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요10:28)
본문
우리 인간은 영원히 살던지 영원히 죽든지(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분리)간에 모두가 단연코 불멸할 것을 성경은 가키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거듭나게 되면 그는 영생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그는 (계1: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인간은 타락의 결과 오로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만이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다.
오늘은 영생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영생의 근거에 대해서.
구약성경에 있어서 하나님은 생명의 유일하신 샘이며 '(시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시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선물로서 중요시 되고 있으나 ‘영원한 생명’ 즉 ‘와야할 세상의 한없는 생명’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에서는 명확하게 말씀을 하여 주시지 않고 희미한 그림자만 보여 주었기 때문에 분명한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에게 희미했던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고 확인 시켜 주심으로 하여 우리가 소망으로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는 생명이시며 그 자신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샘명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우리의 소망에 대한 우리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영적인 삶속을 향하여 침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참으로 신비한 교리 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하고 확실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엿장사가 가위질을 하는데 몇번을 칠것인가 그것은 엿장사 마음대로 입니다. 비유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여 놓으신 신비한 원리가 우리 이성으로 맞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수용하지 않는다 하면 결국은 우리의 손해 일뿐 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여 주십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생명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에서 나오고 영생은 영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둘째로-영생의 의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받은 생명입니다. 이것은 푸시케의 생명과 조헤의 생명으로 성경은 구분을 하는데, 믿지 않는 생명은 가르켜 푸시케의 생명이라고 하며 믿는자의 생명을 가르켜 조헤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속에는 이 조헤의 생명이 주어진것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도를 딲으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 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예전에 법어로서 말을 한것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눈을 크게 뜨고 찾아 보아라 천국도 지옥도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도를 딲는다고 가는것 아닙니다. 착한 일을 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믿는자에게 주시는 생명입니다.(눅10: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받아 가져야 할것이고.(막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 라 (눅18: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들어 가야 할것.(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것보다 나으니라(막9:44) (없 음)(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내세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또한 천국과 동의어 입니다.
그러므로 막10:17 이하에 있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에 관한 의논중에 부자는 선한 선생이여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서 영생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영생의 갈망입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기도 하지만 또한 종교적 동물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재 깊숙한 곳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아직도 희미하지만 인간속에 종교의 씨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그저 잘먹고 잘살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만, 인간은 이런것이 충분히 충족되어도 만족하지 않은것은 거기에 영혼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런데 유물론자들은 빵문제만 해결하면 지상에 낙원이 이루워 질것이 라고 했었으나 사람이 생활이 여유 있게되자 오히려 범죄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석가모니 싯달타가 의식주가 부족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호화스러운 궁을 버리고 수도생활을 한것은 아닙니다. 그도 영혼의 사모하는 그것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물론 방향을 잘못 찾은것이기는 하지만 그도 영혼의 갈증을 찾은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라고 불리우는 그가 큰 부자인데 모든 재산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구도의 길을 걸은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 목적인양 삶을 착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목적은 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의 비극이 바로 삶의 방편인 빵이 목적인양 착각하는데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 불행한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우지 못해 불행한것 같고 어떤 사람은 남편 때문에 불행한것 같고 어떤 사람은 아내 때문에 불행한것 같고.
인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의식주 문제에 있다면 부자는 다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도 자살하고 고민하고 결국은 하나님께 나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인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살아갈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다.거기에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사람이 빵만으로 살아갈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줄 믿습니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는 힘을 얻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한 인간이 거듭나게 되면 그는 영생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그는 (계1: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인간은 타락의 결과 오로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만이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다.
오늘은 영생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영생의 근거에 대해서.
구약성경에 있어서 하나님은 생명의 유일하신 샘이며 '(시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시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선물로서 중요시 되고 있으나 ‘영원한 생명’ 즉 ‘와야할 세상의 한없는 생명’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에서는 명확하게 말씀을 하여 주시지 않고 희미한 그림자만 보여 주었기 때문에 분명한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에게 희미했던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고 확인 시켜 주심으로 하여 우리가 소망으로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는 생명이시며 그 자신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샘명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우리의 소망에 대한 우리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영적인 삶속을 향하여 침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참으로 신비한 교리 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하고 확실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엿장사가 가위질을 하는데 몇번을 칠것인가 그것은 엿장사 마음대로 입니다. 비유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여 놓으신 신비한 원리가 우리 이성으로 맞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수용하지 않는다 하면 결국은 우리의 손해 일뿐 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여 주십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생명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에서 나오고 영생은 영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둘째로-영생의 의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받은 생명입니다. 이것은 푸시케의 생명과 조헤의 생명으로 성경은 구분을 하는데, 믿지 않는 생명은 가르켜 푸시케의 생명이라고 하며 믿는자의 생명을 가르켜 조헤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속에는 이 조헤의 생명이 주어진것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도를 딲으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 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예전에 법어로서 말을 한것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눈을 크게 뜨고 찾아 보아라 천국도 지옥도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도를 딲는다고 가는것 아닙니다. 착한 일을 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믿는자에게 주시는 생명입니다.(눅10: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받아 가져야 할것이고.(막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 라 (눅18: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들어 가야 할것.(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것보다 나으니라(막9:44) (없 음)(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내세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또한 천국과 동의어 입니다.
그러므로 막10:17 이하에 있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에 관한 의논중에 부자는 선한 선생이여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서 영생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영생의 갈망입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기도 하지만 또한 종교적 동물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재 깊숙한 곳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아직도 희미하지만 인간속에 종교의 씨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그저 잘먹고 잘살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만, 인간은 이런것이 충분히 충족되어도 만족하지 않은것은 거기에 영혼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런데 유물론자들은 빵문제만 해결하면 지상에 낙원이 이루워 질것이 라고 했었으나 사람이 생활이 여유 있게되자 오히려 범죄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석가모니 싯달타가 의식주가 부족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호화스러운 궁을 버리고 수도생활을 한것은 아닙니다. 그도 영혼의 사모하는 그것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물론 방향을 잘못 찾은것이기는 하지만 그도 영혼의 갈증을 찾은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라고 불리우는 그가 큰 부자인데 모든 재산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구도의 길을 걸은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 목적인양 삶을 착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목적은 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의 비극이 바로 삶의 방편인 빵이 목적인양 착각하는데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 불행한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우지 못해 불행한것 같고 어떤 사람은 남편 때문에 불행한것 같고 어떤 사람은 아내 때문에 불행한것 같고.
인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의식주 문제에 있다면 부자는 다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도 자살하고 고민하고 결국은 하나님께 나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인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살아갈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다.거기에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사람이 빵만으로 살아갈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줄 믿습니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는 힘을 얻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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