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관리합시다 (창1:26-31)
본문
우주 만물을 가장 아름답고 질서 있게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것과 생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정말 복 있는 인생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평안과 부요와 모든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평안 대신에 불안과 공포가 왔고 부요 대신에 빈곤과 궁핍이 왔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이 오히려 저주처럼 인구 폭발의 문젯거리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유익을 주던 자연은 점점 파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복이 화로 바뀌어 젔는가 그것은 창세기 3장의 나타난 봐 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초래된 것입니다. 창3:17 하반 절에 보면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라고 했고 18절에 보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이 범죄하므로 관리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자기 중심의 삶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기주의란 인간 타락의 결과 중 하나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아름다웠던 인간의 성품이 파괴되었고 이로 인한 관리 부주의로 자연 환경은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아무리 좋은 땅을 준다 할지라도 관리를 잘못하면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늘 술이나 취해 있고 늘 화투 놀이나 하고 있다면 그것이 땅이던 집이던 다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땅이던 집이던 관리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인간은 한 마디로 말해서 좋은 관리자가 아니라 바로 파괴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형상을 파괴했습니다. 양심을 파괴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에덴 동산을 파괴했고 환경마저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파괴자입니다. 인간이 파괴의 도구가 된 것은 범죄하므로 하나님과 등지고 사탄의 종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인간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탄은 가정을 파괴하고 인간의 화목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심지어는 천국까지 파괴하려고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2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크홀름에서 국제연합 인간 환경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 환경 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후인 6월에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유엔 환경 개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계속 지구를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지구를 파괴해 왔습니다.
지구 환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만일 인류가 10년내에 지구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지구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 도처에서는 매 일분마다 6개의 축구장 크기 만한 열대림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30년 안에 지구상에 있는 열대림의 3분의 2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렇게 될 경우에는 지구에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 올 것입니다.
조나단 포리트는 “우리가 지구를 실려 내는데 주어진 시간은 10년 정도 일뿐이며 이것은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오존층의 파괴로 이상 기온 현상이 일어나서 지구는 사막화되어 가고 있는가 하면 빙하가 녹아 내려 바다 수면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땅 넓이는 점점 좁아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입니까 오존층의 파괴로 살인 광선을 막아 주지 못하므로 결국 인간은 무서운 질병으로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열대림의 소실로 1년에 5만종, 하루에 140여종의 무척추 동물들이 멸종해 가고 있으며 결국 다른 생물이 그런 식으로 죽는다면 그 다음은 인간의 차례가 되는 것입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잦은 한발과 홍수의 교차 현상을 일으키고 태풍까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 요번에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인해서 한 도시가 쑥밭이 될 만큼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23일,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중국등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여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건물과 고속도로와 철도 등이 파괴되었다는 신문 보도를 보아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지구가 자꾸 죽어 갑니까
마구 버린 공장 폐수의 중금속,쓰레기,프레온깨스,자동차매연,합성세제,그리고 막 뿌려 대는 농약과 살충제.등 결국 우리가 버리는 것들 때문에 지구가 병들고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20:19절을 보면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작별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수목이 인간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왜 인간들이 지구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타락하고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나 출애굽기를 보면 그 당시 애굽은 중동 지역의 곡창 지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마다 그 민족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살았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애굽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에집트는 한발과 흉년이 반복되는 사막입니다. 그래서 모든 필수품들을 거의 다 외국에서 수입해 다가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불모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백향목으로 울창했던 레바논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도 물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자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되면 자연도 바로 되고 인간이 썩으면 자연도 썩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관리를 인간에게 맡겨 주셨기 대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운전사 잘못 만나면 얼마 가지 못해서 고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좋은 운전사 만나면 새 차처럼 든든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은 것입니다. 자동차도 사람 잘 만나야지 사람 잘못만 나면 망치고 맙니다.
환경 학자들은 환경 난민이라는 새로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그곳에 살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인간이 썩으면 자연도 썩고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그곳에 발붙이고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에덴에 발붙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인류역사 최초의 환경 난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범죄하면 썩게 되고 썩게 되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5:5절에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되고 복 있는 자가 될 때 땅도 복을 받고 또한 사람을 용납할 땅도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조나단 포리트는 그가 쓴 지구를 구하자라는 책속에서 우리는 지구를 단기간 빌려쓰는데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이 지구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후 거기에 살면서 지구를 잘 관리하라고 잠깐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지구를 잘 관리해야 할 청지기들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의 선한 청지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잠깐 빌려쓰는 인간으로써 지구의 좋은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인의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1. 새사람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연과 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그대로 두고 제아무리 땅과 자연을 고치려 해도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가없을 것입니다. 잠깐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빨간 약을 배에 발라 주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또 좀 나은 방법이겠지만 좋은 소화제를 먹는다 할 찌라도 그것은 그때 뿐일 것입니다.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가없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사람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은 교육만으로도 안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교육 방법과 교육열은 전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점점 악하여지고 썩어져 가고 있습니다. 죄악으로 치닫는 인류의 발걸음을 그 어떤 사람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슥4:6절에 보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람으로써는 거의가 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줄로 압니다.
그러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움을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이럴 때 새 사람이 됩니다.
시104:30절에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 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면 땅도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후5:7절에 보면“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길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될 때에 자연도 땅도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 회의 또는 환경 회의 구호나 표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이 변해야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양심이 되살아나고, 가치관이 되살아나면 더불어 환경도 땅도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양심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공장 폐수를 강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못 쓸 쓰레기를 몰래 버릴 수가 있으며 공해 물질을 마구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양심이 되살고, 윤리가 되살고, 도덕성이 되살려면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자신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에 인도해 내야 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먼저 예수를 믿되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전도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심령이 변화됩니다. 한 가정이 변화됩니다. 여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는데 이것은 히11:12절을 보면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자녀,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자녀를 만이 주실 것을 말합니다.
그저 숫자적으로만 많이 낳는 것이 복이라면 사람이 아니라 “나방이”일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공해와 기근 문제가 더욱 더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인구 증가도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숫자적인 생육과 번성도 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땅도 자연도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정한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창대하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의 첩경은 바로 인간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될때에 자연환경도 점점 회복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명심해야할것은 사회복음주의자들과 같이 이런식으로 지상낙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는것은 비성경적이요 또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날 까지는 완전 회복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옳바로 믿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사회도,환경도 좀 나아질것입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의 중요한 사명은 바로 전도입니다. 많이 전도하여 믿음의 자녀를 많이 얻는 자가 복 있는 자요 또한 자연 환경 회복에 큰 몫을 감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 모두가 관리자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와 모든 자연계를 잘 사용하고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맡은 자요 관리자요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관리하지 못하면 사용권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었어도 우리 믿는 성도들은 환경 보전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찬송 소리만 크고 기도 소리만 크다고 훌륭한 믿음은 아닙니다. 훌륭한 믿음은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철야 기도 다녀와서 남몰래 연탄재나 오물을 아무데나 버린다면 그건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성령 받고 은혜 받았다면서 산업 폐수를 강으로 흘러 보낸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생활입니다.
조금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따르고 실천해야 합니다.
관리인은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다음은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자신을 위한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서 살려 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요 이웃을 죽이며 결국 자기를 죽이는 살인과 자살 행위입니다.
출애굽기 15:23절 이하를 보면 쓴 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모세가 순종하였을 때에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먹을 수 없게 된 물이지만 모세가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에 목말라 죽어가든 이스라엘 백성이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시므로활기를 되찾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맡음으로 순종할 때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 같이,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된 것처럼 옛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때에 역사도,자연도,인간도 단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환경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19절 이하를 보면 여리고 지방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부리지만 토질이 나빠서 곡식이 자라지 못하고 결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사 선지자에게 알렸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가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하더니 그것을 물 근원에 뿌렸습니다. 그럴 때에 물이 치료되었고 그후로 농사가 잘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소금을 뿌렸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소금이 무엇입니까
마5:13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곧 소금입니다.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에게 짓밟힐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소금입니까 맛 잃은 소금입니까 맛있는 소금입니까
우리는 쓴 물을 단물로, 죽어 가는 땅을 생명이 기식하는 땅으로 만들 소금의 사명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 내 자신이 복을 받고 이웃이 복을 받고 이 땅이 복을 받아 땅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복 있는 인생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평안과 부요와 모든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평안 대신에 불안과 공포가 왔고 부요 대신에 빈곤과 궁핍이 왔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이 오히려 저주처럼 인구 폭발의 문젯거리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유익을 주던 자연은 점점 파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복이 화로 바뀌어 젔는가 그것은 창세기 3장의 나타난 봐 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초래된 것입니다. 창3:17 하반 절에 보면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라고 했고 18절에 보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이 범죄하므로 관리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자기 중심의 삶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기주의란 인간 타락의 결과 중 하나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아름다웠던 인간의 성품이 파괴되었고 이로 인한 관리 부주의로 자연 환경은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아무리 좋은 땅을 준다 할지라도 관리를 잘못하면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늘 술이나 취해 있고 늘 화투 놀이나 하고 있다면 그것이 땅이던 집이던 다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땅이던 집이던 관리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인간은 한 마디로 말해서 좋은 관리자가 아니라 바로 파괴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형상을 파괴했습니다. 양심을 파괴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에덴 동산을 파괴했고 환경마저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파괴자입니다. 인간이 파괴의 도구가 된 것은 범죄하므로 하나님과 등지고 사탄의 종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인간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탄은 가정을 파괴하고 인간의 화목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심지어는 천국까지 파괴하려고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2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크홀름에서 국제연합 인간 환경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 환경 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후인 6월에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유엔 환경 개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계속 지구를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지구를 파괴해 왔습니다.
지구 환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만일 인류가 10년내에 지구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지구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 도처에서는 매 일분마다 6개의 축구장 크기 만한 열대림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30년 안에 지구상에 있는 열대림의 3분의 2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렇게 될 경우에는 지구에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 올 것입니다.
조나단 포리트는 “우리가 지구를 실려 내는데 주어진 시간은 10년 정도 일뿐이며 이것은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오존층의 파괴로 이상 기온 현상이 일어나서 지구는 사막화되어 가고 있는가 하면 빙하가 녹아 내려 바다 수면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땅 넓이는 점점 좁아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입니까 오존층의 파괴로 살인 광선을 막아 주지 못하므로 결국 인간은 무서운 질병으로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열대림의 소실로 1년에 5만종, 하루에 140여종의 무척추 동물들이 멸종해 가고 있으며 결국 다른 생물이 그런 식으로 죽는다면 그 다음은 인간의 차례가 되는 것입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잦은 한발과 홍수의 교차 현상을 일으키고 태풍까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 요번에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인해서 한 도시가 쑥밭이 될 만큼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23일,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중국등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여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건물과 고속도로와 철도 등이 파괴되었다는 신문 보도를 보아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지구가 자꾸 죽어 갑니까
마구 버린 공장 폐수의 중금속,쓰레기,프레온깨스,자동차매연,합성세제,그리고 막 뿌려 대는 농약과 살충제.등 결국 우리가 버리는 것들 때문에 지구가 병들고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20:19절을 보면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작별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수목이 인간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왜 인간들이 지구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타락하고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나 출애굽기를 보면 그 당시 애굽은 중동 지역의 곡창 지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마다 그 민족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살았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애굽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에집트는 한발과 흉년이 반복되는 사막입니다. 그래서 모든 필수품들을 거의 다 외국에서 수입해 다가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불모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백향목으로 울창했던 레바논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도 물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자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되면 자연도 바로 되고 인간이 썩으면 자연도 썩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관리를 인간에게 맡겨 주셨기 대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운전사 잘못 만나면 얼마 가지 못해서 고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좋은 운전사 만나면 새 차처럼 든든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은 것입니다. 자동차도 사람 잘 만나야지 사람 잘못만 나면 망치고 맙니다.
환경 학자들은 환경 난민이라는 새로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그곳에 살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인간이 썩으면 자연도 썩고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그곳에 발붙이고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에덴에 발붙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인류역사 최초의 환경 난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범죄하면 썩게 되고 썩게 되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5:5절에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되고 복 있는 자가 될 때 땅도 복을 받고 또한 사람을 용납할 땅도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조나단 포리트는 그가 쓴 지구를 구하자라는 책속에서 우리는 지구를 단기간 빌려쓰는데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이 지구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후 거기에 살면서 지구를 잘 관리하라고 잠깐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지구를 잘 관리해야 할 청지기들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의 선한 청지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잠깐 빌려쓰는 인간으로써 지구의 좋은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인의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1. 새사람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연과 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그대로 두고 제아무리 땅과 자연을 고치려 해도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가없을 것입니다. 잠깐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빨간 약을 배에 발라 주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또 좀 나은 방법이겠지만 좋은 소화제를 먹는다 할 찌라도 그것은 그때 뿐일 것입니다.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가없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사람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은 교육만으로도 안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교육 방법과 교육열은 전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점점 악하여지고 썩어져 가고 있습니다. 죄악으로 치닫는 인류의 발걸음을 그 어떤 사람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슥4:6절에 보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람으로써는 거의가 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줄로 압니다.
그러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움을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이럴 때 새 사람이 됩니다.
시104:30절에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 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면 땅도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후5:7절에 보면“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길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될 때에 자연도 땅도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 회의 또는 환경 회의 구호나 표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이 변해야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양심이 되살아나고, 가치관이 되살아나면 더불어 환경도 땅도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양심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공장 폐수를 강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못 쓸 쓰레기를 몰래 버릴 수가 있으며 공해 물질을 마구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양심이 되살고, 윤리가 되살고, 도덕성이 되살려면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자신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에 인도해 내야 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먼저 예수를 믿되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전도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심령이 변화됩니다. 한 가정이 변화됩니다. 여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는데 이것은 히11:12절을 보면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자녀,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자녀를 만이 주실 것을 말합니다.
그저 숫자적으로만 많이 낳는 것이 복이라면 사람이 아니라 “나방이”일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공해와 기근 문제가 더욱 더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인구 증가도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숫자적인 생육과 번성도 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땅도 자연도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정한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창대하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의 첩경은 바로 인간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될때에 자연환경도 점점 회복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명심해야할것은 사회복음주의자들과 같이 이런식으로 지상낙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는것은 비성경적이요 또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날 까지는 완전 회복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옳바로 믿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사회도,환경도 좀 나아질것입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의 중요한 사명은 바로 전도입니다. 많이 전도하여 믿음의 자녀를 많이 얻는 자가 복 있는 자요 또한 자연 환경 회복에 큰 몫을 감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 모두가 관리자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와 모든 자연계를 잘 사용하고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맡은 자요 관리자요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관리하지 못하면 사용권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었어도 우리 믿는 성도들은 환경 보전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찬송 소리만 크고 기도 소리만 크다고 훌륭한 믿음은 아닙니다. 훌륭한 믿음은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철야 기도 다녀와서 남몰래 연탄재나 오물을 아무데나 버린다면 그건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성령 받고 은혜 받았다면서 산업 폐수를 강으로 흘러 보낸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생활입니다.
조금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따르고 실천해야 합니다.
관리인은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다음은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자신을 위한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서 살려 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요 이웃을 죽이며 결국 자기를 죽이는 살인과 자살 행위입니다.
출애굽기 15:23절 이하를 보면 쓴 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모세가 순종하였을 때에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먹을 수 없게 된 물이지만 모세가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에 목말라 죽어가든 이스라엘 백성이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시므로활기를 되찾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맡음으로 순종할 때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 같이,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된 것처럼 옛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때에 역사도,자연도,인간도 단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환경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19절 이하를 보면 여리고 지방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부리지만 토질이 나빠서 곡식이 자라지 못하고 결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사 선지자에게 알렸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가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하더니 그것을 물 근원에 뿌렸습니다. 그럴 때에 물이 치료되었고 그후로 농사가 잘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소금을 뿌렸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소금이 무엇입니까
마5:13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곧 소금입니다.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에게 짓밟힐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소금입니까 맛 잃은 소금입니까 맛있는 소금입니까
우리는 쓴 물을 단물로, 죽어 가는 땅을 생명이 기식하는 땅으로 만들 소금의 사명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 내 자신이 복을 받고 이웃이 복을 받고 이 땅이 복을 받아 땅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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