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평가에 초연해지는 길 (롬5:1-11)
본문
오늘은 로마서 9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목을 세상의 평가에 초연해 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열매가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믿음에는 생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뭐냐 화평을 만들어 냅니다. 화평. 믿음의 결과가 뭐냐 오늘 1절을 보십시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믿음의 결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또 과거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10절을 보니까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화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백성들은 화평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다는 거예요. 화평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화평이 없는 사람의 삶을 옆에서 잠시 옆에서 구경해 보면은 야!-예수 믿는 사람의 화평이 이렇게도 놀라운 일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화평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화평이 없으면 절대로 안식할 수없습니다. 쉼이 있을수 없고 기쁨이 있을수 없습니다.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의 화평이 깨지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고, 급기야 이혼까지 가는. 뭐 그런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화평없는 가족은 지옥입니다. 저는 이번에 포항에 갔더니 포항에 시장님도 오시고, 도지사께서도 계시고, 국회 의원도 오시고 해서 고급정보를 들을수 있었는데, 고급 정보도 아니죠. 뭐 그런 얘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슴 아픈 얘기를 들었는데 포항에 이혼율이 45퍼센트 라고 합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듣고 놀랬거든요. 59퍼센트다 해서. 놀랬는데. 그것에 비해서 포항도 평탄해 보이는 도시인데 심하구나!-지금 서울이 33퍼센트가 된다고 하니까. 그래서 결론이 뭐냐 한동대 부총장님께서 주로 소년원 사역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에 교도소에 가있는 사람이 7만명인데 그 중에 만명이 소년범이랍니다. 소년범. 소년원에 가 있는 사람들. 그 부총장님께서 여러사람을 만나보고 분석해 보고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부부의 이혼에서부터 모든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부부가 이혼을 하니까 이 아이들이 사춘기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 속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거예요. 나하고 친근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는 사람이 나이가 18, 19살이 되도록 한번도 그런 기회를 가져 본적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의 이혼은 아이의 가출을 낳고, 가출하는 아이 20명을 조사해 봤더니 20명 다 100퍼센트 어머니가 집에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부의 이혼은 100퍼센트 아이의 가출을 낳고, 아이의 가출은 한번 두 번 지난후 무조건 범죄를 낳고, 범죄는 곧 사회적인 파탄을 낳는다. 그러니까 뿌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정의 화평”.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모든일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운데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나라가운데도 서로 화평이 있어야지 평화와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전쟁도 뭐 오락게임으로 할때나 재미있지 사실 그것은 죽고 살고 하는 문제 아닙니까 팔하나가 날라가고, 가족들을 잃고 하는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갈구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화평해야 한다는 거예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 봅니다. 왜. 직자에서 어렵냐 왜 직장에서 퇴직하게 되었느냐 그 중에 많은 대표적인 이유 하나가 월급 문제 이런거 아닙니다. 대부분이 갈등이예요. 인간간의 갈등. 화평이 깨지는 것. 결국은 자기가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 보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행복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월급을 받고 아무리 좋은 직책이라고 해도, 결국 화평입니다. 화평.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평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한사람은 평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한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싸우던 교회 다녀 보았습니까 저는 16년을 싸우던 교회 출신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뭔지 다 압니다. 예배는 잠깐 드리고 모여서 전략회의 갖고요. 아이들이 빨리 크길 바랍니다. 보디가드. 이렇게 앞에 서야 하니까요. 뭐 그러던 교회에 내가 출신입니다. 싸움 구경은 지겹게 했습니다. 지겹게. 큰집에 우리집에 모여서 밤낮 전략회의 하고, 맨날 이런 것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지고 우리 삶가운데 축복이 다 사라집니다. 우리의 삶속에 평탄함이 사라지면 그때가서야 이 평탄함이 우리의 삶속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 그때 가서야 깨닫습니다. 사업도 안되고, 애들도 안되고, 가정도 평화 다 깨져 버리고, 그래서 깨닫는게 있죠. 평화로운 교회가 복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거. 그죠. 그게 평화입니다. 평화. 이정도 얘기 하면 얼마나 평화, 화평, 샬롬이 중요한지 아시겠죠. 이 평화를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믿음이라는 크나큰 축복을 통해서 믿음의 열매로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신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injoy. injoy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거 잘 누리는 종들이 되자. 악한 마귀는 화평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알고 화평을 깨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의 승리라는게 뭐냐하면 무슨일을 할때 화평을 가지고 일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많은 비난을 합니다. 험담을 합니다.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악한 마귀는 어떻게 하면 이 화평을 깨면서, 그렇죠 흥분을 하면서 일하게 할까 그것을 노리고 공격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살면서 폭언을 듣게 되어 있어요. 왜요. 마귀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그럴 때 여러분! 이것 잊지 마십시요. 누가 나를 향해 폭언을 하면 그냥 씩 웃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가 내뱉은 말은 단지 그 자신의 내면의 있는 것을 노출했을뿐이야.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말 하는 겁니다. 그렇죠 듣는 사람 문제가 아니예요. 어떤 사람의 그릇을 보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거지, 속에 없는 게 절대 나올수가 없습니다. 험담을 들을 때 내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하며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이 병든 사람이다. 여러분! 인터넷 사이트같은데 가서 한번 보십시요. 남들을 비판한다고 그러는데. 잘 보면은 그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이예요. 다 병들어서 깨지고, 상처입고, 그래서 그 잘못된 것 들을 하지 못해서 겉은로 들어나느 거에요. 표출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우리가 폭언을 들었을때 내가 상처입는 게 아니라, 그사람이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그사람이 참 불쌍한 존재구나! 라며 기도해주고, 참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잠언 12:16절에 보니까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 내거니와.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는 이유가 뭐죠 미련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미련하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거예요.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여러분 미련한자가 되겠습니까 슬기로운 자가 되겠습니까 슬기로워야 하지요.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이 말씀 하나 지키면 화평 깨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험담때문에, 폭언때문에, 공격 때문에 화평이 깨지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화평을 잘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불쌍하게 여기면서, 또 하나 이땅에 살면서 배신하는 사람 생기지 않습니까 예수님께도 가롯유다라는 배신자가 있었죠. 배신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그죠. 생각을 그렇게 하면 된다는 거예요. 배신자 생길수 있다는 거 아니예요. 왜 내 삶가운데 배신자를 보내주셨죠 배신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아니겠어요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하다보면은 배신하는 사람 많이 나올거 아닙니까 아 그러면 배신할 때 어떻게 잘 다루어야 하고, 배신할 때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어렸을 때부터 그런거 배운면 커서 큰 인물 되잖아요. 한번도 배신당한 적없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 한번 당한면 휘청휘청하고, 정말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있으면 얼마나 큰 위기가운데 빠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죠 배신의 아픔도 당하게 해야죠. 배신의 아픔도, 서로 이해하게 만들고, 품게 만들고, 저는 과거에 실패했던게 대게 많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거 이해하게 되요. 다른 사람에게 제 삼자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두사람이 아니죠. 우리 교역자끼리도 다 모여서 얘기하는거 보면은 제가 제일 이해를 잘하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경험했던 얘기거든요. 경험 했으니까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사람의 행동만 보고 평가를 해요. 왜저러느냐고. 저는 심리를 알거든요. 저 여자가 왜 저러느냐! 저건 시집가면 다 해결될 일이야. 자꾸 신경질 내고 다른 사람에게 폭언을 하고. 생각해 보세요. 나이가 들었으니 결혼은 해야 하는데 외롭잖아요. 외롭다고 말해야 하는데 외롭다고 할수는 없고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저것은 남자친구 사귀면 끝나는 거라고. 어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갑자기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자꾸 행동갖고 그러면 안된다고. 본인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 좋은게 나가게 되어있거든요. 본인이 너무 불행하게 느끼는거에요. 생각해 보십시요. 저도 서른이 넘어서 장가를 못가고 ,
그런데 이런 것은 다른것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면 갈수 있는데 고르다 못가는 것하고 다르죠. 아무리 문어발같이 내밀어도 잡히는게 없을 때 오는 절망감. 그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니까요. 그사람을 비난하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접근해야죠 어떻게 하면 저사람 행복하게 해 줄까 그거 채워주면 문제 다 해결됩니다. 그게 아비의 마음 아닙니까 그게 어미의 마음 아니예요저는 옛날에 중고등학교때 다닐때 다 경험 해 봤어요. 버려진 아픔들. 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중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수련회를 갔었는데 잘 놀았어요. 고3 학년 선배, 지금 샌디에고에 사는 선배인데, 제가 대게 싫어 했어요. 고3 때이니까 입시때이니까 수련회 하루만 온대요. 마지막날 딱 와가지고 기타를 대게 잘쳤거든요. 점심을 먹고 구석에서 기타를 치니까 자매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그중에 제가 좋아까지는 않했지만 호감갖고 있던 자매까지 쳐다보지도 않고 다 모여들고, 그때 수련회 은혜 하나도 못받았어요. 절망에 빠져가지고, 그때 가슴쓰린 형제들 모아놓고, 그때 밖에서 비가 왔습니다.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축구하고, 그때 분을 축구공에 풀고, 그랬던 것이 기억나는데요. 그때부터 제가 기타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도 그 환상이 깨지질 않아요. 이해를 해야지. 채워지면 해결되는 거예요. 사람이 원래 악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예요. 그때 거기서 이를 악물었던 사람 악한 사람 없었어요. 다만 갖지 못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지. 이해가 되잖아요. 이해가. 배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신을 당해봐야 해요. 그래야 내가 그를 어떻게 품을수 있는지. 이끌어 갈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어야 할거 아니예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말을 했죠 자신이 할일을 해라. 누가 욕하면. 그리고 저들이 소리지르게 내버려 둬라. 소리지르게 내버려 둬라. 꼭 뉘앙스가 개가 생각이 나요. 똥개는 짖어도 경부선은 간다. 그러고 있으라는 거예요. 잠언 18장 2절을 보니까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느니라. 근데 이 말씀을 공동번역, 새번역을 보면 반대하는 사람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의사만 드러내는 것을 기뻐한다 이렇게 적혀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공격하는 사람 잘 보면은요. 반대하는 사람은 사실의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냥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고 공격하는 재미로 사는 거라고. 그거 고쳐나도 또 그거 해요. 왜 그 사람은 그거 하다 죽을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모자르는 놈들이니까 그래요. 모자르지 않으면 바쁘죠. 남의 일에 간섭하나요 그거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남아메리카에 가면 그 열대에 가면 소리지르는 원숭이가 있답니다. 소리를 얼마나 질러대는지 정글에서 가장 큰 소리를 지르는 동물이 바로 이 소리지르는 원숭이래요. 소리지르는 원숭이. 그죠 근데 그 다음말이 재미있어요. 그는 정글에서 가장 큰 소리를 지른 동물인데 그 원숭이가 정글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 절대 아니라고. 잊지 마십시요. 소리가 제일 큰데 크다고 해서 정글에서 제일 강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소리 왜 지르죠 무서워서 지르는 거예요. 무서워서. 여기서도 무서울때 소리지르는 남자 봤어요 물론 가끔 있지만, 다 여자가 소리 질러요. 왜그러죠 약해서 그래요. 약해서. 육체적으로 약해서 그래요. 어느 강한자가 소리지르는 것 아니예요. 약해서 소리지르는 거에요. 누가 주변에서 날 향해서 막 소리지르면 그거 강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얼마나 약하면 저러나!-하면서 불쌍히 여기면서 품을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편집된 기도의 책을 보면은 그것을 내가 쓴 것은 아니고 사후에 모아놓은 책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하기를 기돋의 삶이 중요하다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기도가 깊어질수록 주변 사람의 칭찬이나 연연에 덜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먼저 주님께 사랑과 화평으로 채우게 된다. 그것이 기도다. 왜 우리가 삶가운데 기도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기도 안하면 이상하게 사람들의 비난, 칭찬이 크게 들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집중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묘한게 뭐냐하면 기도 자체에도 엄청난 위로와 사랑이 있지만, 사람 비난이 작게 들리고 연연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초연해 집니다. 여러분 그거 많이 못 느낍니까 사람이 기도하면 초연해지고 의젓해져요. 칭찬해도 흔들리지 않고, 비난해도 흔들리지 않고,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밤낮 얘기하는게 뭐예요.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부르짖으라!는 거예요. 부르짖으라! 주님이 주시는 그 화평을 잃지 말아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습니다. 잘 지키는 방법이 뭐죠 흘러넘치는 기도를 통해서 그 기도를 귀중한 것을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NBA 농구 같은 것 보면 재밌지 않습니까 난 볼때 마다 너무 웃겨요. 그 FREE THROW를 던지잖아요. 그 자유투를 던지면 그 뒤에 있는 홈팀이 막대기 같은 것 막 흔들죠 난 그것이 응원하는 것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게 응원하는게 아니고 막 햇갈리게 하려고 막 흔드는 거래요. 그래서 다 헷갈려 하며-흔들고어떤 사람은 이상한 그림도 갖다 놓고, 옛날에 막 벌거벗은 여자 사진도 올려놓고, 막 헷갈리게 하려고, 그거 헷갈리면 프로선수 아니죠. 그거 헷갈리면 아마추어죠. 동네 농구죠. 아무리 흔들어대도 진짜 프로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게 보이면 안되죠. 링이 보여야 하고. 거기다 정확하게 집어 넣을줄 아는게 프로죠.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해요. 마귀도 참 우리를 재밌게 유혹한다고 생각해요. 막 흔들면서 못넣게 할려고. 막 흔들어서 못넣게 하면 어떻게 하죠 야!-그거 그만 흔들어-하면 프로 선수 아니죠. 관중하고 싸우면 그게 프로입니까 상대편하고 싸워야 하죠. 그죠 그것에 맘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내가 반응하면 반응할수록 지는 것이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는 기도의 특징이 뭐냐 우리가 해야하는 목표. 링에 집중하게 한다는 거예요. 링에. 그래서 승리하게 하는 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주셨습니다. 절대 화평 잃지 아니하는 믿음의 종들 되길 바랍니다. 히브리 사람들 개념에 의하면요.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은 뭐냐 돈이 아닙니다. 샬롬입니다. 샬롬!. 평화! 그죠 그래서 우리랑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우리는 뭐 인사말을 해도 이런말을 하지 않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돈 많이 버세요. 작년부터 유행하죠. 부자되세요. 뭐 그러면 난 대게 유치해서 저게 광고가 될까 그랬는데 뭐 그렇게 얘기하면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왜 그러냐면 한국 사람들의 복 개념이 굉장히 물량적인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성경에 뿌리를 둔 것을 보면은 돈이 복이 아니고요. 샬롬이 복이예요. 화평이 복이라고요. 그러니가 잠언에 보면 맨날 강조하는게 뭡니까 돈 많이 번 가정이 행복하느니라! 이런 말씀 없고요. 마른 떡 하나를 놓고도 굉장한 가장이지요. 굉장히 가난하다는 뜻이예요. 서로 화평하는 것이 욕심을 갖고 서로 싸우는 것보다 낳으니라! 최고가 뭐라고요 화평이라고요. 화평. 샬롬이라고요. 샬롬이라는 말은 원래 온전한 복이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가 온전한 복을 위해서 물질 필요없다고 그렇게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샬롬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건강도 무조건 건강한게 축복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샬롬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샬롬이라는. 아무리 고급 침대를 살수 있어도 건강 없으면 잘 못자죠. 그러니까 성경의 핵심은 이거예요. 얼마나 좋은 침대를 살수 있느냐 TO HAVE 의 접근이 아니고 얼마나 깊은 잠을 잘수가 있는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샬롬이예요. 샬롬. 우리는 좋은 갈비가 있으면 좋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뭡니까 갈비도 좋지만 그것을 소화할수 있는 건강이 더 중요한 것 아니예요 건강! 그게 샬롬이라니까요. 샬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물질주려고 오셨다 그러지 아니하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는 쓸데 있느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병든 자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들의 삶속에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이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능을 온전하게 다 하는 것을 건강이라고 합니다. 그죠 건강도 감사해야 합니다. 정신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것들에 대해서 칭찬할줄 알고, 격려할줄 알고, 그게 건강한것에요. 건강하지 않은 사람 어떤지 아십니까 밤낮 비판하고 비난하고 남 욕하고 남 안되는 것 좋아하고, 인상쓰고 얼굴 표정도 바뀌어 버리고, 그러니까 맨날 이마에 주름지고, 내천자 그리고. 여러분 그것이 왜그런지 알아요 찡그린 인상 한번 쓴다고 그거 내천자가 됩니까 안되죠. 그러니까 얼마나 수년동안 그랫으니까 되었을꺼 아니예요. 한 10년은. 그러면 10년동안은 회개 안해서 그런거예요. 얼굴에 흔적이 있다고. 우리 속 마음을. 남 미워하고 짜증을 내야지 이 내천자가 그려 지는거예요. 그것을 바라보면서 회개하십시요. 하나님! 이 주름이 사라지게 해 주십시요. 이 주름이 괜히 웃음띤 얼굴로 바뀌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링컨의 얘기가 맞잖아요. 얼굴 40이 넘어서의 자신의 얼굴의 모습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그리고 자세히 보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상이 대부분 맞습니다. 선하게 보이는 사람이 대게 선하고요.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똑똑합니다. 눈이 반짝반짝 거리고. 눈 크기 하고는 상관없어요. 대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얼굴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변하는, 우리의 행동도 그렇고. 어 저는 진짜 그렇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때하고 대학교 다닐때하고 지금 다닐때하고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성격도 많이 변하고, 기질도 많이 변하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평생동안 어떻게 변화시킬까 기대가 됩니다. 기대가. 다 변화됩니다다. 그러니까 주님의 성령으로 다 변화받는 진실한 종들되길 바랍니다. 또 물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에서도 샬롬이 축복입니다. 샬롬이. 샬롬이 뭐죠 너무 배고플때 샬롬이 이루어 집니까 너무 배고픈데. 난 일주일에 두 끼만 먹어요. 뭐. 이래가지고 샬롬이 되요 그야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야 모르겠지만 대게 웬만큼 먹어야 됩니다. 먹어야 되지요. 우리 금식해보니까 기도도 잘 안되잖아요. 머리에 뭐가 돕니까 머리에 안돌잖아요. 외워도안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게 목적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구해서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정당하게 구해서 쓰십시요. 구하면 주님이 채워 주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부자가 좋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요. 적정한것이예요. 하나님은 내가 물질을 적정하게 다룰수 있는 물질을 주시는게. 그게 샬롬이라고요. 너무 많은 재물을 갖어서 샬롬이 깨지는 사람이 있죠 그죠 그래서 불안해 지고. 여러분 그런 것 못느끼십니까 어쩔때에는 편안할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쩔때에는 불안할때가 있다고. 내가 이것을 감당못할텐데 하면서. 그래서 잠언 30:8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을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너무 부자가 되어서 너무 가난하여서 샬롬이 깨지는 경우죠. 그래서 이 샬롬하고 동양에서 제일 비슷한게 중용인 것 같아요. 중용. 그죠 어떤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내 기능을 최선을 다해서 할수 있는것. 중용. 긴장. 갑자기 현악기 하는 사람이 생각나는데. 현. 너무 풀어주면 소리가 안나오고. 너무 잡아땡기면 소리가 삑삑 삑살이가 나잖아요. 소리가 안나고. 그렇죠 그때 음맟추면서 하는 것 있잖아요. 삑삑 거리면서 팽팽한 긴장감. 너무 잡아땡긴것도 아니고 너무 풀어준것도 아닌 긴장감. 그게 샬롬이라고요. 샬롬. 줄맞출때 음맞출때 샬롬.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가운데 최적의 음이 나오게 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면 안식이 없습니다.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갖는것. 기도하는것. 말씀의 도전에 받는 것.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에 샬롬을 누려야 합니다. 건강의 샬롬. 물질의 샬롬. 하나님과 의 관계에서의 샬롬.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샬롬. 굉장히 중요한것죠. 샬롬.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다 붙들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이 모든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연결시키는 능력.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은유를 배우라고. 은유를. 은유를 배우는 자가 세상에서 대가라고. 여러분! 수사법에서 은유가 뭐죠 은유는 이런거예요. 아무 상관성 없는 사물을 연관시키는 것이 은유예요. 내 마음은 호수요. 그죠 내마음하고 호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내마음은 내 마음이고, 호수는 호수예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삭 연결시키는 것을 은유라고 해요. 은유. 그럼 그때부터 씨가 되잖아요. 그 다음부터 설명이 되잖아요. 아! 내가 지금 평정하구나! 하며 연결을 시키잖아요. 잔잔하구나! 호수는 가끔 파도 안치나 어떨때는 내가 흔들리는 호수요. 이렇게 표현할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아무렇게도 연결 안된 것을 연결시키는 능력, 그게 씨가 된다고요. 씨가. 지금 보면요. 대부분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유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다윗과 같은 사람이 은유의 대가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하고 목자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것을 연결시키잖아요. 목자 이미지를 상관시켜서 하나님의 대한 찬송이 흘러 나오잖아요. 은유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지 않습니다. 은유는 대부분이 좋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좋은 것들을 연결시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너의 눈은 호수요. 그러면 너의 눈이 좋다는 것이지. 맛이 갔다는 것 아니잖아요. 참. 아름답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 좋다는 뜻 아니예요 좋은뜻. 비단이라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 아니예요 캐시미어 같은 살결. 그러면 좋다는 것 아니예요 좋다는 것 그러니까 여러분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과 연합시킬때 좋은 단어 쫙 모아놔 봐요. 좋은 게 뭐 있어요. 명품. 캐시미어, 다이아몬드. 이렇게 좋은 것 쭉 해 놓고, 심심하면 아무데나 붙이라니까요. 뭐같은 코, 그러면 사람들이 다 연결이 되어서 다 우리편이 된다고. 성경의 언어가 다 그런 언어예요. 은유의 언어. 다윗은 돌아 다니면서 좋은 말만 했다니까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가 나의 바위시니여호와가 나의 바위래요. 돌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거래. 방패가 하나 있어요. 아주 멋진 방패가 . 어떤 화살이 날라와도 뚫지 못하는 방패가. 여호와는 나의 방패래요. 좋은 것을 다 하나님과 연결시키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그게 은유의 능력이라고요. 은유적이니까 찬송이 되는 것이고, 은유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져요. 자기 유태인들뿐만 아니라 잇대라는 블렛셋 사람을 자기의 편으로 연결시키잖아요. 이게 은유의 리더십이라고요. 리더십. 그래서 예수 잘 믿는 다는 것은 은유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연결시키는 것을 배우는 사람들이고, 그것이 뭐예요. 그것이 샬롬이라니까요. 샬롬.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을 누리는 인생들.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을 온전히 누리는 하나님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오늘 성경 많이 읽는 거니까 3절부터 보까요. 환난중에도 즐거워 한다고 하죠.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기뻐하나니. 환난중에 왜 기뻐해요. 우리는 환난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요. 환난은 뭐예요. 지금 이 순간에는 환난이지만 과정이라고요. 과정.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의 길이 과정이잖아요 왜자꾸 광야에서 불평을 하냐고요. 우린 속터지죠. 결과를 아니까.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왜 자꾸 광야에서 원망을 하나. 즉 과정인데. 광야에서 왜 원망을 해. 입다물고 있어야지. 가나안 가서 원망하면 이해가 되죠. 가나안 가면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는데, 어디 젖이 있어 어디 꿀이 있어 하면 내가 이해가 되는데. 왜 광야에서부터 난리냐고. 광야에서부터. 우리도 마찬가지죠. 환난이 오면 과정이라고요. 진행형인데 뭘 자꾸 떠들어요. 기다려야지. 환난중에도 기뻐해요. 왜요 마지막에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의미를 알면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길을 보는게 아니라 끝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둘째. 환난은 인내를. 인내란 질긴 힘. 마라톤 선수 훈련하는 것을 잘 보진 못했지만 만화책 보면 이런 것 많잖아요. 허리에 모래달고 뛰고, 그런 것 없나요 요즘에 산악을 뛰어다니고, 그걸 왜 그렇게 힘들게 하죠 그래야 근육이 강화되죠. 심장이 튼튼해지죠. 그런것들. 역도선수가 자꾸 무거운 것을 드는것. 일종의 환난 아니예요 뭐하러 무거운 것 듭니까 환난이죠 가벼운 것 들고 훈련하는 사람 봤어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아! 200번했어. 이런 사람 없잖아요. 점점 무거운 것 들잖아요. 무거운 환난을 당해야 훌륭한 사람 되죠.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근육이 생기지요 안그렇습니까 팔에 근육이 없는 사람들. 왜그러죠 맨날 맨손체조 하니까 근육이 없죠. 이 맨손에 아령이 들려져 있으면 이 알통이 나온다고. 그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통들 만들기 위해서. 환난을 주잖아요. 그러면 열심히 해야죠. 주님께서 우리를 알통만들겠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거부를 합니까 그 다음에 연단을. 연단은 쇠붙이 다룰 때 쓰는 용어죠 금이나 은 같은 것을 불속에 탁 집어 넣었다가 갑자기 빼던지 두드리면 강해지잖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강철은 맞아서 강해지는 것 알지요 얼마나 많이 얻어 터졌냐에 따라서 강철이 되는 거죠 포항갔다 왔는데 이번에 보지는 못했습니다. 포항에 20톤짜리 망치 같은 것 있죠 40톤 짜리 망치, 용광로에서 나오다 40톤 짜리 망치에 꽝하고 얻어 터지고. 또 뒤집어 놓고 40톤에 꽝 하고 얻어 터지고. 수십대 얻어 터지면. “강철”. 비싼것. 그렇게 안얻어 터진 것은 고철. 싼것. 여러분! 강철 되고 싶습니까. 고철 되고 싶습니까 강철이 되어야죠. 욥이 욥기 23:10에 이렇게 얘기 하지 않습니까 내가 고난을 겪은 후에 뭐라고 하죠.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자꾸 맞으면 이렇게 고백하면 됩니다. 난 강철이야. 즉 환난중에도 인내하고, 인내 다음엔 연단. 맞으면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단후에는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환난은 인간을 순수하게 만듭니다. 원래 목적의 소망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즉. 이렇게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 이유가 뭡니까 쓸데 없는 것을 자꾸 바라니까 그렇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라고. 소망하지 않아야 할 것을 자꾸 소망하고. 신경쓰지 말아야 할 것을 자꾸 신경쓰고. 그러니까 그런거 아니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난이라는 바람을 한번 확 보내주시면 사치가 싹 사라져 버리고 본질만 딱 붙들게 되어 있다고. 그죠. 우리 인생가운데 쓸데 없는 게 마음에 남아져가지고 고민하던 사람 고난이 한번 확 와버리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회복이 딱딱딱 된다고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것이 무엇입니까 연단을 통해서 소망을 이루는 그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깨끗한 종으로서, 강한 종으로서 쓰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종들 되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과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 믿음의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신다고 그랬죠 화평 깰려고 하는 마귀에 속지 마십시요. 끝까지 기도하면서 화평을 지킬줄 알아야 하고. 그 화평의 영역들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영적인 화평, 그렇게만 따지지 말고. 어떨때는 물질적인것, 건강. 정신적인것, 우리 삶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화평을 이루어야 하고, 또하나 우리는 은유의 능력을 배워서 연결시키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피스메이커 되는 화평케되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것 연단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때는 환난, 연단, 인내, 하나로 말미암아 네 가지를 다 훈련시킨다는 거예요. 소망까지. 그래서 우리가 이런 화평가운데 거하면 나머지 모두 다 축복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화평을 잘 지키는 우리 믿음의 종들 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열매가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믿음에는 생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뭐냐 화평을 만들어 냅니다. 화평. 믿음의 결과가 뭐냐 오늘 1절을 보십시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믿음의 결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또 과거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10절을 보니까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화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백성들은 화평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다는 거예요. 화평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화평이 없는 사람의 삶을 옆에서 잠시 옆에서 구경해 보면은 야!-예수 믿는 사람의 화평이 이렇게도 놀라운 일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화평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화평이 없으면 절대로 안식할 수없습니다. 쉼이 있을수 없고 기쁨이 있을수 없습니다.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의 화평이 깨지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고, 급기야 이혼까지 가는. 뭐 그런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화평없는 가족은 지옥입니다. 저는 이번에 포항에 갔더니 포항에 시장님도 오시고, 도지사께서도 계시고, 국회 의원도 오시고 해서 고급정보를 들을수 있었는데, 고급 정보도 아니죠. 뭐 그런 얘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슴 아픈 얘기를 들었는데 포항에 이혼율이 45퍼센트 라고 합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듣고 놀랬거든요. 59퍼센트다 해서. 놀랬는데. 그것에 비해서 포항도 평탄해 보이는 도시인데 심하구나!-지금 서울이 33퍼센트가 된다고 하니까. 그래서 결론이 뭐냐 한동대 부총장님께서 주로 소년원 사역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에 교도소에 가있는 사람이 7만명인데 그 중에 만명이 소년범이랍니다. 소년범. 소년원에 가 있는 사람들. 그 부총장님께서 여러사람을 만나보고 분석해 보고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부부의 이혼에서부터 모든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부부가 이혼을 하니까 이 아이들이 사춘기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 속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거예요. 나하고 친근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는 사람이 나이가 18, 19살이 되도록 한번도 그런 기회를 가져 본적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의 이혼은 아이의 가출을 낳고, 가출하는 아이 20명을 조사해 봤더니 20명 다 100퍼센트 어머니가 집에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부의 이혼은 100퍼센트 아이의 가출을 낳고, 아이의 가출은 한번 두 번 지난후 무조건 범죄를 낳고, 범죄는 곧 사회적인 파탄을 낳는다. 그러니까 뿌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정의 화평”.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모든일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운데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나라가운데도 서로 화평이 있어야지 평화와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전쟁도 뭐 오락게임으로 할때나 재미있지 사실 그것은 죽고 살고 하는 문제 아닙니까 팔하나가 날라가고, 가족들을 잃고 하는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갈구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화평해야 한다는 거예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 봅니다. 왜. 직자에서 어렵냐 왜 직장에서 퇴직하게 되었느냐 그 중에 많은 대표적인 이유 하나가 월급 문제 이런거 아닙니다. 대부분이 갈등이예요. 인간간의 갈등. 화평이 깨지는 것. 결국은 자기가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 보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행복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월급을 받고 아무리 좋은 직책이라고 해도, 결국 화평입니다. 화평.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평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한사람은 평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한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싸우던 교회 다녀 보았습니까 저는 16년을 싸우던 교회 출신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뭔지 다 압니다. 예배는 잠깐 드리고 모여서 전략회의 갖고요. 아이들이 빨리 크길 바랍니다. 보디가드. 이렇게 앞에 서야 하니까요. 뭐 그러던 교회에 내가 출신입니다. 싸움 구경은 지겹게 했습니다. 지겹게. 큰집에 우리집에 모여서 밤낮 전략회의 하고, 맨날 이런 것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지고 우리 삶가운데 축복이 다 사라집니다. 우리의 삶속에 평탄함이 사라지면 그때가서야 이 평탄함이 우리의 삶속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 그때 가서야 깨닫습니다. 사업도 안되고, 애들도 안되고, 가정도 평화 다 깨져 버리고, 그래서 깨닫는게 있죠. 평화로운 교회가 복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거. 그죠. 그게 평화입니다. 평화. 이정도 얘기 하면 얼마나 평화, 화평, 샬롬이 중요한지 아시겠죠. 이 평화를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믿음이라는 크나큰 축복을 통해서 믿음의 열매로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신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injoy. injoy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거 잘 누리는 종들이 되자. 악한 마귀는 화평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알고 화평을 깨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의 승리라는게 뭐냐하면 무슨일을 할때 화평을 가지고 일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많은 비난을 합니다. 험담을 합니다.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악한 마귀는 어떻게 하면 이 화평을 깨면서, 그렇죠 흥분을 하면서 일하게 할까 그것을 노리고 공격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살면서 폭언을 듣게 되어 있어요. 왜요. 마귀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그럴 때 여러분! 이것 잊지 마십시요. 누가 나를 향해 폭언을 하면 그냥 씩 웃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가 내뱉은 말은 단지 그 자신의 내면의 있는 것을 노출했을뿐이야.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말 하는 겁니다. 그렇죠 듣는 사람 문제가 아니예요. 어떤 사람의 그릇을 보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거지, 속에 없는 게 절대 나올수가 없습니다. 험담을 들을 때 내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하며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이 병든 사람이다. 여러분! 인터넷 사이트같은데 가서 한번 보십시요. 남들을 비판한다고 그러는데. 잘 보면은 그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이예요. 다 병들어서 깨지고, 상처입고, 그래서 그 잘못된 것 들을 하지 못해서 겉은로 들어나느 거에요. 표출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우리가 폭언을 들었을때 내가 상처입는 게 아니라, 그사람이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그사람이 참 불쌍한 존재구나! 라며 기도해주고, 참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잠언 12:16절에 보니까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 내거니와.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는 이유가 뭐죠 미련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미련하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거예요.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여러분 미련한자가 되겠습니까 슬기로운 자가 되겠습니까 슬기로워야 하지요.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이 말씀 하나 지키면 화평 깨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험담때문에, 폭언때문에, 공격 때문에 화평이 깨지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화평을 잘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불쌍하게 여기면서, 또 하나 이땅에 살면서 배신하는 사람 생기지 않습니까 예수님께도 가롯유다라는 배신자가 있었죠. 배신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그죠. 생각을 그렇게 하면 된다는 거예요. 배신자 생길수 있다는 거 아니예요. 왜 내 삶가운데 배신자를 보내주셨죠 배신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아니겠어요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하다보면은 배신하는 사람 많이 나올거 아닙니까 아 그러면 배신할 때 어떻게 잘 다루어야 하고, 배신할 때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어렸을 때부터 그런거 배운면 커서 큰 인물 되잖아요. 한번도 배신당한 적없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 한번 당한면 휘청휘청하고, 정말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있으면 얼마나 큰 위기가운데 빠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죠 배신의 아픔도 당하게 해야죠. 배신의 아픔도, 서로 이해하게 만들고, 품게 만들고, 저는 과거에 실패했던게 대게 많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거 이해하게 되요. 다른 사람에게 제 삼자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두사람이 아니죠. 우리 교역자끼리도 다 모여서 얘기하는거 보면은 제가 제일 이해를 잘하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경험했던 얘기거든요. 경험 했으니까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사람의 행동만 보고 평가를 해요. 왜저러느냐고. 저는 심리를 알거든요. 저 여자가 왜 저러느냐! 저건 시집가면 다 해결될 일이야. 자꾸 신경질 내고 다른 사람에게 폭언을 하고. 생각해 보세요. 나이가 들었으니 결혼은 해야 하는데 외롭잖아요. 외롭다고 말해야 하는데 외롭다고 할수는 없고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저것은 남자친구 사귀면 끝나는 거라고. 어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갑자기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자꾸 행동갖고 그러면 안된다고. 본인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 좋은게 나가게 되어있거든요. 본인이 너무 불행하게 느끼는거에요. 생각해 보십시요. 저도 서른이 넘어서 장가를 못가고 ,
그런데 이런 것은 다른것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면 갈수 있는데 고르다 못가는 것하고 다르죠. 아무리 문어발같이 내밀어도 잡히는게 없을 때 오는 절망감. 그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니까요. 그사람을 비난하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접근해야죠 어떻게 하면 저사람 행복하게 해 줄까 그거 채워주면 문제 다 해결됩니다. 그게 아비의 마음 아닙니까 그게 어미의 마음 아니예요저는 옛날에 중고등학교때 다닐때 다 경험 해 봤어요. 버려진 아픔들. 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중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수련회를 갔었는데 잘 놀았어요. 고3 학년 선배, 지금 샌디에고에 사는 선배인데, 제가 대게 싫어 했어요. 고3 때이니까 입시때이니까 수련회 하루만 온대요. 마지막날 딱 와가지고 기타를 대게 잘쳤거든요. 점심을 먹고 구석에서 기타를 치니까 자매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그중에 제가 좋아까지는 않했지만 호감갖고 있던 자매까지 쳐다보지도 않고 다 모여들고, 그때 수련회 은혜 하나도 못받았어요. 절망에 빠져가지고, 그때 가슴쓰린 형제들 모아놓고, 그때 밖에서 비가 왔습니다.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축구하고, 그때 분을 축구공에 풀고, 그랬던 것이 기억나는데요. 그때부터 제가 기타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아직도 그 환상이 깨지질 않아요. 이해를 해야지. 채워지면 해결되는 거예요. 사람이 원래 악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예요. 그때 거기서 이를 악물었던 사람 악한 사람 없었어요. 다만 갖지 못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지. 이해가 되잖아요. 이해가. 배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신을 당해봐야 해요. 그래야 내가 그를 어떻게 품을수 있는지. 이끌어 갈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어야 할거 아니예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말을 했죠 자신이 할일을 해라. 누가 욕하면. 그리고 저들이 소리지르게 내버려 둬라. 소리지르게 내버려 둬라. 꼭 뉘앙스가 개가 생각이 나요. 똥개는 짖어도 경부선은 간다. 그러고 있으라는 거예요. 잠언 18장 2절을 보니까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느니라. 근데 이 말씀을 공동번역, 새번역을 보면 반대하는 사람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의사만 드러내는 것을 기뻐한다 이렇게 적혀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공격하는 사람 잘 보면은요. 반대하는 사람은 사실의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냥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고 공격하는 재미로 사는 거라고. 그거 고쳐나도 또 그거 해요. 왜 그 사람은 그거 하다 죽을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모자르는 놈들이니까 그래요. 모자르지 않으면 바쁘죠. 남의 일에 간섭하나요 그거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남아메리카에 가면 그 열대에 가면 소리지르는 원숭이가 있답니다. 소리를 얼마나 질러대는지 정글에서 가장 큰 소리를 지르는 동물이 바로 이 소리지르는 원숭이래요. 소리지르는 원숭이. 그죠 근데 그 다음말이 재미있어요. 그는 정글에서 가장 큰 소리를 지른 동물인데 그 원숭이가 정글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 절대 아니라고. 잊지 마십시요. 소리가 제일 큰데 크다고 해서 정글에서 제일 강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소리 왜 지르죠 무서워서 지르는 거예요. 무서워서. 여기서도 무서울때 소리지르는 남자 봤어요 물론 가끔 있지만, 다 여자가 소리 질러요. 왜그러죠 약해서 그래요. 약해서. 육체적으로 약해서 그래요. 어느 강한자가 소리지르는 것 아니예요. 약해서 소리지르는 거에요. 누가 주변에서 날 향해서 막 소리지르면 그거 강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얼마나 약하면 저러나!-하면서 불쌍히 여기면서 품을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편집된 기도의 책을 보면은 그것을 내가 쓴 것은 아니고 사후에 모아놓은 책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하기를 기돋의 삶이 중요하다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기도가 깊어질수록 주변 사람의 칭찬이나 연연에 덜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먼저 주님께 사랑과 화평으로 채우게 된다. 그것이 기도다. 왜 우리가 삶가운데 기도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기도 안하면 이상하게 사람들의 비난, 칭찬이 크게 들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집중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묘한게 뭐냐하면 기도 자체에도 엄청난 위로와 사랑이 있지만, 사람 비난이 작게 들리고 연연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초연해 집니다. 여러분 그거 많이 못 느낍니까 사람이 기도하면 초연해지고 의젓해져요. 칭찬해도 흔들리지 않고, 비난해도 흔들리지 않고,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밤낮 얘기하는게 뭐예요.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부르짖으라!는 거예요. 부르짖으라! 주님이 주시는 그 화평을 잃지 말아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습니다. 잘 지키는 방법이 뭐죠 흘러넘치는 기도를 통해서 그 기도를 귀중한 것을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NBA 농구 같은 것 보면 재밌지 않습니까 난 볼때 마다 너무 웃겨요. 그 FREE THROW를 던지잖아요. 그 자유투를 던지면 그 뒤에 있는 홈팀이 막대기 같은 것 막 흔들죠 난 그것이 응원하는 것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게 응원하는게 아니고 막 햇갈리게 하려고 막 흔드는 거래요. 그래서 다 헷갈려 하며-흔들고어떤 사람은 이상한 그림도 갖다 놓고, 옛날에 막 벌거벗은 여자 사진도 올려놓고, 막 헷갈리게 하려고, 그거 헷갈리면 프로선수 아니죠. 그거 헷갈리면 아마추어죠. 동네 농구죠. 아무리 흔들어대도 진짜 프로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게 보이면 안되죠. 링이 보여야 하고. 거기다 정확하게 집어 넣을줄 아는게 프로죠.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해요. 마귀도 참 우리를 재밌게 유혹한다고 생각해요. 막 흔들면서 못넣게 할려고. 막 흔들어서 못넣게 하면 어떻게 하죠 야!-그거 그만 흔들어-하면 프로 선수 아니죠. 관중하고 싸우면 그게 프로입니까 상대편하고 싸워야 하죠. 그죠 그것에 맘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내가 반응하면 반응할수록 지는 것이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는 기도의 특징이 뭐냐 우리가 해야하는 목표. 링에 집중하게 한다는 거예요. 링에. 그래서 승리하게 하는 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주셨습니다. 절대 화평 잃지 아니하는 믿음의 종들 되길 바랍니다. 히브리 사람들 개념에 의하면요.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은 뭐냐 돈이 아닙니다. 샬롬입니다. 샬롬!. 평화! 그죠 그래서 우리랑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우리는 뭐 인사말을 해도 이런말을 하지 않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돈 많이 버세요. 작년부터 유행하죠. 부자되세요. 뭐 그러면 난 대게 유치해서 저게 광고가 될까 그랬는데 뭐 그렇게 얘기하면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왜 그러냐면 한국 사람들의 복 개념이 굉장히 물량적인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성경에 뿌리를 둔 것을 보면은 돈이 복이 아니고요. 샬롬이 복이예요. 화평이 복이라고요. 그러니가 잠언에 보면 맨날 강조하는게 뭡니까 돈 많이 번 가정이 행복하느니라! 이런 말씀 없고요. 마른 떡 하나를 놓고도 굉장한 가장이지요. 굉장히 가난하다는 뜻이예요. 서로 화평하는 것이 욕심을 갖고 서로 싸우는 것보다 낳으니라! 최고가 뭐라고요 화평이라고요. 화평. 샬롬이라고요. 샬롬이라는 말은 원래 온전한 복이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가 온전한 복을 위해서 물질 필요없다고 그렇게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샬롬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건강도 무조건 건강한게 축복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샬롬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샬롬이라는. 아무리 고급 침대를 살수 있어도 건강 없으면 잘 못자죠. 그러니까 성경의 핵심은 이거예요. 얼마나 좋은 침대를 살수 있느냐 TO HAVE 의 접근이 아니고 얼마나 깊은 잠을 잘수가 있는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샬롬이예요. 샬롬. 우리는 좋은 갈비가 있으면 좋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뭡니까 갈비도 좋지만 그것을 소화할수 있는 건강이 더 중요한 것 아니예요 건강! 그게 샬롬이라니까요. 샬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물질주려고 오셨다 그러지 아니하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는 쓸데 있느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병든 자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들의 삶속에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이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능을 온전하게 다 하는 것을 건강이라고 합니다. 그죠 건강도 감사해야 합니다. 정신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것들에 대해서 칭찬할줄 알고, 격려할줄 알고, 그게 건강한것에요. 건강하지 않은 사람 어떤지 아십니까 밤낮 비판하고 비난하고 남 욕하고 남 안되는 것 좋아하고, 인상쓰고 얼굴 표정도 바뀌어 버리고, 그러니까 맨날 이마에 주름지고, 내천자 그리고. 여러분 그것이 왜그런지 알아요 찡그린 인상 한번 쓴다고 그거 내천자가 됩니까 안되죠. 그러니까 얼마나 수년동안 그랫으니까 되었을꺼 아니예요. 한 10년은. 그러면 10년동안은 회개 안해서 그런거예요. 얼굴에 흔적이 있다고. 우리 속 마음을. 남 미워하고 짜증을 내야지 이 내천자가 그려 지는거예요. 그것을 바라보면서 회개하십시요. 하나님! 이 주름이 사라지게 해 주십시요. 이 주름이 괜히 웃음띤 얼굴로 바뀌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링컨의 얘기가 맞잖아요. 얼굴 40이 넘어서의 자신의 얼굴의 모습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그리고 자세히 보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상이 대부분 맞습니다. 선하게 보이는 사람이 대게 선하고요.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똑똑합니다. 눈이 반짝반짝 거리고. 눈 크기 하고는 상관없어요. 대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얼굴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변하는, 우리의 행동도 그렇고. 어 저는 진짜 그렇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때하고 대학교 다닐때하고 지금 다닐때하고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성격도 많이 변하고, 기질도 많이 변하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평생동안 어떻게 변화시킬까 기대가 됩니다. 기대가. 다 변화됩니다다. 그러니까 주님의 성령으로 다 변화받는 진실한 종들되길 바랍니다. 또 물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에서도 샬롬이 축복입니다. 샬롬이. 샬롬이 뭐죠 너무 배고플때 샬롬이 이루어 집니까 너무 배고픈데. 난 일주일에 두 끼만 먹어요. 뭐. 이래가지고 샬롬이 되요 그야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야 모르겠지만 대게 웬만큼 먹어야 됩니다. 먹어야 되지요. 우리 금식해보니까 기도도 잘 안되잖아요. 머리에 뭐가 돕니까 머리에 안돌잖아요. 외워도안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게 목적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구해서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정당하게 구해서 쓰십시요. 구하면 주님이 채워 주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부자가 좋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요. 적정한것이예요. 하나님은 내가 물질을 적정하게 다룰수 있는 물질을 주시는게. 그게 샬롬이라고요. 너무 많은 재물을 갖어서 샬롬이 깨지는 사람이 있죠 그죠 그래서 불안해 지고. 여러분 그런 것 못느끼십니까 어쩔때에는 편안할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쩔때에는 불안할때가 있다고. 내가 이것을 감당못할텐데 하면서. 그래서 잠언 30:8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을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너무 부자가 되어서 너무 가난하여서 샬롬이 깨지는 경우죠. 그래서 이 샬롬하고 동양에서 제일 비슷한게 중용인 것 같아요. 중용. 그죠 어떤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내 기능을 최선을 다해서 할수 있는것. 중용. 긴장. 갑자기 현악기 하는 사람이 생각나는데. 현. 너무 풀어주면 소리가 안나오고. 너무 잡아땡기면 소리가 삑삑 삑살이가 나잖아요. 소리가 안나고. 그렇죠 그때 음맟추면서 하는 것 있잖아요. 삑삑 거리면서 팽팽한 긴장감. 너무 잡아땡긴것도 아니고 너무 풀어준것도 아닌 긴장감. 그게 샬롬이라고요. 샬롬. 줄맞출때 음맞출때 샬롬.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가운데 최적의 음이 나오게 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면 안식이 없습니다.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갖는것. 기도하는것. 말씀의 도전에 받는 것.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에 샬롬을 누려야 합니다. 건강의 샬롬. 물질의 샬롬. 하나님과 의 관계에서의 샬롬.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샬롬. 굉장히 중요한것죠. 샬롬.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다 붙들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이 모든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연결시키는 능력.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은유를 배우라고. 은유를. 은유를 배우는 자가 세상에서 대가라고. 여러분! 수사법에서 은유가 뭐죠 은유는 이런거예요. 아무 상관성 없는 사물을 연관시키는 것이 은유예요. 내 마음은 호수요. 그죠 내마음하고 호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내마음은 내 마음이고, 호수는 호수예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삭 연결시키는 것을 은유라고 해요. 은유. 그럼 그때부터 씨가 되잖아요. 그 다음부터 설명이 되잖아요. 아! 내가 지금 평정하구나! 하며 연결을 시키잖아요. 잔잔하구나! 호수는 가끔 파도 안치나 어떨때는 내가 흔들리는 호수요. 이렇게 표현할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아무렇게도 연결 안된 것을 연결시키는 능력, 그게 씨가 된다고요. 씨가. 지금 보면요. 대부분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유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다윗과 같은 사람이 은유의 대가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하고 목자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것을 연결시키잖아요. 목자 이미지를 상관시켜서 하나님의 대한 찬송이 흘러 나오잖아요. 은유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지 않습니다. 은유는 대부분이 좋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좋은 것들을 연결시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너의 눈은 호수요. 그러면 너의 눈이 좋다는 것이지. 맛이 갔다는 것 아니잖아요. 참. 아름답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 좋다는 뜻 아니예요 좋은뜻. 비단이라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 아니예요 캐시미어 같은 살결. 그러면 좋다는 것 아니예요 좋다는 것 그러니까 여러분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과 연합시킬때 좋은 단어 쫙 모아놔 봐요. 좋은 게 뭐 있어요. 명품. 캐시미어, 다이아몬드. 이렇게 좋은 것 쭉 해 놓고, 심심하면 아무데나 붙이라니까요. 뭐같은 코, 그러면 사람들이 다 연결이 되어서 다 우리편이 된다고. 성경의 언어가 다 그런 언어예요. 은유의 언어. 다윗은 돌아 다니면서 좋은 말만 했다니까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가 나의 바위시니여호와가 나의 바위래요. 돌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거래. 방패가 하나 있어요. 아주 멋진 방패가 . 어떤 화살이 날라와도 뚫지 못하는 방패가. 여호와는 나의 방패래요. 좋은 것을 다 하나님과 연결시키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그게 은유의 능력이라고요. 은유적이니까 찬송이 되는 것이고, 은유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져요. 자기 유태인들뿐만 아니라 잇대라는 블렛셋 사람을 자기의 편으로 연결시키잖아요. 이게 은유의 리더십이라고요. 리더십. 그래서 예수 잘 믿는 다는 것은 은유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연결시키는 것을 배우는 사람들이고, 그것이 뭐예요. 그것이 샬롬이라니까요. 샬롬.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을 누리는 인생들.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을 온전히 누리는 하나님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오늘 성경 많이 읽는 거니까 3절부터 보까요. 환난중에도 즐거워 한다고 하죠.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기뻐하나니. 환난중에 왜 기뻐해요. 우리는 환난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요. 환난은 뭐예요. 지금 이 순간에는 환난이지만 과정이라고요. 과정.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의 길이 과정이잖아요 왜자꾸 광야에서 불평을 하냐고요. 우린 속터지죠. 결과를 아니까.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왜 자꾸 광야에서 원망을 하나. 즉 과정인데. 광야에서 왜 원망을 해. 입다물고 있어야지. 가나안 가서 원망하면 이해가 되죠. 가나안 가면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는데, 어디 젖이 있어 어디 꿀이 있어 하면 내가 이해가 되는데. 왜 광야에서부터 난리냐고. 광야에서부터. 우리도 마찬가지죠. 환난이 오면 과정이라고요. 진행형인데 뭘 자꾸 떠들어요. 기다려야지. 환난중에도 기뻐해요. 왜요 마지막에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의미를 알면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길을 보는게 아니라 끝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둘째. 환난은 인내를. 인내란 질긴 힘. 마라톤 선수 훈련하는 것을 잘 보진 못했지만 만화책 보면 이런 것 많잖아요. 허리에 모래달고 뛰고, 그런 것 없나요 요즘에 산악을 뛰어다니고, 그걸 왜 그렇게 힘들게 하죠 그래야 근육이 강화되죠. 심장이 튼튼해지죠. 그런것들. 역도선수가 자꾸 무거운 것을 드는것. 일종의 환난 아니예요 뭐하러 무거운 것 듭니까 환난이죠 가벼운 것 들고 훈련하는 사람 봤어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아! 200번했어. 이런 사람 없잖아요. 점점 무거운 것 들잖아요. 무거운 환난을 당해야 훌륭한 사람 되죠.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근육이 생기지요 안그렇습니까 팔에 근육이 없는 사람들. 왜그러죠 맨날 맨손체조 하니까 근육이 없죠. 이 맨손에 아령이 들려져 있으면 이 알통이 나온다고. 그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통들 만들기 위해서. 환난을 주잖아요. 그러면 열심히 해야죠. 주님께서 우리를 알통만들겠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거부를 합니까 그 다음에 연단을. 연단은 쇠붙이 다룰 때 쓰는 용어죠 금이나 은 같은 것을 불속에 탁 집어 넣었다가 갑자기 빼던지 두드리면 강해지잖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강철은 맞아서 강해지는 것 알지요 얼마나 많이 얻어 터졌냐에 따라서 강철이 되는 거죠 포항갔다 왔는데 이번에 보지는 못했습니다. 포항에 20톤짜리 망치 같은 것 있죠 40톤 짜리 망치, 용광로에서 나오다 40톤 짜리 망치에 꽝하고 얻어 터지고. 또 뒤집어 놓고 40톤에 꽝 하고 얻어 터지고. 수십대 얻어 터지면. “강철”. 비싼것. 그렇게 안얻어 터진 것은 고철. 싼것. 여러분! 강철 되고 싶습니까. 고철 되고 싶습니까 강철이 되어야죠. 욥이 욥기 23:10에 이렇게 얘기 하지 않습니까 내가 고난을 겪은 후에 뭐라고 하죠.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자꾸 맞으면 이렇게 고백하면 됩니다. 난 강철이야. 즉 환난중에도 인내하고, 인내 다음엔 연단. 맞으면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단후에는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환난은 인간을 순수하게 만듭니다. 원래 목적의 소망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즉. 이렇게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 이유가 뭡니까 쓸데 없는 것을 자꾸 바라니까 그렇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라고. 소망하지 않아야 할 것을 자꾸 소망하고. 신경쓰지 말아야 할 것을 자꾸 신경쓰고. 그러니까 그런거 아니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난이라는 바람을 한번 확 보내주시면 사치가 싹 사라져 버리고 본질만 딱 붙들게 되어 있다고. 그죠. 우리 인생가운데 쓸데 없는 게 마음에 남아져가지고 고민하던 사람 고난이 한번 확 와버리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회복이 딱딱딱 된다고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것이 무엇입니까 연단을 통해서 소망을 이루는 그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깨끗한 종으로서, 강한 종으로서 쓰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종들 되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과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 믿음의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신다고 그랬죠 화평 깰려고 하는 마귀에 속지 마십시요. 끝까지 기도하면서 화평을 지킬줄 알아야 하고. 그 화평의 영역들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영적인 화평, 그렇게만 따지지 말고. 어떨때는 물질적인것, 건강. 정신적인것, 우리 삶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화평을 이루어야 하고, 또하나 우리는 은유의 능력을 배워서 연결시키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피스메이커 되는 화평케되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것 연단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때는 환난, 연단, 인내, 하나로 말미암아 네 가지를 다 훈련시킨다는 거예요. 소망까지. 그래서 우리가 이런 화평가운데 거하면 나머지 모두 다 축복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화평을 잘 지키는 우리 믿음의 종들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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