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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왕하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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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의 최대의 국민적 관심은 새 정부가 이끌고 있는 개혁작업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개혁을 통해 30년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은 그 부패의 규모에 대해 경악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사실 이것은 아직 곁가지 몇에 지나지 않고 그 둥치나 그 뿌리는 아직도 드러나고 있지도 않은 정도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국민들의 기대는 이 개혁이 철저히 지속되어서 그 뿌리까지 부정의 고리들이 드러나 끊어지고 전혀 새로운 나무를 심듯이 이 나라의 기초가 새롭게 심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희망이며 아마 새 정부의 구호에 비추어 볼 때 개혁의 목표도 거기에까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개혁이 거기에까지 미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이 과연 어떻게 해야지 거기까지의 개혁이 가능하며 이런 차원에서 우리 신앙인으로서는 이 시대적 과제에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을 이제 차분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앞에 놓여진 이 과제에 대한 성서의 교훈을 한번 새겨보고 거기에서 개혁의 성서적 원칙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정치적이 사안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은 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서는 이런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도 영적인 일에 못지 않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김영삼 대통령에 의한 개혁과 같은 개혁작업이 이스라엘 역사속에서도 있었습니다.
그 한번은 히스기야 라고 하는 왕에 의해 추진되었고 다른 한번은 요시아란 왕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보면 이상하게도 이 때의 이스라엘의 개혁과 오늘 우리 나라의 개혁사이에는 어떤 비교할 점이 없지않아 보입니다. 이들의 개혁이 추진된 것은 한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두 나라중에 하나가 망한 사건에 자극을 받고 시작이 됩니다.
조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울왕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나라는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가 견고히 섰지만 솔로몬왕의 무리한 경제개발 위주의 통치때문에 솔로몬왕이 죽고난후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분단된 남북 이스라엘마저도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왕국에 의해 나라가 세워진지 불과 200여년만에 멸망해 버립니다. 이제 남은 나라로서 남쪽에 세워진 유다가 겨우 이스라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나라마저도 극심한 위기와 불안정속에서 처해 있었습니다.
다윗왕이 확보해 놓았던 영토도 많이 잃어버리고 솔로몬의 무역정책으로 성장했던 경제도 어려워지고 멸망해 버린 북쪽 이스라엘에서부터 난민은 계속 넘어오고 민심은 말할 수 없이 흉흉해져갔습니다. 나라가 이처럼 위기와 불안정속에 들어간 원인은 국제적 정세와 국내적 요인 여러가지가 있었겠으나 역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왕들의 거듭된 실책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비롯하여 계속된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여로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웃시야, 요담, 아하스로 이어지는 통치자들은 여호사밧, 웃시야등 극히 소수의 왕들만이 국가를 안정시켰을 뿐 대부분의 왕들은 살해, 모사 등으로 왕위를 찬탈하는 등 권력투쟁만을 일삼고 집권하면 호화생활을 하는 등 국가경영이나 민생문제는 뒷전으로 하여 사회는 극히 불안장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세워진 나라를 왕들이 마음대로 국가이념을 바꾸어 이방종교를 끌어들이고 이방신당을 세우고 이방신을 섬기는등 통치철학자체가 흔들리고 이러한 틈을 타서 귀족들은 부를 축적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부패는 정신적 부패를 늘 같이 갖고 오는데 공직자 재산공개이후에 언젠가 김대통령이 재산을 공개한 사람에게서 참회하는 빛을 본적이 없다고 하면서도덕적 불감증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스라엘 나라의 당시에는 도덕적 불감증 정도가 아닌 신앙적 불감증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입니까
이스라엘 나라 자체는 신앙이고 신앙 자체가 이스라엘 나라라고 할 만큼 신앙과 이스라엘 나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회는 이 신앙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시 예배 등 종교행사는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행사는 다 형식에 지나지 않을 뿐 일상의 삶은 뇌물과 부패와 불의로 가득찼습니다.
이것은 동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 미가나 이사야의 설교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들은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너희는.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예언자 미가도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당시에도 교회는 신자들로 가득찼고 성가대의 찬양소리도 우렁찼고 제단에는 신자들이 잡아바치는 제물과 기름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제물이 부담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제물들을 걷어치우고 오히려 억압받는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 변호하고 정의를 행하고 사랑을 행하고 하나님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 제사보다 더 우선해야 할 일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착취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들을 억압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난하고 억압받고 있는데 우리만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은 부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토록 국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을 때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개혁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개혁정책은 두가지 면에 촛점이 맡추어졌는데 이 기회를 이용하여 앗수르로부터 자주독립을 하는 것이고 둘 째는 종교개혁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갖 이방종교의 우상들을 철거하고 모든 다른 예배처소들을 폐하고 예루살렘성전으로만 예배를 일원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에는 물론 민족을 외세로부터 구원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개혁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너무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일원화하는 것도 예루살렘 성전이 곧 왕권도 상징했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는 마치 과거에 박대통령이 충무공정신을 강조할 때 국민이 자기에게도 충성하기를 기대하면서 한 것처럼 자기의 왕권도 강화하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 솔로몬시대에 예루살렘성전은 곧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여기에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러모로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개혁을 꽃피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왕위는 그의 후계자 므낫세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므낫세는 가장 무력한 왕으로 기록될 만큼 그는 계속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저 자기 왕위만을 보호하며 즉위를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히스기야에 의해 겉으로나마 고개를 들었던 민족자주의식은 물에 물을 탄 듯한 므낫세에 의해 원위치 하여 버렸습니다.
이러던 중 민족주의자 요시아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이 민족주의자 요시아의 등극과 함께 이스라엘은 요시아를 축으로 하여 민족운동을 펼치고 개혁작업을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는 다윗이 확보한 영토를 다 탈환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영토를 확보하고 국민정신개조를 하기 위해 종교개혁에 착수를 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도 처음에는 히스기야처럼 이방종교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부패를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히스기야는 그것을 자기의 정치적 목적으로 했고 요시아는 민족주의적 사관에 입각하여 했었고 또 훨씬 더 철저하게 전개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 부패를 들추어내고 추방하는 일만으로는 개혁이 계속 추진되어 나가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이나 오늘에나 사람들은 정치적 위기로 불안에 처하면 흔히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이런 분위기를 당시 수구세력들이 조성하며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요시아에게는 하나의 행운과 같은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신상을 몰아내고 개축을 하던중 한 두루마리를 성전바닥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학자들은 바로 이것이 오늘의 신명기라고 보고 있는데 이 책의 발견을 통해 그동안 진행해 오던 개혁이 그저 정치적 프로그램이었다면 이제는 개혁의 정신적 신앙적 근거가 확립되게 된 셈인 것입니다. 이 책을 발견함으로써 요시야의 개혁은 더욱 힘을 얻고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개혁을 겉으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속으로부터의 개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이방신상을 제거하고 모든 이스라엘 예배를 예루살렘성전으로 중앙화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발견된 책은 이 신앙적 개혁을 훨씬 더 영적인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만 여기 발견된 책 신명기는 여화와의 거하실 곳,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단순히 예루살렘성전이 아니고 이스라엘초기에 하나님이 주셨던 것이 언약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 의미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성전이란 장소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약을 마음에 새기고 실행하는 곳이란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결국 개혁은 형식의 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개혁에서 완성되며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따라 정의를 세우고 사랑을 일구고 하나님앞에 겸손하게 되는 바로 그 삶의 개혁에서 완성되며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위대한 개혁의 정신적 토대를 발견한 후 요시야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 즉 각료들을 모으고 보든 백성과 주민, 제사장들과 예언자, 어른에서 아이에 이르기까지 성전에 모인가운데 이 개혁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신명기를 듣는 장면입니다.
요시야는 국민전체가 이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지속적인 개혁이 불가능함을 알고 각료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모아놓고 이 말씀을 읽어주라고 한 뒤에 자기는 성전기둥곁에 서서 온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하나님앞에서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오늘 한국의 현대사와도 이상하게 많은 유사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개혁은 온 국민이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진실에로 복귀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음을 알고 여기에 동참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깊은 뜻을 모든 국민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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