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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삶이 있는가 (롬12:1-2)

본문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첫째 단어를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대해서 강조해 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자의 확신이 무엇인가 기쁨이 어떠한가 소망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가슴이 뜨겁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구원 의 터가 만세반석 위에 완전히 닦인 것입니다. 터가 단단히 닦였습니다. 터를 닦았으니 집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12장부터는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을 닦았으니 집을 지었야 한다 하는 의미를 지닌 것이
그러므로 하는 단어입니다.
교리를 배웠으면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복음을 듣고 구원 받았으면 반드시 구원 받은 자의 삶이 따라 와야 합니다. 진리와 삶은 하나입니다. 말씀과 순종은 일치해야 합니다.사람 구원과 삶의 구원은 나뉘어 지면 안됩니다.
바울은 이
그러므로의 사실을 로마서에 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갈라디아서, 골로새서,데살로니가전서,후서에서 똑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남.여의 결혼 문제를 놓고 창세기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 면서 참으로 의미 있는 주석을 단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굉장히 엄숙하면서도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 말씀이 어떻 게 부부관계에만 적용이 됩니까 하나님은 구원과 삶,진리와 순종을 짝지워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워 놓은 것을 사람이 함부로 나누면 안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혼율이 얼마나 높습니까 날이 갈수록 이혼하는 부부가 점점 늘어 가고 있지 않아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과 삶의 이혼율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구원과 삶이 별거하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 아닌가 주님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나는 나누어 놓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배우기는 하지만 그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 영혼은 구원 받았는지 모르지만 생활은 구원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들 때문에 교회는 무력해 지고, 빛과 소 금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타락의 주범이 무엇이냐
그러므로가 없는 생활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생각 해 보세요. 바울이 11장까지 설명한 그 놀라운 진리들을 마음 속으로 한번 되 새겨 보세요.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감격없이 받 을 수 없는 것이고, 가슴이 뜨겁지 아니하면 이해 할수 없는 너무나 대단한 선 물 아닙니까 이와같은 선물을 받고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그것은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구원을 내가 받은 것을 분명히 믿고 감격한다면 그에 대한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이 반응이 무엇입니까 구원 받은자답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결심입니다.
그리고 순종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입니다.

그러므로가 희미해 지면 그 사람의 구원자체를 의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의미에서 우리 각자가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 받은자의 생활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가 빠져 있지 않은가 우리 산돌교회에 다니시는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을 늘 들고 다니면서, 또 암 송하면서, 찬송 하면서 사시는 분! 부탁합니다.
그러므로가 보이지 않는 신자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1절부터 2절까지 총론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 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한마디로 우리가 구원 받은자로서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우리 몸을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본래 몸을 좋아하십니까 영혼,마음을 좋아 하십니까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은 겉으로 보이는 몸보다도 마음을 더 극진 히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따라오지 않으면 몸으로 아무리 대단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도 하나님은 받으시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몸을 바치라고 합니까 자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요점입니다.
왜 마음을 바치라고 하지 않고 몸을 바치라고 하실까 우선 그 이유로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여러분,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몸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 실을 바울은 강도 높은 말로 여기저기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고전 6:15-19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 알지 못하느냐 네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 코 그럴수 없느니라.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 이 말은 몸도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 너의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몸도 영과 함께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죄로 인해 부패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죄가 마음대로 유혹할수 있는 죄의 작업장 이라고 할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몸은 흙으로 돌아 갑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바치라고 제단에 올려 놓으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구원 받은 사람은 몸도 구원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할 때에 영혼 만의 구원으로는 완전한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인격이 영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없는 영혼을 생각 할 수 없고, 영이 없는 몸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도 완전할려면 몸과 영이 함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전인격 적인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롬 8:11절 여러분이 잘 기억하시지요.
나중에는 결국 어떻게 되느냐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왜 살리십니 까 몸도 구원 받아야 하니까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할 때에는 우리 몸이 구원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살 동안 몸 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인격을 보여 주는 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이 없는 인격을 상상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몸은 또 나의 삶이 어떠한가를 증명할 수 없는 수단이 됩니다.몸이 없는 사람 이 세상을 산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는 믿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몸이 있기 때문에, 저사람은 참 바르게 살아 간다. 저 사람은 생활이 잘못 되 었다하고 우리가 분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우리가 살기 위해서 뛰는 것이 몸이 요, 살기 위해서 쓰임 받는 수단이 몸입니다. 날마다 숨을 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몸이 뛴다. 이것이 산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알 면 오늘의 말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이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겠다 하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을 드리라는 이 말은 너의 삶 전부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네 몸도 구원 받았지 구원 받은 몸이라고 한다면 그 몸이 뛰고 있는 모든 생활 영역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게 하라.
이 귀중한 진리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데 슬픔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내 몸이 뛰는 생활영역 전체가 하나님이 계시는 제 단에 올려진 제사라는 사실을 깜빡깜빡 잊어 버리고 제 마음대로 사는 크리스 챤이 상상 밖으로 많다는데 우리의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전부,우리의 생활영역 전부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의 할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거룩해야 합니다. 몸이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산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구별해 놓은 것은 무엇이나 거룩 합니다.
그러므로 내 몸은 하나님이 쓰실려고 따로 떼어 놓은 하나님의 것이야 하는 주체의식이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로 더럽히지 않아야 합니다.하나님 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함부로 몸을 내어 맡겨서는 안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사는 가운데서도, 내가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내 몸을 쓰고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들면,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이 것이 내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나의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방 법입니다.
다음으로는 내 몸을 살아 있는 제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생명의 에너지를 가득히 담아서 드리는 제사를 말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몸이 삶의 에너지를 가득히 담아서 하나님께 드릴수 있도록 해 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최상의 조건을 갖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말 입니다.
우리가 70평생을 산다고 한다면, 최상의 조건을 갖추는 여러가지 여건이 있습니다.시간적으로 따져서, 또 몸의 여러가지 컨디션에 따라서, 여러가지 성숙도 에 따라서,사회활동에 따라서 내가 지금 최상의 조건을 갖춘 삶을 사는구나 하는 어떤 시점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시점에 속한 삶이 하나님께 송두리째 드려 지도록 하라. 이것이 산제삽니다.
병든 몸을 가지고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온다. 물론 나와야지요.
실패했느니 주님 앞에 나온다. 꼭 나와야 하지요.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슬픈 일입니다. 건강할 때는 내 맘대로 살다가 병든 다음에는 주여 받으시옵소서 이것 뭐가 잘못되었다 이것입니다.
성공해서 세상적으로 힘이 넘칠 때에는 하나님도 안중에 없고, 교회를 다녀도 형식적으로 다니고, 내 맘대로 즐기면서 살다가 실패하자마자, 주여! 찾아 왔 나이다하고 무릎꿇면., 글쎄요. 그렇게라도 하기는 해야지요. 그러나 거룩 한 산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젊어서는 제마음대로 살고, 늙어서 고독하고 의지 할 때가 없느니 교회에 꼬박 꼬박 나오는 것, 좋습니다.그래야 합니다. 좀 더 다른 면에서 생각하면, 일찍 주님 앞에 나와서 일찍 하나님께 나의 몸을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산제삽니다.
그리고 산제사는 최선의 삶을 주님에게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적당하게 사는 삶, 게으르게 꾸려 가면서 사는 삶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바칠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젊었든, 늙었든,병들었든 건강하든 간에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가 됩니다.
성경에 보니까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에 이렇게 구별을 해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우리의 생을, 최선을 다하는 하루의 삶을 주님께 고스란히 바치는 삶을 살면 그 자체가 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수만 있다면, 그 자체가 유 일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이요, 그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된다는 말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자고 일어나는 것도,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도, 집안에서 일하는 것도, 내가 내 몸을 구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제사라는 믿음 가지도 하루를 뛰면 뛰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예배 라는 이야깁니다.
얼마나 황홀한 이야깁니까 이 진리 하나만 바로 깨달아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 내 몸을 가 지고 뛰는 삶 자체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느껴집니다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고 믿을 때, 거기에서 살 맛이 나는 것이고, 거기에 우리의 삶의 향기가 풍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챤의 삶이 아닙니까 이 영적예배라고 하는 단어를 다른 말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원문을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는데, 더 실제적이고 구체성을 띠고 깨닫게 하는 표현이 될수 있습니다. 합당한 봉사라는 단업니다.이치에 맡는 봉사, 당연한 봉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합당한 봉사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위하고,하나님을 위하는 생활 이다.하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이 뛰는 삶 전부를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드릴수만 있 다면, 그 삶 자체가 바로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섬김의 삶이 될수 있 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떠 주는 냉수 한그릇이 하나님을 위하고 섬기는 행동으로 해석이 되지요.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 이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이웃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합당한 봉사가 무엇이냐 일차적으로 내 이웃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버릇 을 버려야 합니다.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예배니라.-아멘,아멘 아 무리 해보아도 구름잡는 소리같지요.
외우기는 잘 외우는데 실제 생활로 연결이 안돼. 전달이 안돼. 고리가 없어.
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버릇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이 버리실 것이 있습니다. 야 이것은 특별하고 영웅적인 헌신 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이숙여사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감옥에도 가고,외국에 가서 선교도 하고, 수십일 금식기도도 하고, 이렇게 좀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냐고 해석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도 그렇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 이 그렇게 쓰임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낮은데서 작은데서 평범한 데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제사가 되도록 매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교사는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젊음과 지식과 삶 전부를 주님을 위해서 바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 한사람을 배후에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땀흘리고 먼지 마시면서 노농해 가지고 얼마 안되는 월 급을 받아서 자기 생활을 꾸리고,거기에서 얼마를 떼어서 선교사를 돕고 있는 손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 이런 소녀의 생활은 선교사만 못합니까 이런 삶은 산제사가 아닙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제사가 아닙니까 이런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는 합당한 봉사가 아닙니까 우리가 그렇게 해석하면 큰일나지요. 우리는 선교사 의 생활이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쪼개어 선교비를 보내는 처녀의 삶, 그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지 않아요.
우리는 살아 가면서 평범하고 작은 나의 일과 하나하나가 정말로 이웃을 위하는 것이 될까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가 될까 이것을 날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생활은 아닌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하챦게 보이는 하루하루의 일과가 하나님을 섬기는 합당한 봉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95%가 실패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 이 거의 전부가 매일의 하찮아 보이는 일과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95%에 해당하는 하챦은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요,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합 당한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버린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의 95%는 실팹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그러한 실패가 있을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 럴수는 없습니다.
95%를 실패한 사람이 5%를 가지고 잘했다고 칭찬 받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챦게 보이는 일,작은 사소한 일, 이것 이 바로 이웃을 위한 봉사요. 하나님을 위하는 봉사라는 것을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챦은 일, 작은 일 중에 하나를 예를 들겠습니다.
요즈음 자연보호가 굉장한 이슈로 신문지상에 많은 보도가 되고 있지요. 신문 의 맹점이 하나있습니다. 신문의 위력이나,그 역할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대통 령의 말은 안들어도 신문에 난 말은 듣 거든요. 그리고 신문이 나서면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얼마든지 할수가 있습니다. 날로 신문이나 매스컴의 역활 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가끔해 봅니다.
그런데 신문의 맹점이 무엇입니까 돌이킬수 없는 막바지에 가야 기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문에 보도 되 기 시작했다 하면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자연보호도 마찬가지입니다. 때 가 늦었어요. 심각한 문제가 되어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위기감을 느낍니다.
옛날에는 산에서 종이나 깡통을 버리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버리고 말 았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사람은 나의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고, 자연을 파괴해서 인류에 해악을 끼칠 뿐 아니라, 내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짖 밟는 못된 사람으로 볼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그 사람들이 [내 것 가지고 내가 쓰는데 무슨 말이냐]이런 말을 할 수 없는 삭막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이런 자원보호나, 에너지 절약 같은 데서는 어떠해야 할 것이냐 여러분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리하라고 주신 자연을 망치고, 죽이는 짓을 우리는 못합니다.
교인이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요,이 웃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봉사라고 한다면 그런 일을 할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과 하나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거룩한 산제사가 되게 하려면 한시도 잊지 말아 야 할 것이 있습니다.
2절 끝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몰라서 분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 은 이미 밝혀져 있습니다. 이미 밝혀진 뜻을 명심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로마서 1장-11장까지 이미 수없이 밝혀 졌고, 심지어 범사에 감사하는 그 것 자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있 느냐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처럼 흐리멍텅하게 행동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하니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분별력이 약해서 흐리멍텅해 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거부하는 것과, 자기의 갱신입니다.
2절의 앞부분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거부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거부하라. 세상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거부하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순응하느냐 순응하지 않느냐는 굉장한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 을 분명하게 말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오늘의 생활이 복잡 하고, 각자의 삶이 다릅니다. 문화의 여건에 따라 그 한계를 각각 다르게 긋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그때그때마다 선을 그어야 할 자리를 압니다.
여기까지는 거부해야지! 이것을 구별할수 있습니다. 어떻게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을 통해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이냐 이것은 중생 받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요술 같은 무엇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 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계속 닦고,잘 관리하지 않으면 귀한 것으로서의 가치 를 유지 할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중생을 받았지만,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계속 닦고 기름칠하고 조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흐려 가지고 무엇인무엇인지 분별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그 말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깨끗이 세척하라는 것입니다. 닦으라른 말입니다. 날마다 닦아 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할수 있도록 자기의 영혼을 유지 하라는 말입니다.
참 중요합니다. 골방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규칙적으로 날마다 말씀 일고,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의 음성을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는 나약한지라 넘어지고 쓰러질 때, 이 시간에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능력을 힘입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이것을 하루하루 생활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빼놓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 [오늘 하루 동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흐리멍텅 한 삶]을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탈선하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영혼이 구원 받았습니까 그러면 몸도 구원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구원 받았습니까 그러면 몸이 뛰는 삶도 구원 받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삶의 특징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우리 몸을 바치는 제사에 있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 가는 것만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
우리가 날마다 손을 대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는 일 전부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주의 일이요, 제사요,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제삽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매일맬 살수만 있다면 우리의 생활에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할 렐루야 찬송=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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