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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자유를 (롬1: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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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시기 약 400년 전에 희랍에 서양 철학의 창시자 소크라테스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특히 사약을 받은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소 크라테스는 왕이 내린 사약을 받고 한 사발을 마셨는데 바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제 곧 죽을 것을 예상하며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에 플라톤이라는 분이 그 대화를 모두 기록해서 플라톤의 대화(The Dialogue of Plato) 라는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무려 2천 3백년 전의 책이지만 지금도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사약 을 마신 직후에는 마치 물 한 모금을 마신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 스는 감옥 복도를 왔다갔다하며 제자들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참 거닐다 보니까 독이 몸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걷지를 못하고 서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힘들어지자 앉아서 말을 계속 하였고, 그것도 힘들어서 누워서 이야기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독약을 마셨어도 그 독이 온 몸에 퍼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독을 마신 후에는 죽음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뱀에게 물렸던 사건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아모리인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였더니, 어디에선가 독사들이 나타나 그들을 마구 물었 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따끔한 정도였고, 약간 겁은 났지만, 별로 흔적이 없어 보였습니다.
뱀에게 물리긴 했지만, 그 독이 온 몸에 퍼져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며 모세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빌어달라 고 구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구리뱀을 장대에 매달라고 명령하셨 습니다.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는 자는 살고, 외면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서 사는 자와 죽는 자가 나뉘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모습은 이와 같습니다. 인간은 '사탄'이라는 뱀에게 물려서 '죄'라는 독이 몸에 들어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현상을 가리켜, 인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뱀에게 물려 영적인 면, 육체적인 면, 지적인 면, 정서적인 면, 그리고 인간관계와 환경 등 모든 면으로 독이 스며들었습니다. 이 독이 퍼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똑바로 걷고 싶어 도 똑바로 걸어지지가 않습니다. 앉아서 말하고 싶어도 자꾸 드러눕게 됩니다. 말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혀가 자꾸 꼬부라집니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잘 안됩니다. 악을 보면 피하 고 싶어도 잘 피해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처럼 인간은 죄에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 가 죄와 죄의식과 그 영향력과 그 습관과 그 결과인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가 누구입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그분을 만나 사랑해야만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기록된 죄의 목록을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한 사람에게 이 모든 죄가 다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에게는 이런 죄, 저 사람에게는 저런 죄가 있어서, 그것을 다 모아보니 로마서 1장이 나오 게 된 것입니다. 이 죄의 목록에 보면, 아직도 여러분을 사슬로 꽁꽁 묶고 있는 죄가 한 두 개 내지 여러 개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진리와 생명이 없는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엄청난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합니다. 마치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머리를 붙잡고 당겨 올린다 고 하지만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인간 자체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 힘 과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더니 유대인들이 반문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우리가 자유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즉, 우리는 죄성(sinful nature)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죄성이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였고, 우리를 끈 질기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도, 부모를 공경할 자유 도 없습니다. 즉 선을 행할 자유가 인간 자신에게는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 로 자유하리라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눈이 떠지고 영의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 자유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 시 작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자유를 주십니까
첫째는, 영적인 무지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 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19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 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1-23절). 영적 무지는 죄의 결과입니다. 죄가 우리의 몸 속에 들어 와서 우리의 영을 죽였고, 우리의 존재를 속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영적인 무지에서의 해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십시오. 그러면 영적 무지에서 벗어 나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이 깨달아지 면서 우리는 점점 영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둘째는,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이 인간적인 지혜만 있 으면 아무리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해도 꼭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이미 어리석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리석어지면 어리석은 결정과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를 결박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인터넷에서 역술에 대해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심심풀이 운세'라는 것이 있더군요. 사람들이 오늘은 어떨지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여행 을 가야 할지, 이사를 해야 할지, 그냥 심심풀이로 악령의 세계를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악령의 세계는 가까이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인 생을 얼마나 재미있게 살겠다고 그런 어리석은 일로 재미를 보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영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우상숭배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 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23절) 하였습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25 절) 하였습니다. 왜 우상을 섬깁니까 영적으로 죽어있으므로 영적인 자유가 없어서, 하나님 이 안 보입니다. 진리가 안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겨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는 우상숭배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설에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으로 등산을 갔더군요. 멋진 등산복을 차려입고 좋은 기구들을 이용해서 열심히 애써 서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저도 해봐서 아는데, 산 정상에 서보면 정 말 신이 납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들은 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거기에 있는 바 위를 향해 넙죽 절을 합니다. 게다가 헬리콥터가 그 모습을 찍어서 뉴스로 방송을 합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가 정상에 수고스럽게 올라갔으니 바위더러 자기 에게 절하라고 해야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바위를 다듬어서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이 그 바위에 절을 하다니요 영적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입은 옷들은 얼마나 멋지던지요! 여러분!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참 자유를 얻습니다. 돌이 돌로 알고, 나무는 나 무로 알고, 바다는 바다로 압니다. 그 앞에 절하는, 피조물만도 못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 주셔서, 우상숭배로 철저하게 속박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 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바위와 나무와 바다와,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를 우리와 함께 누리게 하십시다.
넷째는, 깨끗하게 살 수 있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을 그 들의 정욕대로 더럽게 생활하도록 내버려두셨다고 하셨습니다(24절). 26, 27절에 보면 그 더 러운 생활상이 나오는데 읽기도 역겨울 정도입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 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 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동성연애입니다. 동성연애는 과거에는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부끄러워하지 않더군요. 미국의 동성애자들이 데모하면서 We came out of closet! 이라고 하더군요. 'closet'은 옷장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동성연애를 옷장 속에 숨어 서 했는데, 이제는 옷장에서 밖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요즘 유럽에서는 남자가 남자와 결 혼하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는 추세입니다. 제일 먼저 그 법을 통 과시킨 나라가 네덜란드입니다. 이제는 동성연애를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civil right)라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교 단인 연합 장로교회 헌법에 보면 과거에는 동성연애자는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다 라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항을 갖고 수십 년 동안 교단 안에서 싸운 결과 작년에 드 디어 그 조항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동성연애자도 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동성연애를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 지, 남자와 남자를, 또는 여자와 여자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성연애가 이 하나님 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교회에까지 침투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는 동성연애 자들의 교회가 얼마나 왕성한지 모릅니다. 그들의 교회가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참 속상한 것은, 한국에서도 동성연애 운동이 활발하게 일기 시작 했는데, 서울대학교에서 최초로 동성애 서클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성연애자들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친절히 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성연애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저버리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일 들을 합니까 하나님을 몰라서 그들의 영혼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케 하셔서 참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아내를 사랑하고 가 족을 돌보는 자유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 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에는 반드 시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성병에 걸리거나, 가정이 파탄되거나, 정신이 혼란스러 워집니다. 요즘에 A
IDS가 얼마나 많이 퍼지고 있습니까 동성 연애에서 시작된 A
IDS가 이 제는 이성간의 접촉이나 수혈을 통해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1년마다 배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the due penalty for their perversion(그들의 그 릇됨에 상당한 보응)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penalty'는 형벌을 뜻합니다. 미국에서 어떤 목사님들이 이 말씀을 전했다고 동성애자들이 대단한 데모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동 성연애를 합리화하면서 또 하나의 생활 스타일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정상적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난 잘못된 삶은 마땅한 형벌을 끌어들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삶은 결국 자유가 없는 인생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안에 거할 때만 우리는 영적 자유, 선 하게 살 자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적대감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29절에 보면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뒤에서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자유가 없기 때문 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자유, 사람에 대해서 좋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 에 대해 수군수군하는 것은 부자유한 죄의 종의 모습입니다. 남에 대해 좋은 말을 해줄 자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알아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칭찬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섯째는 악한 성품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30절에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것들을 생각해내는 것은 그 사람이 죄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노예는 좋은 머리 로 악한 것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컴퓨터가 얼마나 편리합니까 저도 컴퓨터를 사용하고 인 터넷을 하는데, 정말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제일 편리한 것이 인터넷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세계를 순식간에 연결해주는 이메일은 너무도 편리하지요. 전에는 편지를 손으로 써서 우 표 붙여서 우체국에 가져가야 했지만, 이제 이메일은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끝에 있는 사람 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또한 요즘에는 알고 싶은 것은 인터넷에서 다 찾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컴퓨터를 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컴 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컴퓨터 에 열심히 모아 놓은 자료가 삽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좋은 머리로 악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입니까 죄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노예는 좋은 것을 악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괴롭힙니다. 제 컴퓨터를 켜면, 제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카지 노가 튀어나와 투전을 하라고 합니다. 더 나쁜 것은 포르노가 나오는 경우입니다. 컴퓨터를 켜면 그런 것들이 먼저 뜨기 때문에 그런 화면들을 다 꺼야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악한 것들을 생각해서 사람들을 망치고, 생각을 어지럽히고, 가정을 파괴합니 까 죄와 악의 노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자유, 선과 덕을 도모하는 자유가 없습니다. 아직도 죄의 노예인 우리의 가족과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전도하십시다.
일곱째는,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30절 끝에 보면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죄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슴속에서 아직도 죄가 다스리기 때문에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여덟째는,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31절에 보면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약속을 해 놓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사 슬에 얽매인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싶어도,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을 자유를 얻습니다.
끝으로,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32절에 보면,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 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죄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파멸 로,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죄는 인간을 파괴합니다. 사형에 해당한다(deserve death)는 것은 영원한 사망의 형벌, 즉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 히 죽지 않습니다. 육신은 죽는다 해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로부터 해방을 받아 참 자유를 향하여 갑니다. 그리하 여 피조물에게 절하지 않고 참되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섬기며 찬송하는 자유를 누립니다.
내 욕정을 따라 살지 않고 진리와 성령을 따라서 사는 자유를 누립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내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더러운 악의 요소들을 하나씩 끊어주시고, 그 대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내게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자유를 주십니다. 이 시간 아직도 참된 자유를 모르는 분이 계시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당신 의 인생에서 참된 자유의 영역이 계속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54:죽임 당하신 어린 양 (레1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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