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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家系)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옵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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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은 김일성이 주권과 땅 따먹기를 한 것이고 결국은 38도선에 머물고 남북 체제에 따른 빈부 격차는 심화되었고 50년이 다 되도록 민족의 소원인 통일은 멀리 있습니다.
1997년 11월 16일 경제위기 전쟁(錢爭)은 정부가 경제 운영을 잘못한 결과였고 외채 이자 상환만 년 60억 달러(7조 2천억 원)이나 되며 지금 청문회가 한창입니다. 말하자면 극단적 양극화 정치의 변화가 없는 한 민족적 수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국민들 특히 우리의 이웃들은 사업을 실패하고 건강과 직장을 잃고 희망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은 곧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본문 말씀을 중심하여 들으시고 우리들도 살펴서 은혜의 교훈을 받고 행동에 옮기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I. 에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보라
오바댜서는 구약 중 21절 밖에 안되는 가장 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에돔' 가계에 대한 심판이 내려질 내용으로 꽉 차 있습니다. 오바댜는 `여호와의 종, 여호와를 예배하는 종'이란 뜻이고 기록 연대는 유다 왕 여호람이 통치하던 때(BC 848-841, 대하 21:16,17)입니다(대하 21:16,17). 동시대 선지자는 엘리사이고 요엘 선지자 보다 먼저 활동했으리라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에돔은 본래에서의 별명입니다. 그는 세일 산을 기업으로 얻은 후 그의 가계는 에돔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창 36:8).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후 야곱을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결심했습니다(창 27:39-41). 결국 400여 명의 가신으로 야곱을 죽이려는 저의가 창세기 33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에돔 가계는 일Wrl부터 왕이 있어 조직된 나라를 이뤘습니다(창 36:31-39, 대상 1:43-50). 문제는 에돔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이스라엘의 출애굽하던 행로는 막아 적의를 나타낸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에돔은 네 형제이니 미워하지 말라(신 23:7,8)고 하심과는 반대로, 그들은 항시 이스라엘에 대하여 조금도 호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주를 자초했으니(창 12:3)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일곱 선지자를 통하여 징벌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곧 이사야(34:5, 63:1-6), 예레미야(49:7:22, 애 4:21,22), 에스겔(25:12-14, 35:1-15), 아모스(1:11,12), 요엘(3:19), 말라기(1:2-4), 그리고 오바댜입니다. 특히 오바댜서는 에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지 못함으로써 1장 전체가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에돔은 아랍의 침략을 받아 말라기 때에 황무해졌습니다(말 1:2-4), BC 460년). 에돔은 마카비 독립 시대(BC 135-105) 유다 왕에게 점령되었습니다. 후일 유다의 헤롯 왕은 에돔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끝으로 에돔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영원히 끊어져 버려 오바댜의 예언같이 되었다(옵 1:10, 김희보)고 했습니다.
Ⅱ.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본문에 의하면
1 에돔의 멸망에 대한 예언(1-9)으로 견고한 요새들이 함락되고(1-4) 에돔의 완전한 멸망이 온다고 했습니다.
2 에돔이 멸망하는 이유(10-14)는 형제 야곱에 대한 잔인한 태도와 행동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 공의의 표현이며 죄악의 응보이기 때문입니다.
에돔은 야곱에 대하여 `포학'했습니다(1:10). `포학'이란 모든 종류의 불의, 연약한 자, 고아, 과부 같은 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압제와 학대, 높은 자에겐 간사한 계교를 부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돔은 여호람 왕 때에도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궁중의 모든 제물들 뿐 아니라 아내들과 아들들까지 탈취했고(대상 22:16,17), 또한 유다가 바벨론의 공격을 받을 때에도 유다의 환난을 기뻐했고 원수를 도와 유다를 괴롭혔습니다(애 4:21,22, 시 137:7). 말하자면 에돔의 호전적 태도와 포학은 저주의 대상과 영원한 멸망의 폭약이 된 것입니다.
`날'(1:11)에 대한 개념 정립입니다. 이는
1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날'이며(왕하 25:3-7, BC 586년)
2 에돔은 이스라엘의 반대 방향에 섰던 `날'로서 네가 … 할 것이 아니며를 8회나 계속되고 있습니다(1:10-13). 그럼에도 에돔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동정보다는 멸망을 기뻐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자에겐 하나님의 응보가 따른다고 했습니다(잠 24:16-22).
야곱의 재난의 날에 에돔은 어떠해야 했습니까
1 원수들과 협력해서는 안됩니다.
2 재난을 방관(기뻐하면서 바라보고만 있는 것)해서도 안됩니다.
3 재앙을 보고 `그 것 봐, 내가 그렇게 된다고 했잖아' 하면서 손뼉치듯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4 사거리(1:14) 곧 갈림길, 나뉨길을 막고 방해해서도 안됩니다. 이것이 곧 가게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삽니다(겔 33:11).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불선에 의해 찌든 조상님들의 구태의연함에 대해 우리가 기독교인이된 입장에서 볼 때 구원을 받도록 하는 일에 우선한다면 천하보다 귀한 영혼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산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Ⅲ. 가계를 향하신 말씀을 받아야 산다
한국 교회의 큰 약점은 교리적으로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잘되어 있는데, 실제적으로 어떻게 믿고 따를 것인다는 잘 안된 것 같습니다. 이론과 실제는 동전의 양면과같고 손바닥과 손등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가계에 향하신 말슴을 잘 취사선택해야 사는 것입니다.
1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같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려니와(출 20:5)라고 하셨습니다.
2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한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 7:9)라고 하셨습니다.
가계를 향하신 위 두 양면의 근본적인 하나님의 말슴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질투와 신실', `미움과 사람', `삼사 대와 천 대', `같음과 베품'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증거를 삼아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고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셨습니다(신 30:19). 말하자면 사망과 저주를 끊고 생명과 복을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신 30:20). 예수님은 피, 눈물, 땀을 다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눈물(기도)과 땀(헌신)을 쏟아 쓰여져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신 30;20). 사울 왕은 불순종 때문에 망했습니다(삼상 15:11). 만일 불순종하고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십니다(삼상 15:23,26).
3 하나님께 부종하는 것입니다(신 30:20). 부종이란 기본어 굳게 달라붙다. 매달리다, 결합하다`입니다. 한 번 믿은 믿음, 변하지 말고 끝까지 사수하면 하나님은 생명과 장수시며 열조의 하나님 곧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눅 20:38).
결론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출 15:26).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탕자의 돌이킴처럼 여호와께로 돌아서며 그 앞에서 살기를 소원합니다(호 6:1-3).
하나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고, 떠나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신 11:26-28).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지 아니하고 내어 버려두면 죽습니다(롬 1:24,26,28). 그러니 지식을 버리거나 율법을 잊으므로 망하지 말고(호 4:6) 우리들의 가계를 살펴서 은혜와 교훈에 따라 순종의 삶을 통하여 만복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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