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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은 희망입니다. (마28:1-10)

본문

기독교를 가리켜 신(信) 망(望) 애(愛), 믿음, 소망, 사랑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큰 자산은 희망이라는 자산인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물질도, 명예도, 권세도, 건강도, 아름다움도 다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희망이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좀 부족하다 하더라도 희망이 있으면 그 사람은 산 사람입니다. 더더군다나 희망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기고 승리하고 성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위대한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의 약속을 성경책에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봄의 잎들마다 쓰셨다. 봄에 나오는 새싹들, 봄에 나오는 그 새로운 잎들, 거기에 부활의 약속을 써 주셨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우리의 희망이고, 예수님의 고난도 우리의 희망이고, 예수님의 죽음도 우리의 희망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더더군다나 우리의 큰 희망인 것입니다. 자,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희망이냐 누구에게 희망이냐
첫째로, 죄인에게도 희망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으면 불안합니다. 근심이 됩니다. 고민이 많습니다. 염려가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죄 값을 치러야 되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고생은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사람답게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죄인에게도 희망이 있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 원죄가 있습니다. 부모가 지은 죄가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자범죄가 있습니다. 알고도 지은 죄가 있고, 모르고도 지은 죄가 있습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 눈으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 개인이 지은 죄, 집단으로 지은 죄, 모두가 다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고, 그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들에게도 희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다 죄인입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과 죽음을 영원히 보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 때 실수하고 잘못하며 모든 일이 완전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완전한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들에게 희망을 빛을 던져주고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희망차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패나 낙방이나 이별이나 심지어 죽음조차도 더 이상 우리를 좌절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오시기 600여년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26장 19절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사건을 믿으면 죄인들도 희망이 있다, 의인이 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둘째로, 가난한 자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고, 우리의 구세주가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믿을 때, 가난한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기가 가난해지고, 자기의 사회가 부도가 나고, 자기가 실직 당하면, 이것은 나만 당하는 것이구나! 왜 나만 당하는가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도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4장 7절에 보니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그랬습니다. 이 가난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어렵게 살면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가난이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자기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부요케 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랬어요. 고린도후서 8장 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 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늘나라 천국에는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대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얼마나 가난하셨든지, 얼마나 배가 고프셨든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으셨습니다. 얼마나 가난하셨든지 주님 말씀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가난
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물질이 없는 것만이 가난이 아닙니다. 더 무서운 가난이 뭡니까 마음에 더 이상 내일에 대한 꿈이 없는 것, 이것이 현재 가장 심각한 우리의 가난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도 못 도와주십니다. 꿈이 있는 사람만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그랬습니다. 주님도 말씀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이렇게 주님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의 마음 생각 속에서 버려야 할 것, 뭡니까 가난의식을 버려야 됩니다. 비교의식을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채울 것이 뭐냐 성공의식을 채워야 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부활의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신 것을 믿고 우리가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나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뿐만 아 니라, 나를 대신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하셨다. 다시 사셨다. 우리에게 희망이다. 가난은 우리에게 부요할 수 있는 희망이다. 나를 대신해서 우리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부요하게 살 수 있다. 그
런 믿음, 그런 의식,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 곁에 계셔서 약한 자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 계셔서 날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곁에 계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계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계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운 게 아니에요. 우리가 가난하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망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이 뭐냐 그 믿음, 부활의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 나의 메시야, 나의 신랑, 믿고 우리가 살아갈 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 의 생각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언어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
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말씀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살 때, 우리 모두는 다 이제 가난과 실패가 물러가고 부유하게, 우리가 넉넉하게 남을 나누어주고 베풀어줄 수 있을 만큼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것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깨어진 가정도 희망이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한 것은 참 중요한 거예요. 우리 주님은 에덴 동산에서 제일 먼저 가정 공동체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가정공동체가 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뭡니까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 되게 만들어 주셨을까 거기 초청 받은 사람들, 포도주 많이 먹고 기분 좋으라고 그랬을까 그것이 먼저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제 한 가정이 새롭게 시작하는 신랑, 신부인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가 낭패만 나면 누가 괴롭습니까 신랑, 신부가 괴로운 거예요. 그날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 아니라
아주 지긋지긋한 날 같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신랑, 신부, 새 가정에 새 출발하는 그 신랑, 신부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기쁘게 해주려고, 즐겁게 해주려고 물을 변하여 포도주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효쌍친낙(子孝雙親樂)이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자식이 부모에게 효하면 부모가 즐겁고, 부모가 즐거우면 가정이 화목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 가지가 이루어진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것 유사한 말 아닙니까 자식이 부모에게 효하면 부모가 즐겁고, 부모가 즐거우면 가정이 화목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 가지가 이루어진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가정이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가정이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혹시나 지금 행복해야 할 가정이, 즐거워야 할 가정이 깨어졌다면, 여러분 그렇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희망을 가지라
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둘을 하나 되게 하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둘로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민족과 민족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슨 표입니까 더하기 표, 십자가는 무슨 표입니까 플러스 표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더해진 것, 인간과 인간이 합해진 것,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깨어진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우리 주님이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예수 십자가의 죽으신 의미를 바로 알고 더 이상 미움과 시기와 원망과 다툼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다면 이제더 이상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하나인 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족이 하나, 둘이 살아도 하나, 셋이 살아도 하나, 다섯이 살아도 하나, 일곱이 살아도 하나, 가족은 하나, 교회가 하나, 직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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