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체험하라 (욜2:12-17)
본문
며칠 있으면 추석이 다가옵니다. 이제 여러 성도들 마음속에도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뵐 생각으로 마음과 몸이 분주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즐거움도 있지만, 성도들 중에는 커다란 고민에 빠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온 집안이 주님을 영접한 가정이면 별문제가 없지만 가족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가정에서는 아무래도 차례를 준비해야 하고, 또 차례를 드릴 때 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일들로 벌써부터 마음에 부담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왜 우상숭배이냐 고 불만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드려도 괜찮다고 그러는데 왜 우리 기독교는 제사를 하지 못하게 하느냐 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스스로 기준을 정해서 나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기에 우상숭배는 아니다며 위로를 받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아주 분명한 성경적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면서 절을 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돌아가신 조상들을 존경하고 생각한다고 하는 단순한 의미로 보기에는 굉장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죽은 자에 대한 절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에서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제사라고 하는 그 말속에는 신에게 예배한다고 하는 의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창조주 하나님(God)이 아니라 잡신(god)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복을 구하고, 삶을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제사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께만 드릴 수 있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제사 때 음식을 정성껏 차려놓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하여 숟가락 젓가락을 밥그릇 위에 올려놓고서 예를 갖추면,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찾아와서 정성껏 차린 차례음식을 잡수시고 후손들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의미는 순수한 존경심의 표현과 기대를 넘어서는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흔히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며 묘 자리도 많은 돈을 들여 쓰거나 무리하게 풍수지리를 의존하여 이장을 하는 정치인들도 같은 맥락의 행위인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딜레마도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선, 고린도 지역의 삶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음식 가운데 하나인 고기는 언제나 우상의 신전에 먼저 드려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중요한 음식들은 먼저 신에게 바쳐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고기 같은 경우에는 신들이 와서 그것에 붙어 있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자를 지켜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지역에서 고기를 사서 먹는다고 하는 것은 이미 어떤 신전이든지 제물로 드려진 것이기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먹으려고 할 때, 당시 크리스찬들에게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부분에 있어서 바울 사도는 몇 가지 기준을 주었습니다. 1차적인 기준은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은 먹지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마치 우리가 영어공부를 할 때 ABC부터 배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바울사도께서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지말라고 충고하는 것은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이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권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차적인 바울 사도의 권고는 한걸음 나아가서 성도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다면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기에 무엇을 먹든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이 적용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우상의 존재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성숙하고 건강한 믿음을 가지 이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차적인 바울사도의 권면은 대단히 높은 영적,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신앙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시험이 되거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절제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은 아니니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덕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평안의 모든 성도들이 이 바울의 권면을 넉넉히 실천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참으로 간절하게 호소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내게로 돌아오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회개하는 회개자의 태도인데,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옷을 찢으면서 회개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잘 못 되었을 때, 멍석을 깔아 놓고 석고대죄를 드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도 없는데 석고대죄를 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엘 선지자는 너희들이 형식적인 회개를 하지 말고, 마음을 찢는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살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설교자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심이 되는, 기준이 되는 분이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분도 때때로 부족하고 잘 못 이해한 부분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 글을 보면서 은혜가 되었어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시골을 방문 했을 때 일입니다. 농장 지붕에 바람개비가 돌아가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람개비 모양을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작은 바람이 돌아가면 천천히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바람개비에는 글귀가 써져 있었는데, 바람개비의 날개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그것을 보면서 여러 날개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그 바람개비 날개가 천천히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을 보면서 농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 바람개비처럼 변덕이 많다는 이야기이냐’, 농부가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바람개비 날개마다 모두 써붙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든지, 그게 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그 글을 보면서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살아오는 동안 부활주일 감사예배를 드렸고, 7월초에는 맥추감사예배를 드렸고, 12월에는 성탄감사예배가 있지만, 한 해를 결산하는 감사의 의미는 수장절, 추수감사주일인데,
그러므로 벌써 우리들은 남은 몇 개월을 두고 있지만, 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 예배에 임한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21년 동안 변함없이 추석을 앞둔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1월 3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것은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에 계속해서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전통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1월 3째주는 겨울이 다가옵니다. 들판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곡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각 있는 이들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성경적인 이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밭에서 맞물을 거두거든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려라. 우리말로 하면 햇곡식을 거둘 때 그 햇곡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에 착안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이 햇곡식을 거두어서 추석에 기쁨을 나눌 때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다라고 믿고, 지난 21년 동안 추석 전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교회들이 달라졌습니다. 11월에 감사주일로 드리는 교회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주, 혹은 10월 3주 점점 당겨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제는 추석을 앞둔 주일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전국적으로 많아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농부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그마한 텃밭에 곡식을 키우는 분들은 계시지만, 이제 대부분의 도시생활을 하는 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밭에 곡식을 거두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곡식을 거두는 삶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직장을 통해서, 우리의 사업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업에 그 땅에서 곡식을 거두지 않습니까 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그것은 뭐든 만물을 거두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추석이 되면 보너스를 줄 줄을 알고요, 아무리 세상인심이 빡빡해도 추석이 되면 밀린 임금들 다 정리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 말은 인간들도 추석이 되면 기본적은 그들의 삶의 부분들을 채우고 풍성한 추석으로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추석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햇곡식을 그 맞물을 거둘 때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추석이 되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삶으로 추석을 맞이하는 가정들도 있을 거예요. 풍성하게 500%, 600%, 800% 보너스를 받아가면서 희희낙락하는 가정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스펄전이 질문하는 것에 그 농부가 대답하였듯이 어떤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그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한 것처럼 빌립보 4장 11절 이하에서 내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이 추수절에 나의 삶이 어떠한 모양으로 인도하셨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삶이 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라. 그 성회에 어떤 이들이 나와야 할 것인가를 1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장로를 모아라.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라는 것입니다. 소아와 젖먹이를 모아라. 어린이들까지 모두 주의 성전에 불러 모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만 대표로 교회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당신은 집에 있고 내가 대표로 가리이다.’ 아니지요. 여러분, 병원에 입원한 분들을 빼 놓고는 다 나와야 합니다. 어린아이, 젖먹이까지 다 성회에 부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자녀들을 영적인 생활에서 방치해 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 방임해 두는 사람이 있어요.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지금 주일에 정상적으로 예배를 하는지, 안 하는지 그냥 방임해 두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젖먹이까지 다 성회로 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에 신랑과 신부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토요일날 결혼식을 하면 신혼여행을 쭉 떠나 버렸어요. ‘그 사람 왜 안 보여’ ‘어저께 결혼했잖아.’ ‘신혼여행 갔어.’ ‘그래’ 하지만 지각 있는 젊은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토요일날 결혼식을 하고,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한 후에 국내에 호텔을 정해서 하룻밤을 자고,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 앞에서 주의 이름으로 한 가족이 된 것을 고백하고 찬송으로 영광을 돌린 후에,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나갑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회로 모일 때에 장로를 비롯해서 신랑 신부들까지 젖 먹는 어린아이까지 성회로 모이라고 하는 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노인들은요, 우리가 걸으면 10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에 2번 3번 쉬어쉬어 오시면서 교회를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차가 돌지 않아서 못 오신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쇼핑을 차가 돌지 않아서 안 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적어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예배가 쇼핑하는 것보다 못합니까
한동안 백화점에서 전지역으로 차량을 운행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역에 작은 상점들과 경제가 피폐가 되어서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형 백화점과 차량운행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서 대기업에서 반발하는 것이 심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실행이 되어서 이제는 대형백화점이나 쇼핑센타에서 지역에 차량을 운행하는 일이 없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쇼핑을 안 갑니까 아니잖아요. 백화점 매출이 떨어졌나요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일에 성도의 마땅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예배를 통해서 과거에 우리가 메뚜기떼와 같은 재앙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피폐해 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사랑하기에 메뚜기 재앙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인간의 물질 정욕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메뚜기 재앙을 주셨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 자연재앙 속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고 이제 그들이 성회를 선포하고, 나팔을 불면서 눈물의 회개운동이 일어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예배와 성회와 성도의 삶을 드려지는 그런 회복운동이 필요할 때인 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회를 향해서 무엇이냐고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들을 회개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성회에 모이면서 그들은 다시금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우리에게 주신 영생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없는, 그 예배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던지, 어떤 형편에 우리가 처해 있던지 여전히 주님의 사랑의 손길은 변함이 없음을 기억하면서 추수감사절을 주께 영광 돌리며 사랑과 은혜의 복된 기회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지난 한 해 동안 삶을 결산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하나님 기뻐하신다고 하는 말씀 기억하며 오늘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주님 앞에 감사하며 추수감사의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 그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손길을 확신하며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체험된 그 하나님의 은혜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온전히 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어떤 분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왜 우상숭배이냐 고 불만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드려도 괜찮다고 그러는데 왜 우리 기독교는 제사를 하지 못하게 하느냐 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스스로 기준을 정해서 나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기에 우상숭배는 아니다며 위로를 받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아주 분명한 성경적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면서 절을 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돌아가신 조상들을 존경하고 생각한다고 하는 단순한 의미로 보기에는 굉장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죽은 자에 대한 절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에서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제사라고 하는 그 말속에는 신에게 예배한다고 하는 의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창조주 하나님(God)이 아니라 잡신(god)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복을 구하고, 삶을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제사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께만 드릴 수 있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제사 때 음식을 정성껏 차려놓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하여 숟가락 젓가락을 밥그릇 위에 올려놓고서 예를 갖추면,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찾아와서 정성껏 차린 차례음식을 잡수시고 후손들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의미는 순수한 존경심의 표현과 기대를 넘어서는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흔히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며 묘 자리도 많은 돈을 들여 쓰거나 무리하게 풍수지리를 의존하여 이장을 하는 정치인들도 같은 맥락의 행위인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딜레마도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선, 고린도 지역의 삶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음식 가운데 하나인 고기는 언제나 우상의 신전에 먼저 드려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중요한 음식들은 먼저 신에게 바쳐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고기 같은 경우에는 신들이 와서 그것에 붙어 있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자를 지켜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지역에서 고기를 사서 먹는다고 하는 것은 이미 어떤 신전이든지 제물로 드려진 것이기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먹으려고 할 때, 당시 크리스찬들에게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부분에 있어서 바울 사도는 몇 가지 기준을 주었습니다. 1차적인 기준은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은 먹지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마치 우리가 영어공부를 할 때 ABC부터 배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바울사도께서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지말라고 충고하는 것은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이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권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차적인 바울 사도의 권고는 한걸음 나아가서 성도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다면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기에 무엇을 먹든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이 적용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우상의 존재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성숙하고 건강한 믿음을 가지 이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차적인 바울사도의 권면은 대단히 높은 영적,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신앙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시험이 되거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절제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은 아니니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덕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평안의 모든 성도들이 이 바울의 권면을 넉넉히 실천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참으로 간절하게 호소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내게로 돌아오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회개하는 회개자의 태도인데,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옷을 찢으면서 회개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잘 못 되었을 때, 멍석을 깔아 놓고 석고대죄를 드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도 없는데 석고대죄를 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엘 선지자는 너희들이 형식적인 회개를 하지 말고, 마음을 찢는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살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설교자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심이 되는, 기준이 되는 분이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분도 때때로 부족하고 잘 못 이해한 부분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 글을 보면서 은혜가 되었어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시골을 방문 했을 때 일입니다. 농장 지붕에 바람개비가 돌아가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람개비 모양을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작은 바람이 돌아가면 천천히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바람개비에는 글귀가 써져 있었는데, 바람개비의 날개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그것을 보면서 여러 날개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그 바람개비 날개가 천천히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을 보면서 농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 바람개비처럼 변덕이 많다는 이야기이냐’, 농부가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바람개비 날개마다 모두 써붙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든지, 그게 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그 글을 보면서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살아오는 동안 부활주일 감사예배를 드렸고, 7월초에는 맥추감사예배를 드렸고, 12월에는 성탄감사예배가 있지만, 한 해를 결산하는 감사의 의미는 수장절, 추수감사주일인데,
그러므로 벌써 우리들은 남은 몇 개월을 두고 있지만, 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 예배에 임한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21년 동안 변함없이 추석을 앞둔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1월 3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것은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에 계속해서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전통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1월 3째주는 겨울이 다가옵니다. 들판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곡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각 있는 이들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성경적인 이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밭에서 맞물을 거두거든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려라. 우리말로 하면 햇곡식을 거둘 때 그 햇곡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에 착안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이 햇곡식을 거두어서 추석에 기쁨을 나눌 때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다라고 믿고, 지난 21년 동안 추석 전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교회들이 달라졌습니다. 11월에 감사주일로 드리는 교회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주, 혹은 10월 3주 점점 당겨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제는 추석을 앞둔 주일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전국적으로 많아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농부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그마한 텃밭에 곡식을 키우는 분들은 계시지만, 이제 대부분의 도시생활을 하는 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밭에 곡식을 거두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곡식을 거두는 삶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직장을 통해서, 우리의 사업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업에 그 땅에서 곡식을 거두지 않습니까 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그것은 뭐든 만물을 거두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추석이 되면 보너스를 줄 줄을 알고요, 아무리 세상인심이 빡빡해도 추석이 되면 밀린 임금들 다 정리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 말은 인간들도 추석이 되면 기본적은 그들의 삶의 부분들을 채우고 풍성한 추석으로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추석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햇곡식을 그 맞물을 거둘 때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추석이 되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삶으로 추석을 맞이하는 가정들도 있을 거예요. 풍성하게 500%, 600%, 800% 보너스를 받아가면서 희희낙락하는 가정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스펄전이 질문하는 것에 그 농부가 대답하였듯이 어떤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그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한 것처럼 빌립보 4장 11절 이하에서 내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이 추수절에 나의 삶이 어떠한 모양으로 인도하셨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삶이 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라. 그 성회에 어떤 이들이 나와야 할 것인가를 1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장로를 모아라.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라는 것입니다. 소아와 젖먹이를 모아라. 어린이들까지 모두 주의 성전에 불러 모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만 대표로 교회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당신은 집에 있고 내가 대표로 가리이다.’ 아니지요. 여러분, 병원에 입원한 분들을 빼 놓고는 다 나와야 합니다. 어린아이, 젖먹이까지 다 성회에 부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자녀들을 영적인 생활에서 방치해 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 방임해 두는 사람이 있어요.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지금 주일에 정상적으로 예배를 하는지, 안 하는지 그냥 방임해 두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젖먹이까지 다 성회로 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에 신랑과 신부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토요일날 결혼식을 하면 신혼여행을 쭉 떠나 버렸어요. ‘그 사람 왜 안 보여’ ‘어저께 결혼했잖아.’ ‘신혼여행 갔어.’ ‘그래’ 하지만 지각 있는 젊은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토요일날 결혼식을 하고,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한 후에 국내에 호텔을 정해서 하룻밤을 자고,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 앞에서 주의 이름으로 한 가족이 된 것을 고백하고 찬송으로 영광을 돌린 후에,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나갑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회로 모일 때에 장로를 비롯해서 신랑 신부들까지 젖 먹는 어린아이까지 성회로 모이라고 하는 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노인들은요, 우리가 걸으면 10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에 2번 3번 쉬어쉬어 오시면서 교회를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차가 돌지 않아서 못 오신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쇼핑을 차가 돌지 않아서 안 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적어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예배가 쇼핑하는 것보다 못합니까
한동안 백화점에서 전지역으로 차량을 운행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역에 작은 상점들과 경제가 피폐가 되어서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형 백화점과 차량운행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서 대기업에서 반발하는 것이 심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실행이 되어서 이제는 대형백화점이나 쇼핑센타에서 지역에 차량을 운행하는 일이 없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쇼핑을 안 갑니까 아니잖아요. 백화점 매출이 떨어졌나요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일에 성도의 마땅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예배를 통해서 과거에 우리가 메뚜기떼와 같은 재앙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피폐해 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사랑하기에 메뚜기 재앙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인간의 물질 정욕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메뚜기 재앙을 주셨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 자연재앙 속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고 이제 그들이 성회를 선포하고, 나팔을 불면서 눈물의 회개운동이 일어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예배와 성회와 성도의 삶을 드려지는 그런 회복운동이 필요할 때인 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회를 향해서 무엇이냐고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들을 회개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성회에 모이면서 그들은 다시금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우리에게 주신 영생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없는, 그 예배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던지, 어떤 형편에 우리가 처해 있던지 여전히 주님의 사랑의 손길은 변함이 없음을 기억하면서 추수감사절을 주께 영광 돌리며 사랑과 은혜의 복된 기회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지난 한 해 동안 삶을 결산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하나님 기뻐하신다고 하는 말씀 기억하며 오늘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주님 앞에 감사하며 추수감사의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 그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손길을 확신하며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체험된 그 하나님의 은혜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온전히 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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