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같은 교회 (고전4:14-21)
본문
바울은 지역교회를 하나의 가족에 비유하였었습니다.(3:1-4) 그러나 이제 바울은 '영적 아버지'로서의 사역자의 역활을 강조합니다. 본문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바울은 자신을 아버지라 칭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마23:8-12 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인 랍비라 선생이라 아비라 하지말라는 말씀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영적인 아비라 비유함으로서 자신이 고린 도 교회를 위해 행했던 중요 사역들을 상기시킵니다.
1.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족의 터를 닦았습니다.(14-15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 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기쁨을 누린다면 우리도 사람의 영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모가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해 어떤 특별하 권위가 주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고후1:24) 다만 하나님께서 그 어린 성도를 장성 시킬 때 이용하실 수 있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뿐입니다. 지역 교회 역시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로 태어난 성도들을 양육 할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가정인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을 회심시켜 믿게한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인들의 영적인 출생은 오직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으로 통해 서만이 거듭나는 것입니다.(벧전1:23-25/요3:6) 바울은 곁에서 출생을 도 운 아버지일 뿐인 것입니다.
한 아이에게 많은 지도자와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사람 뿐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생기기 까지 바울의 헌신적인 사역의 열 매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터를 닦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 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적 아버 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14절과 15절에 서 .오작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비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의 권면과 책망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바울은 고린도 교회 기족의 모범이었습니다.(16-17절) 자녀는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그들의 부모를 닮습니다. 한 연구 보고 서에 의하면 십대의 청소년들은 친구들로부터가 아니라 가정에서 음주를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 녀는 부모로 부터 본을 받는 것입니다.
16절의 너희는 본받는 자 되라는 말씀에서 본받는 자란 '흉내내는 자' (mimics)란 뜻입니다. 바울이 나를 본받는 자기 되라는 말을 한 것은 그 자신을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 이 본보기를 보고 배우듯이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 할때의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사랑, 그리스도께의 헌신, 희생, 충성된 봉사 등의 모범을 보여 주었는데 바로 그러한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고전11:1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 한 본을 따르는 바울은 그 자신이 하나의 훌륭한 본보기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훌륭한 교사 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이를 성숙 시키는데는 모범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훈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역시 자 신의 영적 자녀 중의 하나인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파송하였습니다. 디 모데가 고린도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로 부터 항상 가르침 받고, 또 보았던 바울의 모범들을 본받도록 기억나게 상기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3.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족들을 신실하게 징계했습니다.(18-21절) 어린 아이의 잘못된 생각은 꺽여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의지 자체를 꺾어서는 안됩니다. 길들이지 망아지는 위험하며 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길들여지면 온순하고 유용한 동물이 됩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에 아주 무서운 해독 요소입니다. 죄라는 누룩은 고린도 교회에 퍼져(고전5:6-8),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방자하게 만들었 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이렇게 까지 말했습니다. 그 편지들은 중 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고 후10:8-11)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방자함을 잘 참아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들을 견책할 시간이 되었음을 경고합니다.
신실한 부모는 자녀를 적절하게 징계합니다. 자녀들은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거역하고 불순종 하는 자녀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의 잘못을 온유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처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들의 방자한 태도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순종을 자랑삼아 떠들어 대고 있었던 것입니다.(5:1-2) 신앙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 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20절) 이 행함의 능력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으로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 받지 않고서는 능력있고 신실한 신 앙인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죄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편지 를 섰으며 이 편지의 내용에 따라 순복하여 자발적으로 교회의 질서를 유 지하고 반듯한 신앙 생활로 돌아오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권고 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래서 마침내 5-6장에 가서 징계문제를 거론하게 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 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 하든지 간에 사역자들은 청지기로서 그 주 인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세상으로 부터 배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그들을 징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로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영적인 아비라 비유함으로서 자신이 고린 도 교회를 위해 행했던 중요 사역들을 상기시킵니다.
1.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족의 터를 닦았습니다.(14-15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 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기쁨을 누린다면 우리도 사람의 영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모가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해 어떤 특별하 권위가 주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고후1:24) 다만 하나님께서 그 어린 성도를 장성 시킬 때 이용하실 수 있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뿐입니다. 지역 교회 역시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로 태어난 성도들을 양육 할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가정인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을 회심시켜 믿게한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인들의 영적인 출생은 오직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으로 통해 서만이 거듭나는 것입니다.(벧전1:23-25/요3:6) 바울은 곁에서 출생을 도 운 아버지일 뿐인 것입니다.
한 아이에게 많은 지도자와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사람 뿐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생기기 까지 바울의 헌신적인 사역의 열 매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터를 닦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 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적 아버 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14절과 15절에 서 .오작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비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의 권면과 책망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바울은 고린도 교회 기족의 모범이었습니다.(16-17절) 자녀는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그들의 부모를 닮습니다. 한 연구 보고 서에 의하면 십대의 청소년들은 친구들로부터가 아니라 가정에서 음주를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 녀는 부모로 부터 본을 받는 것입니다.
16절의 너희는 본받는 자 되라는 말씀에서 본받는 자란 '흉내내는 자' (mimics)란 뜻입니다. 바울이 나를 본받는 자기 되라는 말을 한 것은 그 자신을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 이 본보기를 보고 배우듯이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 할때의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사랑, 그리스도께의 헌신, 희생, 충성된 봉사 등의 모범을 보여 주었는데 바로 그러한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고전11:1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 한 본을 따르는 바울은 그 자신이 하나의 훌륭한 본보기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훌륭한 교사 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이를 성숙 시키는데는 모범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훈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역시 자 신의 영적 자녀 중의 하나인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파송하였습니다. 디 모데가 고린도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로 부터 항상 가르침 받고, 또 보았던 바울의 모범들을 본받도록 기억나게 상기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3.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족들을 신실하게 징계했습니다.(18-21절) 어린 아이의 잘못된 생각은 꺽여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의지 자체를 꺾어서는 안됩니다. 길들이지 망아지는 위험하며 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길들여지면 온순하고 유용한 동물이 됩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에 아주 무서운 해독 요소입니다. 죄라는 누룩은 고린도 교회에 퍼져(고전5:6-8),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방자하게 만들었 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이렇게 까지 말했습니다. 그 편지들은 중 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고 후10:8-11)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방자함을 잘 참아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들을 견책할 시간이 되었음을 경고합니다.
신실한 부모는 자녀를 적절하게 징계합니다. 자녀들은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거역하고 불순종 하는 자녀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의 잘못을 온유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처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들의 방자한 태도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순종을 자랑삼아 떠들어 대고 있었던 것입니다.(5:1-2) 신앙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 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20절) 이 행함의 능력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으로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 받지 않고서는 능력있고 신실한 신 앙인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죄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편지 를 섰으며 이 편지의 내용에 따라 순복하여 자발적으로 교회의 질서를 유 지하고 반듯한 신앙 생활로 돌아오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권고 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래서 마침내 5-6장에 가서 징계문제를 거론하게 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 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 하든지 간에 사역자들은 청지기로서 그 주 인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세상으로 부터 배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그들을 징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로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