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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3:1-17)

본문

오늘은 고려 신학교 주일이다. 우리 교단적으로는 지난 주일에 고려 신학교 주일을 지켰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년에 하던 대로 2월 마지막 주일에 드리게 되었다. 고려 신학교 주일은 우리 고려 교단의 전 교회들이 교단 신학교인 고 려 신학교를 위하여 지키는 신학교 주일이다. 이런 신학교 주일을 통하 여 우리의 신학교인 고려 신학교에 대한 사랑과 관심과 기도를 모으기 위함이다. 우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려측 총회는 성도간의 불신법정 고소 문제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측 총회와 분리된 것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더라도(고전6:7) 어찌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믿지 않는 자 들 앞에서 송사하느냐(고전6:6)는 말씀을 버리고 고신측 총회는 재단 문제로 불신법정에 고소를 했고 말씀대로 살자는 분들은 고신측 총 회와 분리하게 된 것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고려파 본래의 이념을 이어가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 이런 정신으로 고려측 총회는 조직이 되고, 고려 신학교가 개교를 하 게 된 것이다. 어느 교단, 어느 신학교 못지 않게 순수한 이념으로 숭 고한 이념을 가진 교단이요, 신학교이다. 그 이념대로 살아가느냐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부분이다. 신앙과 행위가 하나 되지 못한다면 결국 헛 구호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교단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신앙의 숭고한 삶의 일환으로 우리 교단의 모든 교회가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하여 신학교를 도움으 로 우리 고려 신학교는 수업료가 없고, 기숙사비가 없는 순수한 목회 자 양성 기관으로 자리 매김을 해 가고 있다. 본 교단 지교회에 속한 자로서 복음 전파의 사명감을 가지고 신학에 입문하게 되면 다른 신학교와는 달리 돈걱정 없이 선지 동산에서 수련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의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지교회가 나름대로 "고려 신학교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후원금을 부담 하기도, 특별 헌금을 하기도, 오늘 같이 고려 신학교 주일을 지키기도 하여 신학교를 돕고 있는 것이다. 교단 신학교와 교단 총회와 지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 되어 함께 가는 이 길을 통하여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고 땅끝까지 말씀이 전파되는 역사가 이루어 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의미 심장한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요, 같은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주시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책을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지식의 전달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동거하는 삶을 통하여 속에서 속으로  전달되 어지는 믿음이요, 산 지식을 말합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책을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지식의 전달을 통하여서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 가 이르면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세상 풍조를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 라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 혜가 그 속에 있느니라" 그러니, "네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고 하십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사도 바울이 디모데뿐만 아니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맞을 성도들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의 뜻을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 펴보고져 합니다.
1.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 본문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했다. 성경에 관한 지식이나, 성경 요절을 줄줄 암송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살아 있는 말씀의 생명력이 약동치는 삶 을 살았다는 말씀이다. "알았다" 여기서 "안다" 하는 말은 " (오이다)"란 단어로 직관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가르침이나 경험으로 배워서 "안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 해 당하는 단어는 " (기노스코)"이다. 다시 말해서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하는 말씀은 가르침을 통해 배워서 "성경을 알았다"하는 말씀이 아니다. 딤후 1:5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네어머니 유니게 속에서 있더니 네 속에도" 곧 속에서 속으로 전해진 믿음이다. 생명력 있는 믿음이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 이 속에서 속으로 전해진 믿음은 가르침이나, 훈련으로 이루어지고 전해지는 믿음이 아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동거하는 삶을 통하여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하는 말씀도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요절처 럼 암송한다는 말도 아니다. 속에서 속으로 . 외조모 로이스 속에서 어머니 유니게 속으로 어머니 유니게 속에서 아들 디모데 속으로 그렇게 속에서 속으로 .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네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은 그렇게 속 에서 속으로 . 전해져 온 것을 디모데야 너는 알고 있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래서, 사도 바울은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 아들 디모데 이렇게 속에서 속으로 . 전해져 온 거짓 없는 믿음처럼 속에서 속으로 .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 아들 디모데로 이어지는 속에서 속으로 . 전해져 내려오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디모데야 너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지금 내 속에 속에서 속으로 . 전해져 내려오는 거짓 없는 믿음 이 있습니까 속에서 속으로 . 전해져 내려오는 살아 있는 하나님 의 말씀이 있습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자녀나 그 누구에게 속에서 속으로 . 전해 주고 있습니까 우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나와 함께 경건자의 가는 길을 배웠다. 본문 10-11절/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 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 를 건지셨느니라/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여기서 "보고 알았다"는 말은 (파라루데오) 란 단어 로 "가까이, 함께, 곁으로"란 뜻을 가진 (파라) 란 단어와 "동 반하다, 따르다, 제자가 되다"란 뜻의 (아코루데오) 란 두 단어가 합성된 단어이다. 곧 (파라루데오) 란 단어는 "가 까이 다르다, 동반하다, 이해하다"라는 뜻이 된다.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이 말은 바울을 통해서 말과 글로서 전 달되어진 지식으로 "안다"가 아니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속에서 속으로 전해진 산지식을 말한다.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원문 성경에는 10절 초두에 있는 말씀이다. "나의 교훈, 행실, 의향, 믿음, 오래 참음, 사랑, 인내, 핍박, 고난, 등"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 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보고 안 그 모든 것에서 주님이 나를 건 지셨다는 승리의 고백이다.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디모데가 사도 바울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보고 알았다"는 것은 한마 디로 "경건자의 가는 길"이다. 복음을 위해 사는 자가 가야 할 길을 말 한다. 본문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경건한 삶에는 고난이 수반된다는 말씀이다. 말세가 되면 이 경건이 사 라지고 그 모양만 남게 된다고 했다(본문5절).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 고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딤전6:5).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기에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 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게 된다(본문1-4절). 경건자가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이다. 돌아서야 할 길이다. 본문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 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로 경건자의 가는 길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 고자 하는 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에는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7-18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 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경건자의 가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가야 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후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받을 영광의 면류관은 그냥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받은 고난의 대가입니다. 경건자가 가는 길에서 겪어야 하는 현재의 고난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 이름의 수를(계15:2) 따르지 않음으로 당해야 하는 고난입니다. 우리 성도가 그들을 짓밟고 이길 수 없기에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우리가 당해야 할 죽음의 고난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경건자의 가는 길, 고난의 길을 나도 갈 수 있는가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도 있고, 경건의 능력도 부인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가 경건의 능력은 팽개쳐 버리고,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우리 고려 신학교의 외침이 "순교자의 고장, 경건자의 훈련장"이지요. 이런 신앙 정신이 속에서 속으로 전해져서 내 속에도 있는가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3.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본문 13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란 단어로 "머물다, 거하다. 계속하 다, 거주하다"라는 뜻이다. 함께 동거하며 산다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 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바로 그 말씀이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하는 일은 말과 글을 통하여 배운 것이 아니다.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고 동거하는 삶을 통하여 속에서 속으로 전 해진 산 지식이요, 거짓 없는 믿음이다. 이러한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삶에 "거하라"는 말씀이다.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배우고 확신 한일"은 함께 더불어 먹 고, 마시고, 동고동락하는 삶에 거할 때에 가능한 일이다. 나무 위의 비둘기는 몸은 나무 위에 있으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이렇게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되면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배우고 확신한 일"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1 세기를 눈앞에 두고, 세기말을 맞이한 지금. 세계는 지금 심상치 않는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저녁 예배 시간에 계시록에서 살펴보고 있는 대로 말세의 징조가 응해져 가는 징조가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세계는 하나의 정부, 하나의 정치, 하나의 경 제, 하나의 문화 더욱이 하나의 종교를 부르짖으며 "우리는 하나!" 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유럽이 하나의 정부, 하나의 경제를 이루었습니다. 유럽연합(EU)라는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유로화"로 내 나라, 네 나라가 없이 전 유럽은 단일통화(單一通貨)를 이루어 냈습니다. 이제 그들은 남미와 통합하여 "슈퍼 경제블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2월 25일) 한국일보에 EU-메르코수르 통합 "슈퍼 경제블 록" 추진이란 기사를 보면 유럽연합(EU)과 남미 무역블록 (MERCOSUR)의 기업 지도자 및 정부 관리들이 2개의 블록을 합쳐 거 대한 범 대서양 자유 무역지대를 창설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일이 성 사가 되면 미국이 추진 중인 미주 자유 무역지대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의 자유 무역지대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지금의 소지역(小地域) 중심의 경제블록들이 합쳐 대지역(大 地域) 중심의 경제블록들을 이루고, 이 대지역(大地域) 중심의 경제블록 들이 합쳐 결국 온 세계가 하나의 경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종교 다원주의를 부르짖으며 세계는 지금 하나의 종교를 이루려는 세력들의 꿈틀거림이 대단합니다. 이들에게 쉽게 동조하는 이들이 바로 나무 위의 비둘기들 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신자들입니다. 정통 교단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이단 교회를 두둔하고, 심지어 대변 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나무 위의 비둘기들 입니다. 이 나무 위의 비둘기들 은 자신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의 전령사라도 되는 듯이 이단을 두둔하는 것이 사랑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나무 위의 비둘기들 에게는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배우고 확신 한일"은 없습니다.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고, 동고동락 하는 삶이 없이는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배우고 확신한 일" 은 없습니다.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배우고 확신한 일"은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고, 동고동락하는 삶에 거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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