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사40:27-31)
본문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있으면 붙잡으려 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붙잡으면 빠져 죽습니다. 되는대로 아무 것이나 붙잡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잘 붙잡아야 합니다. 병이 났을 때에도 아무 병원이나 찾아가서는 안됩니다. 병이 중할수록 병원 선택도 잘 해야 하고 좋은 의사도 만나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사업이 어려운데 잘 되겠습니까 언제쯤 풀릴까요 이렇게 묻고 다니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그 어려움에서 구원함을 받는 길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왕들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아니하고, 우상 앞에 매달리거나 이방 나라 왕들을 의지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사야 31:1-3절에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 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살려고 하면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말라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려고 하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밤새도록 매달리며 전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를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18만 5천명의 원수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신 것입니다.
아사왕도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에는 승리했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스나라 왕이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의지함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어리석게도 왕의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침략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인 아람 왕에게 금은 보화를 바치면서까지 도움을 청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발에 심한 중병이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만을 의지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대하 16:12).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 주실 뿐만 아니라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평소에 늘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시편 27:4절과 63:1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 145:15-20절에 보면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33:18-20, 130:7절에서도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같이 있었던 우편 강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평생 강도짓만 하다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아 죽게 된 불쌍한 인생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5:21-22절에 보면 [나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여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시라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이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14:22절에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능히 비를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소나기를 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살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가 손해를 보고 불행을 당하기도 합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였고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한 사람뿐이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 4:27).
이스라엘에 이처럼 능력 있는 엘리사 선지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문둥이들 중에 나아만 이외에는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의지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고 나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옷에 손만 대도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향하여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5:25-3
4).
오늘 본문에 보면, 어찌하여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하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로 피곤함이 없고 곤비치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으로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되게 하시어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으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앙망치 아니함으로 구원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며 하나님을 붙잡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강해지며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치며 부르짖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의 곁에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시고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소경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리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6-52).
딸아이가 귀신이 들려 고통을 당하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마 15:21-28)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있었던 중풍병자는 사람들로 인해 그 집안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네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중풍병자의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고침 받은 중풍병자는 벌떡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걸어갔다고 했습니다(막 2:1-5).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러가는 것, 포기하는 것, 낙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히브리서 10:38-39장에 보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19-27절에 보면, 아들이 귀신들려 고통 당하던 아버지가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하실 수 있으면 해주시고 하실 수 없으면 그만 두시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믿음이 없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책망하시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이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그 아들에게 든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하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6:14절에 보면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하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놓치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시 25:3).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반드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앙망하시고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10 설교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성경미가서 6:6-8
제자들이 떡 가져 오기를 잊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저희에게 없었더라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그것이 육신의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고통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압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 그 안타까움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그 짐을 나누어지고 싶은데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을 대신 져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본인을 두고 걱정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정작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괴롭고 외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건강하게 자라났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년에 한번 정도는 몹시 앓는 때가 있었습니다. 고열로 인해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입맛조차 잃게 되면, 어머니께서 동네 약방에서 약을 지어오셨습니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병원은 생각도 못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먹을 수도 없었던 맛있는 것들을 사오셔서 제 머리맡에 두시고 어서 먹고 기운차리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맛있게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종종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병을 이긴다고 했습니다(잠 18:14).
그리고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어 얼굴을 빛나게 만들지만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만듭니다(잠15:13).
어떤 책에 보니, 사람은 암에 걸릴 위기가 하루에 5번씩이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건강하면 이것을 이겨낸다고 합니다.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암이 비켜갑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면 가장 먼저 입맛이 없어지고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됩니다. 영양분의 흡수가 안되면 간도 나빠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몸이 약해져서 병에 걸리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생리학 교수인 카논 박사와 카나다의 한스 셀리 박사는, 마음의 근심과 불안이 어느 정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다고 합니다. 수십마리의 쥐를 유리 칸막이가 있는 공간에 집어넣고 맛있는 먹이를 끊임없이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리벽 사이에 큰 고양이를 한 마리 넣어두었습니다. 서로 볼수는 있지만 고양이가 결코 쥐를 해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쥐들은 맛있는 음식을 잘 먹으면서도 항상 불안해 하는 것을 볼수 있었는데 얼마후 쥐들을 검사해 보니 모두가 십이지궤양에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이나 나옵니다. 1년은 365일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살면서 오늘도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염려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의 것을 염려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 더 크게 할수 있습니까 흰 머리를 검게 할수 있습니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다만 해가 될 뿐입니다. 건강을 해치고 신앙에도 해가 됩니다. 믿음이 약해질뿐만 아니라 불평불만이 생기고 불안과 초조로 마음에 혼란까지 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6:30-34절에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과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며 말씀을 선포하실 때마다 구름떼같이 몰려든 군중들을 보시고 그들의 배고픔을 염려하셨습니다. 굶주린 군중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열두바구니나 남게 하실 때도 있었고, 떡 7개와 생선 2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시고 7광주리나 남게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놀라운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셨으니 깨달았어야 했었는데 제자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겠습니까
1.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한 먹을 것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야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16절에 보면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동문서답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저 떡이 없다고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하신 바리새인이란 스스로 경건하게 산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로, 외식하는 자이며 이중인격자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위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그 많은 표적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구했습니다. 표적이나 기적의 기사는 믿음의 눈을 열어줄 때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헤롯당원은 사두개인으로 이 사람들은 부활을 부정하며 천사도 영도 없다고 말하고 내세도 심판도 믿지를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이며 물질주의자이고 정치적 야심을 키우는 정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본받지 말라고 주의를 주시기 위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자들의 관심은 떡에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 바로 며칠 전인데 이들은 건망증 환자처럼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가르셔서 육지같이 걸어갔는데 불과 사흘만에 먹을 물이 없다고 땅을 치며 모세를 향하여 원망불평했습니다. 어제의 기적은 어제 일로 끝난 것일뿐 그와 상관 없이 오늘의 문제를 안고 걱정하는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구약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입니다. 옛날의 기적이라고 옛날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기적을 얼마든지 행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알았다면 먹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믿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7:3).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기는 알았으되 확실히 알지 못했고 희미하게 알았습니다.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알송달송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둡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해주는 것은 성령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부족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또 믿음으로 구원 얻은 것은 우리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빛이 우리의 어두운 영을 밝혀주십니다. 성령이 충만한 만큼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이 오는 만큼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믿어지고 큰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야 모든 것을 밝히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에게 잡혀죽을까봐 벌벌 떨었으나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일이 생겨도 염려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기쁨으로 순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가 충만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관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도 예수님을 몰라서 그랬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들이 눈으로, 귀로 직접 예수님을 보고 들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모른 이유는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것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10절에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여,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 부족하고 깨닫지 못해서 항상 세상 염려가 떠나지 아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를 다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모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생을 얻었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으며 무엇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날마다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0:27-29).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3).
이처럼 우리가 장차 갈 곳도 예비해 놓으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먹어야 할 일용할 양식도 이 땅에 예비해 놓지 않으셨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참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 여러분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심령은 병을 능히 이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늘 깨어 기도하고 찬양 중에 산다고 하면 모든 병을 다 이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 되어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고 심령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근심을 떨쳐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 안에서 살려고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자는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영도 육도 건강해질 것이며 만사형통의 축복이 찾아올 줄로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24 설교흉년이 들었을 때 성경흉년이 들었을 때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과연 자신을 누구로 알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답하기를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제자들을 향하여 물으셨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주님이 메시야요 주님만이 나의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동일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믿는다고 이렇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도대체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지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하여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떠한지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잠수부가 바닷속에 들어갔을 때 5미터 들어가면 5미터 바닷속까지만 알 수 있고, 10미터 들어가면 10미터의 바닷속까지만 알 수 있듯이 각 사람의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 아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1.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한 능력과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지식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라도 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조금도 거짓이 없으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없으시고 거짓이 없으시며 악함이 없으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여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할 정도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믿을수록 좋으신 하나님이 됨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인자하고 좋으신 아버지같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너무 너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하며 감사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게 생각하시고, 더 좋게 해주시며, 나에 대한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도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3.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으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저는 어린시절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후회되는 것은, 그 때는 솔직히 하루도 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괜히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좋은 것으로 준비해 놓으셨고 한 번도 예외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미리 쓸데없는 걱정을 끌어다 한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천지만물을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4.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느끼는 만큼 행복해지고 깨닫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성경을 읽다가,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어찌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사랑이기 때문에 베푸는 사랑이고 주는 사랑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면서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며 필요하면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이든 건강이든 무엇을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것이며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신명기 10:13, 6:24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심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게 되어 있고 행복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복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한없이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러한 깊은 뜻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면 결국 복도 받지 못하고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저주 가운데 불행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살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저주 가운데 하나가 기근의 저주입니다.
신명기 28:23-24절에서 [네 머리 위로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고 하셨듯이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으므로 해서 기근의 흉년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7절 이하에 보면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기근의 저주로 인하여 유순하고 연약한 아비와 어미일지라도 가만히 자식을 잡아먹는 흉칙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아합왕 때 3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큰 흉년이 들고 기근이 왔을 때 이루어졌고, 이스라엘 왕 여호람때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하실 때 감사하며 드리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므로 저주를 받게 된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강팍하여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칼과 기근과 온역을 내리겠다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적의 침입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흉년이 와서 먹을 것이 없는 기근이 오며, 이름 모를 전염병이 도는 저주가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이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셨는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치는 전쟁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것이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빈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이러한 말세의 징조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흉년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실 때도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 바로의 꿈을 해몽함으로 애굽나라에 총리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꾼 꿈은 7년 동안의 풍년 후 이어서 7년 흉년이 온다는 앞날에 될 일을 보여준 꿈이었습니다. 이 꿈대로 요셉은 창고를 늘려 짓고 흉년을 대비하여 양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심각한 흉년으로 인해 애굽에까지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 때문에 그리운 형제와 아버지 야곱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친척들이 애굽으로 이주해 와서 400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성취입니다.
창세기 15:13-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흉년이 들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큰 축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 시대에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이제 남은 한끼 식량을 아들과 같이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의 말대로 자신들이 먹지 않고 선지자를 먼저 대접함으로써 흉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흉년이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흉년의 때였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그랄지방에 머물렀습니다. 양을 치며 살았던 이삭이었지만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이방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의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 부해지고 가난해지는 것, 죽고 사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흉년이나 기근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영적기근입니다. 아모스 8:11-13절에 보면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영적기근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습니다(삼상 3:1).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심으로 하나님과의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아니하심으로 강팍한 심령을 가지고 죄만 짓다가 지옥의 멸망을 당하는 것이 물질적인 기근보다 더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흉년이 오고 기근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고 은혜가 풍성하기만 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흉년이 왔을 때 우리의 할 일은 회개하는 일과 간구하는 일입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풍성할 때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감사할 줄 모른 것을 회개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스스럼 없이 쓰면서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는 인색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난이 온 것은 기도하라는 싸인인 줄 알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응답 받고 해결됩니다. 체험적인 신앙이 생기며, 믿음이 좋아지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은혜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이삭이 받은 축복이 우리의 복이 되고, 요셉이 받은 축복이 우리의 복이 되며, 사르밧 과부가 받은 복이 우리의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17 설교너는 내 것이라 성경출애굽기 13:11-16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 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장래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 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약 성경 이사야 43: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너는 내 것이라]고 특별히 말씀하신 이유는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를 죄에서 구속하였으며,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너와 함께 하여 주겠다는 축복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함께 할 것이며, 강을 건널 때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불 가운데로 행할 때도 타지 아니할 것이며,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가 될 것이며,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구별된 백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류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축복이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축복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떤 복보다 더 큰복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와 받을 복을 신명기 7:6-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잘나서거나 또는 다른 어떤 민족보다 특별나서도 아니며 더구나 그들의 수효가 많아서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바 [너와 네 자손이 복을 받으리라],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 [나는 너와 네 자손의 하나님이 되고 너와 네 자손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맹세를 절대로 어기지 아니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33:29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실수할 때도 많고 바르게 살지 못해 부끄러울 때도 많으며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으로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8장과 9장에 보면 [더러운 파리의 재앙], [생축에 악질이 생겨 죽게 되는 재앙] 또는 [우박의 재앙]이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는 땅에는 그러한 재앙들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흑암의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옆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흑암이 덮여 온 세상이 깜깜했으나, 고센 땅만은 광명이 가득하여 대낮같이 밝았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애굽에 [장자의 재앙]이 있었을 때 애굽에는 장자와 심지어 생축의 처음 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음이 왔으나,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그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구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며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택자와 불택자를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번째 유월절 에 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된 장자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와 생축의 초태생은 언제나 하나님의 소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죽었어야 할 아들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므로 하나님의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택하시고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었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4:21절에서 택한 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나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 중에서 특별히 택하실 때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찬송을 받으시며 종으로 증인으로 세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은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함을 얻게 하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 양으로 구원받은 장자나 짐승의 초태생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29절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5:7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택함 받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마귀에게 팔리운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고전 6:20).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죄값으로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라는 것입니다. 살아있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가지고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평생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믿지도 않으며 옛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다 된 줄 아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이 사실을 깨달았고 로마서 14:7-8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가 없나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맏아들로 삼으셨습니다. 맏아들은 유월절에 구원받은 장자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얻은 성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얻게 하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고 예수님처럼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창세전에 택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딛 2:14).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구별하여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고전 10:31).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 주시고, 유월절 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남은 여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10 설교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성경미가서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국의 정신건강협회에서 얼마전까지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고 말해왔으나, 이제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 깃든다]고 발표하면서 행복한 생애를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너그러워지라.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매사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몸에도 좋다고 했습니다.
둘째,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부심을 가지라.
남들의 비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넷째,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라.
후회란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기쁘고 즐겁게 살라.
살다 보면 매일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 때에 바람직한 원칙이라고 생각됩니다. 참 행복은 기쁨에 있습니다. 행복은 얼마나 돈이 많고 얼마나 지위가 높으냐에 있지 않습니다.
또 명예와 권세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쁨으로 사는 자에게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금방 싫증이 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이 주는 기쁨은 많은 죄를 범하게 만들고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쁨만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이들의 웃음 뒤에는 슬픔이 있고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낙은 무엇이든 다 찾아 해보았지만 결코 만족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낙을 열심히 추구하느라 죄도 많이 범했습니다. 솔로몬은 더 이상 추구할 낙이 없게 되자 살아있다는 자체를 한스럽게 생각하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전 12:8).
이처럼 세상이 주는 기쁨은 불완전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후회가 없습니다. 전도서 2:24절에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고 사람마다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했습니다(전 3:12-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떤 형편에 놓여도 항상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되 일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드리면 기뻐하실까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엄청난 기름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드리면 기뻐하실까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리면 기뻐하실까 하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도 혹 잘못 생각하면 교회에 나와서 무슨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예배에 몇 번이나 참석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헌금을 얼마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 얼마나 예배를 많이 드리느냐,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느냐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드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제물만이 아닙니다. 제물보다 먼저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 이유를 요한일서 3:12절에서 사도 바울은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되어 쌀을 천 가마, 만 가마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제사를 하루 열두번 드린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악한 자의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십니다. 이처럼 악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잠 15:8).
이사야 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슬퍼하십니다.
그들은 오만가지 죄를 다 지으면서 아울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서 하나님을 더욱 더 괴롭혔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1.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의로 행하고 자비를 베풀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한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 미가 선지자가 살고 있었던 시대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남의 것을 착취하며, 부정과 부패가 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더구나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기 때문에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고,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라고 했습니다(미 7:5-6). 어쩌면 지금의 우리나라 실정과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6:5-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는 노아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이처럼 부정 부패가 심한 사회에서 공의를 행한다고 하면 노아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마 12:7). 다시 말해서 악독한 짓을 하면서 아무리 제사를 많이 드리면 무엇하겠습니까 제사를 드리기 이전에 세상에 나가서 자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33-36절에서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 4:30-32).
미국의 뉴욕 시장까지 지낸 라과디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뉴욕시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라과디아는 빵을 훔치려다가 붙잡혀 온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빵을 훔쳤소 노인은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빵 가게 앞을 지나가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저도 모르게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이 늙은이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장내는 불쌍한 노인의 울먹임으로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노인의 답변을 묵묵히 듣던 라과디아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죄는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벌금 10불을 언도합니다. 그리고난 후 라과디아는 자신의 지갑에서 10불을 꺼내 놓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 벌금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저 노인이 허기진 배를 감싸쥐고 뉴욕의 거리를 비틀대고 다닐 때, 나는 좀더 좋은 음식을 찾아 배부른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그 벌로 내가 10불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 여러분 중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분이 계시다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벌금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장내에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 47불이 모금되어 즉시 가난한 노인에게 건네졌습니다. 이에 감격한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법정 문을 나섰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도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본 받는 것이며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보다 바르게 살 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또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사는 생활이 세상에 알려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심지어 남보다 특별한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에 더욱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 같은 경우 계시를 많이 받고 삼층천에 올라갔었고, 죽은지 14년 된 사람을 만나보고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보내어 사도 바울의 육신을 쳐서 병들게 함으로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은혜받은 것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보다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모든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모릅니다. 남들의 충고도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더구나 책망 조차도 받지 않게 되면 자신의 허물을 더더욱 깨닫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알고 부족을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인줄 알아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음을 늘 고백하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03 설교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새해 성경로마서 8:26-30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늘은 1999년 1월 3일로 신년 새해 첫 번째 맞는 주일입니다.
저는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앞날에 대하여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해에는 아무 일이 없을까 어떤 환난이 있을까 경기가 좀 나아질까 사업이 잘 될까 직장엔 별 탈이 없을까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앞 날에 대한 불안으로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앞으로 될 일을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은 물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될 일도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잘 되게 하시면 잘 될 것이고 잘 안되게 하시면 잘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시면 건강할 것이요 죽을병에 걸렸어도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살게 됩니다. 이처럼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삽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경 말씀을 믿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이 말씀이 적용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로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한 때는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으며, 실패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더 좋게 되고 더 잘 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 떤다고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귀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절대자인 신을 부르며 의지하고 복을 달라고 기원합니다. 사업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자식이 좋은 학교에 합격하게 해 달라고 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 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과 정비례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곧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왜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돈 만큼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죄를 버리지 못합니까 그 죄를 사랑하는 만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 죄를 택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중에 어느 편을 택하는냐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좋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끔찍이 사랑했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함으로서 그의 믿음을 보여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행 13:48).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믿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그 일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참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100% 불가능하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 그대로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이 무엇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보내주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음도 믿습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도우시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음도 믿습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 홀로 설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인격도 부족하고 믿음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여 기도하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되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의롭다고 하신 성도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죄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했습니다(사 55:11, 40:8).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이 세상 무엇으로도 결코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35-39절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에게 원치 않는 환난이나 기근이나 여러가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29절에 보면 그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이 땅에 살면서 근심걱정이 없고 무병장수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은혜를 많이 받아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창세전에 택해 주시고 불러주시고 믿게 하시어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모습 그대로 두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이 예수님처럼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때때로 환난도 허락하시고 고난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도 많이 벌고 사업도 잘 되고 자손들도 잘 풀렸는데, 그만 그 자신이 예전보다 더 타락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 축복은 결코 잘 된 일이 아닙니다. 더 잘될수록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일입니다. 욥은 일찍이 이 사실을 깨닫고 욥기 23:10절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8:10-11절에서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올 한해 어떤 환난이 올지, 기근이 올지, 곤고가 올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목적대로 결국에 가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결과가 올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큰 고통을 더 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등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38:17).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나 고통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어느 누구도 우리의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7, 21:18).
그러므로 욥이 사단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단 마음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사야 45:5-7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금년 한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범사에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공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서 건강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12/20 설교제목 /사랑과 미움 성경마태복음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치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세 종류로 나누어 볼 때,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고 미워해야 할 대상이 있으며, 사랑의 대상도 미움의 대상도 되지 않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사단과 죄는 미움의 대상이며,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또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하나님보다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마땅히 미워해야 할 사단과 죄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면
1.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가 진작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사신우상을 섬기는 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므낫세도 나중에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줄 깨닫고 비로소 사신우상을 때려부수고 온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으냐 좋지 않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라면 무엇을 드려도 아까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도 외면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일에 매우 인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신실하시며 사랑이 많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지 아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화가 있고 분쟁이 있으며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납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원수라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들을 너무나 아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수로 인해 미움이 가득하면 가득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지옥이 되고 따라서 심적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용서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좋으라고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먼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TV나 신문 보도를 통해 포악한 짓을 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인간이 어째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을 욕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포악한 짓을 한 그 사람의 죄를 미워해야지 그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죽이려고 둘러선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는 고로 모두 다 집었던 돌을 놓아두고 물러갔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간음한 이 여인을 향하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고 물으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돌려 보내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만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가 똑같은 죄인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에 반기를 들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 그 동네에 소문난 죄인 여자 하나가 향유를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만약 선지자였다면 자기를 만지는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여자 곧 죄인 인줄을 알았을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물론 그 여자는 동네에서 행실이 좋지 않아서 손가락질을 받아 왔던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고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컷기 때문에 200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눅 7:36-50).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인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욱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약속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벧후 3:9).
악인이 만일 죄에서 돌이켜 떠나 의를 행하게 되면 그 사람이 과거에 범했던 모든 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고 현재 행하는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돌이켜 죄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겔 18:21-23).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마귀의 형상을 닮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점점 더 닮아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5:48).
첫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야 합니다.
레위기 11:45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1:15에서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4가지 있습니다. [스톨게]는 가족간의 사랑을 말하고, [에로스]는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며, [필리아]는 친구간의 또는 이웃간의 우정을 말하고,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며 목숨까지도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43-47절에 보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징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 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심지어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인과 이방인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를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요 13:34-35).
3.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하나님이나 사람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보다 더 사랑할 만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딤후 3:1-40). 그러다 보니 신앙과 인격과 양심까지도 파괴되어 부모와 형제까지도 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고 모든 인간들의 사랑이 식어져서 불행하게 된 원인이 바로 돈이나 명에나 권세를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꿈속에서라도 하나님보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사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여져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단과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설령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미워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믿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이렇게 살 때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질 것이며 이 세상은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12월 18일자
홍해로 인도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14장 15-25절>
본 문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뒤로 옮겨 애굽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아주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번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이 즉시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속에 의심이 들 때도 있고 아주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정하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장 이루어질 것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떤 때는 몇 년후, 혹은
몇 십년후, 심지어 몇 백년 후에 이루어질 일들을 미리 말씀하실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축복의 말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십년, 이십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나이는 점점 많아져 갔고
경수조차 끊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임신을 할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사라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기다리던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요, 사라의 나이가 90세 였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했지만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속상하고
답답하고 혹 마음에 의심이 일어날 때에도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찾는 자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마다 종살이에 시달리며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본 지도 이미 오래 전의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고 하나님의 계명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듯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자기들의 땅으로
만들 가능성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니 마침내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와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동안
처가살이를 하며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그 어떤 비젼도 양치기 모세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함께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출 13:21-22).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지름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멀고 험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길은 홍해를 건너 광야 길을 돌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도 많을 터인데 어떻게 홍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겠으며, 더구나 바로와
신하들이 마음이 급변하여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놓아주었는지 후회되어
그들을 추적할 병거를 거느리고 황급히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애굽 군대를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3:17-18절에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통과하면 불과 몇 주만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는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고이
보내주겠습니까 아마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전쟁을 두려워하여 종살이하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가까운 길을 놓아두시고 홍해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홍해 길이 더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뒤따르고 있으니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떨며 모세를 향하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하면서
원망불평 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외친 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군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시더니 곧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애굽 진 쪽은 구름과 흑암으로 그들의 발을 묶어두셨고
이스라엘 진 쪽은 대낮같이 광명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이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고 했습니다(출 14:21-30).
우리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힌다고 해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싸인만 있으면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로 인도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과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또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 길로 인도하시며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격을 때마다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신
이유가 있습니다.
1. 믿음이 없이는 그 무엇도 축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의 풍요가 결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돈이
오히려 타락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축복보다 먼저 받아야 할 축복은 믿음의 축복이었습니다. 믿음이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홍해
길로 인도하시고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믿고, 또 쉽게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를 십 년, 이십 년
다니고 있지만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을 가지기까지 해산의 수고와 같은 많은 수고를 거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사업이 어려운 분이 계십니까
부도가 나서 죽고 싶을 만큼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도 계십니까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얻으면 가장 귀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더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어려움이 훗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도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삶의 변화가 없이는 가나안 땅이라도 축복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5:22-26절에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뒤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쓴 물도 단 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무슨 병인들 못 고치시겠습니까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병이라도 치료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모든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먼저 삶의
변화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그 동안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사야 45:2-3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꺽고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싸인이 없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어도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어려운 이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좋은
성전 터를 계약하게 되었고 30%의 땅 값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 저는 기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홍해 길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넘을 수 없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홍해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큰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성전을 속히 짓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성전을
짓고 또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 앞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세상만 바라보거나 지금의 형편만 바라보고 불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순종만 하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만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가든지 광야 길을 가든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믿고 신뢰하고 감사하면서 묵묵히 그 길을 갔었다면 그들이 얼마나 축복을
받았겠으며 또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겠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 저와
여러분은 더욱 더 은혜를 받고 믿음이 좋아지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39장 1-6절>
본 문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문제는 성공과
행복에 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하고,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 입시에
성공하는 비결,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 건강 관리에 성공하는 비결, 행복한
일생을 사는 비결.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들이 말하는
비결은 완전하지 못하며 실천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과 참 행복의
비결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만이 성공과 행복의 정답을 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모든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고],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골로새서 3장 1-4절>
본 문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는 자들을 가르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이미 과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고, 현재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이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야 했던 옛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중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생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다시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옛 사람의 행실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싶다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서도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었다고 하는 말은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뜻이 있고 또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처럼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죄를
지었고 말못할 부끄러운 일이 많이 있었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어 죄를 회개함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면 더 이상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완전히 옛날에 행하던 죄와 허물은 다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옛 사람이 죽음으로서
시작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참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그 사람의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계셔서 언제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며, 성령이 오시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요 14:16-17).
고린도전서 3:16-17절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성령이 계신 집]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멸하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6:15-20절에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셨으며 구원받은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흘리신 그 피
값으로 지불하고 사신 몸입니다.
그러므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장차 큰 환난이 있을
터인데 창세 이후로 없었던 큰 환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환난의 기간을 단축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택한 백성일지라도 살아남을 자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환난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환난 후에 예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십니다. 이 때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온 세상 사람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고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말로만 듣던 예수님이 과연
살아계시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실제로 봤으니 이제는 자신들이 갈 지옥을 생각하고 통곡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기뻐 뛰며 즐거워하고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때 과거에 죽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그때 직접 예수님을 맞이 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 앞서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예수님을 맞이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십시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1-2절의 말씀처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위를 바라보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에 살면서도
관심은 하늘나라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는 거부로 큰 성을 쌓고 살수도 있고
대궐같은 집을 짓고 살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장막에 거하며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천년 만년 이 세상에 사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본향 집을
바라보며 살아간 것입니다(히 11:9-10).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위를 바라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더구나 홍해 바다를 건너가야 할 때에도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셔서 먹고사는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으며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를
쳐다보기 보다 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원망불평하며 40년의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는 사람들로부터 돌 세례를 맞아 죽을 때 돌을 들어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머리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스데반은 기쁨이 충만하였고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노아도 위를 바라보고 산 사람입니다.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방주는 맨 위쪽 지붕에 창을 하나만 내도록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창 외에는 어디에도 창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방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일들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까 봐 아예
세상 쪽은 보지도 못하도록 천장 쪽으로만 창을 내도록 설계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늘만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위기를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상만
바라보면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우리의 관심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씀했습니다(고후 4:18).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요 신령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은 우리에게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타락하게 되고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죄의 노예가 되고 악마의 종이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 낙의 결말은 다 이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를 바라보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되면 은혜 가운데 살게
되고 우리의 신앙은 건강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은혜가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기쁨과 평강이 넘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신령한 낙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우리의 관심이 하늘 보좌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 보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우편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과 이 세상의 흥망성쇠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이 됩니다.
3우리의 관심은 미래에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영광 중에 맞이
할 수 있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환난을 이기게 되고
악마와 싸워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흠과 티와 책망받을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
본 문 /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는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신약 성경에서는 [.하라]는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 [화평하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라고
하신 말씀들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하라] 또는 [하지 말라]고 명하신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신 6:24,
10:13).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감사함으로 얻게 되는 축복이 참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얻게 되는 축복은 이렇습니다.
1. 신앙적으로 큰 축복이 됩니다.
범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신앙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범사에 늘 감사하게 되면 더욱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7:11-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실 때 열 명의 문둥이가 멀리
서서 자신들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 다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보시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감사함으로서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구원의 복까지 덤으로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때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원망불평할 때 악령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생활을 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니엘서 6:10절에 보면,
다니엘도 역시 대단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경우를 당했더라면 얼마나 두렵고 떨리며 이 자리를
떠나야 하느냐 아니면 기도생활을 잠시 연기해야 하느냐 여러 가지로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예전처럼 기도하면 붙잡혀
사자 밥이 될 것을 알고서도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이 내게 가장 좋은 길이요 가장
복된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롬 8:28).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감사를 합니다. 저 사람의 처지보다 내가 낫기
때문에 또는 이전보다 내 형편이 좀 나아져서 혹은 배가 몹시 고팠는데 먹을 것이
생겨서, 예전엔 춥게 살았는데 이제는 형편이 나아져서 따뜻하게 살게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면 곧 감사할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그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 죽어도 감사하고 살아도 감사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 감사는 인격적으로도 축복이 됩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인격적으로도 사랑을 받게 되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라고 했습니다(고전 10:30). 그렇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욕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은 모두가 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R.A 토리 박사가 LA에서
설교할 때 이런 예화를 들었다고 합니다. 미시간 호수에 배가 침몰하였는데 어떤
청년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23명을 구출하였던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난 후 머리가 히끗히끗한 분이 목사님 앞으로 다가와 목사님께서 예화로
드신 그 당시의 청년이 바로 자기였다고 소개했습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리 목사님께서 그 분에게 특별히 할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말하기를 구출한 23명 중에 자기를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섭섭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감사해야 할 일에 소홀히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감사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좋은 언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는 좋아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더구나 윗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매우 꺼려합니다.
마치 자신의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면서 살아보세요. 그 사람의 인격이 존중히 여김을 받게
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 대신에 원망불평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격이 아주 추해집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컸다. 그러나 그 때마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며
자라났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지만 감사의 표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배경도 있었다. 나를 도와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충분히
감사를 표현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감사의 표현은 잠시도 주저하거나 보류해 둘 것이 아니다. 그 때 그 때 바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좋은 충고입니다. 저도 서둘러 감사해야 할 분에게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3. 감사는 육체적으로도 축복이 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 육체도 건강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따라서 소화도 잘 되고 혈액순환도 잘 됩니다. 그러나 원망불평하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기분도 우울해지고 마음도 편치를 않으며 따라서 소화도 안되고 혈액순환도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여러분! 스티븐 호킹 박사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세계적인 장애인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뇌성마비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그 병에 걸리면 보통
생존 기간이 2년밖에 안되는 불치의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호킹 박사는
놀랍게도 10년, 20년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너무나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분의 머리가 너무 좋고 아주 훌륭한 과학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한
재벌은 그에게 8000만 불이나 기증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시간과
역사]라는 책에서 나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또 그 힘 때문에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힘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록된 기사 중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에비 로빈슨이라는
트럭 운전사는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다쳐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저녁마다 자신의 집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오늘까지
살려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기도를 날마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3개월만에 시신경이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칼. 힐티의 행복론에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썼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생기가 돌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서 점점 더 건강해지고 젊어지지만 원망불평이
많은 사람은 빨리 늙는다는 것입니다. 원망불평은 병을 생기게 하고 감사는 병을
낫게 합니다.
일본 해군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귀국하여 오랫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으리 만치 피폐해 있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다행히 정신치료가인 후찌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찌다씨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억지로라도 만 번씩 하라고 시켰습니다. 기이찌는 자리에 누운 채로 하기 싫었지만
낫기 위해 매일 밤 계속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감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 감 잡수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이미 그가 매일 계속해서 감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감사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자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졌다고 합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로 감사가 되어 감사로 불치의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4. 감사는 물질적으로도 축복이 됩니다.
토리 박사는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있으면 형통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쉽게 진행됩니다. 마치 기계에 기름을 치면 잘 돌아가듯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쉽게 풀립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모든 일이 꼬이기
쉽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소스톰 [환난과 슬픔
속에서도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신대륙을 찾아 나선 청교도들이 메이훌라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에 절반 이상이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생이 심했습니다.
도무지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금식기도를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그들은 금식기도에 관하여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농부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고 했지만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식량이 풍족하지 않고
여건이 저 유럽보다 못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또
우리 앞에는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 광활한 대지가 열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금식 대신에 감사의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농부의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금식기도 주간
대신에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 주일의 기본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장 부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행복이란 감사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감사의 말을 하면서
감사의 생활을 하는 자에게 참 행복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항상 원망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불평만하면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입술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깨달음이 옵니다. 내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게 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실낙원]을 쓴 죤. 밀턴은 44세때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은 주께서
내 시력을 어둡게 하시고 주님만 볼 수 있도록 속 눈을 열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감사가 아닙니다. 그는 비록 육안은 어두워졌지만
영안을 열어주셔서 주님만 볼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력을 잃어버린 후에 오히려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이
깨닫고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물질을 얻지
못했어도 신령한 것을 얻었고,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습니다. 이 땅에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것 가장 귀한 것을 소유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는 심신의 병을 고치는 특효약입니다. 이 한마디 말
속에 인간이 지녀야 할 온갖 미덕 즉 사람, 온유, 겸손, 친절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하는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면 축복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감사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환난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감사함으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로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5장 25-32절>
본 문 /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 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애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마태복음 21: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큰아들을 불러서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해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큰아들은 예, 가서 일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정작 대답만 예! 해놓고 실제로는 포도원에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작은아들을 불러서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그 자리에서 싫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조금 후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뉘우치고 스스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큰아들과 작은아들 중 결과적으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한
자입니까 작은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비유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옵니다. 탕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의 재산 중에 나에게 상속될 분깃을 미리 달라고 졸랐습니다. 이 집처럼
아들이 둘이면 큰아들에게는 3분의 2를 주고, 작은아들에게는 3분의 1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말대로 그 아들 몫의 재산을 미리
주었습니다. 신이 난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모두 들고 먼 나라로
이민을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도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남의 집의
품군으로 들어가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픈 배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라도 실컷 먹고 싶었으나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아버지 집에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하고 수 많은 품군들이 배불리 먹고 일하고 있을
터인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구나.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을꼬 라는 자기
한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들은 결심을 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굶어죽느니 이제라도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용서를 빌고 아들이 될 자격도 없으니
그저 품군의 하나로 써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작은아들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탕자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하며 죄 가운데 살다가
뒤늦게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나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 번 택하신 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자는 살
길이 열립니다.
한편 집을 떠난 아들이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문밖에 나가 서
계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거지꼴을 하고 힘없이 걸어오는 아들을 발견하고서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한 걸음으로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 때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나를 품군의
하나로 써 주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시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시고 발에는 새 신을 신겨주셨습니다. 이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베풀며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며
잃어버렸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아버지의 마음이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며,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 밖에 서 계시는
아버지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 맞이해
주시던 아버지처럼 기쁨으로 받아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으며 아모스 5:4절에서도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아직은 안 된다고 하며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정리하고 나서 교회에 나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를
다 끊고 교회에 나오기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더러운 죄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입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하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회개란
1.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살던 사람이 돌이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아버지가 명했을 때 싫다고 대답하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갔지만 뒤늦게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한 작은아들처럼
돌아온 탕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과거 하나님의 곁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았던 것을 후회하며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몇 배로 충성하며 사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큰아들이 문제입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열심히 아버지 집에서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탕하게
살던 동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 따끔하게 혼내주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동생이
돌아온 것을 환대하며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마음이 상한 그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문밖에 서서 불평을 했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나오셔서 얘야! 네
동생이 살아 돌아왔다. 어서 들어가서 함께 먹고 즐기자.라고 하면서 잔치에 같이
동참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여!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긴 일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서 나와 내 친구들로 즐겁게 해
주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다 써버린 이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정말 섭섭합니다. 라며 투덜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섭섭해 하는 아들에게 얘야,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자의 형도 역시 효자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집을 나가서 속을 썩인 탕자였고, 큰아들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불효자였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재산의 3분의1은 이미 동생에게
주었으니 나머지 3분의 2는 모두 다 자신의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염소새끼를
주었느니 안 주었느니 따질 것이 있습니까 또 아버지의 명을 어긴 일이 없다고
당당하게 대들었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는 것이 자식된 도리로 당연한 것이지 그것이 무슨 공로가 된다고 아버지
앞에서 큰 소리를 칩니까 더구나 집을 떠나 소식도 없는 작은아들 때문에 항상
걱정이 많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나 몰라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지께서 날마다
동생을 기다리며 문밖에 서서 계시는 것을 보았다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우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제 동생에
대하여 무관심했습니다. 집을 나간 이 동생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또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너무 기쁘고 좋아서 잔치까지 벌려가며
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동생에게 너무 잘해주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원망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아들도 역시 불효자요 탕자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런 큰아들과 같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녀들을 생각하시며 하루 속히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만
기뻐했지 하나님 아버지의 이러한 애 타는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또 그들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이제
교회를 찾아 나온 사람들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왔나보다
덤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그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고 또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누구나 이 두 아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나가 안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탕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그렇게 세상에 빠져 살지는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고 하나님의 집을 떠난 형제들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더구나 뒤늦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는 잘못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녀는 많이 있으나 효자 효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노라 하는 사람은 많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효자신자는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 탕자가 아니면 탕자의
형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천국시민등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보려고 하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에서 이런 운동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전도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가복음 16:15절에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8:19-20절에서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디모데후서 4:2절에서도[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은 반드시 해야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는
길은 직접 전도하고 선교를 하든지 아니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귀한 종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고 생활비를 보내주며 물질로 도와서 복음전하는 이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함께 상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매주 두 차례씩
노숙자들을 위해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수고하며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직접 도와서 하지 못하면 기도로 동참해 주시고 쌀
한 부대라도 보내주셔서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사는
자는 백 배의 복을 받으리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영혼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셔서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효자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사업이 어려운데 잘 되겠습니까 언제쯤 풀릴까요 이렇게 묻고 다니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그 어려움에서 구원함을 받는 길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왕들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아니하고, 우상 앞에 매달리거나 이방 나라 왕들을 의지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사야 31:1-3절에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 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살려고 하면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말라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려고 하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밤새도록 매달리며 전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를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18만 5천명의 원수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신 것입니다.
아사왕도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에는 승리했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스나라 왕이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의지함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어리석게도 왕의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침략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인 아람 왕에게 금은 보화를 바치면서까지 도움을 청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발에 심한 중병이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만을 의지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대하 16:12).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 주실 뿐만 아니라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평소에 늘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시편 27:4절과 63:1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 145:15-20절에 보면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33:18-20, 130:7절에서도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같이 있었던 우편 강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평생 강도짓만 하다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아 죽게 된 불쌍한 인생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5:21-22절에 보면 [나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여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시라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이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14:22절에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능히 비를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소나기를 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살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가 손해를 보고 불행을 당하기도 합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였고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한 사람뿐이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 4:27).
이스라엘에 이처럼 능력 있는 엘리사 선지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문둥이들 중에 나아만 이외에는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의지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고 나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옷에 손만 대도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향하여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5:25-3
4).
오늘 본문에 보면, 어찌하여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하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로 피곤함이 없고 곤비치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으로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되게 하시어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으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앙망치 아니함으로 구원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며 하나님을 붙잡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강해지며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치며 부르짖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의 곁에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시고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소경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리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6-52).
딸아이가 귀신이 들려 고통을 당하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마 15:21-28)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있었던 중풍병자는 사람들로 인해 그 집안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네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중풍병자의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고침 받은 중풍병자는 벌떡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걸어갔다고 했습니다(막 2:1-5).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러가는 것, 포기하는 것, 낙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히브리서 10:38-39장에 보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19-27절에 보면, 아들이 귀신들려 고통 당하던 아버지가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하실 수 있으면 해주시고 하실 수 없으면 그만 두시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믿음이 없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책망하시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이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그 아들에게 든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하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6:14절에 보면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하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놓치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시 25:3).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반드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앙망하시고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10 설교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성경미가서 6:6-8
제자들이 떡 가져 오기를 잊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저희에게 없었더라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그것이 육신의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고통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압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 그 안타까움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그 짐을 나누어지고 싶은데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을 대신 져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본인을 두고 걱정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정작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괴롭고 외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건강하게 자라났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년에 한번 정도는 몹시 앓는 때가 있었습니다. 고열로 인해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입맛조차 잃게 되면, 어머니께서 동네 약방에서 약을 지어오셨습니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병원은 생각도 못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먹을 수도 없었던 맛있는 것들을 사오셔서 제 머리맡에 두시고 어서 먹고 기운차리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맛있게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종종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병을 이긴다고 했습니다(잠 18:14).
그리고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어 얼굴을 빛나게 만들지만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만듭니다(잠15:13).
어떤 책에 보니, 사람은 암에 걸릴 위기가 하루에 5번씩이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건강하면 이것을 이겨낸다고 합니다.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암이 비켜갑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면 가장 먼저 입맛이 없어지고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됩니다. 영양분의 흡수가 안되면 간도 나빠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몸이 약해져서 병에 걸리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생리학 교수인 카논 박사와 카나다의 한스 셀리 박사는, 마음의 근심과 불안이 어느 정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다고 합니다. 수십마리의 쥐를 유리 칸막이가 있는 공간에 집어넣고 맛있는 먹이를 끊임없이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리벽 사이에 큰 고양이를 한 마리 넣어두었습니다. 서로 볼수는 있지만 고양이가 결코 쥐를 해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쥐들은 맛있는 음식을 잘 먹으면서도 항상 불안해 하는 것을 볼수 있었는데 얼마후 쥐들을 검사해 보니 모두가 십이지궤양에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이나 나옵니다. 1년은 365일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살면서 오늘도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염려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의 것을 염려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 더 크게 할수 있습니까 흰 머리를 검게 할수 있습니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다만 해가 될 뿐입니다. 건강을 해치고 신앙에도 해가 됩니다. 믿음이 약해질뿐만 아니라 불평불만이 생기고 불안과 초조로 마음에 혼란까지 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6:30-34절에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과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며 말씀을 선포하실 때마다 구름떼같이 몰려든 군중들을 보시고 그들의 배고픔을 염려하셨습니다. 굶주린 군중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열두바구니나 남게 하실 때도 있었고, 떡 7개와 생선 2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시고 7광주리나 남게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놀라운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셨으니 깨달았어야 했었는데 제자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겠습니까
1.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한 먹을 것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야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16절에 보면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동문서답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저 떡이 없다고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하신 바리새인이란 스스로 경건하게 산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로, 외식하는 자이며 이중인격자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위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그 많은 표적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구했습니다. 표적이나 기적의 기사는 믿음의 눈을 열어줄 때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헤롯당원은 사두개인으로 이 사람들은 부활을 부정하며 천사도 영도 없다고 말하고 내세도 심판도 믿지를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이며 물질주의자이고 정치적 야심을 키우는 정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본받지 말라고 주의를 주시기 위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자들의 관심은 떡에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 바로 며칠 전인데 이들은 건망증 환자처럼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가르셔서 육지같이 걸어갔는데 불과 사흘만에 먹을 물이 없다고 땅을 치며 모세를 향하여 원망불평했습니다. 어제의 기적은 어제 일로 끝난 것일뿐 그와 상관 없이 오늘의 문제를 안고 걱정하는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구약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입니다. 옛날의 기적이라고 옛날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기적을 얼마든지 행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알았다면 먹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믿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7:3).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기는 알았으되 확실히 알지 못했고 희미하게 알았습니다.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알송달송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둡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해주는 것은 성령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부족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또 믿음으로 구원 얻은 것은 우리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빛이 우리의 어두운 영을 밝혀주십니다. 성령이 충만한 만큼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이 오는 만큼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믿어지고 큰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야 모든 것을 밝히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에게 잡혀죽을까봐 벌벌 떨었으나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일이 생겨도 염려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기쁨으로 순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가 충만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관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도 예수님을 몰라서 그랬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들이 눈으로, 귀로 직접 예수님을 보고 들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모른 이유는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것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10절에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여,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 부족하고 깨닫지 못해서 항상 세상 염려가 떠나지 아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를 다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모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생을 얻었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으며 무엇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날마다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0:27-29).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3).
이처럼 우리가 장차 갈 곳도 예비해 놓으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먹어야 할 일용할 양식도 이 땅에 예비해 놓지 않으셨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참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 여러분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심령은 병을 능히 이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늘 깨어 기도하고 찬양 중에 산다고 하면 모든 병을 다 이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 되어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고 심령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근심을 떨쳐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 안에서 살려고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자는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영도 육도 건강해질 것이며 만사형통의 축복이 찾아올 줄로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24 설교흉년이 들었을 때 성경흉년이 들었을 때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과연 자신을 누구로 알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답하기를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제자들을 향하여 물으셨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주님이 메시야요 주님만이 나의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동일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믿는다고 이렇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도대체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지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하여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떠한지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잠수부가 바닷속에 들어갔을 때 5미터 들어가면 5미터 바닷속까지만 알 수 있고, 10미터 들어가면 10미터의 바닷속까지만 알 수 있듯이 각 사람의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 아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1.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한 능력과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지식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라도 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조금도 거짓이 없으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없으시고 거짓이 없으시며 악함이 없으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여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할 정도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믿을수록 좋으신 하나님이 됨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인자하고 좋으신 아버지같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너무 너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하며 감사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게 생각하시고, 더 좋게 해주시며, 나에 대한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도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3.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으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저는 어린시절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후회되는 것은, 그 때는 솔직히 하루도 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괜히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좋은 것으로 준비해 놓으셨고 한 번도 예외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미리 쓸데없는 걱정을 끌어다 한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천지만물을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4.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느끼는 만큼 행복해지고 깨닫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성경을 읽다가,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어찌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사랑이기 때문에 베푸는 사랑이고 주는 사랑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면서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며 필요하면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이든 건강이든 무엇을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것이며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신명기 10:13, 6:24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심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게 되어 있고 행복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복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한없이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러한 깊은 뜻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면 결국 복도 받지 못하고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저주 가운데 불행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살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저주 가운데 하나가 기근의 저주입니다.
신명기 28:23-24절에서 [네 머리 위로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고 하셨듯이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으므로 해서 기근의 흉년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7절 이하에 보면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기근의 저주로 인하여 유순하고 연약한 아비와 어미일지라도 가만히 자식을 잡아먹는 흉칙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아합왕 때 3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큰 흉년이 들고 기근이 왔을 때 이루어졌고, 이스라엘 왕 여호람때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하실 때 감사하며 드리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므로 저주를 받게 된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강팍하여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칼과 기근과 온역을 내리겠다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적의 침입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흉년이 와서 먹을 것이 없는 기근이 오며, 이름 모를 전염병이 도는 저주가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이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셨는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치는 전쟁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것이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빈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이러한 말세의 징조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흉년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실 때도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 바로의 꿈을 해몽함으로 애굽나라에 총리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꾼 꿈은 7년 동안의 풍년 후 이어서 7년 흉년이 온다는 앞날에 될 일을 보여준 꿈이었습니다. 이 꿈대로 요셉은 창고를 늘려 짓고 흉년을 대비하여 양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심각한 흉년으로 인해 애굽에까지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 때문에 그리운 형제와 아버지 야곱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친척들이 애굽으로 이주해 와서 400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성취입니다.
창세기 15:13-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흉년이 들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큰 축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 시대에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이제 남은 한끼 식량을 아들과 같이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의 말대로 자신들이 먹지 않고 선지자를 먼저 대접함으로써 흉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흉년이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흉년의 때였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그랄지방에 머물렀습니다. 양을 치며 살았던 이삭이었지만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이방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의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 부해지고 가난해지는 것, 죽고 사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흉년이나 기근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영적기근입니다. 아모스 8:11-13절에 보면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영적기근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습니다(삼상 3:1).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심으로 하나님과의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아니하심으로 강팍한 심령을 가지고 죄만 짓다가 지옥의 멸망을 당하는 것이 물질적인 기근보다 더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흉년이 오고 기근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고 은혜가 풍성하기만 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흉년이 왔을 때 우리의 할 일은 회개하는 일과 간구하는 일입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풍성할 때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감사할 줄 모른 것을 회개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스스럼 없이 쓰면서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는 인색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난이 온 것은 기도하라는 싸인인 줄 알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응답 받고 해결됩니다. 체험적인 신앙이 생기며, 믿음이 좋아지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은혜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이삭이 받은 축복이 우리의 복이 되고, 요셉이 받은 축복이 우리의 복이 되며, 사르밧 과부가 받은 복이 우리의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17 설교너는 내 것이라 성경출애굽기 13:11-16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 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장래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 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약 성경 이사야 43: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너는 내 것이라]고 특별히 말씀하신 이유는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를 죄에서 구속하였으며,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너와 함께 하여 주겠다는 축복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함께 할 것이며, 강을 건널 때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불 가운데로 행할 때도 타지 아니할 것이며,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가 될 것이며,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구별된 백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류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축복이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축복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떤 복보다 더 큰복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와 받을 복을 신명기 7:6-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잘나서거나 또는 다른 어떤 민족보다 특별나서도 아니며 더구나 그들의 수효가 많아서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바 [너와 네 자손이 복을 받으리라],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 [나는 너와 네 자손의 하나님이 되고 너와 네 자손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맹세를 절대로 어기지 아니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33:29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실수할 때도 많고 바르게 살지 못해 부끄러울 때도 많으며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으로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8장과 9장에 보면 [더러운 파리의 재앙], [생축에 악질이 생겨 죽게 되는 재앙] 또는 [우박의 재앙]이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는 땅에는 그러한 재앙들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흑암의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옆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흑암이 덮여 온 세상이 깜깜했으나, 고센 땅만은 광명이 가득하여 대낮같이 밝았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애굽에 [장자의 재앙]이 있었을 때 애굽에는 장자와 심지어 생축의 처음 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음이 왔으나,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그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구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며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택자와 불택자를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번째 유월절 에 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된 장자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와 생축의 초태생은 언제나 하나님의 소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죽었어야 할 아들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므로 하나님의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택하시고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었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4:21절에서 택한 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나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 중에서 특별히 택하실 때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찬송을 받으시며 종으로 증인으로 세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은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함을 얻게 하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 양으로 구원받은 장자나 짐승의 초태생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29절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5:7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택함 받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마귀에게 팔리운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고전 6:20).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죄값으로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라는 것입니다. 살아있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가지고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평생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믿지도 않으며 옛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다 된 줄 아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이 사실을 깨달았고 로마서 14:7-8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가 없나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맏아들로 삼으셨습니다. 맏아들은 유월절에 구원받은 장자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얻은 성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얻게 하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고 예수님처럼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창세전에 택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딛 2:14).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구별하여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고전 10:31).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 주시고, 유월절 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남은 여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10 설교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성경미가서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국의 정신건강협회에서 얼마전까지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고 말해왔으나, 이제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 깃든다]고 발표하면서 행복한 생애를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너그러워지라.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매사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몸에도 좋다고 했습니다.
둘째,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부심을 가지라.
남들의 비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넷째,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라.
후회란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기쁘고 즐겁게 살라.
살다 보면 매일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 때에 바람직한 원칙이라고 생각됩니다. 참 행복은 기쁨에 있습니다. 행복은 얼마나 돈이 많고 얼마나 지위가 높으냐에 있지 않습니다.
또 명예와 권세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쁨으로 사는 자에게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금방 싫증이 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이 주는 기쁨은 많은 죄를 범하게 만들고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쁨만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이들의 웃음 뒤에는 슬픔이 있고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낙은 무엇이든 다 찾아 해보았지만 결코 만족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낙을 열심히 추구하느라 죄도 많이 범했습니다. 솔로몬은 더 이상 추구할 낙이 없게 되자 살아있다는 자체를 한스럽게 생각하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전 12:8).
이처럼 세상이 주는 기쁨은 불완전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후회가 없습니다. 전도서 2:24절에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고 사람마다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했습니다(전 3:12-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떤 형편에 놓여도 항상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되 일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드리면 기뻐하실까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엄청난 기름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드리면 기뻐하실까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리면 기뻐하실까 하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도 혹 잘못 생각하면 교회에 나와서 무슨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예배에 몇 번이나 참석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헌금을 얼마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 얼마나 예배를 많이 드리느냐,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느냐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드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제물만이 아닙니다. 제물보다 먼저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 이유를 요한일서 3:12절에서 사도 바울은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되어 쌀을 천 가마, 만 가마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제사를 하루 열두번 드린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악한 자의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십니다. 이처럼 악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잠 15:8).
이사야 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슬퍼하십니다.
그들은 오만가지 죄를 다 지으면서 아울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서 하나님을 더욱 더 괴롭혔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1.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의로 행하고 자비를 베풀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한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 미가 선지자가 살고 있었던 시대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남의 것을 착취하며, 부정과 부패가 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더구나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기 때문에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고,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라고 했습니다(미 7:5-6). 어쩌면 지금의 우리나라 실정과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6:5-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는 노아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이처럼 부정 부패가 심한 사회에서 공의를 행한다고 하면 노아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마 12:7). 다시 말해서 악독한 짓을 하면서 아무리 제사를 많이 드리면 무엇하겠습니까 제사를 드리기 이전에 세상에 나가서 자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33-36절에서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 4:30-32).
미국의 뉴욕 시장까지 지낸 라과디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뉴욕시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라과디아는 빵을 훔치려다가 붙잡혀 온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빵을 훔쳤소 노인은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빵 가게 앞을 지나가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저도 모르게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이 늙은이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장내는 불쌍한 노인의 울먹임으로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노인의 답변을 묵묵히 듣던 라과디아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죄는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벌금 10불을 언도합니다. 그리고난 후 라과디아는 자신의 지갑에서 10불을 꺼내 놓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 벌금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저 노인이 허기진 배를 감싸쥐고 뉴욕의 거리를 비틀대고 다닐 때, 나는 좀더 좋은 음식을 찾아 배부른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그 벌로 내가 10불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 여러분 중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분이 계시다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벌금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장내에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 47불이 모금되어 즉시 가난한 노인에게 건네졌습니다. 이에 감격한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법정 문을 나섰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도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본 받는 것이며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보다 바르게 살 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또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사는 생활이 세상에 알려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심지어 남보다 특별한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에 더욱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 같은 경우 계시를 많이 받고 삼층천에 올라갔었고, 죽은지 14년 된 사람을 만나보고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보내어 사도 바울의 육신을 쳐서 병들게 함으로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은혜받은 것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보다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모든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모릅니다. 남들의 충고도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더구나 책망 조차도 받지 않게 되면 자신의 허물을 더더욱 깨닫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알고 부족을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인줄 알아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음을 늘 고백하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9
9.
1.03 설교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새해 성경로마서 8:26-30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늘은 1999년 1월 3일로 신년 새해 첫 번째 맞는 주일입니다.
저는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앞날에 대하여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해에는 아무 일이 없을까 어떤 환난이 있을까 경기가 좀 나아질까 사업이 잘 될까 직장엔 별 탈이 없을까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앞 날에 대한 불안으로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앞으로 될 일을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은 물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될 일도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잘 되게 하시면 잘 될 것이고 잘 안되게 하시면 잘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시면 건강할 것이요 죽을병에 걸렸어도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살게 됩니다. 이처럼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삽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경 말씀을 믿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이 말씀이 적용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로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한 때는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으며, 실패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더 좋게 되고 더 잘 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 떤다고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귀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절대자인 신을 부르며 의지하고 복을 달라고 기원합니다. 사업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자식이 좋은 학교에 합격하게 해 달라고 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 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과 정비례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곧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왜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돈 만큼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죄를 버리지 못합니까 그 죄를 사랑하는 만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 죄를 택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중에 어느 편을 택하는냐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좋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끔찍이 사랑했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함으로서 그의 믿음을 보여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행 13:48).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믿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그 일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참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100% 불가능하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 그대로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이 무엇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보내주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음도 믿습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도우시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음도 믿습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 홀로 설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인격도 부족하고 믿음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여 기도하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되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의롭다고 하신 성도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죄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했습니다(사 55:11, 40:8).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이 세상 무엇으로도 결코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35-39절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에게 원치 않는 환난이나 기근이나 여러가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29절에 보면 그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이 땅에 살면서 근심걱정이 없고 무병장수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은혜를 많이 받아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창세전에 택해 주시고 불러주시고 믿게 하시어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모습 그대로 두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이 예수님처럼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때때로 환난도 허락하시고 고난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도 많이 벌고 사업도 잘 되고 자손들도 잘 풀렸는데, 그만 그 자신이 예전보다 더 타락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 축복은 결코 잘 된 일이 아닙니다. 더 잘될수록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일입니다. 욥은 일찍이 이 사실을 깨닫고 욥기 23:10절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8:10-11절에서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올 한해 어떤 환난이 올지, 기근이 올지, 곤고가 올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목적대로 결국에 가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결과가 올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큰 고통을 더 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등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38:17).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나 고통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어느 누구도 우리의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7, 21:18).
그러므로 욥이 사단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단 마음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사야 45:5-7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금년 한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범사에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공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서 건강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일 자:12/20 설교제목 /사랑과 미움 성경마태복음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치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세 종류로 나누어 볼 때,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고 미워해야 할 대상이 있으며, 사랑의 대상도 미움의 대상도 되지 않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사단과 죄는 미움의 대상이며,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또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하나님보다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마땅히 미워해야 할 사단과 죄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면
1.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가 진작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사신우상을 섬기는 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므낫세도 나중에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줄 깨닫고 비로소 사신우상을 때려부수고 온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으냐 좋지 않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라면 무엇을 드려도 아까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도 외면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일에 매우 인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신실하시며 사랑이 많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지 아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화가 있고 분쟁이 있으며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납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원수라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들을 너무나 아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수로 인해 미움이 가득하면 가득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지옥이 되고 따라서 심적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용서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좋으라고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먼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TV나 신문 보도를 통해 포악한 짓을 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인간이 어째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을 욕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포악한 짓을 한 그 사람의 죄를 미워해야지 그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죽이려고 둘러선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는 고로 모두 다 집었던 돌을 놓아두고 물러갔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간음한 이 여인을 향하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고 물으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돌려 보내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만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가 똑같은 죄인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에 반기를 들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 그 동네에 소문난 죄인 여자 하나가 향유를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만약 선지자였다면 자기를 만지는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여자 곧 죄인 인줄을 알았을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물론 그 여자는 동네에서 행실이 좋지 않아서 손가락질을 받아 왔던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고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컷기 때문에 200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눅 7:36-50).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인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욱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약속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벧후 3:9).
악인이 만일 죄에서 돌이켜 떠나 의를 행하게 되면 그 사람이 과거에 범했던 모든 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고 현재 행하는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돌이켜 죄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겔 18:21-23).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마귀의 형상을 닮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점점 더 닮아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5:48).
첫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야 합니다.
레위기 11:45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1:15에서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4가지 있습니다. [스톨게]는 가족간의 사랑을 말하고, [에로스]는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며, [필리아]는 친구간의 또는 이웃간의 우정을 말하고,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며 목숨까지도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43-47절에 보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징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 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심지어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인과 이방인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를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요 13:34-35).
3.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하나님이나 사람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보다 더 사랑할 만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딤후 3:1-40). 그러다 보니 신앙과 인격과 양심까지도 파괴되어 부모와 형제까지도 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고 모든 인간들의 사랑이 식어져서 불행하게 된 원인이 바로 돈이나 명에나 권세를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꿈속에서라도 하나님보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사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여져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단과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설령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미워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믿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명예나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이렇게 살 때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질 것이며 이 세상은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
12월 18일자
홍해로 인도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14장 15-25절>
본 문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뒤로 옮겨 애굽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아주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번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이 즉시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속에 의심이 들 때도 있고 아주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정하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장 이루어질 것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떤 때는 몇 년후, 혹은
몇 십년후, 심지어 몇 백년 후에 이루어질 일들을 미리 말씀하실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축복의 말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십년, 이십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나이는 점점 많아져 갔고
경수조차 끊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임신을 할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사라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기다리던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요, 사라의 나이가 90세 였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했지만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속상하고
답답하고 혹 마음에 의심이 일어날 때에도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찾는 자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마다 종살이에 시달리며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본 지도 이미 오래 전의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고 하나님의 계명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듯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자기들의 땅으로
만들 가능성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니 마침내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와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동안
처가살이를 하며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그 어떤 비젼도 양치기 모세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함께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출 13:21-22).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지름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멀고 험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길은 홍해를 건너 광야 길을 돌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도 많을 터인데 어떻게 홍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겠으며, 더구나 바로와
신하들이 마음이 급변하여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놓아주었는지 후회되어
그들을 추적할 병거를 거느리고 황급히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애굽 군대를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3:17-18절에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통과하면 불과 몇 주만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는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고이
보내주겠습니까 아마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전쟁을 두려워하여 종살이하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가까운 길을 놓아두시고 홍해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홍해 길이 더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뒤따르고 있으니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떨며 모세를 향하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하면서
원망불평 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외친 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군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시더니 곧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애굽 진 쪽은 구름과 흑암으로 그들의 발을 묶어두셨고
이스라엘 진 쪽은 대낮같이 광명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이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고 했습니다(출 14:21-30).
우리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힌다고 해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싸인만 있으면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로 인도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과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또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 길로 인도하시며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격을 때마다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신
이유가 있습니다.
1. 믿음이 없이는 그 무엇도 축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의 풍요가 결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돈이
오히려 타락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축복보다 먼저 받아야 할 축복은 믿음의 축복이었습니다. 믿음이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홍해
길로 인도하시고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믿고, 또 쉽게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를 십 년, 이십 년
다니고 있지만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을 가지기까지 해산의 수고와 같은 많은 수고를 거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사업이 어려운 분이 계십니까
부도가 나서 죽고 싶을 만큼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도 계십니까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얻으면 가장 귀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더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어려움이 훗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도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삶의 변화가 없이는 가나안 땅이라도 축복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5:22-26절에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뒤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쓴 물도 단 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무슨 병인들 못 고치시겠습니까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병이라도 치료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모든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먼저 삶의
변화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그 동안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사야 45:2-3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꺽고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싸인이 없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어도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어려운 이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좋은
성전 터를 계약하게 되었고 30%의 땅 값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 저는 기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홍해 길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넘을 수 없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홍해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큰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성전을 속히 짓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성전을
짓고 또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 앞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세상만 바라보거나 지금의 형편만 바라보고 불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순종만 하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만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가든지 광야 길을 가든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믿고 신뢰하고 감사하면서 묵묵히 그 길을 갔었다면 그들이 얼마나 축복을
받았겠으며 또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겠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 저와
여러분은 더욱 더 은혜를 받고 믿음이 좋아지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39장 1-6절>
본 문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문제는 성공과
행복에 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하고,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 입시에
성공하는 비결,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 건강 관리에 성공하는 비결, 행복한
일생을 사는 비결.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들이 말하는
비결은 완전하지 못하며 실천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과 참 행복의
비결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만이 성공과 행복의 정답을 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모든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고],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골로새서 3장 1-4절>
본 문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는 자들을 가르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이미 과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고, 현재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이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야 했던 옛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중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생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다시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옛 사람의 행실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싶다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서도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었다고 하는 말은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뜻이 있고 또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처럼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죄를
지었고 말못할 부끄러운 일이 많이 있었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어 죄를 회개함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면 더 이상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완전히 옛날에 행하던 죄와 허물은 다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옛 사람이 죽음으로서
시작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참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그 사람의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계셔서 언제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며, 성령이 오시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요 14:16-17).
고린도전서 3:16-17절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성령이 계신 집]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멸하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6:15-20절에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셨으며 구원받은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흘리신 그 피
값으로 지불하고 사신 몸입니다.
그러므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장차 큰 환난이 있을
터인데 창세 이후로 없었던 큰 환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환난의 기간을 단축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택한 백성일지라도 살아남을 자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환난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환난 후에 예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십니다. 이 때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온 세상 사람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고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말로만 듣던 예수님이 과연
살아계시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실제로 봤으니 이제는 자신들이 갈 지옥을 생각하고 통곡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기뻐 뛰며 즐거워하고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때 과거에 죽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그때 직접 예수님을 맞이 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 앞서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예수님을 맞이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십시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1-2절의 말씀처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위를 바라보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에 살면서도
관심은 하늘나라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는 거부로 큰 성을 쌓고 살수도 있고
대궐같은 집을 짓고 살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장막에 거하며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천년 만년 이 세상에 사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본향 집을
바라보며 살아간 것입니다(히 11:9-10).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위를 바라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더구나 홍해 바다를 건너가야 할 때에도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셔서 먹고사는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으며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를
쳐다보기 보다 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원망불평하며 40년의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는 사람들로부터 돌 세례를 맞아 죽을 때 돌을 들어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머리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스데반은 기쁨이 충만하였고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노아도 위를 바라보고 산 사람입니다.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방주는 맨 위쪽 지붕에 창을 하나만 내도록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창 외에는 어디에도 창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방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일들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까 봐 아예
세상 쪽은 보지도 못하도록 천장 쪽으로만 창을 내도록 설계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늘만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위기를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상만
바라보면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우리의 관심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씀했습니다(고후 4:18).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요 신령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은 우리에게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타락하게 되고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죄의 노예가 되고 악마의 종이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 낙의 결말은 다 이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를 바라보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되면 은혜 가운데 살게
되고 우리의 신앙은 건강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은혜가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기쁨과 평강이 넘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신령한 낙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우리의 관심이 하늘 보좌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 보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우편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과 이 세상의 흥망성쇠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이 됩니다.
3우리의 관심은 미래에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영광 중에 맞이
할 수 있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환난을 이기게 되고
악마와 싸워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흠과 티와 책망받을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
본 문 /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는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신약 성경에서는 [.하라]는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 [화평하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라고
하신 말씀들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하라] 또는 [하지 말라]고 명하신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신 6:24,
10:13).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감사함으로 얻게 되는 축복이 참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얻게 되는 축복은 이렇습니다.
1. 신앙적으로 큰 축복이 됩니다.
범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신앙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범사에 늘 감사하게 되면 더욱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7:11-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실 때 열 명의 문둥이가 멀리
서서 자신들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 다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보시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감사함으로서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구원의 복까지 덤으로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때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원망불평할 때 악령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생활을 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니엘서 6:10절에 보면,
다니엘도 역시 대단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경우를 당했더라면 얼마나 두렵고 떨리며 이 자리를
떠나야 하느냐 아니면 기도생활을 잠시 연기해야 하느냐 여러 가지로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예전처럼 기도하면 붙잡혀
사자 밥이 될 것을 알고서도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이 내게 가장 좋은 길이요 가장
복된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롬 8:28).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감사를 합니다. 저 사람의 처지보다 내가 낫기
때문에 또는 이전보다 내 형편이 좀 나아져서 혹은 배가 몹시 고팠는데 먹을 것이
생겨서, 예전엔 춥게 살았는데 이제는 형편이 나아져서 따뜻하게 살게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면 곧 감사할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그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 죽어도 감사하고 살아도 감사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 감사는 인격적으로도 축복이 됩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인격적으로도 사랑을 받게 되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라고 했습니다(고전 10:30). 그렇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욕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은 모두가 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R.A 토리 박사가 LA에서
설교할 때 이런 예화를 들었다고 합니다. 미시간 호수에 배가 침몰하였는데 어떤
청년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23명을 구출하였던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난 후 머리가 히끗히끗한 분이 목사님 앞으로 다가와 목사님께서 예화로
드신 그 당시의 청년이 바로 자기였다고 소개했습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리 목사님께서 그 분에게 특별히 할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말하기를 구출한 23명 중에 자기를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섭섭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감사해야 할 일에 소홀히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감사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좋은 언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는 좋아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더구나 윗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매우 꺼려합니다.
마치 자신의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면서 살아보세요. 그 사람의 인격이 존중히 여김을 받게
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 대신에 원망불평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격이 아주 추해집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컸다. 그러나 그 때마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며
자라났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지만 감사의 표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배경도 있었다. 나를 도와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충분히
감사를 표현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감사의 표현은 잠시도 주저하거나 보류해 둘 것이 아니다. 그 때 그 때 바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좋은 충고입니다. 저도 서둘러 감사해야 할 분에게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3. 감사는 육체적으로도 축복이 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 육체도 건강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따라서 소화도 잘 되고 혈액순환도 잘 됩니다. 그러나 원망불평하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기분도 우울해지고 마음도 편치를 않으며 따라서 소화도 안되고 혈액순환도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여러분! 스티븐 호킹 박사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세계적인 장애인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뇌성마비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그 병에 걸리면 보통
생존 기간이 2년밖에 안되는 불치의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호킹 박사는
놀랍게도 10년, 20년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너무나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분의 머리가 너무 좋고 아주 훌륭한 과학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한
재벌은 그에게 8000만 불이나 기증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시간과
역사]라는 책에서 나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또 그 힘 때문에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힘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록된 기사 중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에비 로빈슨이라는
트럭 운전사는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다쳐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저녁마다 자신의 집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오늘까지
살려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기도를 날마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3개월만에 시신경이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칼. 힐티의 행복론에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썼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생기가 돌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서 점점 더 건강해지고 젊어지지만 원망불평이
많은 사람은 빨리 늙는다는 것입니다. 원망불평은 병을 생기게 하고 감사는 병을
낫게 합니다.
일본 해군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귀국하여 오랫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으리 만치 피폐해 있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다행히 정신치료가인 후찌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찌다씨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억지로라도 만 번씩 하라고 시켰습니다. 기이찌는 자리에 누운 채로 하기 싫었지만
낫기 위해 매일 밤 계속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감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 감 잡수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이미 그가 매일 계속해서 감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감사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자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졌다고 합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로 감사가 되어 감사로 불치의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4. 감사는 물질적으로도 축복이 됩니다.
토리 박사는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있으면 형통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쉽게 진행됩니다. 마치 기계에 기름을 치면 잘 돌아가듯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쉽게 풀립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모든 일이 꼬이기
쉽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소스톰 [환난과 슬픔
속에서도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신대륙을 찾아 나선 청교도들이 메이훌라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에 절반 이상이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생이 심했습니다.
도무지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금식기도를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그들은 금식기도에 관하여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농부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고 했지만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식량이 풍족하지 않고
여건이 저 유럽보다 못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또
우리 앞에는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 광활한 대지가 열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금식 대신에 감사의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농부의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금식기도 주간
대신에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 주일의 기본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장 부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행복이란 감사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감사의 말을 하면서
감사의 생활을 하는 자에게 참 행복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항상 원망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불평만하면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입술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깨달음이 옵니다. 내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게 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실낙원]을 쓴 죤. 밀턴은 44세때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은 주께서
내 시력을 어둡게 하시고 주님만 볼 수 있도록 속 눈을 열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감사가 아닙니다. 그는 비록 육안은 어두워졌지만
영안을 열어주셔서 주님만 볼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력을 잃어버린 후에 오히려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이
깨닫고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물질을 얻지
못했어도 신령한 것을 얻었고,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습니다. 이 땅에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것 가장 귀한 것을 소유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는 심신의 병을 고치는 특효약입니다. 이 한마디 말
속에 인간이 지녀야 할 온갖 미덕 즉 사람, 온유, 겸손, 친절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하는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면 축복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감사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환난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감사함으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로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5장 25-32절>
본 문 /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 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애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마태복음 21: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큰아들을 불러서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해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큰아들은 예, 가서 일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정작 대답만 예! 해놓고 실제로는 포도원에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작은아들을 불러서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그 자리에서 싫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조금 후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뉘우치고 스스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큰아들과 작은아들 중 결과적으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한
자입니까 작은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비유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옵니다. 탕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의 재산 중에 나에게 상속될 분깃을 미리 달라고 졸랐습니다. 이 집처럼
아들이 둘이면 큰아들에게는 3분의 2를 주고, 작은아들에게는 3분의 1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말대로 그 아들 몫의 재산을 미리
주었습니다. 신이 난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모두 들고 먼 나라로
이민을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도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남의 집의
품군으로 들어가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픈 배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라도 실컷 먹고 싶었으나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아버지 집에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하고 수 많은 품군들이 배불리 먹고 일하고 있을
터인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구나.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을꼬 라는 자기
한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들은 결심을 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굶어죽느니 이제라도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용서를 빌고 아들이 될 자격도 없으니
그저 품군의 하나로 써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작은아들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탕자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하며 죄 가운데 살다가
뒤늦게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나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 번 택하신 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자는 살
길이 열립니다.
한편 집을 떠난 아들이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문밖에 나가 서
계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거지꼴을 하고 힘없이 걸어오는 아들을 발견하고서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한 걸음으로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 때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나를 품군의
하나로 써 주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시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시고 발에는 새 신을 신겨주셨습니다. 이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베풀며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며
잃어버렸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아버지의 마음이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며,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 밖에 서 계시는
아버지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 맞이해
주시던 아버지처럼 기쁨으로 받아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으며 아모스 5:4절에서도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아직은 안 된다고 하며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정리하고 나서 교회에 나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를
다 끊고 교회에 나오기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더러운 죄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입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하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회개란
1.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살던 사람이 돌이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아버지가 명했을 때 싫다고 대답하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갔지만 뒤늦게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한 작은아들처럼
돌아온 탕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과거 하나님의 곁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았던 것을 후회하며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몇 배로 충성하며 사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큰아들이 문제입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열심히 아버지 집에서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탕하게
살던 동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 따끔하게 혼내주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동생이
돌아온 것을 환대하며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마음이 상한 그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문밖에 서서 불평을 했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나오셔서 얘야! 네
동생이 살아 돌아왔다. 어서 들어가서 함께 먹고 즐기자.라고 하면서 잔치에 같이
동참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여!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긴 일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서 나와 내 친구들로 즐겁게 해
주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다 써버린 이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정말 섭섭합니다. 라며 투덜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섭섭해 하는 아들에게 얘야,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자의 형도 역시 효자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집을 나가서 속을 썩인 탕자였고, 큰아들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불효자였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재산의 3분의1은 이미 동생에게
주었으니 나머지 3분의 2는 모두 다 자신의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염소새끼를
주었느니 안 주었느니 따질 것이 있습니까 또 아버지의 명을 어긴 일이 없다고
당당하게 대들었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는 것이 자식된 도리로 당연한 것이지 그것이 무슨 공로가 된다고 아버지
앞에서 큰 소리를 칩니까 더구나 집을 떠나 소식도 없는 작은아들 때문에 항상
걱정이 많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나 몰라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지께서 날마다
동생을 기다리며 문밖에 서서 계시는 것을 보았다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우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제 동생에
대하여 무관심했습니다. 집을 나간 이 동생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또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너무 기쁘고 좋아서 잔치까지 벌려가며
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동생에게 너무 잘해주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원망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아들도 역시 불효자요 탕자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런 큰아들과 같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녀들을 생각하시며 하루 속히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만
기뻐했지 하나님 아버지의 이러한 애 타는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또 그들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이제
교회를 찾아 나온 사람들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왔나보다
덤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그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고 또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누구나 이 두 아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나가 안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탕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그렇게 세상에 빠져 살지는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고 하나님의 집을 떠난 형제들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더구나 뒤늦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는 잘못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녀는 많이 있으나 효자 효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노라 하는 사람은 많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효자신자는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 탕자가 아니면 탕자의
형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천국시민등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보려고 하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에서 이런 운동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전도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가복음 16:15절에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8:19-20절에서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디모데후서 4:2절에서도[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은 반드시 해야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는
길은 직접 전도하고 선교를 하든지 아니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귀한 종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고 생활비를 보내주며 물질로 도와서 복음전하는 이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함께 상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매주 두 차례씩
노숙자들을 위해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수고하며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직접 도와서 하지 못하면 기도로 동참해 주시고 쌀
한 부대라도 보내주셔서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사는
자는 백 배의 복을 받으리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영혼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셔서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효자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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