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요16:16-24)
본문
미국 사람들은 "나 살고 너 죽자" 인 반면에,
유태인들은 "나도 살고, 너도 살자" 라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어떨 것 같습니까 "너 죽고 나 죽자" 입니다.
같이 죽자는 것입니다. 내가 못사니 너도 같이 못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무서운 민족이라고 합니다.
목숨 내 걸고 달려드는데 무엇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바로 그러신 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목숨을 내 놓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특히 무서운 민족인 우리 나라 사람들도 꼼짝없이 기가 죽을 정도로 다른 것은
"나 죽고" 로 시작해서 "너는 살자" 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그 사랑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16절과 19절 사이에서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불행한 일이요,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따라 나선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의 힘과 권력에 눌려서 재판을 받고, 거짓과 악한 힘에 의해
하루아침에 갑자기 십자가에서 덜커덕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영광가운데서 죽으셨다 해도 아쉽고 섭섭할 일인데 비참하게 죽으셨으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지신 것 같고, 힘없이 무너지신 것 같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삼일 후에 당당하게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문제는 그 조금이라는 시간을 잘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5분, 10분은 굉장히 길고 긴 시간입니다.
반면에 첫 휴가를 나온 군인에게는 5일이라도, 10일이라도
시간은 날라 가는 화살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제는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냐가 중요하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눈 앞에 닥쳐온 염려와 근심에 지지 않고,
굴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에는 당연히 염려가 생기고,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언제나 기쁜 일만 있고 좋은 일만 계속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예수님 믿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은혜 충만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금 있으면 곧 힘도 빠지고 기쁨도 사라지는 내 모습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조금 있으면" 입니다.
참고 기다리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찾아 올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새옹지마" 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이 있는 것이
인생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이다 라는 자연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낙심과 절망이 변하여 소망과 기쁨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조급함, 서두름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술 코냑이 유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당대에 담가 놓았던 와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나 아버지의 아버지가 담가 놓았던 포도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신은, 이제자기 자손들이 팔게 될 포도주를 정성을 다해 담가 놓을 것입니다.
에펠탑도 마찬가지입니다.
할아버지는 설계했고, 아버지는 지었으며,
아들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조금"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우리 이 세상의 시간 개념으로는 상당히 긴 시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거의 20여년을 기도 한 끝에
천하의 방탕아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한 확신, 즉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내 고통이 변하여 찬송이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만 있다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조금"이 될 것입니다.
--
24절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옛날에는 예수님에게 구할 줄도 몰랐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구한다 하더라도 정말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확신이 십자가에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현대적으로 잘 꾸며진 방에 있을 때, 스위치 하나 만으로도 전등을 켭니다.
그러나 만일 그 스위치가 전류를 내보내는 발전소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빛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전선이며
이것이 있어야만 사랑의 일도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나셨다는 믿음과
그 능력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신앙을 갖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의 모습으로 예루살렘 백성들 앞에서 떠나셨습니다.
비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의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돌아 오셨습니다. 부활하시어 다시 돌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제자들만이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만이
예수님이 실패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불의와 거짓과 위선과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물리치시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돌아오신 것을 보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죽었고,
그걸로 끝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그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을 것입니다.
한 때,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도 받고, 설교도 들었으며,
떡과 고기로 배를 채워 주시는 기적을 경험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필름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멈춰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필름은 계속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계속 되어 곳곳에서 멋진 기적들이
바로, 이 사람들을 통해 일어났으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교회를 가리켜 나의 몸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거기 너 있었는가 라고 주님이 묻고 계십니다.
거기는 어디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부디 성도 여러분 모두
오늘 당하고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들,
세상 고난의 험한 길을 싸우며 이기며 나아가셔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유태인들은 "나도 살고, 너도 살자" 라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어떨 것 같습니까 "너 죽고 나 죽자" 입니다.
같이 죽자는 것입니다. 내가 못사니 너도 같이 못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무서운 민족이라고 합니다.
목숨 내 걸고 달려드는데 무엇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바로 그러신 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목숨을 내 놓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특히 무서운 민족인 우리 나라 사람들도 꼼짝없이 기가 죽을 정도로 다른 것은
"나 죽고" 로 시작해서 "너는 살자" 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그 사랑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16절과 19절 사이에서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불행한 일이요,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따라 나선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의 힘과 권력에 눌려서 재판을 받고, 거짓과 악한 힘에 의해
하루아침에 갑자기 십자가에서 덜커덕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영광가운데서 죽으셨다 해도 아쉽고 섭섭할 일인데 비참하게 죽으셨으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지신 것 같고, 힘없이 무너지신 것 같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삼일 후에 당당하게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문제는 그 조금이라는 시간을 잘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5분, 10분은 굉장히 길고 긴 시간입니다.
반면에 첫 휴가를 나온 군인에게는 5일이라도, 10일이라도
시간은 날라 가는 화살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제는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냐가 중요하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눈 앞에 닥쳐온 염려와 근심에 지지 않고,
굴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에는 당연히 염려가 생기고,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언제나 기쁜 일만 있고 좋은 일만 계속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예수님 믿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은혜 충만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금 있으면 곧 힘도 빠지고 기쁨도 사라지는 내 모습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조금 있으면" 입니다.
참고 기다리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찾아 올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새옹지마" 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이 있는 것이
인생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이다 라는 자연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낙심과 절망이 변하여 소망과 기쁨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조급함, 서두름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술 코냑이 유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당대에 담가 놓았던 와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나 아버지의 아버지가 담가 놓았던 포도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신은, 이제자기 자손들이 팔게 될 포도주를 정성을 다해 담가 놓을 것입니다.
에펠탑도 마찬가지입니다.
할아버지는 설계했고, 아버지는 지었으며,
아들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조금"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우리 이 세상의 시간 개념으로는 상당히 긴 시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거의 20여년을 기도 한 끝에
천하의 방탕아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한 확신, 즉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내 고통이 변하여 찬송이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만 있다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조금"이 될 것입니다.
--
24절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옛날에는 예수님에게 구할 줄도 몰랐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구한다 하더라도 정말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확신이 십자가에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현대적으로 잘 꾸며진 방에 있을 때, 스위치 하나 만으로도 전등을 켭니다.
그러나 만일 그 스위치가 전류를 내보내는 발전소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빛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전선이며
이것이 있어야만 사랑의 일도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나셨다는 믿음과
그 능력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신앙을 갖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의 모습으로 예루살렘 백성들 앞에서 떠나셨습니다.
비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의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돌아 오셨습니다. 부활하시어 다시 돌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제자들만이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만이
예수님이 실패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불의와 거짓과 위선과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물리치시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돌아오신 것을 보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죽었고,
그걸로 끝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그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을 것입니다.
한 때,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도 받고, 설교도 들었으며,
떡과 고기로 배를 채워 주시는 기적을 경험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필름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멈춰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필름은 계속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계속 되어 곳곳에서 멋진 기적들이
바로, 이 사람들을 통해 일어났으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교회를 가리켜 나의 몸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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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라고 주님이 묻고 계십니다.
거기는 어디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부디 성도 여러분 모두
오늘 당하고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들,
세상 고난의 험한 길을 싸우며 이기며 나아가셔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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