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15:21-28)
본문
사람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원하는 소원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소원을 이룬 사람을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고 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 가운데는 간절한 소원을 가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여인은 소원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이 여인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흉악하게 귀신들려 고생하는 딸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병들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가 몇번 나옵니다. 마태 17장에 보면 귀신들려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며 때로는 불에도 넘어지고 때로는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서 그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 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애원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고쳐 주셨습니다. 후에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고치지 못했습니까 "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흉악히 귀신들린 딸이 깨끗하여 지기를 소원했습니다. 이 여인은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동원했던 모든 방법으로는 다 실패였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께 나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런 소문을 들었을 때 이 여인에게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로마서 10:17에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대로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의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2. 이 여인은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했습니까
1) 우선 예수님께 나아와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아와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가나안 여자가 아무리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도 예수님께 나오는 행동이 따라야만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생각하는 믿음에서 행동하는 믿음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여인은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소원을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고 소원을 아뢰면서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들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믿을 뿐아니라 입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로마서 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와 발아래 엎드리어 애원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렸나이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본문 23절에 보면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전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척 했습니다.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애원을 완전히 거절하시는 태도입니다. 옆에서 보고있던 제자들이 오히려 민망하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계속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시끄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속히 고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의 애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아니고 엎드려 애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라는 듯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냄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도 아니고 가나안 사람 곧 이방인이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투였습니다.
2)"주여 , 나를 도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애원에 처음에는 침묵하시고 ,다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하였으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가왔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께 절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소리질렀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소리 지른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소리질렀다는 것입니다. 거절당하였으나 계속하여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1-8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거절을 당하였음에도 계속 애원했습니다. 거절당하였음에 불구하고 계속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끈질기게 애원하는 이 여인을 향하여 좀 심하다 생각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녀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개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만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들을 개취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을 경멸하는 뜻에서 이방인을 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이 먹어야 할 양식인 떡을 개와 같은 이방인에게 던져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 취급을 받았습니다.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여기서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개처럼 멸시를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겸손하게 구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을 개로 취급하시는데 그것이 옳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키는 경우 "죽은 개" 혹은 "개 같은 "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삼하9:8에 보면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돌봐주었을 때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한 태도 입니까 예수님은 바로 이 여인에게서 이런 겸손한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이 여인을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드디어 이 여인을 향하여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신 예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이방인에게 그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는 로마 백부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8:에 보면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즉기 가서 고쳐 주시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이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8:8)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이 백부장을 칭찬해 주시면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되리라"(마8:13) 하셨고 그 시로 그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을 향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는 칭찬과 함께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부르짖는 애원에 대하여 침묵하시고, 냉정한 말로 그의 소원을 거절하시고 ,이방여자인 개로 취급했으나 무시하셨으나 마침내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해 주심과 함께 그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가나안 여인의 귀한 믿음의 자세를 볼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
1)딸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 오는 행동하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2)주님께서 침묵하시고 냉담하실 때에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와 강청하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3)주님께서 경멸하시는 태도로 대하실 때에도 자신의 약한 것을 깨달으며 구하는 겸손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4)그리고 이 여인에게서 시종일관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주여하고 고백하는 변치 않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5)뿐만 아니라 이 여인의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끝내; 칭찬하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여 주십니다 .반드시 그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더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1.이 여인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흉악하게 귀신들려 고생하는 딸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병들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가 몇번 나옵니다. 마태 17장에 보면 귀신들려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며 때로는 불에도 넘어지고 때로는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서 그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 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애원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고쳐 주셨습니다. 후에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고치지 못했습니까 "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흉악히 귀신들린 딸이 깨끗하여 지기를 소원했습니다. 이 여인은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동원했던 모든 방법으로는 다 실패였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께 나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런 소문을 들었을 때 이 여인에게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로마서 10:17에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대로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의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2. 이 여인은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했습니까
1) 우선 예수님께 나아와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아와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가나안 여자가 아무리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도 예수님께 나오는 행동이 따라야만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생각하는 믿음에서 행동하는 믿음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여인은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소원을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고 소원을 아뢰면서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들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믿을 뿐아니라 입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로마서 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와 발아래 엎드리어 애원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렸나이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본문 23절에 보면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전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척 했습니다.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애원을 완전히 거절하시는 태도입니다. 옆에서 보고있던 제자들이 오히려 민망하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계속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시끄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속히 고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의 애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아니고 엎드려 애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라는 듯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냄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도 아니고 가나안 사람 곧 이방인이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투였습니다.
2)"주여 , 나를 도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애원에 처음에는 침묵하시고 ,다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하였으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가왔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께 절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소리질렀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소리 지른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소리질렀다는 것입니다. 거절당하였으나 계속하여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1-8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거절을 당하였음에도 계속 애원했습니다. 거절당하였음에 불구하고 계속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끈질기게 애원하는 이 여인을 향하여 좀 심하다 생각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녀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개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만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들을 개취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을 경멸하는 뜻에서 이방인을 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이 먹어야 할 양식인 떡을 개와 같은 이방인에게 던져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 취급을 받았습니다.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여기서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개처럼 멸시를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겸손하게 구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을 개로 취급하시는데 그것이 옳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키는 경우 "죽은 개" 혹은 "개 같은 "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삼하9:8에 보면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돌봐주었을 때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한 태도 입니까 예수님은 바로 이 여인에게서 이런 겸손한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이 여인을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드디어 이 여인을 향하여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신 예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이방인에게 그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는 로마 백부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8:에 보면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즉기 가서 고쳐 주시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이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8:8)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이 백부장을 칭찬해 주시면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되리라"(마8:13) 하셨고 그 시로 그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을 향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는 칭찬과 함께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부르짖는 애원에 대하여 침묵하시고, 냉정한 말로 그의 소원을 거절하시고 ,이방여자인 개로 취급했으나 무시하셨으나 마침내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해 주심과 함께 그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가나안 여인의 귀한 믿음의 자세를 볼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
1)딸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 오는 행동하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2)주님께서 침묵하시고 냉담하실 때에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와 강청하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3)주님께서 경멸하시는 태도로 대하실 때에도 자신의 약한 것을 깨달으며 구하는 겸손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4)그리고 이 여인에게서 시종일관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주여하고 고백하는 변치 않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5)뿐만 아니라 이 여인의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끝내; 칭찬하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여 주십니다 .반드시 그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더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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