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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 (마5:1-3)

본문

주님이 이 땅에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펼치시는 동안 하신 일을 세 가지로 나타내면 전파(천국 전파), 교육(가르치심), 치유(고치심)로 요약할 수가 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가르치심이다. 주님의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중요한 점을 가지는 것은 이 가르치는 사역 가운데서의 첫 말씀이란 것이다. 마태복음서 5장에서 7장까지는 주님이 가르치시는 사역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고 있는 ‘산상보훈’이라고 일컫는 말씀이다.
우리는 오늘 주님이 주신 이 말씀에 중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 충분의 조건을 가질 수 있는 말씀임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을 팔복이라고 이름지어 부른다. 그 말씀의 시작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첫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이다. 주님의 첫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 중점을 두고 계신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이 말씀을 이해하는 요건이 된다. 수많은 목사님들이 이 말씀을 설교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심령이 가난한 자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전하는가의 문제는 개운치 않게 느껴진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단어인데 ‘심령’이라는 단어는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분명히 천국을 얻는 복이 있게 되는데 심령이 가난한 것은 어떤 상태의 인간을 말씀하시는 것일까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천국을 차지하는 소망보다도 더 큰 소망이 없을 줄 안다. 그러니 심령이 가난한 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누릴 수가 없게 된다는 말씀이다.
누가복음서 6장 20절에는 심령이란 단어가 없이 가난한 자로 말씀하신다. 가난은 우리가 물질과 연결해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으로 가지는 심성을 이용해서 요즘 TV 드라마의 신데릴라가 인기를 얻을 수가 있다고 본다.
성경 속에는 물질에 가난한 자가 신약성경의 누가복음 16장에서 주님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사로가 등장한다.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거지로 살았다.
그런데 그는 천국을 차지했다. 여기서 보여주는 부자와 나사로의 대조적인 삶과 결말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가 결국 부자는 살았을 동안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면서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에서 물질적인 생각을 벗어나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나사로는 거지로 살았지만 그는 사는 동안에 물질적인 탐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물질도 가난했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산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이 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마음에 탐욕과 악한 생각(간사, 거짓, 헛된 것들)을 가지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살았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생각에 악한 것들이 가득히 차 있으면 하나님의 통치를 누릴 수가 없게 된다.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도록 자기 마음에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내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다스려주심 까지 생각하면서 말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불교적인 말이 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좋지 않은 현상들 가운데서 학원 폭력을 보자.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데 매우 불안하다. 혹 내 자녀가 그 폭력을 쓰지나 않은지·· 이것은 우리가 가난을 견디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흔히 어른들이 돈이 없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는 어른들에게서 물려 받은 영향이다.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나, 자기가 혹은 가족이 가진 권력을 가지고 악한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착복하는 것을 보고 국민 누구라도 그런 것을 배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자가 이런 자를 말한다. 주님의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과 탐욕이 가득한 자는 저주가 있나니 지옥이 저희 것임이요, 우리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자기가 가진 힘을 가지고 다른 아이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키우지 못해서 일어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악을 아는 기능을 쓰지 않고 선을 아는 기능을 쓰는 자이다. 이 선을 아는 기능을 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가난하더라도, 비록 거지가 된다 하더라도 내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방법이면 손해를 보더라도 그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주님은 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 각 사람에게 계시면서 이를 도우시려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아서 하나님의 통치하심 속에서 이 땅에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모든 좋은 복을 차지하면서 인생을 향유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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