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마1:18-20)
본문
우리가 기독교를 잘 이해하려면 예수님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잘 이해하려고 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첫머리에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아주 신비한 탄생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예수님을 잘 오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동정녀라는 말은 결혼하지 아니한 숫처녀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처녀한테서 태어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처녀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놀랍게도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여기에서부터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여기에서부터 기독교를 오해하게 되고 기독교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독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모든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예수님의 전 삶이 신비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어렵고, 성경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사람만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셨는가 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핵심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오랜 세월동안 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에 대해서 그 강조점을 흐려왔습니다. 이것은 천주교가 그렇게 만든 것인데, 천주교는 오랫동안 2천년동안 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을 마리아의 탄생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가 예수교가 아니라 마리아교가 되는 것처럼 인식될 정도로, 천주교에서는 그렇게 마리아를 숭상하고 있고 또 이것이 천주교를 심지어는 이단시하게 되는 아주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 탄생의 초점을 전혀 마리아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초점을 성모 마리아에게 둔 것은 주후 4세기 이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많은 이단종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거짓된 그리고 잘못된 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의 초점은, 물론 예수님은 마리아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는 했지만 예수님 탄생의 초점은 성모 마리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 말씀도 그러하고 성경을 선입관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치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그렇게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 탄생의 핵심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하는 것이 성경의 강조점인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선입관을 갖지 아니하고 이 말씀 속에서 도대체 예수님 탄생에 무엇이 특징인가 여러분 스스로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세 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자, 이 구절 속에서 예수님 탄생의 강조점은 어디 있는가 하면 마리아가 강조점이 아니고, 물론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지만 마리아의 위대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고, 핵심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이것이 강조점입니다. 여기에 강조점이 있는데 천주교가 여기에 강조점을 두지 아니하고, 마리아의 위대성에 강조점을 두어서 결국은 마리아를 또 하나의 여신으로 만든 것이 천주교의 오류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세가지 중요한 진리가 이속에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시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태복음을 공부할 때에 제일 첫번째로 제1절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중요한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왜 성경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가 그 이유가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다' 하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깨달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진리는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시다' 하는 겁니다.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셔야만 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은 메시야이신데 메시야는 그렇게 탄생한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예언되어 있습니까 메시야에 대한 최초의 예언, 이것을 우리가 선히 쓰는 말로 한다면 원조복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옛날에 원시복음이라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제일 첫 번째 복음 원시복음이 어느 구절인가 하면 어디입니까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이런 구절은 여러분들이 좀 외우셔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복음입니다. 원시복음, 원조복음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 무슨 내용입니까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너는 뱀입니다. 사탄을 가리킵니다. 뱀이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결국은 인간이 타락하게 됐는데 후일에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모든 인류는 다 남자의 후손인데, 여자의 후손이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사탄의 세력을 정복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분이 메시야입니다. 예수님께서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것은 바로 여기에 약속된 메시야입니다. 더 나아가서 메시야 예언에 대한 굉장한 예언을 많이 말씀하고 있는게 이사야인데 이사야 7장 14절에 보면 메시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바로 처녀의 몸에서 메시야가 탄생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온 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메시야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우리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으로 잉태됐는데 이 성령으로 잉태됐다고 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셨는가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신 그 핵심 진리가 무언가 이것은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성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인성을 가지고 나왔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성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를 못하니까 오늘날 학교에서 새롭게 강조점을 두는 것이 지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인성에 강조를 두어서 인성교육을 하자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학교에서 신성교육을 하자고 하는 그런 학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예수님은 잉태되실 때부터 그리고 태어나실 때부터 그 속에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신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이런 어려운 진리를, 복음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복음에서 이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앞으로 제 계획대로라고 하면 앞으로 15년쯤 지난 다음에 제가 요한복음서를 강해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한 10년이나 15년쯤 복음서를 잘 공부하면 그때에 요한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실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복음서인 요한복음서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영적으로 풀어줍니다. 1절부터 아주 어렵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무슨 말인지들 모르는 소립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좀더 넘어가서 14절에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설명합니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분,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의 그 어떤 다른 종교의 창시자나 어떤 현인이나 어떤 위인과 다른, 우리 주님만의 독특한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훌륭한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능력있는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철학자들도 인정합니다. 장군들도 인정합니다. 위대한 왕들도 우리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인간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예수님과 견주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위인도 이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우리 주님과는 절대로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신성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걸 모르면 우리 주님을 오해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복음서를 볼 터인데, 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예수님의 이 신성부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그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우리보다 위대한 그런 선생으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그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제자들은 놀랬습니다. 그리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분이 과연 누군가 또 때로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도 무언인가 하면 예수님의 신성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점점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에 의심 많았던 도마가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의 못자국 난 손을 만져보고 고백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가리켜 무어라 고백했습니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말하더냐라고 할 때에 시몬 베드로가 주님께 대하여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게 베드로의 고백이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사람의 아들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사람의 아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입니다. 개의 새끼는 개이고, 송아지 새끼는 송아지입니다. 말 새끼는 말이고, 원숭이 새끼는 원숭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지만 그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사람과는 전혀 다른 그 속에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위인이 아닙니다. 보통사람보다도 능력이 많고 지혜가 많은 그런 차원의 훌륭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 이상이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신성을 이해해야만 이제 앞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믿을 수 있게됩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그 놀라운 역사들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9절 말씀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랬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그런 말입니다.
세 번째는, 이 성령으로 잉태된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중요한 진리는 예수님의 무죄성입니다. 무죄하신 예수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없이 처녀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죄 없으신 인간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아담의 후예들은 다 죄 아래에서 태어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이 기독교의 원죄사상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죄라고 하는 것은 죄성을 말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육성이 있지 않아요 그래서 밥도 먹고 그래서 육체의 욕망을 나타내지 않습니까 육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걸 원죄라고 합니다. 죄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제 태어나서 자라면서 점점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인간이 타고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죄성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요한 원죄사상입니다. 죄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죄에서 자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야만 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분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면 어떻게 죄인이 죄인을 구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이 죄와 상관없이 탄생하셔야만 했기 때문에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아담의 후예가 아닌 새로운 제2의 아담으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령으로 잉태되시게 됐던 그 핵심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다음주에 그 부분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 우리를 영원한 죄와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신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탄생하셨던 겁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시다. 예수님은 메시야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바로 이것을 가르쳐줄려고 하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지난 지난 주간에 족보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는데 무어라 칭하는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그랬습니까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심이라. 이게 족보의 결론입니다. 이게 복음서 서론의 결론이고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성경 전체의 결론은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란 말은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하게 될텐데,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자기자신의 선행이나,자기자신의 능력이나 자기자신의 지혜나, 자기자신의 소유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자신의 노력으로 자기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서만 인간은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과 저주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이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교회 다녔을지라도 정말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믿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시간이라도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셔야 합니다. 이 시간이라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받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이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내가 구원받은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고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여러분이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을 확신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고백하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믿음이 좀 있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구원의 은총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은 전인적 구원입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셔서, 즉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에 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죄와 사탄으로부터 죄의 모든 결과로부터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해 주시는 구원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든 저주로부터 모든 불행으로부터 우리 삶의 모든 슬픔과 실패와 질병과 가난과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지배 속에서 우리가 고난 당하던 우리가 고통 당하던 우리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걸 잘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그 구원의 은총을 통해서 죄로부터 사탄으로부터 모든 저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실패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구원을 받았다 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이 구원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만 이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질병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예수 믿고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가난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만 가난으로부터 해방되어서 물질의 부유함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행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모든 불행가운데서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패에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만 그 사람이 성공자가 됩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구원받은 것을 믿습니다. 나는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한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이 주시는 그 전인적 구원의 은총을 통해서 당신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지금 현실이 어떠하든지,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승리를 확신하셔야 합니다.
이야기 하나하고 오늘 말씀을 갈음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 집에 목사님을 초대했습니다. 목사님이 초대를 받아서 가보니까 아주 집이 의리의리하고 굉장합니다. 집안에 들어가서 집안 주위를 둘러보니 온갖 값비싼 가구와 말할 수 없는 장식물들로 집안이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 주인이 자랑삼아서 목사님을 자기 집 구석구석을 다 구경시켜드렸습니다. 방방 열고 얼마나 잘 장식이 되어있는지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있는지. 이 목사님은 생전에 보지도 못한 희귀한 보물들을 눈이 부시도록 보았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이 부자가 이 목사님을 데리고 탑으로 올라가서 주위를 내려다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제 소유물입니다. 사방팔방 보이는 것이 다 제 소유물입니다. 목사님이 이 말을 듣고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굉장하군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에게 한가지 여쭈어보겠습니다. 이 동서남북 사방팔방 보이는 것이 선생님의 소유물이라고 하셨는데, 저쪽 방향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그 부자가 자기의 집에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에 말할 수 없는 소유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늘나라에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하면 그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부유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주위를 둘러다 보아도 값어치 나가는 것 하나도 없고, 동서남북을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아도 땅 한 평 소유하고 있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굳게 잡아주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그분을 믿고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날짜:1999년 2월 14일
왕국을 회복하러 오신 예수
마태복음 1:17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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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된 마태복음은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라고 밝혀줍니다. 이렇게 역사를 3시대로 굳이 구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암기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이렇게 3시대로 구분한 역사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역사의 구분을 보면 그 중심에 왕국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는 다윗왕 때에 이르러 비로소 위대한 왕국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14대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영광스러웠던 다윗 왕국은 그 아들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분열되고 드디어 14대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완전히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4대만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적 비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왕국을 회복하러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왕 이래로 유다 왕국의 영광을 상실하고 계속되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시면 무너진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시켜서 열국의 머리가 되고 열국을 지배하는 위대한 왕국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무너진 왕국을 회복하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오해했던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야가 오시면 이 세상에 위대한 유대 제국을 건설하고 다윗왕과 같은, 다윗왕보다도 더 위대한 제왕이 될 줄로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무너진 왕국을 회복하러 오신 다윗의 자손 메시야시었으나 예수님은 이 땅에 다윗 왕국을 재건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위대한 하나님의 왕국, 곧 천국을 건설하려고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요18:36). 이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처눅긍ㄹ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에게 천국의 주인공이 되는 복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번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이었고,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힘하였느니라(마12:28) 하셨으며, 눅17:21에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에덴이라는 낙원에 사는 영광을 누렸는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불행과 저주와 멸망의 존재가 되었는데 예수님은 죄와 저주 아래 있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인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 믿는 자마다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누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믿음 안에서, 성령안에서 천국을 누리며 (롬14:17), 확장하며(마28:19-20) 살아가는 천국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2월 7일
그리스도이신 예수
마태복음 1:16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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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핵심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란 사실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인데, 예수님에 대한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란 말은 '메시야' 란 히브리어의 헬라어 번역인데, 메시야란 말의 문자적 뜻은 '기름부음 받은자' 란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곧,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곧 선지자시요, 제사장이시요, 왕이시란 뜻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성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해주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선지자가 되시는 것은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요(요1:14),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요14:6).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사함과 축복을 위해서 제물을 드려 제사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씻을 길이 없고,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써도 죄를 씻을 수 없고 오직 갈보리 십나가의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 곧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피로 속죄함을 앋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왕은 통치자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권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은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마귀의 지배 속에 살고 있습니다(요일3:8,엡2:2). 아무도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롬3:10), 죄가 있는 한 마귀의 지배를 벗아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우리의 의의 왕이신 예수님이 사탄의 포로 가운데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완전하신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는 성도들은 이제 더 이상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무한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해 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31일
약속의 메시야이신 예수
마태복음 1:1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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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신약성경은 지루한 족보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읽기조차 힘들어하며 아예 읽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이 이렇게 지루한 족보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의 열쇠는 바로 1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즉,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의 말씀이야말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신약성경 제일 첫 구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란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이 구절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란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창12:3). 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린 후에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창22:18).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증거하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성취되는 아브라함의 자손,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예수님 안에서 죄로 말미암은 모든 저주의 사슬을 벗고 약속된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갈3:13, 요10:10).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실 뿐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가합니다. 예수님을 틉결히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거하는 이유는 구약성경에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11장에서 메시야는 이새의 뿌리에서 탄생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묘사되고 있는 '다윗의 자손 예수'는 약속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또한 예수님을 특별히 다윗의 자손으로 증거하는 이유는, 예수님은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왕국 곧 천국을 건설하시는 메시야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면서도 역사속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그 고난 속에서 소망하고 기다렸던 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오셔서 무너진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위대한 왕국을 건설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오셔서 건설할 위대한 유다제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 왕으로 오신 메시야이시지만 이 땅에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시는 땅의 왕은 아니십니다(요18:33-37).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천국 시민이 됩니다(빌3:20).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한마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은 천국복음입니다(마4:23).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고 살아서도 누리는 천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이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증거하고 확장하는 천국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왕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며,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고 이젠 예수 진리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24일
믿음의 원리
로마서 1:17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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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 1:17)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리스도의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인데 믿음으로 구원 받고 (엡2:8)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요1:12) 성도들이 믿음으로 복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믿음의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믿음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무엇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 낯선 새로운 땅에 가서 살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은 부모와 형을 떠나 타얗살이를 해야 했고, 요셉은 부모와 형들을 떠나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고, 모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2. 하나님께 맡기는 것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기는 것이며, 내 모든 문제들도, 내 소원도, 내 성공도, 내 가족도, 내 사업도 다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진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으려면 모든 것을 믿음으로 주께 맡겨야 합니다.
3.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난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생애 속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시고 나를 축복하시기 원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큰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과 기적의 역사가 내게도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4. 기도하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 하나님께 큰 기대를 갖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니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내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고, 내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없는 믿음은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빌4:6-7). 큰 꿈과 소망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81:10)
5. 순종하는 것
믿음은 순종입니다. 속에 있는 믿음이 순종이란 행위를 통해서 밖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위대한 믿음은 위대한 순종을 낳고 위대한 순종이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곧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6. 충성하는 것
믿음과 충성은 한 단어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큰 기대화 소망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며 위대한 역사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이 아닙니다. 날마다 충성하는 삶을 사는게 믿음입니다.
7. 인내하는 것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내 믿음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17일
복 받고 번성하려면
창세기 22:15-18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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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히6:14)는 축복의 말씀은 본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그런 축복을 받았는지를 깨닫고 동일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택
아브라함이 그런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근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런 축복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깨닫고 믿어햐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교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히 구별하여 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말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바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고(엡1:4), 부르심을 입어(롬8:29-30, 사43:1)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2. 약속의 말씀을 믿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는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요, 현실이 아닌 미래의 축복의 약속이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히4:2).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3. 새로운 소망을 갖고 새 출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복받고 성공하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꿈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에 만족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꿈과 환상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려는 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꿈과 환상이 있어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아무 역사도 이룰 수 없습니다.
4. 철저한 순종
순종 없는 믿음은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어려운 순종을 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에 75세의 나이었지만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나중에는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복받고 성공합니다. 아픔이 있어도, 두려움이 있어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5. 인내함
아브라함의 믿음은 인내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믿고 오래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놀라운 축복을 받았고 약속이 성취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뒤 이삭을 얻기까지는 무려 25년이 걸렸습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을 그는 믿음으로 인내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여 성취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10일
하나님을 신뢰하라
디모데후서 1:12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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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어떤 형편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큰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고, 담대함과 용기를 가질 수 있고,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삶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며,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세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바울은 자기의 의뢰한 자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바울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 자기가 믿는 예수님을 잘 알았습니다. 잘 알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려면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였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가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리고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제자들은 아직도 주님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주님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잘 쇤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알고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본문에 나의 의탁한 것을 하였는데 이는 주님께 그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마11:28).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꿈과 소망과 우리의 사역과, 우리의 장래와 모든 것을 참으로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하였습니다. 시편 37편 5절에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였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확신하였습니다.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는 주님을 알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맡기고 확신하였습니다. 우리도 내가 주님께 맡긴 모든 것을 주님이 지키시고 역사하실 줄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면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신뢰했기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신뢰하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홀로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평안을 누리며 큰 소망을 갖고 풍성한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십시오. 아멘.
날짜:1999년 1월 3일
복받고 번성하는 해
히브리서 6:14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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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은 희망을 갖습니다.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그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새해가 되면 새로운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시대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역사를 하십니다. 성경 첫머리 창세기 일장에 나타나 있는 창조의 기사를 보면 하나님은 하루하루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엔 하나님께서 또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사43:18-21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먁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창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에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새로운 소명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새로운 꿈과 환상을 가졌으며 결국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금년에 우리 교회에 히6:14에 있는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 보면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유익이 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복 받고 번성하는 해가 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개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큰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넓게 하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기다리며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 찬송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2월 20일
기쁜 성탄
누가복음 2:8-14
설교:유 강 신 목사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이 '메리 크리스마스' 즉,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합니다. 백화점과 상가들에 요란하게 장식되어 있는 성탄 트리들은 한껏 기쁨을 고조시키는 듯 합니다. 성탄절에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예쁜 카드 한 장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작은 선물 하나가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불경기 속에서 오랜만에 큰 매상을 올린 상점 주인들은 상탄 대목을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의 참 기쁨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또 성탄의 참 기쁨이란, 카드 한 장, 선물 하나 받지 못한 사람들도 크게 누릴 수 있는 기쁨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성탄의 참 기쁨은 무엇입니까 성탄은 구세주의 탄신일이기 때문에 구세주 예수님을 떠난 기쁨은 그 어떤 것도 성탄의 기쁨일 수 없습니다. 성탄의 참 기쁨은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I. 구원의 기쁨
성탄의 가장 큰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전 저 유대땅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이 없는 성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구원의 기쁨이 없는 성탄의 기쁨은 그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기쁨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천사의 말대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쁭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은 바로 구주가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엔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 하고 구원의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나 재난 가운데서 해방 받으면 굉장히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지옥 형벌 가운데서, 죄 가운데서, 사탄의 포로 가운데서, 저주 가운데서 해방 받은 구원의 기쁨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입니까 성탄의 기쁨은 바로 이 커다란 구원의 기쁨인 것입니다.
Ⅱ. 임마누엘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도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게 하시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참 기쁨은 임마누엘의 기쁨입니다.
아기의 가장 큰 불행과 슬픔은 부모와 헤어지는 것인 것처럼 인간의 원초적 불행은 하나님과 분리된 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사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고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도 임마누엘이시며(마1:23) 성탄의 참된 기쁨도 임마누엘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우리는 임마누엘의 기쁨을 충만히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험하고, 이 시대가 특별히 어려운 시대이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주님, 전지전능하시고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한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2월 13일
사탄을 물리치라
마 16:21-23
설교:유 강 신 목사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때에는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아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는 그 낙원에서 쫒겨나서 그와 그 후손들이 오늘처럼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게 해서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배후의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사탄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에게서, 에덴 동산에서 쫓아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사탄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사탄은 하와와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배후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사탄이 역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을 물리쳐야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에서 있었던 본문의 사건은 우리에게 이런 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물으셨습니다. 이 때 사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잘 대답하였습니다. 이 때 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축복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후에서 역사하신 영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셨던 것입니다.
이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즉시로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에도 주님은 베드로의 육신적 상황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영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지금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미련해서가 아니고 그 배후에서 사탄이 역사했기 때문이고 더욱이나 이것은 사탄의 목표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 자신을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사탄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잘 깨닫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을 육신적으로만 보고 그를 업신여기거나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어리석음이나 잘못을 고쳐주려고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초점은 나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서 염려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그래서 불행하게 하고 믿음을 잃어 버리게 하고 승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대상은 나 자신인 것을 깨닫고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2월 6일
지겨움에서 지극함으로
민수기 20:1-13
설교:유 강 신 목사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출애굽 1세 중 장년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었고 안타깝게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므리바 사건은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결정적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출애굽 제40년째인 정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회중은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3-4절). 이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하셨습니다(7-8절). 그러자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ㅏ
ㄷ.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다 마셨습니다(10-11절). 그러자 이 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짱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12절). 이렇게 해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진리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원인인 모세의 불신앙과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모세의 불신앙은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반석을 친 것인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사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기 전 그는 회중들에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모세의 상한 심령이고 또하나는 모세의 착각입니다. 이 때 모세는 끊임없이 원망 불평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물을 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들에게 물을 내어 주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물을 내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참으시고 그들을 요서하시며 무한한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바로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즉 인간과 다르신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에게 나타냈어야 했는데 모세 자신의 분노를 들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지겨움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어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1월 29일
감사의 신앙
시편 136:1-26
설교:유 강 신 목사
교회가 해마다 11월 중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특별히 감사하기 위해서이며 이것은 특별히 농경문화속에 살던 신앙의 선조들의 전통에 연유합니다. 농부들이 봄에 씨를 뿌려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 속에서 정성으로 가꾼 곡식을 가을에 풍성하게 거두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은 아마도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전통속에 비록 농경문화권에 살지 않는 성도들일지라도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특별히 감사의 예물을 준비해서 늦가을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심히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신앙의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절을 지키는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들을 헤아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특별히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감사의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은 현대적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청교도들의 첫 번 추수감사절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620년 9월 2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으로 떠난 영국의 청교도들은 두달 일주일간의 항해 끝에 11월 9일 드디어 메사추세츠주 케이프 카드만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항해도중 많은 동료들을 풍랑 속에 잃고 102명이 모진 고난의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해 겨울을 보내면서 추위와 굶주림, 질병 등으로 반수에 가까운 4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621년 3월 이후에는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의 농사도구를 훔쳐가기도 하고, 청교도들이 심어놓은 밀밭과 콩밭을 짓밟아서 못쓰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디언 추장이 찾아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우호적인 인디언들에게서 옥수수와 밀 경작법등 많은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생활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양식이 부족할 때는 일주일에 3일씩 금식을 하며 연명해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가을이 되어 옥수수와 보리, 밀 드이 풍작이 되어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미국 청교도들의 첫번째 추수감사절이었고 현대적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1863년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언하면서 경건한 우리 조상들이 이 아메리카 땅에 심어놓은 감사의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서 이 감사절을 제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보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믿음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새로운 대륙으로 떠났는데 도중에 수많은 동료가 풍랑에 죽고, 신대륙에 도착해서도 정착도 하기 전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절반이나 죽었으니, 죽은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 부모를 생각할 때에 얼마든지 그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신앙이요,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배우고 소유하고 계승해야 할 감사의 신앙입니다. 이 감사의 신앙을 계승하여 더욱 풍성한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날짜:1998년 11월 8일
성공의 열쇠
요한계시록 3:7-8
설교:유 강 신 목사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수고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유치원이나 학원에 다닙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지만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사업에서, 가정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열쇠는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성공의 열쇠가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공의 열쇠는 주님이 갖고 계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손에 열쇠가 있습니다. 내 손에 키가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의 열쇠를 주님이 가지고 계신데 한번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한번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27편에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이 가르쳐 주는 두 번째 진리는 성공은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많으면 반드시 성공하고 능력이 적으면 반드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이나 성공은 아이큐나 성적순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께서 열린문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였습니다(8절). 빌라델비아 교회는 크고 능력이 많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문의 축복을 받아 가장 성공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능력은 적었으나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8절). 여기에 성공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많고 적음에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아니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 살면 하나님이 성공의 축복을 주시고,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십니다. 신명기 28장에도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성공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복음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인 선교의 대명령에 순종해서 이웃과 온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주님이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하셨습니다(8절). 신앙생활하다가 시험이 오고 핍박이 오고 환난이 와도 주님을 배반치 않아야 합니다. 신앙을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뒤돌아서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베풀어 주십니다. 아멘!
날짜:1998년 11월 1일
거인이냐 밥이냐
민수기 13:25-33
설교:유 강 신 목사
인생엔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가 끊이지 않고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행복이나 성공은 절대로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닥쳐오는 작고 큰 문제들을 해결하고난관을 극복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 있든지, 어떤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든지 이것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여지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환경이나 문제자체가 아니고 바로 이 시각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환경이나 문제도 그 사람의 신앙이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는데 부정적으로 느껴지면 망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되면 어떤 문제속에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비밀이고 영적인 원리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의 명을 따라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두령을 택해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똑 같은 땅, 똑 같은 성읍, 똑 같은 거민, 똑 같은 소산물을 보고 와서 보고하는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사람의 두령은 그 땅을 악평하여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땅의 거민들은 거인들로서 이제 우리는 죽게 되었다고 심히 절망적인 보고를 하고 온 회중들과 함께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모든 원주민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결이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문제나 이루어야 할 목표가 내 눈에 거인으로 보여지고 부정적으로 느껴지면 나는 그 거인에게 삼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내 앞에 아무리 큰 문제나 목표가 있어도 그것이 내게 밥으로 보여지고 긍정적으로 느껴지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인으로 보이지 않고 밥으로 보이게 됩니까 육신의 눈으로 보면 거인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밥으로 보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문제와 나를 일대일로만 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문제와 하나님과 나를 삼각관계 속에서 봅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문제와 나 자신만을 비교하면 문제가 거인이 되고 나는 메뚜기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와 하나님을 비교하면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고 내 밥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서 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보고 골리앗을 볼 때에 능히 자신의 물맷돌로서도 골리앗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물맷돌로 골리앗을 처 죽였습니다. 물맷돌의 위력이 아니라 다윗의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문제를 거인이 아니라 밥으로 보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아주 신비한 탄생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예수님을 잘 오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동정녀라는 말은 결혼하지 아니한 숫처녀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처녀한테서 태어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처녀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놀랍게도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신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여기에서부터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여기에서부터 기독교를 오해하게 되고 기독교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독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모든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예수님의 전 삶이 신비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어렵고, 성경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사람만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셨는가 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핵심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오랜 세월동안 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에 대해서 그 강조점을 흐려왔습니다. 이것은 천주교가 그렇게 만든 것인데, 천주교는 오랫동안 2천년동안 이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을 마리아의 탄생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가 예수교가 아니라 마리아교가 되는 것처럼 인식될 정도로, 천주교에서는 그렇게 마리아를 숭상하고 있고 또 이것이 천주교를 심지어는 이단시하게 되는 아주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 탄생의 초점을 전혀 마리아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초점을 성모 마리아에게 둔 것은 주후 4세기 이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많은 이단종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거짓된 그리고 잘못된 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의 초점은, 물론 예수님은 마리아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는 했지만 예수님 탄생의 초점은 성모 마리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 말씀도 그러하고 성경을 선입관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치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그렇게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 탄생의 핵심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하는 것이 성경의 강조점인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선입관을 갖지 아니하고 이 말씀 속에서 도대체 예수님 탄생에 무엇이 특징인가 여러분 스스로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세 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자, 이 구절 속에서 예수님 탄생의 강조점은 어디 있는가 하면 마리아가 강조점이 아니고, 물론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지만 마리아의 위대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고, 핵심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이것이 강조점입니다. 여기에 강조점이 있는데 천주교가 여기에 강조점을 두지 아니하고, 마리아의 위대성에 강조점을 두어서 결국은 마리아를 또 하나의 여신으로 만든 것이 천주교의 오류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세가지 중요한 진리가 이속에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시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태복음을 공부할 때에 제일 첫번째로 제1절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중요한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왜 성경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가 그 이유가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다' 하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깨달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진리는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야시다' 하는 겁니다.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셔야만 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은 메시야이신데 메시야는 그렇게 탄생한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예언되어 있습니까 메시야에 대한 최초의 예언, 이것을 우리가 선히 쓰는 말로 한다면 원조복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옛날에 원시복음이라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제일 첫 번째 복음 원시복음이 어느 구절인가 하면 어디입니까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이런 구절은 여러분들이 좀 외우셔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복음입니다. 원시복음, 원조복음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 무슨 내용입니까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너는 뱀입니다. 사탄을 가리킵니다. 뱀이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결국은 인간이 타락하게 됐는데 후일에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모든 인류는 다 남자의 후손인데, 여자의 후손이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사탄의 세력을 정복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분이 메시야입니다. 예수님께서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것은 바로 여기에 약속된 메시야입니다. 더 나아가서 메시야 예언에 대한 굉장한 예언을 많이 말씀하고 있는게 이사야인데 이사야 7장 14절에 보면 메시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바로 처녀의 몸에서 메시야가 탄생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온 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메시야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우리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으로 잉태됐는데 이 성령으로 잉태됐다고 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셨는가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신 그 핵심 진리가 무언가 이것은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성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인성을 가지고 나왔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성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를 못하니까 오늘날 학교에서 새롭게 강조점을 두는 것이 지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인성에 강조를 두어서 인성교육을 하자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학교에서 신성교육을 하자고 하는 그런 학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예수님은 잉태되실 때부터 그리고 태어나실 때부터 그 속에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신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이런 어려운 진리를, 복음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복음에서 이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앞으로 제 계획대로라고 하면 앞으로 15년쯤 지난 다음에 제가 요한복음서를 강해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한 10년이나 15년쯤 복음서를 잘 공부하면 그때에 요한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실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복음서인 요한복음서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영적으로 풀어줍니다. 1절부터 아주 어렵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무슨 말인지들 모르는 소립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좀더 넘어가서 14절에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설명합니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분,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의 그 어떤 다른 종교의 창시자나 어떤 현인이나 어떤 위인과 다른, 우리 주님만의 독특한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훌륭한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능력있는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철학자들도 인정합니다. 장군들도 인정합니다. 위대한 왕들도 우리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인간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예수님과 견주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위인도 이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우리 주님과는 절대로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신성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걸 모르면 우리 주님을 오해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복음서를 볼 터인데, 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예수님의 이 신성부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그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우리보다 위대한 그런 선생으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그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제자들은 놀랬습니다. 그리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분이 과연 누군가 또 때로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도 무언인가 하면 예수님의 신성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점점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에 의심 많았던 도마가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의 못자국 난 손을 만져보고 고백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가리켜 무어라 고백했습니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말하더냐라고 할 때에 시몬 베드로가 주님께 대하여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게 베드로의 고백이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사람의 아들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사람의 아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입니다. 개의 새끼는 개이고, 송아지 새끼는 송아지입니다. 말 새끼는 말이고, 원숭이 새끼는 원숭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지만 그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사람과는 전혀 다른 그 속에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위인이 아닙니다. 보통사람보다도 능력이 많고 지혜가 많은 그런 차원의 훌륭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 이상이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신성을 이해해야만 이제 앞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믿을 수 있게됩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그 놀라운 역사들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9절 말씀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랬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그런 말입니다.
세 번째는, 이 성령으로 잉태된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중요한 진리는 예수님의 무죄성입니다. 무죄하신 예수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없이 처녀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죄 없으신 인간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아담의 후예들은 다 죄 아래에서 태어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이 기독교의 원죄사상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죄라고 하는 것은 죄성을 말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육성이 있지 않아요 그래서 밥도 먹고 그래서 육체의 욕망을 나타내지 않습니까 육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걸 원죄라고 합니다. 죄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제 태어나서 자라면서 점점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인간이 타고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죄성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요한 원죄사상입니다. 죄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죄에서 자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야만 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분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면 어떻게 죄인이 죄인을 구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이 죄와 상관없이 탄생하셔야만 했기 때문에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아담의 후예가 아닌 새로운 제2의 아담으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령으로 잉태되시게 됐던 그 핵심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다음주에 그 부분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 우리를 영원한 죄와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신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탄생하셨던 겁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시다. 예수님은 메시야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바로 이것을 가르쳐줄려고 하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지난 지난 주간에 족보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는데 무어라 칭하는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그랬습니까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심이라. 이게 족보의 결론입니다. 이게 복음서 서론의 결론이고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성경 전체의 결론은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란 말은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하게 될텐데,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자기자신의 선행이나,자기자신의 능력이나 자기자신의 지혜나, 자기자신의 소유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자신의 노력으로 자기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서만 인간은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과 저주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이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교회 다녔을지라도 정말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믿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시간이라도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셔야 합니다. 이 시간이라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받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이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내가 구원받은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고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여러분이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을 확신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고백하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믿음이 좀 있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구원의 은총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은 전인적 구원입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셔서, 즉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에 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죄와 사탄으로부터 죄의 모든 결과로부터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해 주시는 구원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든 저주로부터 모든 불행으로부터 우리 삶의 모든 슬픔과 실패와 질병과 가난과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지배 속에서 우리가 고난 당하던 우리가 고통 당하던 우리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걸 잘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그 구원의 은총을 통해서 죄로부터 사탄으로부터 모든 저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실패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구원을 받았다 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이 구원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만 이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질병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예수 믿고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가난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만 가난으로부터 해방되어서 물질의 부유함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행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모든 불행가운데서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패에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만 그 사람이 성공자가 됩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구원받은 것을 믿습니다. 나는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한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이 주시는 그 전인적 구원의 은총을 통해서 당신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지금 현실이 어떠하든지,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승리를 확신하셔야 합니다.
이야기 하나하고 오늘 말씀을 갈음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 집에 목사님을 초대했습니다. 목사님이 초대를 받아서 가보니까 아주 집이 의리의리하고 굉장합니다. 집안에 들어가서 집안 주위를 둘러보니 온갖 값비싼 가구와 말할 수 없는 장식물들로 집안이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 주인이 자랑삼아서 목사님을 자기 집 구석구석을 다 구경시켜드렸습니다. 방방 열고 얼마나 잘 장식이 되어있는지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있는지. 이 목사님은 생전에 보지도 못한 희귀한 보물들을 눈이 부시도록 보았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이 부자가 이 목사님을 데리고 탑으로 올라가서 주위를 내려다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제 소유물입니다. 사방팔방 보이는 것이 다 제 소유물입니다. 목사님이 이 말을 듣고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굉장하군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에게 한가지 여쭈어보겠습니다. 이 동서남북 사방팔방 보이는 것이 선생님의 소유물이라고 하셨는데, 저쪽 방향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그 부자가 자기의 집에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에 말할 수 없는 소유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늘나라에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하면 그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부유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주위를 둘러다 보아도 값어치 나가는 것 하나도 없고, 동서남북을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아도 땅 한 평 소유하고 있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굳게 잡아주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그분을 믿고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날짜:1999년 2월 14일
왕국을 회복하러 오신 예수
마태복음 1:17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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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된 마태복음은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라고 밝혀줍니다. 이렇게 역사를 3시대로 굳이 구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암기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이렇게 3시대로 구분한 역사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역사의 구분을 보면 그 중심에 왕국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는 다윗왕 때에 이르러 비로소 위대한 왕국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14대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영광스러웠던 다윗 왕국은 그 아들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분열되고 드디어 14대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완전히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4대만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적 비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왕국을 회복하러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왕 이래로 유다 왕국의 영광을 상실하고 계속되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시면 무너진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시켜서 열국의 머리가 되고 열국을 지배하는 위대한 왕국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무너진 왕국을 회복하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오해했던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야가 오시면 이 세상에 위대한 유대 제국을 건설하고 다윗왕과 같은, 다윗왕보다도 더 위대한 제왕이 될 줄로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무너진 왕국을 회복하러 오신 다윗의 자손 메시야시었으나 예수님은 이 땅에 다윗 왕국을 재건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위대한 하나님의 왕국, 곧 천국을 건설하려고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요18:36). 이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처눅긍ㄹ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에게 천국의 주인공이 되는 복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번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이었고,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힘하였느니라(마12:28) 하셨으며, 눅17:21에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에덴이라는 낙원에 사는 영광을 누렸는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불행과 저주와 멸망의 존재가 되었는데 예수님은 죄와 저주 아래 있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인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 믿는 자마다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누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믿음 안에서, 성령안에서 천국을 누리며 (롬14:17), 확장하며(마28:19-20) 살아가는 천국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2월 7일
그리스도이신 예수
마태복음 1:16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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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핵심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란 사실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인데, 예수님에 대한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란 말은 '메시야' 란 히브리어의 헬라어 번역인데, 메시야란 말의 문자적 뜻은 '기름부음 받은자' 란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곧,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곧 선지자시요, 제사장이시요, 왕이시란 뜻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성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해주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선지자가 되시는 것은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요(요1:14),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요14:6).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사함과 축복을 위해서 제물을 드려 제사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씻을 길이 없고,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써도 죄를 씻을 수 없고 오직 갈보리 십나가의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 곧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피로 속죄함을 앋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왕은 통치자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권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은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마귀의 지배 속에 살고 있습니다(요일3:8,엡2:2). 아무도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롬3:10), 죄가 있는 한 마귀의 지배를 벗아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우리의 의의 왕이신 예수님이 사탄의 포로 가운데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완전하신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는 성도들은 이제 더 이상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무한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해 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31일
약속의 메시야이신 예수
마태복음 1:1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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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신약성경은 지루한 족보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읽기조차 힘들어하며 아예 읽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이 이렇게 지루한 족보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의 열쇠는 바로 1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즉,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의 말씀이야말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신약성경 제일 첫 구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란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이 구절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란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창12:3). 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린 후에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창22:18).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증거하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성취되는 아브라함의 자손,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예수님 안에서 죄로 말미암은 모든 저주의 사슬을 벗고 약속된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갈3:13, 요10:10).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실 뿐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가합니다. 예수님을 틉결히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거하는 이유는 구약성경에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11장에서 메시야는 이새의 뿌리에서 탄생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묘사되고 있는 '다윗의 자손 예수'는 약속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또한 예수님을 특별히 다윗의 자손으로 증거하는 이유는, 예수님은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왕국 곧 천국을 건설하시는 메시야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면서도 역사속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그 고난 속에서 소망하고 기다렸던 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오셔서 무너진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위대한 왕국을 건설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오셔서 건설할 위대한 유다제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 왕으로 오신 메시야이시지만 이 땅에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시는 땅의 왕은 아니십니다(요18:33-37).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천국 시민이 됩니다(빌3:20).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한마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은 천국복음입니다(마4:23).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고 살아서도 누리는 천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이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증거하고 확장하는 천국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왕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며,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고 이젠 예수 진리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24일
믿음의 원리
로마서 1:17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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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 1:17)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리스도의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인데 믿음으로 구원 받고 (엡2:8)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요1:12) 성도들이 믿음으로 복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믿음의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믿음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무엇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 낯선 새로운 땅에 가서 살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은 부모와 형을 떠나 타얗살이를 해야 했고, 요셉은 부모와 형들을 떠나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고, 모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2. 하나님께 맡기는 것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기는 것이며, 내 모든 문제들도, 내 소원도, 내 성공도, 내 가족도, 내 사업도 다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진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으려면 모든 것을 믿음으로 주께 맡겨야 합니다.
3.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난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생애 속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시고 나를 축복하시기 원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큰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과 기적의 역사가 내게도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4. 기도하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 하나님께 큰 기대를 갖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니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내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고, 내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없는 믿음은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빌4:6-7). 큰 꿈과 소망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81:10)
5. 순종하는 것
믿음은 순종입니다. 속에 있는 믿음이 순종이란 행위를 통해서 밖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위대한 믿음은 위대한 순종을 낳고 위대한 순종이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곧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6. 충성하는 것
믿음과 충성은 한 단어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큰 기대화 소망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며 위대한 역사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이 아닙니다. 날마다 충성하는 삶을 사는게 믿음입니다.
7. 인내하는 것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내 믿음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17일
복 받고 번성하려면
창세기 22:15-18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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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히6:14)는 축복의 말씀은 본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그런 축복을 받았는지를 깨닫고 동일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택
아브라함이 그런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근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런 축복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깨닫고 믿어햐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교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히 구별하여 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말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바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고(엡1:4), 부르심을 입어(롬8:29-30, 사43:1)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2. 약속의 말씀을 믿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는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요, 현실이 아닌 미래의 축복의 약속이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히4:2).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3. 새로운 소망을 갖고 새 출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복받고 성공하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꿈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에 만족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꿈과 환상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려는 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꿈과 환상이 있어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아무 역사도 이룰 수 없습니다.
4. 철저한 순종
순종 없는 믿음은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어려운 순종을 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에 75세의 나이었지만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나중에는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복받고 성공합니다. 아픔이 있어도, 두려움이 있어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5. 인내함
아브라함의 믿음은 인내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믿고 오래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놀라운 축복을 받았고 약속이 성취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뒤 이삭을 얻기까지는 무려 25년이 걸렸습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을 그는 믿음으로 인내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여 성취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9년 1월 10일
하나님을 신뢰하라
디모데후서 1:12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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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어떤 형편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큰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고, 담대함과 용기를 가질 수 있고,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삶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며,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세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바울은 자기의 의뢰한 자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바울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 자기가 믿는 예수님을 잘 알았습니다. 잘 알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려면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였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가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리고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제자들은 아직도 주님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주님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잘 쇤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알고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본문에 나의 의탁한 것을 하였는데 이는 주님께 그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마11:28).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꿈과 소망과 우리의 사역과, 우리의 장래와 모든 것을 참으로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하였습니다. 시편 37편 5절에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였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확신하였습니다.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는 주님을 알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맡기고 확신하였습니다. 우리도 내가 주님께 맡긴 모든 것을 주님이 지키시고 역사하실 줄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면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신뢰했기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신뢰하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홀로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평안을 누리며 큰 소망을 갖고 풍성한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십시오. 아멘.
날짜:1999년 1월 3일
복받고 번성하는 해
히브리서 6:14
설교:유 강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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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은 희망을 갖습니다.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그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새해가 되면 새로운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시대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역사를 하십니다. 성경 첫머리 창세기 일장에 나타나 있는 창조의 기사를 보면 하나님은 하루하루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엔 하나님께서 또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사43:18-21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먁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창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에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새로운 소명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새로운 꿈과 환상을 가졌으며 결국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금년에 우리 교회에 히6:14에 있는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 보면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유익이 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복 받고 번성하는 해가 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개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큰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넓게 하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기다리며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 찬송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2월 20일
기쁜 성탄
누가복음 2:8-14
설교:유 강 신 목사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이 '메리 크리스마스' 즉,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합니다. 백화점과 상가들에 요란하게 장식되어 있는 성탄 트리들은 한껏 기쁨을 고조시키는 듯 합니다. 성탄절에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예쁜 카드 한 장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작은 선물 하나가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불경기 속에서 오랜만에 큰 매상을 올린 상점 주인들은 상탄 대목을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의 참 기쁨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또 성탄의 참 기쁨이란, 카드 한 장, 선물 하나 받지 못한 사람들도 크게 누릴 수 있는 기쁨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성탄의 참 기쁨은 무엇입니까 성탄은 구세주의 탄신일이기 때문에 구세주 예수님을 떠난 기쁨은 그 어떤 것도 성탄의 기쁨일 수 없습니다. 성탄의 참 기쁨은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I. 구원의 기쁨
성탄의 가장 큰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전 저 유대땅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이 없는 성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구원의 기쁨이 없는 성탄의 기쁨은 그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기쁨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천사의 말대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쁭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은 바로 구주가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엔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 하고 구원의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나 재난 가운데서 해방 받으면 굉장히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지옥 형벌 가운데서, 죄 가운데서, 사탄의 포로 가운데서, 저주 가운데서 해방 받은 구원의 기쁨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입니까 성탄의 기쁨은 바로 이 커다란 구원의 기쁨인 것입니다.
Ⅱ. 임마누엘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도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게 하시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참 기쁨은 임마누엘의 기쁨입니다.
아기의 가장 큰 불행과 슬픔은 부모와 헤어지는 것인 것처럼 인간의 원초적 불행은 하나님과 분리된 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사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고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도 임마누엘이시며(마1:23) 성탄의 참된 기쁨도 임마누엘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우리는 임마누엘의 기쁨을 충만히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험하고, 이 시대가 특별히 어려운 시대이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주님, 전지전능하시고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한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2월 13일
사탄을 물리치라
마 16:21-23
설교:유 강 신 목사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때에는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아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는 그 낙원에서 쫒겨나서 그와 그 후손들이 오늘처럼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게 해서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배후의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사탄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에게서, 에덴 동산에서 쫓아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사탄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사탄은 하와와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배후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사탄이 역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을 물리쳐야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에서 있었던 본문의 사건은 우리에게 이런 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물으셨습니다. 이 때 사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잘 대답하였습니다. 이 때 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축복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후에서 역사하신 영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셨던 것입니다.
이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즉시로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에도 주님은 베드로의 육신적 상황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영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지금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미련해서가 아니고 그 배후에서 사탄이 역사했기 때문이고 더욱이나 이것은 사탄의 목표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 자신을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사탄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잘 깨닫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을 육신적으로만 보고 그를 업신여기거나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어리석음이나 잘못을 고쳐주려고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초점은 나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서 염려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그래서 불행하게 하고 믿음을 잃어 버리게 하고 승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대상은 나 자신인 것을 깨닫고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2월 6일
지겨움에서 지극함으로
민수기 20:1-13
설교:유 강 신 목사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출애굽 1세 중 장년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었고 안타깝게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므리바 사건은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결정적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출애굽 제40년째인 정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회중은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3-4절). 이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하셨습니다(7-8절). 그러자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ㅏ
ㄷ.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다 마셨습니다(10-11절). 그러자 이 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짱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12절). 이렇게 해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진리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원인인 모세의 불신앙과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모세의 불신앙은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반석을 친 것인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사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기 전 그는 회중들에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모세의 상한 심령이고 또하나는 모세의 착각입니다. 이 때 모세는 끊임없이 원망 불평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물을 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들에게 물을 내어 주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물을 내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참으시고 그들을 요서하시며 무한한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바로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즉 인간과 다르신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에게 나타냈어야 했는데 모세 자신의 분노를 들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지겨움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어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날짜:1998년 11월 29일
감사의 신앙
시편 136:1-26
설교:유 강 신 목사
교회가 해마다 11월 중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특별히 감사하기 위해서이며 이것은 특별히 농경문화속에 살던 신앙의 선조들의 전통에 연유합니다. 농부들이 봄에 씨를 뿌려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 속에서 정성으로 가꾼 곡식을 가을에 풍성하게 거두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은 아마도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전통속에 비록 농경문화권에 살지 않는 성도들일지라도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특별히 감사의 예물을 준비해서 늦가을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심히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신앙의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절을 지키는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들을 헤아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특별히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감사의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은 현대적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청교도들의 첫 번 추수감사절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620년 9월 2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으로 떠난 영국의 청교도들은 두달 일주일간의 항해 끝에 11월 9일 드디어 메사추세츠주 케이프 카드만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항해도중 많은 동료들을 풍랑 속에 잃고 102명이 모진 고난의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해 겨울을 보내면서 추위와 굶주림, 질병 등으로 반수에 가까운 4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621년 3월 이후에는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의 농사도구를 훔쳐가기도 하고, 청교도들이 심어놓은 밀밭과 콩밭을 짓밟아서 못쓰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디언 추장이 찾아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우호적인 인디언들에게서 옥수수와 밀 경작법등 많은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생활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양식이 부족할 때는 일주일에 3일씩 금식을 하며 연명해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가을이 되어 옥수수와 보리, 밀 드이 풍작이 되어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미국 청교도들의 첫번째 추수감사절이었고 현대적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1863년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언하면서 경건한 우리 조상들이 이 아메리카 땅에 심어놓은 감사의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서 이 감사절을 제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보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믿음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새로운 대륙으로 떠났는데 도중에 수많은 동료가 풍랑에 죽고, 신대륙에 도착해서도 정착도 하기 전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절반이나 죽었으니, 죽은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 부모를 생각할 때에 얼마든지 그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신앙이요,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배우고 소유하고 계승해야 할 감사의 신앙입니다. 이 감사의 신앙을 계승하여 더욱 풍성한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날짜:1998년 11월 8일
성공의 열쇠
요한계시록 3:7-8
설교:유 강 신 목사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수고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유치원이나 학원에 다닙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지만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사업에서, 가정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열쇠는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성공의 열쇠가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공의 열쇠는 주님이 갖고 계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손에 열쇠가 있습니다. 내 손에 키가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의 열쇠를 주님이 가지고 계신데 한번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한번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27편에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이 가르쳐 주는 두 번째 진리는 성공은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많으면 반드시 성공하고 능력이 적으면 반드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이나 성공은 아이큐나 성적순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께서 열린문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였습니다(8절). 빌라델비아 교회는 크고 능력이 많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문의 축복을 받아 가장 성공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능력은 적었으나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8절). 여기에 성공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많고 적음에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아니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 살면 하나님이 성공의 축복을 주시고,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십니다. 신명기 28장에도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성공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복음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인 선교의 대명령에 순종해서 이웃과 온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주님이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하셨습니다(8절). 신앙생활하다가 시험이 오고 핍박이 오고 환난이 와도 주님을 배반치 않아야 합니다. 신앙을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뒤돌아서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베풀어 주십니다. 아멘!
날짜:1998년 11월 1일
거인이냐 밥이냐
민수기 13:25-33
설교:유 강 신 목사
인생엔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가 끊이지 않고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행복이나 성공은 절대로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닥쳐오는 작고 큰 문제들을 해결하고난관을 극복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 있든지, 어떤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든지 이것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여지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환경이나 문제자체가 아니고 바로 이 시각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환경이나 문제도 그 사람의 신앙이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는데 부정적으로 느껴지면 망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되면 어떤 문제속에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비밀이고 영적인 원리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의 명을 따라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두령을 택해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똑 같은 땅, 똑 같은 성읍, 똑 같은 거민, 똑 같은 소산물을 보고 와서 보고하는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사람의 두령은 그 땅을 악평하여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땅의 거민들은 거인들로서 이제 우리는 죽게 되었다고 심히 절망적인 보고를 하고 온 회중들과 함께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모든 원주민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결이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문제나 이루어야 할 목표가 내 눈에 거인으로 보여지고 부정적으로 느껴지면 나는 그 거인에게 삼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내 앞에 아무리 큰 문제나 목표가 있어도 그것이 내게 밥으로 보여지고 긍정적으로 느껴지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인으로 보이지 않고 밥으로 보이게 됩니까 육신의 눈으로 보면 거인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밥으로 보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문제와 나를 일대일로만 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문제와 하나님과 나를 삼각관계 속에서 봅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문제와 나 자신만을 비교하면 문제가 거인이 되고 나는 메뚜기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와 하나님을 비교하면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고 내 밥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서 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보고 골리앗을 볼 때에 능히 자신의 물맷돌로서도 골리앗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물맷돌로 골리앗을 처 죽였습니다. 물맷돌의 위력이 아니라 다윗의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문제를 거인이 아니라 밥으로 보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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