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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녀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신6:4-9)

본문

오늘의 본문은 성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의 하나로 간주된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을 하루에 두 번 암송했고, 가죽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들은 이 말씀 그대로 행함을 행복의 요건으로 생각해 왔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의 야훼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라고 말하는 자는 복되도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이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 말씀대로 실행할 때에는 그 자체만으로 복된 일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각자가 폐부에 깊이 아로새기려고 힘썼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서 회당을 설립했고, 성서가 바로 그들이 사용한 교과서였다. 특히 오늘의 본문과 같은 종류의 내용을 모아서 자녀 교육의 교재로 사용했는데, “쉐마아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여 성서에 포함하게 되었다.
본문을 들여다 볼 때, 그 핵심은 7절이다. 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그 핵심 구절이며, 나머지 구절은 이 구절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율법의 말씀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유태인들도 이 본문을 얇은 가죽이나 흰 종이에 써서 둘둘 말아 손가락만한 통에 집어넣은 다음 그런 통을 두 개 준비하여 그 중 하나는 이마에 끈으로 매달고, 또다른 하나는 손목에 매고는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에 촛불을 켜놓고 아침 동틀 때와 저녁 해가 질 때에 성서를 읽는다. 이것을 “태플린 의식”이라고 하는데, 경건한 사람들은 매일 행한다. 그들이 그와 같이 본문의 말씀을 하나는 미간에 달고 또다른 하나는 손목에 매고 성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간은 정신적인 것을 상징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학문, 철학, 이념 등은 그 근본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서를 읽으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 이념, 학문 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를 항상 검토하기 위해서 미간에 본문의 말씀을 매달고 성서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손목은 실제적인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 일 등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를 점검하기 위해서 손목에 본문의 말씀을 매달고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함으로써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9절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방문 입구마다 손가락만한 통이 하나씩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통 속에는 본문의 말씀을 기록한 종이(또는 가죽)가 들어있다. 그 통 표면에는 히브리어 알파벳 “쉰” 자가 쓰여져 있는데, 그것은 “쉐마아”의 첫 글자를 따서 쓴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방문을 출입할 때 그 통에 두 손을 모아 입을 맞춘다. 사랑한다는 마음의 표현으로 입을 맞추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을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뜻에서 신 6:4-9의 말씀에 입을 맞추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그들의 교육이 철저했으면 지금도 한결같이 이런 일이 생활화되었을까 또한 여기에 언급된 “바깥 문”은 옛날의 경우에는 마을 공동체의 성문을 의미한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구절을 마을 공동체의 성문을 의미한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구절을 마을 공동체의 성문에 붙임으로써 온 공동체가 일치단결해서 그대로 실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뿌리와 정신의 뿌리와 가정의 뿌리와 교육의 뿌리와 정치, 사회 공동체의 뿌리까지 인생 모든 분야의 뿌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두었다는 뜻에서 본문 말씀을 문설주와 바깥 문에 달아놓고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 나라에는 대통령의 아들로 인해 시끌시끌하다. 대통령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장로라고 하는데, 그의 아들은 교회도 안 나가는 모양이라고 수군거린다. 우리는 그가 교회에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기독교 신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아들을 잘못 가르쳐 대단히 곤란한 지경에 처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 ‘자식을 둔 부모는 큰 소리를 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자식들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패역한 자식을 말할 때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자식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던 아버지 엘리 역시 망나니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엘리가 패역한 제사장인가 엘리가 무능한 아버지인가 결코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는 평생을 회막에서 봉사하여 온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한나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고 그 예언은 적중하였다. 한나가 그 소중한 아들을 맡길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긴 것이다(삼상 2:29). 이것은 사무엘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엘리의 밑에서 그 아들들이 망나니짓을 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사무엘이 자녀 교육에 왜 관심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사무엘이 늙어 아들들이 사사가 되었을 때 그들의 모습 속에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삼상 8:3)고 하였다. 아마도 사무엘이 벧엘, 길갈, 미스바 등을 순회하며 이스라엘 온 지역을 다스리느라 자녀를 돌보고 교육시킬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시 127:3)이라고 하였다. 자식을 잘 가르치고 기른 부모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지만 자식을 잘못 가르친 부모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자녀 교육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아침 봉독해 드린 말씀은 ‘쉐마’(SHEMA) 본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쉐마본문을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였다. 또 이 말씀을 기록한 양피지를 가죽 상자에 담아 기도할 때마다 안쪽 손목과 이마에 부착하였다. 이것을 경문(Phylactery)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어린이 주일 아침, 우리는 유대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쉐마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 보자.
1.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뿐임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두려운 일이 있거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 신을 찾게 되었다. 고대 세계에서는 자신들을 도와줄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 종교는 대부분 다신론이나 범신론적 사상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고대 세계에서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뿐이라는 가르침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숭배(自然崇拜)와 정령숭배(精靈崇拜) 사상이 보편적이어서 가는 곳마다 신이 있었다. 산에 가면 산신령이 있었고, 집에 들어오면 곳곳마다 수호신이 있었다. 하늘에는 옥황상제가 있었고, 바다에는 용왕이 있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런즉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신 4:39-40). 지금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어 영혼을 유혹한다. 특히 서양의 인본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와 동양의 신비주의가 결합해 이뤄진 대단위 사탄 운동인 ‘뉴에이지’(New Age) 운동이 자녀들의 신앙관을 위협한다. 또한 귀신, 도깨비, 무당, 접신(接神)을 주제로 한 영화와 연극들, 힌두교 사상을 담은 서적들, 뉴에이지나 사탄의 상징이 그려진 옷들, 늘어만 가는 점술집들, 명상센터, 요가 수련원, 점성술을 다룬 잡지와 신문들을 보면서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라”는 하나님의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다.
2. 하나님 여호와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실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4:10-11).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 말고도 사랑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를 유혹하는 이 시대의 선악과가 너무나 많이 있다. 여기서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랑은 독점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다 보면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해 보라.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마 6:24).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을 때 주님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그렇다.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는 사랑은 위선이요, 거짓이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3.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가르쳐야 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하고 탄식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詐僞)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 4:1-2)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는 등불이요, 빛이다(시 119:10
5).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를 비취어 깨닫게 하고(시 119:130)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 있게 한다(딤후 3:15-17).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읽게 하고 배우게 하고 깨달아 알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신 11:18-21).
요즘을 흔히 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지식의 홍수 시대라고 한다. 매일같이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신문은 하루에 32면에서 48면까지 깨알같은 글씨에 각종 정보를 담아 집에 배달해 준다. 아마 매일 보내 주는 신문을 다 읽으려면 하루 종일 신문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컴퓨터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부른다. 인터넷에 실린 정보를 다 읽어보려면 평생을 읽어도 어림없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나 지식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유익한 것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은 분별력이 모자란다. 보고 배운 대로 따라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 사람의 됨됨이가 형성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만은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배우고 있는 지에는 무관심하기 쉽다. 자녀들이 상한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큰 손상을 입는 것처럼 건전하지 못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면 그 영혼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한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돈이 많은 사람과 궁핍한 사람이 배를 타고 여행을 하였다. 돈이 많은 사람은 다이아몬드와 황금과 갖가지 보석이 들어있는 큰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궁핍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교육뿐이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풍랑을 만나 가라앉고 말았다. 돈이 많은 사람과 궁핍한 사람은 다같이 발가벗은 채로 구조를 받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다이아몬드와 보석들을 몽땅 잃어버렸다. 두 사람 가운데 구조받은 후에 누가 더 많이 가졌겠는가 이 이야기는 재산보다는 교육이 더 중요함을 말한다. 교육만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고장에 가서 다시 출발하면 된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자식이 열이면 그 열명 다 교육시킨다.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을 시킬 때 출세를 하거나 글을 깨우쳐 장부를 적을 수 있게 되어 물질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에게 기도하기 위해 글을 가르친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자. 이것이 자녀들로 하여금 어긋난 길로 가지 아니하고 생명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 줄 것이다. 오늘 말씀을 마친다. 여러분의 자녀는 건강한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세상을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되는가 여러분의 자녀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며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정말로 복된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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