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은 자의 생활 (행2:42-47)
본문
본문 2장 1-2절 말씀은 집회에 모여 성령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42절 부터는 은혜 받고난후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당시의 믿지 않던 사람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얕잡아 보고나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종의 경외심과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행2:43),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2:47)
성경은 역사의 기록장이 아니라 우리의 실행을 위해서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본문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보람이요, 결과인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1. 말씀에 대한 열심이 일어납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증거하는 은사와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목숨걸고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성령 받은 후 베드로의 설교는 옛날의 설교가 아니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2:42)라는 이 짤막한 구절속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들의 영적인 권위가 확고해졌습니다. 사도들은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전했고 성도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증거할 때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말씀에 대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반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의 변화된 모습은 말씀을 듣는데서 나타납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말씀에 대한 기쁨이 있고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심령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저희가 말씀을 듣고난 다음에 마음에 찔려라고 했듯이 말씀은 칼과 같아서 은혜 받은 심령속에 박혀 충격이 오고 어찌할꼬 하는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씀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설교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주는 음성으로 내 가슴에 찔리움으로 들을 때에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사랑의 교제가 있게 됩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라는 짤막한 이 말씀속에 초대교회의 은혜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주님도 사랑이시며 성령님도 사랑이십니다. 성부,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사랑의 본질 인고로 성경 66권의 요절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쟁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을 받고 사랑의 영을 받은 성도들 사이에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서로 교제를 통하여 하나가 된 것은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서로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세가지 구성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왕족으로부터 노예까지 여러 계층의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질적인 종교를 갖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서 너무나도 큰 민족적인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어울릴 수 없는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 여러분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구역예배로 모이면 그곳이 사랑의 장소가 되야 합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가 모이면 그곳이 곧 사랑의 장소가 되어 사랑으로 연합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모임의 장소가 남의 험담이나 하고 이간질을 하는 곳이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남의 약점을 감싸주고, 칭찬해 주며 격려해 주는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제, 특별히 사랑의 교제는 하나님 교회의 생명입니다. 모든 모임에 속히 사랑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3. 기도운동이 일어납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듯이 은혜 받은 자는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함으로써 은혜를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은혜 받고 은혜 받으면 기도하게 되니 기도와 은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기도는 교회의 원동력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해야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언가 하다 하다 안될 때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겠습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존 낙스라는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빌리 그레함은 기도는 아침의 열쇠이며 저녁의 자물쇠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넘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위해 새벽기도회 참여를 권유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시편 46편 5절에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그 기도가 하루의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줄 믿으시고 새벽에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은 쉬지않고 기도하는(살전5:17) 기도의 용사로서, 은혜 받은 자로서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4. 두려움이 생깁니다.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으면 제일 먼저 생기는 변화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변화가 먼저 일어납니다. 내 죄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밝은 하나님의 빛앞에서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회개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용서하십니까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 선지자가 은혜 체험을 하면서 제일 먼저 나타났던 반응이 무엇입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6:5)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사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자는 예배에 빠지고도 아무런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은혜 받은 자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 두려운 마음이 생겨 주일을 지키고자 하고,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5.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기사는 자연적인 법칙을 거슬려서 발생하는 특이한 사건을 말합니다. 순간적으로 병든 자가 나음을 받고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도 기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했을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기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표적은 변화된 모습을 말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게으른 자는 부지런한 자로, 기도 못하던 자가 기도하는 자로 강퍅한 마음이 온유한 마음으로, 방탕한 자가 새 사람되는 변화,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들어와 변화를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의인이나 성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죄인이 들어와 성령으로 녹아져 변하여 새사람 되는 곳입니다.
본문에서 세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기주의가 변하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갖고 있는 것 보다 더 가지려고 하고 자기 것을 챙기고 모으려고 하는 이기심이 있는데 이것이 성령안에서 변하여 서로 나누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세상 일보다는 교회에 모여 말씀 듣는 것이 좋아 예배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게 됩니다. 은혜 없이는 주일 낮, 주일 밤, 수요일 저녁, 금요일 기도회,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가정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에서 떡을 떼며, 기뻐하며 찬미하는 지상의 낙원이 되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정이 화목되기 위해서는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신앙안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 받는 것도 귀하고 소중하지만 그 은혜를 간직하는 것은 더욱 귀합니다. 은혜를 소중히 여기시고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고 오래도록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역사의 기록장이 아니라 우리의 실행을 위해서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본문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보람이요, 결과인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1. 말씀에 대한 열심이 일어납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증거하는 은사와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목숨걸고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성령 받은 후 베드로의 설교는 옛날의 설교가 아니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2:42)라는 이 짤막한 구절속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들의 영적인 권위가 확고해졌습니다. 사도들은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전했고 성도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증거할 때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말씀에 대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반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의 변화된 모습은 말씀을 듣는데서 나타납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말씀에 대한 기쁨이 있고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심령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저희가 말씀을 듣고난 다음에 마음에 찔려라고 했듯이 말씀은 칼과 같아서 은혜 받은 심령속에 박혀 충격이 오고 어찌할꼬 하는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씀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설교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주는 음성으로 내 가슴에 찔리움으로 들을 때에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사랑의 교제가 있게 됩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라는 짤막한 이 말씀속에 초대교회의 은혜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주님도 사랑이시며 성령님도 사랑이십니다. 성부,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사랑의 본질 인고로 성경 66권의 요절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쟁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을 받고 사랑의 영을 받은 성도들 사이에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서로 교제를 통하여 하나가 된 것은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서로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세가지 구성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왕족으로부터 노예까지 여러 계층의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질적인 종교를 갖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서 너무나도 큰 민족적인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어울릴 수 없는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 여러분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구역예배로 모이면 그곳이 사랑의 장소가 되야 합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가 모이면 그곳이 곧 사랑의 장소가 되어 사랑으로 연합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모임의 장소가 남의 험담이나 하고 이간질을 하는 곳이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남의 약점을 감싸주고, 칭찬해 주며 격려해 주는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제, 특별히 사랑의 교제는 하나님 교회의 생명입니다. 모든 모임에 속히 사랑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3. 기도운동이 일어납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듯이 은혜 받은 자는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함으로써 은혜를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은혜 받고 은혜 받으면 기도하게 되니 기도와 은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기도는 교회의 원동력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해야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언가 하다 하다 안될 때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겠습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존 낙스라는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빌리 그레함은 기도는 아침의 열쇠이며 저녁의 자물쇠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넘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위해 새벽기도회 참여를 권유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시편 46편 5절에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그 기도가 하루의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줄 믿으시고 새벽에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은 쉬지않고 기도하는(살전5:17) 기도의 용사로서, 은혜 받은 자로서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4. 두려움이 생깁니다.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으면 제일 먼저 생기는 변화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변화가 먼저 일어납니다. 내 죄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밝은 하나님의 빛앞에서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회개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용서하십니까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 선지자가 은혜 체험을 하면서 제일 먼저 나타났던 반응이 무엇입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6:5)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사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자는 예배에 빠지고도 아무런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은혜 받은 자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 두려운 마음이 생겨 주일을 지키고자 하고,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5.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기사는 자연적인 법칙을 거슬려서 발생하는 특이한 사건을 말합니다. 순간적으로 병든 자가 나음을 받고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도 기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했을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기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표적은 변화된 모습을 말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게으른 자는 부지런한 자로, 기도 못하던 자가 기도하는 자로 강퍅한 마음이 온유한 마음으로, 방탕한 자가 새 사람되는 변화,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들어와 변화를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의인이나 성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죄인이 들어와 성령으로 녹아져 변하여 새사람 되는 곳입니다.
본문에서 세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기주의가 변하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갖고 있는 것 보다 더 가지려고 하고 자기 것을 챙기고 모으려고 하는 이기심이 있는데 이것이 성령안에서 변하여 서로 나누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세상 일보다는 교회에 모여 말씀 듣는 것이 좋아 예배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게 됩니다. 은혜 없이는 주일 낮, 주일 밤, 수요일 저녁, 금요일 기도회,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가정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에서 떡을 떼며, 기뻐하며 찬미하는 지상의 낙원이 되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정이 화목되기 위해서는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신앙안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 받는 것도 귀하고 소중하지만 그 은혜를 간직하는 것은 더욱 귀합니다. 은혜를 소중히 여기시고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고 오래도록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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