 복음은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들만을 향한 복음이 아니다. 예루살렘을 넘어선 모든 이방인들을 향한 승리의 소식이요, 생명의 소식이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가셨다. 이방인들을 향하여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고 가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얼마나 많은 힘과 용기를 주는지 모른다. 이방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음이다. 그러기에 나에게까지 이 복음은 위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공간을 넘어서 위대한 영향을 미치고, 2000년 전 시간의 차이를 넘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루살렘에 거하던 특권계층 몇 사람만을 위한 복음도 아니었다.
인종을 넘어서, 시대를 넘어서, 지역을 넘어서, 교육의 수준을 넘어서, 빈부의 격차를 넘어선 예수 부활의 사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나 같은 사람도 예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될 수 있고, 예수 승리가 나의 승리요, 예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이 갈릴리가 이방의 지역일 뿐만 아니라, 갈릴리는 예루살렘에 비해 여러모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갈릴리에 사람들은 많은 상처, 실패, 고통, 좌절의 아픔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우리들끼리만"의 생각이 있었다. 갈릴리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대하는 집단 왕따의식이 팽배하였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라셨는데, 나사렛 출신이라고 하니 나사렛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빨리 갈릴리로 가서 만나자고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시달리고 상처받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경험한 자들에게 찾아가서 주님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해 갈릴리로 달려가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에 갈릴리에는 중풍병자도 많았고, 앉은뱅이 환자도 있었고, 앞을 볼 수 없는 자들도 많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상처받고 억눌려 살던 사람이 많았던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그곳에서 만나기를 원하셨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곳으로 가셨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에 으뜸가던 제자요, 너의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을 받았던 신임 받은 제자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저런 사람은 나와 상관없다고 고백했던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믿음의 패배자이었다. 영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영적인 좌절로 몹시 괴로워했던 베드로이었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가서 고기나 잡아 생계를 유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갈릴리 호숫가에 그물을 내렸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밤을 맞이하였다. 베드로가 맞이한 상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이었고, 물고기를 잡는 일도 완전히 실패한 캄캄한 밤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 갈릴리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배의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신다.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제자들을 불러 함께 그물을 들어 올린다. 세어보니 백쉰세마리를 잡았다.
갈릴리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다. 좌절하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다. 힘이 없어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삶에 지친 사람들,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갈릴리로 급히 오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갈릴리에서 맞이하는 부활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의 현실은 많은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는 갈릴리와 같은 곳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로 오셨다.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성도들의 병상을 심방하였다. 많은 환자들이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여학생인데 골수암으로 몹시 고통 중에 있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였다. 어느 권사님은 암세포가 뼈까지 퍼져서 고통 중에 있는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느 집사님은 1차 치료를 잘 마치고 퇴원하여 부활주일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이야기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곳은 마치 갈릴리와 같은 곳이다. 좌절하기 쉬운 곳, 절망하기 쉬운 곳, 포기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그곳에 찾아가셨다. 우리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찾아가셨다. "나 같은 사람까지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갈릴리로 찾아가셨다.
경제위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을 잃고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 많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시간이 많으면 오히려 돈을 쓸 곳이 더 많아진다. 너무나도 쉽게 자존심이 상한다. 직장을 잃은 아픔. 마치 갈릴리와 같은 곳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이러한 현장에 찾아오셨다. 갈릴리에서 맞이하는 부활이 되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기 바란다.
우리가 살면서 나름 데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실패할 수도 있다. 사업을 하여 성공해 보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하여 실패하여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실패라는 아픔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갈릴리와 같이 아픔을 경험하는 곳이지만 그곳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와 주셔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엄청난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가 18초 마다 여러 가지 범죄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걸어가다 억울하게 끌려가서 이유없이 맞는다. 돈을 빼앗긴다. 착하게 사는 사람이 억울하게 자기의 가진 것을 빼앗기는 아픔을 경험할 때도 있다. 우리가 사는 우리 현실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이러한 현장에, 갈릴리와 같은 곳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께서 복음을 처음 시작하신 곳도 갈릴리요,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처음 만난 곳도 갈릴리이다. 갈릴리는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다. 그곳에서 다시 부활의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갈릴리에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갈릴리에 찾아오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영동지방에 산불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보았다. 황폐해진 곳이지만 바로 그곳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구제역으로 농가에 많은 고통을 당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같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사 영원한 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줄로 믿는다.
갈릴리로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도 찾아가셔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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