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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한 삶 (벧전4:1-6)

본문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이루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으로 성공을 평가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을 얻고,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며, 잘 먹고 잘 입는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 성공했다고 봅니다. 한 마디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손에 쥐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런 것이 우리들이 지닌 야망의 전부 인가라고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아시아 교회에서는 성공과 번영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신자들의 권리라고 가르치며 격려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이빗 코헨(David Cohen)은 그런 번영 신학의 오류를 예리하게 지적해 줍니다.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수억만 평의 초장 위에 가축들을 소유하고 계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며, 병자를 낫게 해주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시며, 심령과 육신이 속박된 자들을 풀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없다. 그렇지만 번쩍이는 성공이라는 것들은 머리 둘 곳이 없었던 분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으며, 그분을 따라가는 자들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신 분의 삶과 너무도 맞지 않는다.”
우리들은 각자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갈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평생을 주님께 사랑의 순종을 하는 것이 각 성도들의 한결같은 자세이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격려한 서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에는 쉽게 익숙해지거나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
베드로는 3:18절에서 잠시 언급했었던 주제를 4:1절에서 다시 거론합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분으로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불의한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는 대속 적인 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렇다고 십자가의 고통에서 면제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전적으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정말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못이 손과 발에 박히는 뼈아픈 고통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배반하였고 또한 제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본 서신을 집필한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해주려고 했던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범죄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 의한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불의를 겪으셨을 때 가지셨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갑옷” 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영적 무기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본 주제를 강설하면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들을 입어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엡6:10-18).
베드로는 핍박이 오고 있다고 시사했습니다. 북부터어키의 신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위해 고난을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당시의 로마 제국에 살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견디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고 경고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읽는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을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처럼 모욕을 당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처럼 선을 행하기 위해 고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신자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받습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정과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른다는 이유에서 사자들에게 던짐을 당하는 자들은 없습니다.
한편, 우리들이 겪는 고난과 주님이 받으신 고난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잘못을 행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받으신 고난은 전혀 부당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서술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죄를 그쳤음”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4:1).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도 죄와 사망의 몸에서 삽니다(롬7:24). 우리들은 계속 죄악된 욕망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릇된 일을 행하라는 유혹을 받으면서 이 세상이 마치 우리들의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듯이 생각하며 삽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그릇된 생활 자세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무장을 권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육신에 속한 욕망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생활을 끊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에 심혈을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이 과거에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행위를 따랐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숙고해 보는 일은 퍽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인들을 보고서 우리의 삶이 옛날과 다른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어떤 교인들은 이렇게 변호합니다. “아, 우리는 교인이라는 냄새를 풍길 필요가 없어요. 우리 교인들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해요.”
그러나 베드로는 “여러분에게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점이란 곧 거룩한 사람을 뜻합니다. “너희가……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4:3). 이 말은 “과거에 여러분이 낭비했던 시간이 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갑니다. 낭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잉글랜드의 체스터 사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는 크고 오래된 시계가 있습니다.
울고 웃던 어린 시절-시간은 기어갔습니다.
활기찼던 청소년 시절-시간은 걸어갔습니다.
어린이 되었을 제-시간은 뛰어갔습니다.
늙어 갔을 제-시간은 날아갔습니다.
나는 곧 알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다 가 버렸음을
오, 주님 그 때 저는 구원을 받은 자일까요 아멘
베드로는 다음으로 그의 그리스도인 수신자들이 과거에 행했던 일들의 목록을 열거합니다. 첫 번째 사용된 단어는 “음란”입니다. 이 말은 그 다음의 나머지 악행들을 모두 묶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교인이 되기 전에 무절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쾌락만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과도한 음주는 본문의 다른 악행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멀쩡한 사람도 술에 취하면 성격이 전혀 딴판으로 바뀌는 것이 알코올의 무서운 영향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음주가 많은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드로가 이 목록에서 제일 나중에 언급한 단어는 “무법한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숭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쉽게 우상화합니다. 우리들이 우러러보는 것은 금방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베드로 당시의 우상숭배는 부도덕과 방탕을 초래하였습니다. 본문의 목록을 로마서 13:13절과 같라디아서 5:20-21절을 놓고 비교해 보십시오. 바울의 목록도 매우 유사한 것들입니다.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4: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벧전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다가오는 심판의 경고
불신자들은 세상 재미를 외면하며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자들이 세상살이에서 전혀 낙이 없이 지낸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 신자들이 그런 인상을 준다면 우리들의 삶에 무엇인가 잘못된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모순입니다. 단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세상 적인 쾌락에서 기쁨을 얻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들의 생애에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옵니다.
행복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구원의 사랑을 아는 지식에 젖어 감사와 충성을 보일 때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당신은 행복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당신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기쁨이 충만케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들을 가리면서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교인들이 어딘가 다른 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들의 생활 습성에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싫어합니다. 자기들의 양심이 불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가 발각되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부모의 눈도 속일 수 있고 남편이나 아내를 속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쁜 짓을 하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태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눈은 절대로 속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심지어 우리 생각까지도 하나님은 꿰뚫어 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인들이 색다르게 처신하면 불편해 합니다. 사람들은 정상적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장애자 아이들을 놀리거나 흉내를 냅니다. 정상적인 아이들은 지체 장애자나 정신박약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구 놀려댑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색다르게 행한다고 비웃거나 모욕하는 것도 이와 동일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불신자들을 상대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경건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에게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나를 괴롭히는 자들을 도와야 합니까”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33:8절 보십시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 앞에서야 할 심판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엄숙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심판 날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질문자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엘리오트(T.S. Eliot)는 심판 날에 대해서 “어떻게 질문할 것을 아시는 자를 위하여 준비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자들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경고하고 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중대한 일을 늦게까지 미루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불신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신자들의 책임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도 이 세상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았는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바로 맺어져 있는지 각자가 물어 보아야 합니다. 존 뉴톤은 노래합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의 계획과 노력으로
이 세상 온갖 일을 다하여도
당신이 그 분을 잘못 생각한다면
당신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이랍니다.
예수님이 당신 눈에 어떻게 비취나요
그 분이 귀해서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의 긍휼이 당신께 내리고,
그 분이 귀하지 않아 사랑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당신 위에 머물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2절은 엄숙한 구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성경은 죽음 후에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6절 본문을 보십시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살아 있었을 적에 복음을 들었던 자들이 죽음 후에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지상에서 살 때에 회개의 부름을 받았지만 이제 죽었으므로 그리스도께 돌아가기는 너무 늦었습니다.“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합니다. (시115:17). 죽음 후에 안식하는 자들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구원받은 성도들뿐 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내일은 너무 늦을지 모릅니다. 신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모든 불신자들에게 말해 주어야 할 엄숙한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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