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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5:6)

본문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생존의 기본 욕구가 있다.
살아있는 육체는 기갈을 느끼면서 먹을 것을 찾는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자나깨나
“언재 배부르게 살까” 하면서 노력했다. 배부르다고 하는 것은 만족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킨 사람은 없다. 이 세상의 갈증이 심할수록 인간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코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에는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만족한 사람은 없다. 본능적인 기갈을 느끼면 느낄수록
인간은 더 공허하고 허탈감에 빠진다.
당시 로마의 압제속에서 이스라엘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었다. 자유도,부유도,땅도 없었다.
예수님의 눈에비친 유대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있어다.
유대땅은 심한 모래바람과 학대와 막노동에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애통하며 살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의에 주리고”라고 하셨다.
“의에 주리고”는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히 나아가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참 행복이 어디 있으며 만족이 어디 있는가를 가르쳐주신 말씀이다.
1.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헬라어로 (디카이오수네)로서 “의” “옳음” “올바름” “말씀을 지키는일” 로 쓰여진다.
하나님께대한 올바른 행위와 올바른 생활을 말한다.
소돔성에 의인 열명이 없어 망하는 것과 같이 진정한 의에 주린자가 없다는 것이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인간은 율법이나 도덕이나 윤리로서 의로워 질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질수 있다.
인간이 율법이나 도덕으로 의로워지려고 하면 할수록 절망에 빠진다. 마음에 괴로움만 쌓인다.
사도바울도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19)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
(1)주님이 요구하시는 의는 100% 완전한 의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예절바르고, 겸손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앞에 인정받을수 있는 의는 100% 완전한 의다
이것이 주님앞에 설수 있는 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1%의 불의도 인정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어느 누구도 100% 완전한 하나님의 의를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를 주신 것이다. 믿고 구원받아 의롭게 만드신 것이다.
형제를 보고 미워하면 살인한자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자다. (마5장27절)
율법을 강화 시켰다. 구약보다 더하다. “모든사람이 죄인이다” 결국 예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양의 문이니” “내가 길이요-” 속히 예수의 의를 가져야 한다.
(마18장8절) 눈이 범죄케하며 빼어 버리고-손이나 발이 범죄케결국 예수님 의지 하라는 것이다
눈을 빼면 의인된단 말인가 예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되게 하셨다.
(마5장20정)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래서 애통하고 갈급해 하고 목마른 심령이 되는 것이다.
바울-(빌3장9절)“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2)말씀을 듣지못한 기갈이다
시42장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42장 2절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에 나가서
하나님앞에 뵈올꼬“
시63장 1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암8장 11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장 12절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3).“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한다.
 포도나무와 가지  환자와 의원  주인과 종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신랑과 신부  주인과 청지기  창조주와 피조물
(4)“의”는 이웃과의 관계를 말한다.
이웃이 누구인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난사람' “눅10장25절”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2.하나님의 의에 주린 사람은 외롭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일생에 의를 얻으려고 수도원에 들어가 고행을 했다. 금식과 수양을 하며
갖은 노력을 했으나 자신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이다.
로마에 베드로 성당에 빌라도의 계단 28개가 있는데 그곳을 기어서 가야 하는데 벌떡 일어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고 외치며 가톨릭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인간의 노력과 고행과 수양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의에 주린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됨을 알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신이 의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이는 율법에 기대고 있기에 교만하고. 독선에 빠지고. 남을 정죄하며 많은 죄를 짓게 된다.
자기 옷을 누더기처럼 여기며 배설물처럼 여기는 자가 하나님의 의로 만족을 얻을수 있다.
(벧후2장7절)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롯은 세상의 쾌락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이 그 사람들 속에서 의로운 것 알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하도록 협상했다.
불교에서는 자기 의로 부처가 될수 있다고 가르친다. 죽어서 화장할 때 사리가 얼마나 나왔냐에 따라
의인을 구분한다. 이는 다 귀신의 장난이다.
우리는 목마르게 하나님의 의를 사모해야 한다. 만일 자신이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속에 귀신이
들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령한 것을 사모합시다. 하늘에 것을 목말라 합시다. 천국을 구합시다.
의에 주리지 아니하고 세상일에 목말라 하는 자들은 이성없는 짐승과 같다.
짐승은 단순히 배부름만 얻고자 살아간다. 개는 주인이 욕을 해도 모르며 꼬리친다.
그러나 성도는 감사하는 삶이요. 찬송. 기도하는 삶이다.
옛날에는 아궁이에 낙엽을 땠다. 얼마후에 연탄을 땠을 때 감격은 말할수 없었다.
후에는 석유를 땠고 지금은 가스를 땐다. 또 무엇인가를 개발하고 있다.
옛날에는 국수나라면, 보리밥이 없어 굶어 죽는자도 있었다. 쌀밥을 먹고 싶어 그리워하던 때다.
지금 아이들에게 만족함이 있는가
사탕을 먹고 음식을 못먹는다. 죄는 영적인 식욕을 떨어지게 만든다.
달콤한 죄를 멀리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씀보며 기도하며 봉사해야 한다. 영혼을 돌아봐야 한다.
“시간없다” “바쁘다”라는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 시켜서는 안된다.
3.세상의 것은 만족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세상것으로 만족하거나 행복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부유를 누려도, 권력을 가져도 다 허기져 있다. 왜 그러는가
인간이 영적 존재이기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세상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다.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배고프고 목마르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늘 허전하다. 세상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마르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적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목말라 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신 사람처럼 더욱 기갈에 허덕이고 있다. 돈을 벌어도, 출세해도 공허하다.
예수께서 “이 물을 먹는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오늘날 인간들은 문명의 발달과 물질의 부유가 있지만 여전히 갈증과 무의미속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2)
이사야의 말이 옳았다. 모든 사람들이 목마르고, 만족, 즐거움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만족을 얻을까. 즐거움을 얻을까 하며 양식아닌 것에 돈을 쓰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인생을 낭비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희복되지 않고는 마음에 즐거움을 얻을수 없다.
4.영적 굶주림을 가져라.
육을 쫒던 것을 회개하고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는 악한영이 많다. 미혹의 영과 불신의 영이 충만하다. 예수를 믿지 않거나 교회를 다녀도 거듭나지 못한자는 다 악한 영에 이끌려 산다.
사치의 영. 불평의 영. 술담배의 영. 싸움의 영. 음란의 영. 욕심의 영. 게으름의 영.
잘못된 영에 이끌려 원치않게 끌려간다.
익한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만족함이 없다. 영이 흐려져 양심의 가책마져 없다.
세상것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이 없을뿐더러. 감사도 모른다.
이것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악한 영에게 해방되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게 된다.
미국에 가면 한국말이 필요없듯, 영에 속하면 육신의 것을 다 버려야 한다.
바리세인은 기도할 때 교만했지만 세리는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했다.
그러므로 목마른 사슴이 시냈물을 찾듯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
누구에게나 목마름은 조금씩 있다. 교회에 안빠지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감사하고 싶고. 순종하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육신이 안 따라주니 속상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의의 굶주림이 아니다. “나도 봉사해야지. 성가대/교사/감사 해야지”
사형수에게도 약간의 선은 남아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최대 악인을 든다면 단연 히틀러다. 유태인을 600만명이 죽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고향에 가서 그림이나 그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므로 그도 고향 생각을 했다.
비록 불의로 돈을 벌었어도 남에게 구제하며 도울수 있는 사람도 있다.
성도는 이 사람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안된다. 약간의 목마름으로 위로 받아서는 안된다.
또한 육의 목마름은 잘못된 것이다. 육적인 목마름으로 가득찬 사람은 주님이 쓰실수 없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셨지만 우슬초에 해융을 매어 입에 댓지만 잡수지시 않으셨다.
이는 육신이 목마신 것이 아니라 영적이 목마른 삶을 사셨다.
다윗과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간절히 소원했다. 간절히 목말라 했을 때 한없는 복을 주셨다.
뉴욕타임즈에서 인류 역사상 제일 잘살았던 사람은 다윗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세상일에 배부른 사람은 축복받지 못한다.
오늘날 미국을 이룩한 청교도들은 육적으로 잘살려고 미국으로 간 것 아니다. 영적인 일에 목말라
박해를 피하여 위험과 고생을 무릅쓰고 영적인 부유를 찾은 것이다.
사람이 왜 실패하는가 육신의 목마름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신앙생활 잘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반드시 마귀의 덫에 걸린다.
(1)건강에 문제가 생긴다.-주의일 잘하면 반드시 건강 주신다. 고쳐서 쓰신다.
(2)물질에 궁핍하여 진다.-다 털리고 나중에 빈손이 되어 돌아온다.
(3)방황하며 유리하는자가된다-사랑하던 목사도, 기도해주던 집사들도 다 떠난다.
성도들의 가장 위험한 요소가 있다면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다.
탕자가 배고파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기 때문에 집을 사모하고 있다.
돼지의 밥을 먹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다면 큰일이다.
꺼져가는 생명을 보아야 한다. 눈먼것과. 벌거벗은 것과. 가난한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 대하여, 영적으로 문이 닫혀 버렸다는 것이다. 구하여야, 찾아야 찾으며. 두드려야 열린다.
니고데모는 어느날 밤에 예수께 나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목마름이 중심에 있었다.
삭게오는 부자며 부러울게 없었으나 영생에 대한 부족함이 있었다.
“근심하는자 같으나 우리는 평안하고 죽은자 같으나 여기 살고 아무것도 없는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라 예수가 내게 계시니 모든 것을 가진자라” (고후6:10)
5.배부름이란 무엇인가
이는 (꼴은 먹이다)라는 말로 원래 “푸른잔디” 라는 말과 “먹이, 풀, 목초”에 해당되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즉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와 “하늘양식”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이다.
요4장14절-내가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6장35절-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장51정-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요7장37절-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는 하나님 충만이요 성령충만을 말하는 것이다.
시편107편9절-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성령충만이 배부름이다.
믿는 사람은 재물이 많고 적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배부름”은 시편 23편의 축복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4장4절)
찬송가 221장-“내 주린 영혼 만나로서 먹여주시니 그 양식 내게 생명되겠네
이후로 생명양식 주와 함께 먹으며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찬송가 172장-“빈들에 마른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시편81편1-4절 / 10-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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