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5:6)
본문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늘날 이 질문은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사는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지는 단지 교회를 다니며, 일정한 예배에 참석하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가 현실에서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판단과 영향권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삶의 원리는 어떠할까요 이것을 위해 주신 주님의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마태복음 5-7장을 우리는 산상수훈이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하신 귀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하늘 백성의 삶의 원리입니다. 구약백성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야할 원리로 십계명이 주어졌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래 사는 우리에게는 산상수훈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축복의 길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킴으로 엄청난 복을 누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래 주어진 생명의 말씀을 지킴으로 받는 복은 어떠하겠습니까
본문은 특히 이 세상에서 충만한 복을 사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사람들은 오늘날 일면 풍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중생(거듭남)의 체험을 가진 하늘백성은 결코 배부르지 않다는 사실을 압니다. 물질적인 부요가 우리의 심령을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심히 주려있고 갈급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만이 진정 배부르며 목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오늘 본문은 참으로 만족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도덕적 ‘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욱 깊은 차원의 것으로, ‘하나님의 의’(롬 3:21)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의’가 얼마나 무가치한 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의 앞에 선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보게되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주의 의로 나의 허물을 덮어달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는 결코 한 번의 느낌의 사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리고 목마름’은 끊임없이, 그 주림과 갈증이 만족될 때까지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는 곳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자 중의 어느 누구도 충만한 기쁨없이 돌아간 자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게 나아오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 이것은 하늘 백성이 누릴 영원한 양식이자 기쁨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충만함의 복이 있을지어다.-아멘-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가 현실에서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판단과 영향권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삶의 원리는 어떠할까요 이것을 위해 주신 주님의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마태복음 5-7장을 우리는 산상수훈이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하신 귀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하늘 백성의 삶의 원리입니다. 구약백성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야할 원리로 십계명이 주어졌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래 사는 우리에게는 산상수훈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축복의 길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킴으로 엄청난 복을 누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래 주어진 생명의 말씀을 지킴으로 받는 복은 어떠하겠습니까
본문은 특히 이 세상에서 충만한 복을 사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사람들은 오늘날 일면 풍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중생(거듭남)의 체험을 가진 하늘백성은 결코 배부르지 않다는 사실을 압니다. 물질적인 부요가 우리의 심령을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심히 주려있고 갈급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만이 진정 배부르며 목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오늘 본문은 참으로 만족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도덕적 ‘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욱 깊은 차원의 것으로, ‘하나님의 의’(롬 3:21)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의’가 얼마나 무가치한 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의 앞에 선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보게되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주의 의로 나의 허물을 덮어달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는 결코 한 번의 느낌의 사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리고 목마름’은 끊임없이, 그 주림과 갈증이 만족될 때까지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는 곳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자 중의 어느 누구도 충만한 기쁨없이 돌아간 자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게 나아오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 이것은 하늘 백성이 누릴 영원한 양식이자 기쁨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충만함의 복이 있을지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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