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14)
본문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는 항상 은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풍성한 은혜를 주실줄로 믿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엘리야! 하면 불의사자 라고 알려졌고 1 갈멜산상에서 그 무시무시한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사제들 850 명과 그 배후에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를 상대로 기도로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통쾌한 승리를 한 사람 이요
2 3년반이나 비가 안오던 때에 기도해서 비가 내리게 한 능력의 선지자요 3 죽음을 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선지자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야가 오늘 읽은 19장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럴 수가 있을까하여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1 앞 18장에서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기 손강가에 가서 죽인 모든 내용을 아합왕이 이세벨 왕후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2 보고를 들은 이세벨 왕후가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에게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3 엘리야가 도망을 가서 브엘세바 광야에 이르러 사환을 남겨두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가서 로뎀나무 아래 누워 하나님께 죽여주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량한 모습입니까 그렇게도 능력많던 엘리야가 이렇게 하루 아침에 곤두박질 쳐서 능력이 떨 어져 낙심하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까 그것은 야고보서 5:17절 말씀에 잘 나타 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께 믿고 의지할 때만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민수기11:11-14절에 보면 백성들이 하도 원망을 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고 내 가 생산하였나이까" 하며 믿음 약한 탄식을 한적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 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 고 또 십자가상에서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 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외쳐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선지자의 길이 너무 힘에 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엘리 야는 "여호와여 이제 족하오니 나의 생명을 취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 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깊이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왜 엘리야를 이 광야로 인도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빈들입니다. 이글대는 태양과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벌판 뿐입니다. 완전히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힘과 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엘리야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기사와 능력이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임을 깨닫게 해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은 죽기를 구하다가 지쳐 쓰러진 그에게 두 번이나 일깨워서 떡과 물을 먹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3년반동안의 기근시에도 그릿 시내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여주셨는데 이번에도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그를 깨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어 먹여주셨던 것 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우둔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살려주 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늘을 주어 뜨거운 햇볕을 가리워 주던 방넝쿨이 말랐다고 원망하며 죽여 주기를 구하던 요나도 하나님은 살리셔서 하나님의 사명을 주어 쓰셨습니다. 엘리야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까지 여러분을 살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일이 있기에 살려주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3 엘리야는 그 후에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대로 나머지 사명을 충성되이 감 당하였을 때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 니까
4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40주 40야를 주야로 쉬지않고 걸어서 호 렙산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호렙산은 일찌기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임하 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신입니다. 또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곳 호렙산에서 신앙의 재무장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호렙산으로 온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본문 9절 말씀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 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오늘은 이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하 겠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물으신 질문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질문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여기" 라는 그 곳이 어디를 가르키는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 라고 하는 곳은 현재 엘리야가 서있는 그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의 신앙의 위치가 있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 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에게 "네가 이 호렙산에 왜 와 있느냐 너의 신앙상태 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2 "어찌하여" 라는 말은 "왜" 라는 말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왜 이 리도 약해졌느냐 왜 낙심하였느냐 왜 이렇게 믿음이 떨어졌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2.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고 하십니다. 엘리야에게 하신 질문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부르시는 질문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22:1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 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46:2절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 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3:4절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 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의 우리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모세와 같이,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이 부 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창3:9절 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이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실 때 대답하지 못하고 숨 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 답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고 물으실 때 "내가 여 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은 이시간 사무엘과 같이 이사야와 같이 대 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음으로 생각할 문제는 "어찌하여"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이 말은 온 이유를 묻는 뜻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와서는 안될곳에 왔고, 있어서는 안될곳에 있으니 빨리 그 자리를 떠나라고 하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 네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창12:1) 고 말씀하셨고, 창19:17절에는 롯에게 "빨리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고 하셨 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 교회에 왜 왔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 느냐" 고 물으신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죽겠다고 하는 것을 깨워서, 먹여서, 기운차리게 하여, 40 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호렙산이 어떤 산입니까 모세가 처음 부름받은 곳이요, 하나님이 율법을 내 리신 산이며, 이곳에서 성막을 짓도록 명령을 받은 곳입니다. 모세가 40일간 기도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다시한번 다 짐을 하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들이 오늘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려고 이 교회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묻기를 "네가 어찌 하여 여기 왔느냐" 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마땅히 "주여! 오늘은 거룩한 주의날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려 고 왔나이다.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돌리나이다" 하 고 대답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엘리야의 대답은 어떻하였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특심하온데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단을 헐고 우 상을 섬기고 선지자들을 죽여 나만 홀로 남았나이다. 이제는 나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망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이 호렙산까지 오게 된 것을 깨닫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밖에 없다고 하는 생각이 큰 장애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큰 이슈(Issue)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지치고 곤한 심신 상태에서 죽기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 로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심신 상태가 지금 곤고하십니까 피곤 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신앙상태가 어디에 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치고 피곤한 엘리야에게 힘주고 능력주셔서 호렙산까지 불 러 그를 재무장시켜서 엘리야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고 뜻이 계셨기에, 죽여달라고 할 때 살리셔서 쓰신것처럼, 여러분의 피곤한 심령과 믿음을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에 성령님으로 재 충전시켜서 이 마지막 시대에 쓰시 고자 오늘도 주의 성전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재무장하여 닥아오는 더위에도 피곤하지 않고 곤비치 않는 믿음으로 능력받아서 주님 뜻대로 사는 충성된 주님의 자녀 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2 3년반이나 비가 안오던 때에 기도해서 비가 내리게 한 능력의 선지자요 3 죽음을 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선지자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야가 오늘 읽은 19장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럴 수가 있을까하여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1 앞 18장에서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기 손강가에 가서 죽인 모든 내용을 아합왕이 이세벨 왕후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2 보고를 들은 이세벨 왕후가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에게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3 엘리야가 도망을 가서 브엘세바 광야에 이르러 사환을 남겨두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가서 로뎀나무 아래 누워 하나님께 죽여주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량한 모습입니까 그렇게도 능력많던 엘리야가 이렇게 하루 아침에 곤두박질 쳐서 능력이 떨 어져 낙심하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까 그것은 야고보서 5:17절 말씀에 잘 나타 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께 믿고 의지할 때만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민수기11:11-14절에 보면 백성들이 하도 원망을 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고 내 가 생산하였나이까" 하며 믿음 약한 탄식을 한적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 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 고 또 십자가상에서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 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외쳐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선지자의 길이 너무 힘에 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엘리 야는 "여호와여 이제 족하오니 나의 생명을 취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 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깊이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왜 엘리야를 이 광야로 인도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빈들입니다. 이글대는 태양과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벌판 뿐입니다. 완전히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힘과 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엘리야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기사와 능력이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임을 깨닫게 해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은 죽기를 구하다가 지쳐 쓰러진 그에게 두 번이나 일깨워서 떡과 물을 먹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3년반동안의 기근시에도 그릿 시내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여주셨는데 이번에도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그를 깨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어 먹여주셨던 것 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우둔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살려주 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늘을 주어 뜨거운 햇볕을 가리워 주던 방넝쿨이 말랐다고 원망하며 죽여 주기를 구하던 요나도 하나님은 살리셔서 하나님의 사명을 주어 쓰셨습니다. 엘리야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까지 여러분을 살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일이 있기에 살려주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3 엘리야는 그 후에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대로 나머지 사명을 충성되이 감 당하였을 때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 니까
4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40주 40야를 주야로 쉬지않고 걸어서 호 렙산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호렙산은 일찌기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임하 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신입니다. 또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곳 호렙산에서 신앙의 재무장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호렙산으로 온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본문 9절 말씀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 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오늘은 이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하 겠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물으신 질문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질문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여기" 라는 그 곳이 어디를 가르키는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 라고 하는 곳은 현재 엘리야가 서있는 그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의 신앙의 위치가 있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 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에게 "네가 이 호렙산에 왜 와 있느냐 너의 신앙상태 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2 "어찌하여" 라는 말은 "왜" 라는 말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왜 이 리도 약해졌느냐 왜 낙심하였느냐 왜 이렇게 믿음이 떨어졌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2.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고 하십니다. 엘리야에게 하신 질문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부르시는 질문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22:1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 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46:2절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 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3:4절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 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의 우리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모세와 같이,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이 부 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창3:9절 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이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실 때 대답하지 못하고 숨 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 답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고 물으실 때 "내가 여 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은 이시간 사무엘과 같이 이사야와 같이 대 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음으로 생각할 문제는 "어찌하여"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이 말은 온 이유를 묻는 뜻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와서는 안될곳에 왔고, 있어서는 안될곳에 있으니 빨리 그 자리를 떠나라고 하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 네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창12:1) 고 말씀하셨고, 창19:17절에는 롯에게 "빨리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고 하셨 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 교회에 왜 왔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 느냐" 고 물으신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죽겠다고 하는 것을 깨워서, 먹여서, 기운차리게 하여, 40 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호렙산이 어떤 산입니까 모세가 처음 부름받은 곳이요, 하나님이 율법을 내 리신 산이며, 이곳에서 성막을 짓도록 명령을 받은 곳입니다. 모세가 40일간 기도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다시한번 다 짐을 하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들이 오늘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려고 이 교회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묻기를 "네가 어찌 하여 여기 왔느냐" 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마땅히 "주여! 오늘은 거룩한 주의날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려 고 왔나이다.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돌리나이다" 하 고 대답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엘리야의 대답은 어떻하였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특심하온데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단을 헐고 우 상을 섬기고 선지자들을 죽여 나만 홀로 남았나이다. 이제는 나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망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이 호렙산까지 오게 된 것을 깨닫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밖에 없다고 하는 생각이 큰 장애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큰 이슈(Issue)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지치고 곤한 심신 상태에서 죽기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 로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심신 상태가 지금 곤고하십니까 피곤 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신앙상태가 어디에 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치고 피곤한 엘리야에게 힘주고 능력주셔서 호렙산까지 불 러 그를 재무장시켜서 엘리야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고 뜻이 계셨기에, 죽여달라고 할 때 살리셔서 쓰신것처럼, 여러분의 피곤한 심령과 믿음을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에 성령님으로 재 충전시켜서 이 마지막 시대에 쓰시 고자 오늘도 주의 성전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재무장하여 닥아오는 더위에도 피곤하지 않고 곤비치 않는 믿음으로 능력받아서 주님 뜻대로 사는 충성된 주님의 자녀 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