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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눅17:11-19)

본문

하나님께서 두 천사에게 감사의 내용을 담아 오라고 했는데 한 천사는 가득 넘쳤고, 한 천사는 조금 담았다. 본문에 10명의 문둥병자가 국경에 살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곳을 지난다는 말을 듣고 병 낳기를 요청하기 위해 갔다.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했다. 문둥병자들이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는 도중에 문둥병이 다 낳았다. 그중 1명의 문둥병자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다.
오늘은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감사가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사를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느냐고 말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감사가 어려워 보인다.
어느 보험회사 설계사를 교육하는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1약속은 생명이다.
2누구에게나 웃고 인사하라 그것은 보약이다.
3소리지르고 화를 내는 것은 독약이다.
4감사는 축복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문둥병이 낳은 것은 빅 뉴스다. 어느 곳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것이다.
10명 중 1명만이 감사하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이 만큼 감사는 어려운 일이다.
한 청년이 관절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이 병만 낫게 해 주시면 감사하고 헌금, 십일조, 봉사, 충성 하겠다고 고백했다. 부흥회에서 이 청년이 안수를 받고 그 병이 낳았다. 이 목사님은 간증을 하라고 했다. 청년은 좋다고 했고, 다음 주일 이 청년은 주일날 오지 않았다. 목사님이 찾아 갔다. 이 청년은 내가 너무 좋아 자기를 테스트 하기 위해 등산을 했다고 한다. 다음 주에도 이 청년은 나오지 않았다.
이 목사님의 기도가 바뀌었다. 병든자 고쳐 달라고 기도 했으나 이제는 병들어 죽어도 좋으니 감사하고 주님 섬기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했다.
인간의 병든 죄로 인해 감사를 상실 했다. 감사는 욕심 때문에 힘든 일이다. 내 속사람이 변하지 않고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감사의 생활도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감사하는 생활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2. 감사는 배워야 합니다.
9명의 유대인과 1명의 사마리아인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10명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9명은 어디로 갔느냐
즉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라
아이들이 신앙생활에서 감사를 배우면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신다.
부모가 두 자식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오빠는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동생은 이리저리 피하고 잘 배우지 못했다. 어느날 부모는 두 아이를 불러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다. 오빠는 잘 했다. 그러나 동생은 머뭇거렸다. 부모는 동생의 학원을 중단 시켰다.
주님은 9명의 고침받은 문둥병자들이 감사하기를 원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형편을 위해 오지 말라 가지 말라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오기를 원하고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또한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명절 때 부모님이 교통 복잡하니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다고 가지 않으면 과연 부모가 좋아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기만 하면 이것저것 가득 싸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감사드리기만 하면 복을 내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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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5-21
신령한 노래
노래는 인류 역사를 대변하며 한 시대를 이어왔다. 울밑에 선 봉선화는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를 잘 반영 해주는 노래이다.
개혁과 변혁의 시대를 이어 오면서 인류는 노래를 아픔을 달래고 용기를 얻고,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인간 역사를, 음악은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이 음악은 모든 이에게 감사와 감격을 심어 주는 일을 해 왔습니다.
1. 노래에 대한 태도
신앙으로 부르는 노래와 찬송은 구분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 속에서도 똑 같은 노래라도 저속적이고 토속적인 노래가 있다. 그리고 신앙적인 면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불러야 할 것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지나친 논리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이나 복음송을 부른다 하더라도 구분되어지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은 예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찬송이 중요하니 신중히 불러야 되겠다는 의미로 예배외에는 부르지 않는 율법주의적인 모습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세에 있어서 찬양을 통하여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이것을 부를 때 서로 화답하며 마음 중심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
화답으로 찬양함은 아멘으로 화답함이다. 찬양하는 중에 그 찬양을 듣지 아니하면 그 찬양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하여 회개와 감사와 충성됨이 있어야 합니다.
2. 성가대의 자세
성가대는 지나치게 곡조와 음질에 신경쓰면 그 목적이 퇴색 되어 간다. 하나님께 대한 영광의 마음을 먼저 앞세우고 뒤이어 기교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성가대는 앞서가야 한다. 기도, 말씀, 찬양의 생활을 앞서가야 한다.
또한 이성적인 모습이나, 개인적인 욕심, 성격등 윤리적인 모습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양적인 면에서도 조심(까운은 시각적인 모습을 감미한 것이다)하고, 겸손과 바른 자세로 감당해야 합니다.
3. 성도들의 자세
성가대를 향하는 기도의 마음이 필요 하다. 통계적인 사항을 살펴보면 성가대가 지나치게 소비적인 모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의 문제의 불시가 성가대로부터 시작하는 경우들이 많으며, 성가대가 교만하고 다른 분야에 비협조적인 일들이 대단히 많다.
성도들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알고, 기도하고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본 문:누가복음 17:11-19
감사
하나님께서 두 천사에게 감사의 내용을 담아 오라고 했는데 한 천사는 가득 넘쳤고, 한 천사는 조금 담았다. 본문에 10명의 문둥병자가 국경에 살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곳을 지난다는 말을 듣고 병 낳기를 요청하기 위해 갔다.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했다. 문둥병자들이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는 도중에 문둥병이 다 낳았다. 그중 1명의 문둥병자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다.
오늘은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감사가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사를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느냐고 말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감사가 어려워 보인다.
어느 보험회사 설계사를 교육하는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1약속은 생명이다.
2누구에게나 웃고 인사하라 그것은 보약이다.
3소리지르고 화를 내는 것은 독약이다.
4감사는 축복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문둥병이 낳은 것은 빅 뉴스다. 어느 곳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것이다.
10명 중 1명만이 감사하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이 만큼 감사는 어려운 일이다.
한 청년이 관절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이 병만 낫게 해 주시면 감사하고 헌금, 십일조, 봉사, 충성 하겠다고 고백했다. 부흥회에서 이 청년이 안수를 받고 그 병이 낳았다. 이 목사님은 간증을 하라고 했다. 청년은 좋다고 했고, 다음 주일 이 청년은 주일날 오지 않았다. 목사님이 찾아 갔다. 이 청년은 내가 너무 좋아 자기를 테스트 하기 위해 등산을 했다고 한다. 다음 주에도 이 청년은 나오지 않았다.
이 목사님의 기도가 바뀌었다. 병든자 고쳐 달라고 기도 했으나 이제는 병들어 죽어도 좋으니 감사하고 주님 섬기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했다.
인간의 병든 죄로 인해 감사를 상실 했다. 감사는 욕심 때문에 힘든 일이다. 내 속사람이 변하지 않고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감사의 생활도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감사하는 생활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2. 감사는 배워야 합니다.
9명의 유대인과 1명의 사마리아인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10명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9명은 어디로 갔느냐
즉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라
아이들이 신앙생활에서 감사를 배우면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신다.
부모가 두 자식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오빠는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동생은 이리저리 피하고 잘 배우지 못했다. 어느날 부모는 두 아이를 불러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다. 오빠는 잘 했다. 그러나 동생은 머뭇거렸다. 부모는 동생의 학원을 중단 시켰다.
주님은 9명의 고침받은 문둥병자들이 감사하기를 원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형편을 위해 오지 말라 가지 말라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오기를 원하고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또한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명절 때 부모님이 교통 복잡하니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다고 가지 않으면 과연 부모가 좋아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기만 하면 이것저것 가득 싸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감사드리기만 하면 복을 내려 주십니다.
본문> 로마서 10:11-15
제목> 복음
2차 대전 당시 신학자 온헤퍼가 히틀러를 암살 제거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 신학자가 목사가 그럴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때 그가 말하기를 미친 버스운전사가 도로를 횡단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설치고 다닌다면 그 운전사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우리는 이사람을 진정한 목사답다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세례요한 같은 사람(목사)들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꼭 이런 것만은 아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이 복음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면.
1.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누구에게나 해당되어야 한다.
1 복음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누구에게나 해당되어야 한다. 그래서 13절은 누구든지 해당 된다고 말한다. 히틀러도 악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복음이다.
2 복음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 흑인에게 불리하거나 부자에게 유리 해서는 않된다. 12절에는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다고 한다. 부자, 권세자도 어떤 이들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차별 없이 동일하게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 복음이다.
3 복음은 예수가 모든 사람에게 주가 되어야 한다. 헤퍼는 히틀러를 죽이기를 외쳤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복음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에게는 복음이 아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주가 되어야 한다. 예루살렘 사람에게만 복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4 복음은 모두에게 구원의 지혜를 주어야 한다. 인물 위주로 되는 복음이 아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상관하지 않고 누구에게 주는 것이 복음이다. 거기에는 죄인도 부요자도 가난한 자도 제소자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이같은 네가지가 잘 이루어 질때 복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차별이 없다. 그러나 이일을 해야할 사람이 필요하다.
당시 온헤퍼는 히틀러가 처형 당할 때 그곳에 있었고, 생각하기를 히틀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악독한 히틀러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영광이요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처형장 앞에서 반성하기를 히틀러에게 복음 한번 전하지 못하고 히틀러를 끌어 내리려고만 했습니다. 회개하나이다.
2. 이 복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1 하나님의 뜻을 내 기준에 맞추지 말자!
온헤퍼의 잘못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추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느냐를 성령의 자를 기준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로 했다.
왕궁중부교회 임직식이 12월5일에 있는데 그때 각오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임직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한해 두해 흐르면 열기도 생기고 감정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을 닦은 마리아의 사건을 생각해야 한다.
가룟유다의 내 생각 내 기준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교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야 한다. 우리의 복음은 천하만민 누구에게나 전해야 한다.
3 사탄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도하라.
모든 사람이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혈안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죄성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한 사람은 없었다. 히틀러의 악한 영을 제거하고 히틀러가 하나님께 돌아 오기를 기도하지 못하고 죽이려고만 했다.
(엡6:14-19) 우리가 할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복음증거가 사탄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헤퍼를 순교자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 일은 높이 평가하나 결코 복음증거자로 순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른 것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택하셨다. 이 복음이 내 자리에서 머물러서는 않된다.
에베소서 5:15-21
신령한 노래
노래는 인류 역사를 대변하며 한 시대를 이어왔다. 울밑에 선 봉선화는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를 잘 반영 해주는 노래이다.
개혁과 변혁의 시대를 이어 오면서 인류는 노래를 아픔을 달래고 용기를 얻고,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인간 역사를, 음악은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이 음악은 모든 이에게 감사와 감격을 심어 주는 일을 해 왔습니다.
1. 노래에 대한 태도
신앙으로 부르는 노래와 찬송은 구분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 속에서도 똑 같은 노래라도 저속적이고 토속적인 노래가 있다. 그리고 신앙적인 면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불러야 할 것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지나친 논리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이나 복음송을 부른다 하더라도 구분되어지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은 예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찬송이 중요하니 신중히 불러야 되겠다는 의미로 예배외에는 부르지 않는 율법주의적인 모습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세에 있어서 찬양을 통하여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이것을 부를 때 서로 화답하며 마음 중심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
화답으로 찬양함은 아멘으로 화답함이다. 찬양하는 중에 그 찬양을 듣지 아니하면 그 찬양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하여 회개와 감사와 충성됨이 있어야 합니다.
2. 성가대의 자세
성가대는 지나치게 곡조와 음질에 신경쓰면 그 목적이 퇴색 되어 간다. 하나님께 대한 영광의 마음을 먼저 앞세우고 뒤이어 기교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성가대는 앞서가야 한다. 기도, 말씀, 찬양의 생활을 앞서가야 한다.
또한 이성적인 모습이나, 개인적인 욕심, 성격등 윤리적인 모습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양적인 면에서도 조심(까운은 시각적인 모습을 감미한 것이다)하고, 겸손과 바른 자세로 감당해야 합니다.
3. 성도들의 자세
성가대를 향하는 기도의 마음이 필요 하다. 통계적인 사항을 살펴보면 성가대가 지나치게 소비적인 모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의 문제의 불시가 성가대로부터 시작하는 경우들이 많으며, 성가대가 교만하고 다른 분야에 비협조적인 일들이 대단히 많다.
성도들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알고, 기도하고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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