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3:14-20)
본문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본문이 기록된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봅니다.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어집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약 200여년 동안 유지되다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 역시 약 300여년 동안 존속하다가 주전 60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진 뒤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단 한사람도 선한 왕이 없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작할 때부터 송아지를 숭배하는 애굽의 종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전부 하나님 대신에 송아지를 숭배하였고 결국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한편 남왕국 유다에는 모두 20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그 중에서 6명 정도는 상당히 훌륭하게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다 왕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를 배경으로 기록됩니다. 주전 697년 14번째로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등등 온갖 우상을 다 모아놓고 함께 섬기도록 했습니다. 매일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고 점쟁이들을 불러서 점을 쳤습니다. 심지어는 몰록이라고 불리는 태양신에게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정치도 악정을 펼쳐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흘린 피가 예루살렘 길거리에 흘러 넘쳤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악정을 펼치던 므낫세가 죽고 그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는데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다가 왕이 된지 2년만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암살 당하고 맙니다. 그래서 아몬의 아들 요시아가 여덟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요시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 나라는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깊은 죄악 가운데 빠져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스바냐라는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낙심가운데 빠져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16절을 다시 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은 기운을 내라는 말입니다. 손을 늘어뜨리고 처져있지 말고 기운을 내서 일어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과 도탄가운데 빠져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형벌을 제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때로 손을 늘어뜨리고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듭니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를 하는 나이 드신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에게 평생 소원이 하나있었는데 그것은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성지를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편지가 한 통 날아왔습니다. 열어보니 20만원만 부담하면 성지순례를 시켜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도 기쁜 마음에 당장에 신청을 해서 성지순례를 하고 내친 김에 미국구경까지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목사님 댁으로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통일교에서 모임이 있으니 나와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내가 개신교 목사인데 왜 통일교 모임에 나가느냐?' 했더니 이 청년이 하는 말이 '목사님께서 성지순례 갔다 오신 것 누구 돈으로 갔다온 것인지 아십니까? 통일교에서 나온 돈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 목사님은 통일교에서 하는 모임마다 참석해야 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이번에 한번만 참석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 할 때마다 '과거의 모든 일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목사님은 노회 석상에서 자신의 문제를 공개했습니다. 통일교 자금으로 성지순례를 갔다 온 일, 그 후에 하는 수 없이 통일교 모임에 참석했던 일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목사직에서 쫓아내어도 좋습니다. 어떤 징계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노회에서는 그 동안의 과오를 용서하고 앞으로는 행동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예의 그 청년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에 모임이 있으니 나와주십시오.' 그러자 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이놈아. 나는 자유다.'
죄는 우리를 꼼짝 못하게 묶어 놓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서 힘을 내려고 해도 또 다시 낙심하고 주저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소망이 넘쳐납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극복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오면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은 죄를 다 정리하고 나오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정리해 주십니다.
또한 여러분을 괴롭히는 것은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짓고 나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해 보지만 어느새 또 같은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절망합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한테 죄를 지었다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잘 보십시오. 여기서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는 것은 490번만 용서하고 그 다음부터는 용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7은 무한 수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무한대로,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대로 용서할 것을 가르치셨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무한대의 무한대로 용서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짓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또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하고 또 죄를 짓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용서해 달라고 말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똑같은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지어도, 또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매일 같은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이유입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온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까지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사하였으니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새롭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소년 다윗이 전쟁터에 섰습니다. 상대는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입니다. 다윗이 가진 것이라고는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은 두터운 갑옷을 입고 칼과 창으로 무장하였습니다. 다윗이 이길 승산은 0%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결과는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골리앗과 같은 장애물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위협하는 강한 힘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낙심과 정말이 여러분을 정복하게 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로마 카톨릭교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카톨릭교회와 맞서 싸워 종교개혁을 이룬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어느 날 깊은 절망에 빠져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석에 누워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던가?' 후회하면서 종교개혁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밖에 나가 산보를 하고 돌아왔는데 루터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루터는 '아니, 그 사이에 누가 죽었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하나님께서 돌아가셨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요?' 그러자 루터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낙심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루터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면 나는 반드시 해 낼 수 있다.' 다시 한번 용기를 얻어 종교개혁을 완수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을 보고 '저 사람이 교회 집사라고 하는데 저렇게 낙심하는 것을 보니 아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나 봐.' 이런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계심을 확신하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 것을 믿고 다시 한번 힘을 내십시오. '저 사람은 저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쁨과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을 보니까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야.' 이런 소리를 듣도록 하셔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사업에 실패해서 좌절가운데 빠져있습니까?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 절망가운데 빠져있습니까? 여러분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이 말씀을 붙들고 새롭게 힘을 내어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 아들만 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귀여운 맛에 키웠는데 이제는 키도 저보다 크고 목소리도 어른 목소리가 되어서 징그러운 수준까지 갔습니다. 더욱이 머리가 굵어지더니 이제는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 자기들 하고싶은 대로합니다. 머리를 깎으라고 하면 길게 기르고, 머리를 기르라고 하면 중머리로 빡빡 깎아버립니다.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큰아들들이라도 밤에 자는 것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자는 방을 들여다보고 저 혼자서 공연히 웃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이 못난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비록 매일 하나님 속을 썩여드리는 못난 자식이지만 우리를 볼 때마다 흐뭇해하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나서 마음껏 세상 향락을 누렸습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지고 굶어죽게 되어서야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뭐라고 합니까?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다.' 그러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참으로 못난 자식, 아버지 재산을 다 팔아먹고 온 자식 때문에 아버지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사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사랑은 위대한 편견이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식이 가장 예뻐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 보이는 단점도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감추어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여러분을 못났다고 하고, 실패했다고 하고, 손가락 질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게 바라보십니다.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내가 너를 잠잠히 사랑하며, 내가 너로 인하여 소리를 지르며 기뻐한다.' 말씀하십니다.
이 못난 우리를 바라보시며 기쁨을 감추시지 못하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새롭게 힘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여러분으로 하여금 손을 늘어뜨리도록 만드는 낙심되고 절망하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죄를 한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곁에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며 힘있게 일어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진 뒤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단 한사람도 선한 왕이 없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작할 때부터 송아지를 숭배하는 애굽의 종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전부 하나님 대신에 송아지를 숭배하였고 결국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한편 남왕국 유다에는 모두 20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그 중에서 6명 정도는 상당히 훌륭하게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다 왕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를 배경으로 기록됩니다. 주전 697년 14번째로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등등 온갖 우상을 다 모아놓고 함께 섬기도록 했습니다. 매일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고 점쟁이들을 불러서 점을 쳤습니다. 심지어는 몰록이라고 불리는 태양신에게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정치도 악정을 펼쳐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흘린 피가 예루살렘 길거리에 흘러 넘쳤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악정을 펼치던 므낫세가 죽고 그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는데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다가 왕이 된지 2년만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암살 당하고 맙니다. 그래서 아몬의 아들 요시아가 여덟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요시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 나라는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깊은 죄악 가운데 빠져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스바냐라는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낙심가운데 빠져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16절을 다시 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은 기운을 내라는 말입니다. 손을 늘어뜨리고 처져있지 말고 기운을 내서 일어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과 도탄가운데 빠져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형벌을 제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때로 손을 늘어뜨리고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듭니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를 하는 나이 드신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에게 평생 소원이 하나있었는데 그것은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성지를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편지가 한 통 날아왔습니다. 열어보니 20만원만 부담하면 성지순례를 시켜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도 기쁜 마음에 당장에 신청을 해서 성지순례를 하고 내친 김에 미국구경까지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목사님 댁으로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통일교에서 모임이 있으니 나와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내가 개신교 목사인데 왜 통일교 모임에 나가느냐?' 했더니 이 청년이 하는 말이 '목사님께서 성지순례 갔다 오신 것 누구 돈으로 갔다온 것인지 아십니까? 통일교에서 나온 돈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 목사님은 통일교에서 하는 모임마다 참석해야 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이번에 한번만 참석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 할 때마다 '과거의 모든 일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목사님은 노회 석상에서 자신의 문제를 공개했습니다. 통일교 자금으로 성지순례를 갔다 온 일, 그 후에 하는 수 없이 통일교 모임에 참석했던 일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목사직에서 쫓아내어도 좋습니다. 어떤 징계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노회에서는 그 동안의 과오를 용서하고 앞으로는 행동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예의 그 청년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에 모임이 있으니 나와주십시오.' 그러자 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이놈아. 나는 자유다.'
죄는 우리를 꼼짝 못하게 묶어 놓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서 힘을 내려고 해도 또 다시 낙심하고 주저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소망이 넘쳐납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극복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오면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은 죄를 다 정리하고 나오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정리해 주십니다.
또한 여러분을 괴롭히는 것은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짓고 나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해 보지만 어느새 또 같은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절망합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한테 죄를 지었다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잘 보십시오. 여기서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는 것은 490번만 용서하고 그 다음부터는 용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7은 무한 수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무한대로,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대로 용서할 것을 가르치셨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무한대의 무한대로 용서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짓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또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하고 또 죄를 짓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용서해 달라고 말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똑같은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지어도, 또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매일 같은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이유입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온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까지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사하였으니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새롭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소년 다윗이 전쟁터에 섰습니다. 상대는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입니다. 다윗이 가진 것이라고는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은 두터운 갑옷을 입고 칼과 창으로 무장하였습니다. 다윗이 이길 승산은 0%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결과는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골리앗과 같은 장애물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위협하는 강한 힘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낙심과 정말이 여러분을 정복하게 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로마 카톨릭교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카톨릭교회와 맞서 싸워 종교개혁을 이룬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어느 날 깊은 절망에 빠져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석에 누워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던가?' 후회하면서 종교개혁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밖에 나가 산보를 하고 돌아왔는데 루터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루터는 '아니, 그 사이에 누가 죽었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하나님께서 돌아가셨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요?' 그러자 루터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낙심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루터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면 나는 반드시 해 낼 수 있다.' 다시 한번 용기를 얻어 종교개혁을 완수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을 보고 '저 사람이 교회 집사라고 하는데 저렇게 낙심하는 것을 보니 아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나 봐.' 이런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계심을 확신하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 것을 믿고 다시 한번 힘을 내십시오. '저 사람은 저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쁨과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을 보니까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야.' 이런 소리를 듣도록 하셔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사업에 실패해서 좌절가운데 빠져있습니까?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 절망가운데 빠져있습니까? 여러분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이 말씀을 붙들고 새롭게 힘을 내어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 아들만 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귀여운 맛에 키웠는데 이제는 키도 저보다 크고 목소리도 어른 목소리가 되어서 징그러운 수준까지 갔습니다. 더욱이 머리가 굵어지더니 이제는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 자기들 하고싶은 대로합니다. 머리를 깎으라고 하면 길게 기르고, 머리를 기르라고 하면 중머리로 빡빡 깎아버립니다.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큰아들들이라도 밤에 자는 것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자는 방을 들여다보고 저 혼자서 공연히 웃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이 못난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비록 매일 하나님 속을 썩여드리는 못난 자식이지만 우리를 볼 때마다 흐뭇해하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나서 마음껏 세상 향락을 누렸습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지고 굶어죽게 되어서야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뭐라고 합니까?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다.' 그러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참으로 못난 자식, 아버지 재산을 다 팔아먹고 온 자식 때문에 아버지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사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사랑은 위대한 편견이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식이 가장 예뻐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 보이는 단점도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감추어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여러분을 못났다고 하고, 실패했다고 하고, 손가락 질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게 바라보십니다.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내가 너를 잠잠히 사랑하며, 내가 너로 인하여 소리를 지르며 기뻐한다.' 말씀하십니다.
이 못난 우리를 바라보시며 기쁨을 감추시지 못하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새롭게 힘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여러분으로 하여금 손을 늘어뜨리도록 만드는 낙심되고 절망하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죄를 한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곁에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며 힘있게 일어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