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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요6:60-69)

본문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던 초기에는 겨우 12명의 인원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더다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져서 12명은 70명으로 또 거기서 120명으로 나아가 500명, 3000명, 5000명으로 점점 불어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따르는 숫자가 더 불어간다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많이 따른다고 해서 모두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본문 속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무리들의 굶주림을 아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하나님께 축사하신 후 떼어 나누어 준 결과 5천명이 먹고도, 그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를 채울 정도로 큰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무리들에게 큰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기적이 사건을 계기로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자는 여론까지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하신 바는 그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먹고 끝나는 보리떡이나 물고기 사건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떡 되시는 자신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수군거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는 것입니다(41-42절).
그러나 예수님의 교훈은 이들의 이러한 수군거림에 부닥쳐 끝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르치시기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51절). 그러자 마침내 유대인들 가운데는 다툼이 일어났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떠나 많이 물러가고 수천 명이 따르는 자리에서 이제 다시 열 두 명의 제자의 자리로 바뀌어진 다음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이 질문은 제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매우 심각한 도전이 되어 부닥쳐 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제자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 론
1. 제자의 길은 구분이 분명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60-68절)
-본문 설명
그렇습니다. 제자의 길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여론에 따라 움직일 때 거기에 같이 대세를 따라 걷는 것을 두고 말하지 않습니다.
몇백명, 몇천명 심지어 몇백만명이 움직여서 동조하고 옳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세상과는 구분이 분명한 하나님 세계의 질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말씀이 있자,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8절) 즉 이 태도는 대세를 따라 여론을 따라 다른 사람이 가니 나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그런 태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적 연결
시편 16:3절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라고 했을 때, 성경이 말하는 성도는, 히브리 말로 ‘카도 쉬’ 곧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하심에 의해 세상에서 분리되고 성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망시키고자 작정하시고 그 실상을 알아보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찾아왔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성을 사유해 달라고 힘써 간구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18:23-25절에 보면,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 하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이같이 하사 외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외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이 때 내세운 아브라함의 기도 제목은 소돔성으 사람 많음에 대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이룩한 문화의 찬란함에 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친척 조카의 생명 보존만을 이유로 내세운 것 역시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성에 있는 의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의인! 그것이 바로 ‘카도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별된 자가 있는 곳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취급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적용
단지 이는 숫자에 관계 없이 구분이 분명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구분이 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생애, 그것이 바로 제자의 길입니다.
또한 제자의 길은 구분이 분명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제자의 길은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67-68절)
-본문 설명
“너희도 가려느냐”(67절)는 12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8절)라는 베드로의 대답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자의 길에는 분명한 목표가 주어져 있으니 그것이 곧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고 고귀한 인품을 지녔다 할지라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요,
아무리 땅위에서 남보기에는 미천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목적을 이룩했을 때는 그 인생의 값어치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적 연결
누가복음 16:19-31절에 나타나고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십시오.
영생을 얻는다는 것과 잃어버린 다는 것 사이에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을 걷기가 때로 힘든 이유는 아무런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목표가 주어져 있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목표를 이룩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요, 이 세상에 주어져 있는 일도 이 일을 하러 나섰다가 그 일은 깜빡 잊어버린 채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비웃지 않습니까 하물며 신앙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목표를 정했으면서도 그것이 분명하지 못할 때 어찌 되겠습니까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출해내기 위해 사사로 부름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보아도 그는 블레셋에 대한 공격보다는 오히려 블레셋 여자에게 홀딱 빠진 모습만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어찌된 노릇입니까(삿14:1)
-적용
우리도 때로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경우 그만 깜빡 이야기 하던 주제를 놓쳐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 있자, 내가 무슨 이야기 하려고 했던가’ 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두 번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지녔던 목적을 흐리는 사람은 그것이 잘못 될 때 끝내 인생과 그 영혼에 실패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건대 성도로서의 삶과 생애에 ‘영생’이라는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의 길은 구분이 분명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해 출발했으면 돌아서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제자의 길은 한 번 시작했으면 돌아서지 않는 삶을 가리킵니다.(68-69절)
-본문 설명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하는 이 각오는 다른 사람이 다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러할 수 없습니다 하는 각오입니다.
왔다갔다 우왕좌왕하는 사람은 이 일도 저 일도 성취할 수 없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도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적 연결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낙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과 더불어 큰 믿음의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왕후 이세벨이 이를 교훈삼아 돌아설 생각을 않고 기어코 그를 잡아 죽이고자 했을 때입니다.
거기서 엘리야는 그만 낙심을 하고 죽고자 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시사 끝까지 완수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왕상19:1-21).
그 결과 마침내 엘리야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훌륭하게 이룩해 내었습니다.
그는 시작하고서 중도에 그만두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적용
신앙의 길을 걷는 이들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자기의 길을 끝까지 걸을 생각을 않고 남의일에 과도히 관심을 기울이다가 자기는 실패로 끝맺음하는 경우들을 자주 봅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불만, 어떤 지도자의 편견된 행동에 대한 오해, 내가 만난 사람의 말 때문에 오는 불평, 그것이 내 신앙의 가늠대가 되는 경우들이 너무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음송중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하는 가사처럼 참으로 제자된 성도들은 한 번 시작했으면 뒤돌아 서지 않겠다는 절대적 믿음이 필요합니다.
 결론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는 주님의 제자 된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제자로서의 구분이 분명한 삶을 항상 살아 가도록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항상 목표가 무엇이고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며 살아가는 제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셋째,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동아설 수 없는 삶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힘써 신앙의 직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칭찬받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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