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교회 (살전1:1-4)
본문
오늘 살전강해 첫시간입니다.
저는 가끔 천국을 올라가는 계단은 66개로 되어 있지 않나하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이 신구약 66권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을 한권씩 한권씩 연구하면 한계단씩 한계단씩 올라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예수를 믿고 살지만 겨우 한두권의 성경에 대해서만 좀 듣다가 하나님나라로 직행하는 사람이 있어요. 66개의 계단이 있는데 다 올라가 보지 못하고 제일 밑에 있는 한두개의 계단만 올라가 보다가 하늘나라에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먼저 들어가니까 좋기는 좋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값지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는데 이왕 이 성경을 손에 들었으면 한계단씩 한계단씩 밟아 올라가서 천국문에 이를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을 안하세요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한권씩 들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은혜를 나누었던 성경은 로마서 한권 밖에 없습니다. 이제 두권째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벽시간에는 요한복음강해를 합니다만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간단간단하게 살펴 보는 것이라 아쉬움이 많고 본격적인 강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66계단 중에서 두계단을 올라서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내가 성경 66권을 다 배울 때까지 나를 부르지 마십시요! 66계단을 다 올라가 본 다음에 하나님께 설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것을 다 강해하려면 한 100년 걸리지 않을까. 로마서를 강해한 속도대로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부 그렇게 세밀하게 살필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한달 만에 다 마칠 수도 있으니까 잘 하면 한 10여년에 마칠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사랑의 강단에서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 잠시도 끊어지지 않고 샘처럼 솟아 넘쳐서 빠른시간 안에 66권의 성경을 다 함께 나누고 그 속에 담겨진 진리를 캐내어 우리의 믿음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계속해서 주일낮,저녁,수요일 저녁 중에서 한번은 가능하면 강해설교를 할려고 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시간과 노력.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부족한 종을 위해서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게 힘을 주고 격려가 되는 것은 빠지지 말고, 열심히 참석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열심히 참석하여 경청할 때에 저는 더 부지런히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준비하여 여러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바울이 쓴 성경 중에서도 꿀물처럼 정감이 뚝뚝 떨어지는 성경 중에 하납니다. 말이 부드럽고 인정미가 넘치고요, 누구나 다 알기 쉽게 쉬운 말로 편지를 썼습니다.
또 복잡한 어떤 이야기를 포함시키지를 않았습니다.
또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제일 젊었을 때 쓴 편집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이 제일 처음 쓴 서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데살로니가 전서는 그 나름대로 맛이있고, 깊이가있고,특징이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이 성경이 품고 있는 맛이나 깊이를 어느 정도 여러분에게 나타내서 맛을 보게할런지는 알수 있을지는 모르지만,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서 계속 찾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우리가 읽으면서 금방 느낄수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참 좋은교회구나 누구나 가지게 되는 첫인상입니다.
그래서 제가 첫시간 제목을 좋은교회라고 붙여 버렸습니다.
요즈음처럼 교회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는 좋은교회가 지니는 중요성은 얼마나 큰가하는 것은 제가 자주 강단에서 말씀을 드리고 또 여러분이 수십번 반복해서 들어도 결코 지나치다고 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실입니다.
교회가 많아질수록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렇습니다.
좋은교회의 가치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할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건이 되고, 영적으로 승리할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지어 주는 필수적인 요건이 됩니다. 교회가 좋지 못하면 내 신앙 바로 끌어가기가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우리는 각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교회는 좋은 교회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물어보았을 때, 우리 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조건 중에 가장 큰 조건을 하나 얻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꼭같이 말씀을 읽으면서 질문했습니다. 내가 속한 좋은 교회인가
데살로니가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완전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뭐 결점이 없고, 약점도 없고 어떤 문제도 없는 교회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완벽한 교회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교회는 완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은 절대로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처음부터 절대로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상교회는 전혀 완벽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함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결점이 있어도 좋은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결점이 있기 때문에 좋은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상 교회가 결점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교회 나쁜교회는 무엇으로 평가할수 있느냐 양면으로 다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평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결점이 어떤 종류의 결점이냐를 놓고 좋은교회냐, 나쁜교회냐를 분별 할 수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결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결점의 종류가 아주 사소한 지엽적인 결점이었습니다. 이런의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결점이라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고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다가 그 것이 지나쳐 가지고 일상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게으름을 피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가장 주된 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깊이 들어 가면서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되겠습니다만,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다가 고대하다가 너무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그만 세상 일을 등한히 하고 세상에 대해서 별 흥미가 끌리지를 않아서 적당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으름, 이 게으름을 가진 사람이 몇명이 있는 교회라고 합시다. 그리고 그 외에는 문제가 별로 없는 교회라고 합시다. 아,그런교회라면, 우리 사랑의 교회가 그 정도의 교회라고 하면 저는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수없이 감사하다고 그 정도의 결점은 결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고린도교회는 파쟁이나 무질서 때문에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갈라디아 교회는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이단을 용납해서 복음 아닌 것을 따라가는 무서운 과오를 범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심각한 결점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깊이 잠이 들어 버린 교회였습니다.
교회마다 결점을 가질 수 있지만,어떤 교회는 극히 미미하고 가벼운 결점을 가질수 있고, 어떤 교회는 심각해서 중증환자와 같은 결점을 갖고 있는 이런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부를 수 있고, 라오디게아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 같은 교회는 좀 질이 않좋은 교회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함께 반성해 봅시다.
우리교회의 결점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사랑의 교회의 결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히 몇가지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결점하나하나가 심각한 것인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만한 결점인지 여러분이 한번 검토해 보세요.
만약에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만한 결점만 가진 교회라면 우리는 이 교회에 소속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처럼 고린도 교회처럼 ,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이건 뭐 수술하지 아니하면 안될 정도의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인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굵은 베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않던지, 아니면 성경적으로 다른 길을 찾아서 우리가 교회의 모든 나쁜 것을 청소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저나 여러분들 마음 속에 정말로 주님이 우려 하는 심각한 무엇이 있는지 깨닫게 해 주시도록 우리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기 기도해야 할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에게 좋은 교회를 주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잊어버리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롤 성장할수 있었던 이유를 외적인 이유와 내적인 이유로 갈라서 한번 생각을 할려고 합니다.
우선 먼저 외적인 이유를 한번 찾아 보십시다.
그것은 바울이 그 교회를 개척할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어느정도 우리가 대충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한 기록은 사도행전 17장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도시는 약 인구 20만 내외 되는 큰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신약에 기록된 도시 중에서 오늘날 20세기까지 남아 있는 도시 중에 하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에 찾아가시면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사역자였던 디모데와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동안 전도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도한 장소는 유대인의 회당을 빌려서 했습니다. 또 그들이 전도할 동안 필요한 모든 재정적인 부담은 2:9절에 보면 바울이 손수 밤낮으로 일해 가면서 충족 시켰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4:17절 보면 빌립보 교회에서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에서 전도한 것은 3주간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동안 전도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저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할 당시 3주간 동안 회당에서 가르쳤다고 했느니까 저는 3주간을 일단 놓고 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바울이 한일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강론한 것입입니다.
그 교회가 좋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개척 당시의 요인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하면 바울이 전도를 할 때에 성경말씀을 강론하고 성경말씀을 가지고 특별히 뜻을 풀어서 가르쳤다고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행 17:2-3절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고 뜻을 풀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해를 받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야할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전한다.하는 말들이 나오죠. 이 말들이 참 의미가 있는 말들인데, 특별히 여기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전도에 있어서 유달리 무게를 두고 있었던 전도 방법 중의 하나가 일종의 강론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강론한다는 것을 요즈음 말하는 귀납법적 성경공부하고 같은 것으로 봅니다. 일종의 토의 형식이지요!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주고 받으면서 말씀을 하나하나 검토해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것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바울이 처음부터 농도 깊게 말씀을 들고 들어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귀납법적인 성경공부 형식을 통해서 회당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좀더 실감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질의 토의를 하는 것으로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에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힘있게 설교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토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토의하다가 나중에 복음문제에 가서는 바울이 힘을 주어서 능력있게 말씀을 전파하므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볼 때에 강론한다.는 소위 토의형식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만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는 방법 중의 하납니다.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이 토의 형식은 상당히 그 효과가 큰 것을 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이 전도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행전 17:4절에 보면 경건한 헬라인,귀부인.들의 적지 아니한 무리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좋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끌어 들일수 있는 이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말씀을 전한 어떤 방법론과 상당히 연관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울의 좋은 교회를 만드는 방법이 목회자인 저에게 잘 맞고,또 성도들이 이런 방법을 통해서 잘 훈련 받으며 성과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전파하는 교회,가르치는 교회-둘인데, 흔히 우리 주변에 많은 교회들처럼 전파하는 것으로 일관하는-즉 설교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교회로 머물지 않고,그것과 병해해서 강론하는-소그룹의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밀하게 풀어가되 함께 질문하고 또 대답하고 함께 생각하면서 풀어갈수 있는 이런 방법을 계속 추구해 갈려고 합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굉장한 역사를 일으겼지만, 우리 사랑의 교회에도 큰 일을 나타낼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바로만 다루면 누구에게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보세요. 데살로니가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어떻게 받았다고 했나요 살전 2:13절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한다.
저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바울이 말씀을 다룬 방법과 이와같은 결과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다룰 때에 다루는 방법에 따라서 그 말씀에 역사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열심만을 냈습니다. 효과가 있든지 없든지 자꾸 앞에서 혼자 외치느라고 지쳐버린 목회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가장 성공할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강론한다하는 소위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말씀을 다루되, 무조건 일방적으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수 있도록 말씀에 끌어들인 이 방법이 가장 큰 역활을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질이 좋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회였다.
그것은 경건한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개척 멤버가 되었다고 말한데서 볼수 있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은-그리이스 사람들로서 종교적으로 아주 깨끗한 도덕적인 수준을 유지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다시에는 로마나 헬라 지역의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말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좀 생을 의미있게 살아 보려고 하고, 바르게 살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로마문화가 주는 종교,로마 문화가 주는 철학, 또 그리스 문화,철학,종교 그 어디에서도 만족을 얻을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세속적이요,너무나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어딘가에 참 진리가 있을 것이다.하고는 몹시 방황하며 찾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신분은 유대인이 아니고 헬라인이었지만, 삶에 대한 어떤 의미를 찾고 삶에 대한 어떤 보람을 찾는 면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을 통해서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그 하나님을 믿을려고 회당에 나오던 사람들을 일컬어서 경건한 헬라인이라고 말합니다.보통 수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적으로 얼마나 높은지 모르겠어요. 재산이 얼마나 많고,신분이 얼마나 높은지 그것은 모릅니다마는 벌써 마음의 자세,생각의 방향이 보통사람 하고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의미에서 그들은 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귀부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볼 때에 상류층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이 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면, 비록 인격적인 대우는 크게 받지 못했다고, 상당히 많이 배우고,거기에 맞는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교양과 그런 지식도 있었겠습니다마는 제가 이들을 질이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땀내 나고, 덥고 어색한 회당에 와서 그래도 무엇인가 들어보겠다고 들어 보는 사람이면, 일반 귀부인들하고 같습니까
보통의 귀부인들은, 사치스럽고,적당히 즐기며, 남에게 자기 과시를 하면서 살려고 하지 무엇인가 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 보겠다고 회당문 앞에 와서 서성 거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개척 멤버에 들어간 이 귀부인들은 신분은 귀족이었지만, 그들의 내적인 갈증은 너무나 수준이 높았습니다. 무엇인가 참된 것을 추구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이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무엇인가 좀더 높은 차원의 것을 얻을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귀부인일수록 신분이 높을수록 종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귀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전할려고 찾아 나왔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저는 이들을 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보더라도 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을 할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예수 믿은 사람들처럼 아주 낮은 처지에서 노예 생활이나, 배우지도 못하고 일을 하던 사람들에 비해서 아무래도 고린도교회의 개척 멤버들은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수 있었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이점에 대해서 여러분 오해를 하지 마세요.
우리는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배우고,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주도를 하는 교회는 교양도 갖추지 못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뒤떨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주도하는 교회하고는 좀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아무 유익도 없는 문제를 안고 너무 많이 출혈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질적으로 계속해서 타락하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 날까 신앙이 없어서 그런가요 천만에요.
왜 교회가 질이 떨어집니까
왜 교회가 안타까울 정도로 사소한 문제들,또 세상 사람들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괴로워 하고 있습니까
이유는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활을 해야할 대부분의 사람 됨됨이 몹시 질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척을 하고 몇년 동안의 성도들이 인격적으로나 교양면에서 또, 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 하는 것은 그 교회가 앞으로 좋은 교회냐 나쁜 교회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척하는 교회가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준이 있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이유는 무슨 사례비를 많이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편하게 목회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열망 때문입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좋은 교회의 절대조건입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만, 신앙이 문제가 아니에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신앙은 키워주면 됩니다. 얼마든지 자랄 수가 있어요.
시간과 함께 영적으로 성장할려면 얼마든지 할수 있어요.
그러나 보세요. 성격이 이상하다든지, 인품이 정상을 벗어 난다든지, 교양이 전혀 없다든지,너무나 인간의 바탕이 안닦여있다든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른다든지 이거는 신앙가지고도 해결을 못해요!
여러분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 보세요 내가 신앙은 좋아진다.
그런데 내 이상한 성격이 변합니까
성경은 많이 알고, 여러 모양으로 많이 변하는 것 같은데, 교양없는 그 태도가 변하는 것 보셨어요
놀랍게도 인간됨됨에서 나타나는 약점, 질적으로 수준이 낮음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신앙으로도 못고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게 되고 어떤 회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문제를 안고 허덕이는 교회들을 보세요. 예수를 수십년 믿었다는 사람들이 수십년 그 교회에 앉아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보세요. 그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변한 것이 없어요. 그대로예요.
그러므로 좋은 교회를 만드는 데는 수준 높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은 절대 요건입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이야기할 때,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은 늘 과소평가하기 쉬운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사랑의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비록 중생 받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 됨됨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 오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인간 됨됨이가 나쁜 사람이 들어 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이 들어 와서 그 교회의 리더쉽을 형성하고, 그 교회의 분위기를 형성 할 때,아무리 나쁜 사람이 들어와도 그 속에서 새로워질 수가 있지요.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은 중생 받고 새로워지면, 고린도교인들 보다는 나은 데살로니가 교인과 같은 사람들이 됩니다.
영적으로 그 사람이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인품도 좀 갖추고, 성격도 좋고, 세상적으로 보아서 그래도 가질 것은 가져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도 할수 있고,리드도 할수 있고,이해도 할수 있고, 양보할 때는 할수도 있고,이런 좀 그래도 사람이 보아서 갖추어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면 됩니다.
나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하지 마세요.
그래서 목사는 두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의 복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사람 복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개떡 같이 생겼어도 사람 복이 있어서,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계속 만나게 하시고, 모이게 하시고 하면 그 목사는 속된 말로 땡잡았다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좋은교회를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생을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데 왜 나쁜 교회에서 몇몇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고, 찌들려서 신앙생활을 합니까 좋은교회를 찾을 권리가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좋은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좋은교회를 찾아 가세요. 좋은교회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여자의 팔자가 남자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 되는 것처럼, 신자는 좋은교회와 좋은교역자를 잘 만나느냐 못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교회를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고, 쓴뿌리가 될 만한 사람들이 들어 올 때는 하나님이 막아 주시기를 바라고요, 혹 들어 온다하더라도 은혜의 풀무불에 녹아지고 변화되어서 다시는 그런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재창조 해 주시든지 하여튼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나쁜 사람들에게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과 우리의 신앙생활의 건강과 보람을 위해서라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한 교회,좋은 사람들이 키워가는 교회기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늘 기도하고, 생각 날 때마다 저와 우리 사랑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 천국을 올라가는 계단은 66개로 되어 있지 않나하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이 신구약 66권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을 한권씩 한권씩 연구하면 한계단씩 한계단씩 올라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예수를 믿고 살지만 겨우 한두권의 성경에 대해서만 좀 듣다가 하나님나라로 직행하는 사람이 있어요. 66개의 계단이 있는데 다 올라가 보지 못하고 제일 밑에 있는 한두개의 계단만 올라가 보다가 하늘나라에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먼저 들어가니까 좋기는 좋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값지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는데 이왕 이 성경을 손에 들었으면 한계단씩 한계단씩 밟아 올라가서 천국문에 이를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을 안하세요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한권씩 들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은혜를 나누었던 성경은 로마서 한권 밖에 없습니다. 이제 두권째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벽시간에는 요한복음강해를 합니다만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간단간단하게 살펴 보는 것이라 아쉬움이 많고 본격적인 강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66계단 중에서 두계단을 올라서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내가 성경 66권을 다 배울 때까지 나를 부르지 마십시요! 66계단을 다 올라가 본 다음에 하나님께 설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것을 다 강해하려면 한 100년 걸리지 않을까. 로마서를 강해한 속도대로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부 그렇게 세밀하게 살필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한달 만에 다 마칠 수도 있으니까 잘 하면 한 10여년에 마칠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사랑의 강단에서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 잠시도 끊어지지 않고 샘처럼 솟아 넘쳐서 빠른시간 안에 66권의 성경을 다 함께 나누고 그 속에 담겨진 진리를 캐내어 우리의 믿음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계속해서 주일낮,저녁,수요일 저녁 중에서 한번은 가능하면 강해설교를 할려고 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시간과 노력.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부족한 종을 위해서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게 힘을 주고 격려가 되는 것은 빠지지 말고, 열심히 참석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열심히 참석하여 경청할 때에 저는 더 부지런히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준비하여 여러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바울이 쓴 성경 중에서도 꿀물처럼 정감이 뚝뚝 떨어지는 성경 중에 하납니다. 말이 부드럽고 인정미가 넘치고요, 누구나 다 알기 쉽게 쉬운 말로 편지를 썼습니다.
또 복잡한 어떤 이야기를 포함시키지를 않았습니다.
또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제일 젊었을 때 쓴 편집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이 제일 처음 쓴 서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데살로니가 전서는 그 나름대로 맛이있고, 깊이가있고,특징이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이 성경이 품고 있는 맛이나 깊이를 어느 정도 여러분에게 나타내서 맛을 보게할런지는 알수 있을지는 모르지만,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서 계속 찾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우리가 읽으면서 금방 느낄수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참 좋은교회구나 누구나 가지게 되는 첫인상입니다.
그래서 제가 첫시간 제목을 좋은교회라고 붙여 버렸습니다.
요즈음처럼 교회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는 좋은교회가 지니는 중요성은 얼마나 큰가하는 것은 제가 자주 강단에서 말씀을 드리고 또 여러분이 수십번 반복해서 들어도 결코 지나치다고 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실입니다.
교회가 많아질수록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렇습니다.
좋은교회의 가치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할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건이 되고, 영적으로 승리할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지어 주는 필수적인 요건이 됩니다. 교회가 좋지 못하면 내 신앙 바로 끌어가기가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우리는 각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교회는 좋은 교회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물어보았을 때, 우리 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조건 중에 가장 큰 조건을 하나 얻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꼭같이 말씀을 읽으면서 질문했습니다. 내가 속한 좋은 교회인가
데살로니가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완전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뭐 결점이 없고, 약점도 없고 어떤 문제도 없는 교회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완벽한 교회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교회는 완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은 절대로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처음부터 절대로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상교회는 전혀 완벽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함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결점이 있어도 좋은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결점이 있기 때문에 좋은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상 교회가 결점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교회 나쁜교회는 무엇으로 평가할수 있느냐 양면으로 다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평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결점이 어떤 종류의 결점이냐를 놓고 좋은교회냐, 나쁜교회냐를 분별 할 수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결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결점의 종류가 아주 사소한 지엽적인 결점이었습니다. 이런의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결점이라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고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다가 그 것이 지나쳐 가지고 일상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게으름을 피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가장 주된 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깊이 들어 가면서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되겠습니다만,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다가 고대하다가 너무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그만 세상 일을 등한히 하고 세상에 대해서 별 흥미가 끌리지를 않아서 적당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으름, 이 게으름을 가진 사람이 몇명이 있는 교회라고 합시다. 그리고 그 외에는 문제가 별로 없는 교회라고 합시다. 아,그런교회라면, 우리 사랑의 교회가 그 정도의 교회라고 하면 저는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수없이 감사하다고 그 정도의 결점은 결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고린도교회는 파쟁이나 무질서 때문에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갈라디아 교회는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이단을 용납해서 복음 아닌 것을 따라가는 무서운 과오를 범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심각한 결점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깊이 잠이 들어 버린 교회였습니다.
교회마다 결점을 가질 수 있지만,어떤 교회는 극히 미미하고 가벼운 결점을 가질수 있고, 어떤 교회는 심각해서 중증환자와 같은 결점을 갖고 있는 이런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부를 수 있고, 라오디게아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 같은 교회는 좀 질이 않좋은 교회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함께 반성해 봅시다.
우리교회의 결점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사랑의 교회의 결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히 몇가지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결점하나하나가 심각한 것인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만한 결점인지 여러분이 한번 검토해 보세요.
만약에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만한 결점만 가진 교회라면 우리는 이 교회에 소속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처럼 고린도 교회처럼 ,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이건 뭐 수술하지 아니하면 안될 정도의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인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굵은 베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않던지, 아니면 성경적으로 다른 길을 찾아서 우리가 교회의 모든 나쁜 것을 청소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저나 여러분들 마음 속에 정말로 주님이 우려 하는 심각한 무엇이 있는지 깨닫게 해 주시도록 우리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기 기도해야 할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에게 좋은 교회를 주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잊어버리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롤 성장할수 있었던 이유를 외적인 이유와 내적인 이유로 갈라서 한번 생각을 할려고 합니다.
우선 먼저 외적인 이유를 한번 찾아 보십시다.
그것은 바울이 그 교회를 개척할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어느정도 우리가 대충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한 기록은 사도행전 17장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도시는 약 인구 20만 내외 되는 큰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신약에 기록된 도시 중에서 오늘날 20세기까지 남아 있는 도시 중에 하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에 찾아가시면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사역자였던 디모데와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동안 전도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도한 장소는 유대인의 회당을 빌려서 했습니다. 또 그들이 전도할 동안 필요한 모든 재정적인 부담은 2:9절에 보면 바울이 손수 밤낮으로 일해 가면서 충족 시켰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4:17절 보면 빌립보 교회에서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에서 전도한 것은 3주간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동안 전도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저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할 당시 3주간 동안 회당에서 가르쳤다고 했느니까 저는 3주간을 일단 놓고 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바울이 한일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강론한 것입입니다.
그 교회가 좋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개척 당시의 요인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하면 바울이 전도를 할 때에 성경말씀을 강론하고 성경말씀을 가지고 특별히 뜻을 풀어서 가르쳤다고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행 17:2-3절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고 뜻을 풀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해를 받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야할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전한다.하는 말들이 나오죠. 이 말들이 참 의미가 있는 말들인데, 특별히 여기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전도에 있어서 유달리 무게를 두고 있었던 전도 방법 중의 하나가 일종의 강론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강론한다는 것을 요즈음 말하는 귀납법적 성경공부하고 같은 것으로 봅니다. 일종의 토의 형식이지요!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주고 받으면서 말씀을 하나하나 검토해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것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바울이 처음부터 농도 깊게 말씀을 들고 들어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귀납법적인 성경공부 형식을 통해서 회당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좀더 실감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질의 토의를 하는 것으로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에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힘있게 설교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토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토의하다가 나중에 복음문제에 가서는 바울이 힘을 주어서 능력있게 말씀을 전파하므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볼 때에 강론한다.는 소위 토의형식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만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는 방법 중의 하납니다.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이 토의 형식은 상당히 그 효과가 큰 것을 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이 전도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행전 17:4절에 보면 경건한 헬라인,귀부인.들의 적지 아니한 무리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좋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끌어 들일수 있는 이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말씀을 전한 어떤 방법론과 상당히 연관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울의 좋은 교회를 만드는 방법이 목회자인 저에게 잘 맞고,또 성도들이 이런 방법을 통해서 잘 훈련 받으며 성과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전파하는 교회,가르치는 교회-둘인데, 흔히 우리 주변에 많은 교회들처럼 전파하는 것으로 일관하는-즉 설교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교회로 머물지 않고,그것과 병해해서 강론하는-소그룹의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밀하게 풀어가되 함께 질문하고 또 대답하고 함께 생각하면서 풀어갈수 있는 이런 방법을 계속 추구해 갈려고 합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굉장한 역사를 일으겼지만, 우리 사랑의 교회에도 큰 일을 나타낼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바로만 다루면 누구에게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보세요. 데살로니가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어떻게 받았다고 했나요 살전 2:13절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한다.
저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바울이 말씀을 다룬 방법과 이와같은 결과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다룰 때에 다루는 방법에 따라서 그 말씀에 역사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열심만을 냈습니다. 효과가 있든지 없든지 자꾸 앞에서 혼자 외치느라고 지쳐버린 목회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가장 성공할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강론한다하는 소위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말씀을 다루되, 무조건 일방적으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수 있도록 말씀에 끌어들인 이 방법이 가장 큰 역활을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질이 좋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회였다.
그것은 경건한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개척 멤버가 되었다고 말한데서 볼수 있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은-그리이스 사람들로서 종교적으로 아주 깨끗한 도덕적인 수준을 유지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다시에는 로마나 헬라 지역의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말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좀 생을 의미있게 살아 보려고 하고, 바르게 살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로마문화가 주는 종교,로마 문화가 주는 철학, 또 그리스 문화,철학,종교 그 어디에서도 만족을 얻을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세속적이요,너무나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어딘가에 참 진리가 있을 것이다.하고는 몹시 방황하며 찾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신분은 유대인이 아니고 헬라인이었지만, 삶에 대한 어떤 의미를 찾고 삶에 대한 어떤 보람을 찾는 면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을 통해서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그 하나님을 믿을려고 회당에 나오던 사람들을 일컬어서 경건한 헬라인이라고 말합니다.보통 수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적으로 얼마나 높은지 모르겠어요. 재산이 얼마나 많고,신분이 얼마나 높은지 그것은 모릅니다마는 벌써 마음의 자세,생각의 방향이 보통사람 하고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의미에서 그들은 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귀부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볼 때에 상류층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이 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면, 비록 인격적인 대우는 크게 받지 못했다고, 상당히 많이 배우고,거기에 맞는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교양과 그런 지식도 있었겠습니다마는 제가 이들을 질이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땀내 나고, 덥고 어색한 회당에 와서 그래도 무엇인가 들어보겠다고 들어 보는 사람이면, 일반 귀부인들하고 같습니까
보통의 귀부인들은, 사치스럽고,적당히 즐기며, 남에게 자기 과시를 하면서 살려고 하지 무엇인가 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 보겠다고 회당문 앞에 와서 서성 거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개척 멤버에 들어간 이 귀부인들은 신분은 귀족이었지만, 그들의 내적인 갈증은 너무나 수준이 높았습니다. 무엇인가 참된 것을 추구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이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무엇인가 좀더 높은 차원의 것을 얻을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귀부인일수록 신분이 높을수록 종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귀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전할려고 찾아 나왔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저는 이들을 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보더라도 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을 할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예수 믿은 사람들처럼 아주 낮은 처지에서 노예 생활이나, 배우지도 못하고 일을 하던 사람들에 비해서 아무래도 고린도교회의 개척 멤버들은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수 있었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이점에 대해서 여러분 오해를 하지 마세요.
우리는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배우고,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주도를 하는 교회는 교양도 갖추지 못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뒤떨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주도하는 교회하고는 좀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아무 유익도 없는 문제를 안고 너무 많이 출혈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질적으로 계속해서 타락하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 날까 신앙이 없어서 그런가요 천만에요.
왜 교회가 질이 떨어집니까
왜 교회가 안타까울 정도로 사소한 문제들,또 세상 사람들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괴로워 하고 있습니까
이유는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활을 해야할 대부분의 사람 됨됨이 몹시 질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척을 하고 몇년 동안의 성도들이 인격적으로나 교양면에서 또, 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 하는 것은 그 교회가 앞으로 좋은 교회냐 나쁜 교회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척하는 교회가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준이 있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이유는 무슨 사례비를 많이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편하게 목회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열망 때문입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좋은 교회의 절대조건입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만, 신앙이 문제가 아니에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신앙은 키워주면 됩니다. 얼마든지 자랄 수가 있어요.
시간과 함께 영적으로 성장할려면 얼마든지 할수 있어요.
그러나 보세요. 성격이 이상하다든지, 인품이 정상을 벗어 난다든지, 교양이 전혀 없다든지,너무나 인간의 바탕이 안닦여있다든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른다든지 이거는 신앙가지고도 해결을 못해요!
여러분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 보세요 내가 신앙은 좋아진다.
그런데 내 이상한 성격이 변합니까
성경은 많이 알고, 여러 모양으로 많이 변하는 것 같은데, 교양없는 그 태도가 변하는 것 보셨어요
놀랍게도 인간됨됨에서 나타나는 약점, 질적으로 수준이 낮음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신앙으로도 못고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게 되고 어떤 회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문제를 안고 허덕이는 교회들을 보세요. 예수를 수십년 믿었다는 사람들이 수십년 그 교회에 앉아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보세요. 그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변한 것이 없어요. 그대로예요.
그러므로 좋은 교회를 만드는 데는 수준 높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은 절대 요건입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이야기할 때,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은 늘 과소평가하기 쉬운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사랑의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비록 중생 받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 됨됨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 오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인간 됨됨이가 나쁜 사람이 들어 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이 들어 와서 그 교회의 리더쉽을 형성하고, 그 교회의 분위기를 형성 할 때,아무리 나쁜 사람이 들어와도 그 속에서 새로워질 수가 있지요.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은 중생 받고 새로워지면, 고린도교인들 보다는 나은 데살로니가 교인과 같은 사람들이 됩니다.
영적으로 그 사람이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인품도 좀 갖추고, 성격도 좋고, 세상적으로 보아서 그래도 가질 것은 가져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도 할수 있고,리드도 할수 있고,이해도 할수 있고, 양보할 때는 할수도 있고,이런 좀 그래도 사람이 보아서 갖추어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면 됩니다.
나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하지 마세요.
그래서 목사는 두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의 복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사람 복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개떡 같이 생겼어도 사람 복이 있어서,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계속 만나게 하시고, 모이게 하시고 하면 그 목사는 속된 말로 땡잡았다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좋은교회를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생을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데 왜 나쁜 교회에서 몇몇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고, 찌들려서 신앙생활을 합니까 좋은교회를 찾을 권리가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좋은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좋은교회를 찾아 가세요. 좋은교회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여자의 팔자가 남자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 되는 것처럼, 신자는 좋은교회와 좋은교역자를 잘 만나느냐 못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교회를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고, 쓴뿌리가 될 만한 사람들이 들어 올 때는 하나님이 막아 주시기를 바라고요, 혹 들어 온다하더라도 은혜의 풀무불에 녹아지고 변화되어서 다시는 그런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재창조 해 주시든지 하여튼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나쁜 사람들에게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과 우리의 신앙생활의 건강과 보람을 위해서라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한 교회,좋은 사람들이 키워가는 교회기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늘 기도하고, 생각 날 때마다 저와 우리 사랑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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