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날 (사58:13-14)
본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즐거운 날 보다는 불안과 공포와 긴장과 피곤한 날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날 보다는 고통 하는 날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사람들의 심신을 매우 피곤하게 합니다.
죄로 고통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안간에게 당연한 것입니다 만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구별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므로 우리 영혼이 새힘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심령에 안식과 평안을 얻으며 위험한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의무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하여 그날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창2:1-3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창 2:1-
3'“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안식일은 인간에게 복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날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면 성도들에게도 즐거운 날이 안식일이 아니라 추석 명절 같이 보입니다. 주일날엔 만사를 제쳐놓고 지키지 못하지만 세상 명절날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지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어쨌던 가장 즐거운 날이 바뀌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귀어 간다고하는 것은 인간이 점점 불행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는 증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할 것을 늘 힘써야 할것입나다.
성경학자 버더는“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한 주간의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전이된 것이 다를 뿐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이 주일이 되었을 뿐 그날을 지키는 자세와 정신은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조명하면서 그날의 의미와 그날을 지키는 우리의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은 어떠한 날 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본문13절에 보면 “안식일”이라고 했습니다. 창2:2절 하반 절에 보면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했고 3절 마지막을 보면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13절에 보면 “내 성일”이라고 했고, 또 “여호와의 성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날이 사람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날은 다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낮과 밤 모든 날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도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물도 공기도 시간도, 그리고 우리의 생명.모두다 창조하셨습니다.
가을이 되면 특별히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라만상, 오곡백과를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친구에게 자동차를 빌려주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지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좋은데 가지고 올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뭐 그렇다고 해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장 쫓아가서 “야! 너 정신이 있냐 없냐”라고 야단친다고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친구보다 더 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다 우리가 그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므로 생명과 모든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사하므로 그날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십일조의 원리와도 비슷합니다. 열 가지를 다 주신 하나님이십니다만 주신 것 중에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은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시간은 칠 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드리므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즐거운 날입니다. 안식일이야말로 정말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장엄하고 위대한 창조의 역사를 완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안식이란 일한 후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일없이 쉬는 것은 답답하고 한심한 것이요 일을 마치지 못하고 쉬는 것은 걱정이되고 고통이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이라고 하는것은 일을 마친자에게 주어지는 만족과 평안의 축복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한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일없이 복된 안식이없고 안식없시 보람있는 일이없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과 안식은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일한 후에 시원한 물을 마시며 잠시 쉴 때 일한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겁니다. 일없이 놀고 있는 자들에게는 안식의 기쁨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이란 쉰다는 것, 혹은 논다는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화이트 로우(Whitelaw)는 “안식하시니라”는 말씀의 뜻을 “조용히 앉으셨다” 라고 해석했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말입니다.
가령 애써서 집을 설계하고 준비해서 건축을 완성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준공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축하하기 위하여 둘러앉은 식구들과 친지들의 마음은 정말로 기쁘고 즐겁기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에 조금이나마 비유가 될 줄로 압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날 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구속의 대사업을 완성하신 날 입니다. 그날이 바로 주의 날입니다. 주님이 다시 사신 날이요 믿는 우리가 다시 살게 된 날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즐겁고 기쁜 날입니다.
2. 그날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먼저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존귀히 여긴다는 것은 높인다는 뜻이요 그리고 그날을 귀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에서도 큰 일을 하고 공일 세운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일이나 혹은 그 일을 완성한 날을 기념하여 지킵니다.
그러므로 그날을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긴다는 표가 됩니다. 반면에 그날을 소흘이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주일을 존귀히 그리고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는 것은 곧 그날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날을 거록하게 지키지않는것은 곧 예수님을 무시하는것이 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님을 얼마나 무시하며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의 생일만큼도 여기지 못한때가 얼마나만은지 모릅니다.
친구 만나기 위해서 주일을 범했고, 사업상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주일을 범했고, 누구 결혼식 때문에 주일을 바로 지키지 못한 적이 많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친구만도 못하게 여겼고, 사업만도 못하게 여겼고, 결혼만도 못하게 여긴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존귀한 분이십니다. 그의 날도 존귀한 날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날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앞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존귀히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성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의 백성이라면 주의 날을 높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께 감사하며 존귀히 섬길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사 58:1
3'에 보면“만일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1). 네발을 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네 멋대로 걷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발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을 금한다고 하는 것은 안식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제멋대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죄악과 향락과 태만과 육신의 안일로 치닫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님의 발에 우리의 발을 묶고 예수님과 내가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주님 머무시는 곳에 내가 머무는 생활이 곧 네발을 금하는 생활입니다.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라고 하는 것은 금족령이 아닙니다. 많이 뛰고 많이 걷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여심히 해야합니다.
(2). 오락을 행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락은 바쁜 시간에도 틈을 이용하여 자기의 취미에 따라 좋아하는 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 리듬을 조절하여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오락은 우리의 생활에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락을 할지라도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 한때에 해야 합니다. 근무시간에 해서도 안되며, 식사하다가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적당 한때에 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주일날에 해서는 안됩니다. 무엇이던지 다 해야 할 때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유익되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의사보다도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제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안식일에 오락을 구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존중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적당한 때의 오락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만 주일날 오락은 오히려 우리의 심령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점점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재창조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와야 할 사람이, 하나님께 나와야 할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 배회한다면 그 심령은 점점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사40:31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를 앙망하고 그를 만날 때에 새로운 힘을 얻게 되며 새로운 삶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3). 혀를 삼가야 합니다.
본문13절에 보면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혀로 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 아는 사람과는 더 많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에도 할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습니다. 또한 해야 할 때가 있고, 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때나 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주의 날에는 세상 잡담이나 세상 돌아가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사사로운 말 때문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 던지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될 수 있는 한 성경을 이야기하고, 주님을 이야기하고, 선교를 이야기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하는 일과 선한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고 형제를 위로하기에 전력하시기 바랍니다.
3. 약속된 복이 있습니다.
14절에 세 가지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1).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기쁜 날보다는 어려운 날이 더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물어 보면 다 비슷합니다.“지금까지 정말로 기쁜 날이 얼마나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면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 대답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쁜 날이 있다 할지라도 그저 잠간입니다. 참 즐거움은 지속될 때에 가치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 즐거움을 여호와 안에서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든지 영원하고 참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하였습니다. 주안에 거하는 삶, 다시 말해서 주의 날을 올바로 지킬 때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높은 곳이라고 하는 것은 내 힘으로 올라갈 수 없는 곳,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려운 문제 속에 빠져서 혜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너를 들어 높은 곳에 올려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믿습니다까
주님을 존중히 여겨 그의 말씀을 순종하면 다시말 해서 주의 날을 올바로 지키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을 높은 곳에 올려 주십니다. 모든 문제를 결국 유익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강남에 있는 어떤 교회에의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그 장로님은 현재 어느 회사의 사장입니다. 그는 10년 동안 매 주일 아침6시면 교회에 도착하여 일부 예배를 드리고, 저녁 10시까지 교회에 머물면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자동차 안내를 담당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주차장서 자동차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약했던 간 기능이 악화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치 의사의 권면은 과로를 피하고, 휴식과 안정을 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담임 목사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10년 동안 맡아 온 주차장 정리를 쉬어야겠다고 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사정이
그렇다면 쉬는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나 주의 일을 쉬면 아주 쉬게 될지 모를 테니 깊이 생각하라는 충고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그는 주일이면 늦으막하게 나가 예배만 드리고 곧 바로 집으로 돌아가 의사의 지시대로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채 석달이 되기도 전에 자신이 탈진 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릴 기력이 없어져 가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깨닫고 결심했습니다. 집에서 탈진하고 기진맥진하여 죽느니 성전 뜰에서 일하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단으로 그 다음 주일부터 다시 새벽6시에 나와 전에 하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힘이 솟아났고 어느 틈엔가 간이 정상화되면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지금 평일에도 교회 일이라면 모든 것을 뒤로 제쳐놓고 적극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건강의 높은 곳에 올려 주신 것입니다.
주의 날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주의 일을 과소평가 하지 맙시다. 그날을 존중히 여겨 높은 곳에 세움 받기를 축원합니다.
(3).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모든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가나안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주의 날을 즐거워하는 자 에게 천국의 기업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즐거워하며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을 지키시던 것처럼 이 땅에서도 늘 켜 주시고 항상 함께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날을 부담스럽고 괴로운 날이라 하지 맙시다.
이날은 주의 날,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구원받고 승리하게 하신 날, 영원한 천국의 약속을 받은 날, 고맙고 즐거운 날로 성수 주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로 고통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안간에게 당연한 것입니다 만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구별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므로 우리 영혼이 새힘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심령에 안식과 평안을 얻으며 위험한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의무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하여 그날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창2:1-3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창 2:1-
3'“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안식일은 인간에게 복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날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면 성도들에게도 즐거운 날이 안식일이 아니라 추석 명절 같이 보입니다. 주일날엔 만사를 제쳐놓고 지키지 못하지만 세상 명절날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지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어쨌던 가장 즐거운 날이 바뀌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귀어 간다고하는 것은 인간이 점점 불행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는 증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할 것을 늘 힘써야 할것입나다.
성경학자 버더는“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한 주간의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전이된 것이 다를 뿐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이 주일이 되었을 뿐 그날을 지키는 자세와 정신은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조명하면서 그날의 의미와 그날을 지키는 우리의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은 어떠한 날 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본문13절에 보면 “안식일”이라고 했습니다. 창2:2절 하반 절에 보면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했고 3절 마지막을 보면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13절에 보면 “내 성일”이라고 했고, 또 “여호와의 성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날이 사람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날은 다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낮과 밤 모든 날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도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물도 공기도 시간도, 그리고 우리의 생명.모두다 창조하셨습니다.
가을이 되면 특별히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라만상, 오곡백과를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친구에게 자동차를 빌려주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지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좋은데 가지고 올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뭐 그렇다고 해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장 쫓아가서 “야! 너 정신이 있냐 없냐”라고 야단친다고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친구보다 더 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다 우리가 그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므로 생명과 모든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사하므로 그날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십일조의 원리와도 비슷합니다. 열 가지를 다 주신 하나님이십니다만 주신 것 중에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은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시간은 칠 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드리므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즐거운 날입니다. 안식일이야말로 정말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장엄하고 위대한 창조의 역사를 완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안식이란 일한 후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일없이 쉬는 것은 답답하고 한심한 것이요 일을 마치지 못하고 쉬는 것은 걱정이되고 고통이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이라고 하는것은 일을 마친자에게 주어지는 만족과 평안의 축복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한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일없이 복된 안식이없고 안식없시 보람있는 일이없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과 안식은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일한 후에 시원한 물을 마시며 잠시 쉴 때 일한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겁니다. 일없이 놀고 있는 자들에게는 안식의 기쁨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이란 쉰다는 것, 혹은 논다는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화이트 로우(Whitelaw)는 “안식하시니라”는 말씀의 뜻을 “조용히 앉으셨다” 라고 해석했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말입니다.
가령 애써서 집을 설계하고 준비해서 건축을 완성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준공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축하하기 위하여 둘러앉은 식구들과 친지들의 마음은 정말로 기쁘고 즐겁기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에 조금이나마 비유가 될 줄로 압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날 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구속의 대사업을 완성하신 날 입니다. 그날이 바로 주의 날입니다. 주님이 다시 사신 날이요 믿는 우리가 다시 살게 된 날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즐겁고 기쁜 날입니다.
2. 그날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먼저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존귀히 여긴다는 것은 높인다는 뜻이요 그리고 그날을 귀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에서도 큰 일을 하고 공일 세운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일이나 혹은 그 일을 완성한 날을 기념하여 지킵니다.
그러므로 그날을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긴다는 표가 됩니다. 반면에 그날을 소흘이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주일을 존귀히 그리고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는 것은 곧 그날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날을 거록하게 지키지않는것은 곧 예수님을 무시하는것이 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님을 얼마나 무시하며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의 생일만큼도 여기지 못한때가 얼마나만은지 모릅니다.
친구 만나기 위해서 주일을 범했고, 사업상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주일을 범했고, 누구 결혼식 때문에 주일을 바로 지키지 못한 적이 많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친구만도 못하게 여겼고, 사업만도 못하게 여겼고, 결혼만도 못하게 여긴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존귀한 분이십니다. 그의 날도 존귀한 날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날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앞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존귀히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성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의 백성이라면 주의 날을 높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께 감사하며 존귀히 섬길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사 58:1
3'에 보면“만일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1). 네발을 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네 멋대로 걷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발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을 금한다고 하는 것은 안식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제멋대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죄악과 향락과 태만과 육신의 안일로 치닫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님의 발에 우리의 발을 묶고 예수님과 내가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주님 머무시는 곳에 내가 머무는 생활이 곧 네발을 금하는 생활입니다.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라고 하는 것은 금족령이 아닙니다. 많이 뛰고 많이 걷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여심히 해야합니다.
(2). 오락을 행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락은 바쁜 시간에도 틈을 이용하여 자기의 취미에 따라 좋아하는 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 리듬을 조절하여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오락은 우리의 생활에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락을 할지라도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 한때에 해야 합니다. 근무시간에 해서도 안되며, 식사하다가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적당 한때에 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주일날에 해서는 안됩니다. 무엇이던지 다 해야 할 때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유익되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의사보다도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제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안식일에 오락을 구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존중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적당한 때의 오락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만 주일날 오락은 오히려 우리의 심령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점점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재창조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와야 할 사람이, 하나님께 나와야 할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 배회한다면 그 심령은 점점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사40:31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를 앙망하고 그를 만날 때에 새로운 힘을 얻게 되며 새로운 삶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3). 혀를 삼가야 합니다.
본문13절에 보면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혀로 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 아는 사람과는 더 많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에도 할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습니다. 또한 해야 할 때가 있고, 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때나 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주의 날에는 세상 잡담이나 세상 돌아가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사사로운 말 때문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 던지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될 수 있는 한 성경을 이야기하고, 주님을 이야기하고, 선교를 이야기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하는 일과 선한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고 형제를 위로하기에 전력하시기 바랍니다.
3. 약속된 복이 있습니다.
14절에 세 가지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1).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기쁜 날보다는 어려운 날이 더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물어 보면 다 비슷합니다.“지금까지 정말로 기쁜 날이 얼마나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면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 대답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쁜 날이 있다 할지라도 그저 잠간입니다. 참 즐거움은 지속될 때에 가치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 즐거움을 여호와 안에서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든지 영원하고 참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하였습니다. 주안에 거하는 삶, 다시 말해서 주의 날을 올바로 지킬 때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높은 곳이라고 하는 것은 내 힘으로 올라갈 수 없는 곳,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려운 문제 속에 빠져서 혜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너를 들어 높은 곳에 올려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믿습니다까
주님을 존중히 여겨 그의 말씀을 순종하면 다시말 해서 주의 날을 올바로 지키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을 높은 곳에 올려 주십니다. 모든 문제를 결국 유익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강남에 있는 어떤 교회에의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그 장로님은 현재 어느 회사의 사장입니다. 그는 10년 동안 매 주일 아침6시면 교회에 도착하여 일부 예배를 드리고, 저녁 10시까지 교회에 머물면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자동차 안내를 담당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주차장서 자동차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약했던 간 기능이 악화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치 의사의 권면은 과로를 피하고, 휴식과 안정을 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담임 목사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10년 동안 맡아 온 주차장 정리를 쉬어야겠다고 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사정이
그렇다면 쉬는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나 주의 일을 쉬면 아주 쉬게 될지 모를 테니 깊이 생각하라는 충고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그는 주일이면 늦으막하게 나가 예배만 드리고 곧 바로 집으로 돌아가 의사의 지시대로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채 석달이 되기도 전에 자신이 탈진 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릴 기력이 없어져 가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깨닫고 결심했습니다. 집에서 탈진하고 기진맥진하여 죽느니 성전 뜰에서 일하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단으로 그 다음 주일부터 다시 새벽6시에 나와 전에 하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힘이 솟아났고 어느 틈엔가 간이 정상화되면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지금 평일에도 교회 일이라면 모든 것을 뒤로 제쳐놓고 적극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건강의 높은 곳에 올려 주신 것입니다.
주의 날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주의 일을 과소평가 하지 맙시다. 그날을 존중히 여겨 높은 곳에 세움 받기를 축원합니다.
(3).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모든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가나안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주의 날을 즐거워하는 자 에게 천국의 기업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즐거워하며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을 지키시던 것처럼 이 땅에서도 늘 켜 주시고 항상 함께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날을 부담스럽고 괴로운 날이라 하지 맙시다.
이날은 주의 날,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구원받고 승리하게 하신 날, 영원한 천국의 약속을 받은 날, 고맙고 즐거운 날로 성수 주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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