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7:7-11)
본문
인간이란 존재는 끝없는 필요 속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 필요를 얼마나 채우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축복의 삶과 연결이 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필요를 얼마나 채웠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우며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다시말하면 사람들은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서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기,도둑질,투기,거짓등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필요라고 하면 육신의 필요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의 필요가 다 채워졌다고 하여도 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단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필요가 육신만이 아님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보면 너무나 사람들이 육신의 필요만을 위하여서 달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절대적인 필요가 아니라,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새로운 것을 향한 필요의 충족이라는 데에 우리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드려진 후에 이제 우리의 필요를 향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필요는 무엇인가를 봅니다.
첫째,양식의 문제입니다.
둘째,죄의 문제입니다.
셋째,시험의 문제입니다.세상의 악으로부터 자신의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들을 도와주시고 해결해 주시려고 우리의 주님은 그 기도를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의 간구는 ‘일용할 양식’의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필요입니다. 아무리 금덩이를 많이 갖고 있다고 하여도 먹을 것이 없으면 금덩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를 보면 지금 먹는 것으로 심각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먹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의 고민입니다.
저 소말리아 같은 데는 먹는 문제가 그렇게도 심각하여 1분에 24명인가가 굶어 죽어간다고 하니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먹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기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는 기도는 그렇게 필요한 기도는 아니라고 생각되어지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차라리 ‘평생 먹고 마실 수있는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면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깊은 신앙적인 도전이 있습니다.
1.일용할 양식은 단순한 떡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해석은 루터의 해석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 개념을 좀 넗혔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세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육신적인 양식인 떡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인 양식인 좋은 친구, 좋은 반려, 좋은 책, 좋은 스승, 그리고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적인 양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육신의 필요만으로는 살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이 다 풍성하여도 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의 마음은 공허하고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다고 느낍니다. 삶이 우울하고 만족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파스칼은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영원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 마음에 오셔서 나를 채울 때까지 인간은 참 만족을 모르는 허무한 인생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왕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있습니다. 부인도 여럿이 됩니다. 진정 모자람이 없는 자였음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참 만족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요, 내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내 영혼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것은 영적인 양식의 풍성함을 바라는 진실한 간구여야 합니다.
2.‘우리에게’입니다.
나만 배부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잘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배부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어떤 분은 “너희 지갑끈을 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주기도문을 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깊이는 나라는 이기적인 중심의 삶에서 우리라는 공유적인 삶으로 얼마나 발전되었는가로 가늠해 볼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우리가 신앙이 깊어지면서 점점 넓어집니다. 우리의 개념이 우리 친척, 우리 교회,우리 동네에서 이제는 우리 안양, 우리 나라, 아시아, 유럽, 남미, 공산지역으로 점점 우리라는 차원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안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하겠습니다. 우물안 개구리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뉴스도 우리나라 뉴스만 보지 말고 ‘세계는 지금“같은 뉴스도 봐야 합니다. 어느분은 세계본을 끌어 안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도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세계를 향하여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신앙인에게는 굉장한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웃을 돌아볼 수있는 지도자이며, 이웃을 도와주는 축복의 삶을 사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얻어만 먹고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러기에 꾸이기 보다는 꾸어주고, 도움을 받기 보다는 도와주고, 나누어 줄 수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3.‘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말은 양식이란 우리의 욕심과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서 헛된 꿈에 빠지고 세상적인 악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아니고, 더 많은 양식. 일생 먹을 양식, 아니 자신의 몇천대 후손까지 먹고 마실 양식을 구하기에 우리의 삶에는 죄가 나오고 온전한 행복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부인들이 물건을 사기위하여서 미리 적어놓은 메모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시장에 가는 주부가 오늘 살 물건을 자세히 적어놓은 종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나의 삶의 하루 하루의 필요를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바라는 겸허하고 욕심없는 마음의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면 먼저 욕심없는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세상적인 욕심을 가지고는 참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가장 어려운 일이 이 일인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내일의 준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서 저축도 하고 내일의 아름다움을 위하여서 준비하여야 합니다. 다만 이 말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처럼 재물에 마음을 쏟아 놓는 자세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나친 관심과 마음을 둘때에 우리는 물질로 인한 근심과 염려에 빠져 신앙이 잘못될 수가 있으며,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빠져 올바른 신앙의 역사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4.‘주옵시고’입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예)다즈 박사-“이것은 주기도에서 처음 나오는 ‘주옵시고’이다. 하나님의 창고를 열어 하나님의 자원을 흘러 넘쳐오게 해주는 열쇠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시는 기증자이시다. 주는 것이 그 분의 천성이시다. 이 말은 우리가 사용하여야 할 말이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입술에 올려야 할 기도이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 부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자연을 주셨으며,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때에 째째하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보세요, 물을 주셔도 풍성하게 주셨고, 하늘의 별도 무궁무진 주셨으며, 꽃만해도 그렇고,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의 양을 계산할 수있습니까 이렇듯 풍요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앞에 우리는 기쁨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은 감격속에 말하기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롬8:32)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도 있고, 재능도 있고, 열심히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주옵시고’하여야 합니다.
약 1: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우리는 생활 속에서 속지마십시오. 이 땅의 풍성함과 축복은 나의 노력과 재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분께 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 ‘주옵시고’라는 말은 매우 단순함을 띠고 있습니다. 참으로 대담함과 직선적인 요구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힘을 내어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여야 합니다.
예)베브 콕박사-“빵의 배후에는 희 눈같은 밀가루가 있고, 밀가루의 배후에는 방아간이 있고, 방아간의 배후에는 밀과 비와 햋빛과 하나님의 의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면서 모든 것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에 우리의 삶은 풍성하여 지며, 또한 하나님이 주셨다는 감격있는 뜨거운 신앙과 감사의 신앙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스코크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어떤이들은 음식을 가졌으나 먹을 수가 없고, 또 어떤이는 먹을 수는 있으나 먹을 것이 부족한대 우리는 음식도 있고, 먹을 수도 있으니 주께 감사할 찌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구하며 삽시다.
헛된 세상의 욕심에 빠져 잘못된 인생을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함으로 간절함으로 ‘주옵시고’ 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는 무엇이든 구할수있는 권리가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은 무엇이든 줄 수있는 능력과 풍성의 분이심을 다시 한번 감사합시다.
아멘.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필요를 얼마나 채웠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우며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다시말하면 사람들은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서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기,도둑질,투기,거짓등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필요라고 하면 육신의 필요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의 필요가 다 채워졌다고 하여도 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단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필요가 육신만이 아님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보면 너무나 사람들이 육신의 필요만을 위하여서 달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절대적인 필요가 아니라,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새로운 것을 향한 필요의 충족이라는 데에 우리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드려진 후에 이제 우리의 필요를 향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필요는 무엇인가를 봅니다.
첫째,양식의 문제입니다.
둘째,죄의 문제입니다.
셋째,시험의 문제입니다.세상의 악으로부터 자신의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들을 도와주시고 해결해 주시려고 우리의 주님은 그 기도를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의 간구는 ‘일용할 양식’의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필요입니다. 아무리 금덩이를 많이 갖고 있다고 하여도 먹을 것이 없으면 금덩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를 보면 지금 먹는 것으로 심각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먹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의 고민입니다.
저 소말리아 같은 데는 먹는 문제가 그렇게도 심각하여 1분에 24명인가가 굶어 죽어간다고 하니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먹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기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는 기도는 그렇게 필요한 기도는 아니라고 생각되어지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차라리 ‘평생 먹고 마실 수있는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면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깊은 신앙적인 도전이 있습니다.
1.일용할 양식은 단순한 떡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해석은 루터의 해석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 개념을 좀 넗혔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세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육신적인 양식인 떡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인 양식인 좋은 친구, 좋은 반려, 좋은 책, 좋은 스승, 그리고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적인 양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육신의 필요만으로는 살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이 다 풍성하여도 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의 마음은 공허하고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다고 느낍니다. 삶이 우울하고 만족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파스칼은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영원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 마음에 오셔서 나를 채울 때까지 인간은 참 만족을 모르는 허무한 인생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왕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있습니다. 부인도 여럿이 됩니다. 진정 모자람이 없는 자였음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참 만족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요, 내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내 영혼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것은 영적인 양식의 풍성함을 바라는 진실한 간구여야 합니다.
2.‘우리에게’입니다.
나만 배부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잘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배부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어떤 분은 “너희 지갑끈을 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주기도문을 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깊이는 나라는 이기적인 중심의 삶에서 우리라는 공유적인 삶으로 얼마나 발전되었는가로 가늠해 볼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우리가 신앙이 깊어지면서 점점 넓어집니다. 우리의 개념이 우리 친척, 우리 교회,우리 동네에서 이제는 우리 안양, 우리 나라, 아시아, 유럽, 남미, 공산지역으로 점점 우리라는 차원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안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하겠습니다. 우물안 개구리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뉴스도 우리나라 뉴스만 보지 말고 ‘세계는 지금“같은 뉴스도 봐야 합니다. 어느분은 세계본을 끌어 안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도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세계를 향하여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신앙인에게는 굉장한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웃을 돌아볼 수있는 지도자이며, 이웃을 도와주는 축복의 삶을 사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얻어만 먹고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러기에 꾸이기 보다는 꾸어주고, 도움을 받기 보다는 도와주고, 나누어 줄 수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3.‘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말은 양식이란 우리의 욕심과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서 헛된 꿈에 빠지고 세상적인 악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아니고, 더 많은 양식. 일생 먹을 양식, 아니 자신의 몇천대 후손까지 먹고 마실 양식을 구하기에 우리의 삶에는 죄가 나오고 온전한 행복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부인들이 물건을 사기위하여서 미리 적어놓은 메모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시장에 가는 주부가 오늘 살 물건을 자세히 적어놓은 종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나의 삶의 하루 하루의 필요를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바라는 겸허하고 욕심없는 마음의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면 먼저 욕심없는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세상적인 욕심을 가지고는 참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가장 어려운 일이 이 일인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내일의 준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서 저축도 하고 내일의 아름다움을 위하여서 준비하여야 합니다. 다만 이 말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처럼 재물에 마음을 쏟아 놓는 자세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나친 관심과 마음을 둘때에 우리는 물질로 인한 근심과 염려에 빠져 신앙이 잘못될 수가 있으며,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빠져 올바른 신앙의 역사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4.‘주옵시고’입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예)다즈 박사-“이것은 주기도에서 처음 나오는 ‘주옵시고’이다. 하나님의 창고를 열어 하나님의 자원을 흘러 넘쳐오게 해주는 열쇠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시는 기증자이시다. 주는 것이 그 분의 천성이시다. 이 말은 우리가 사용하여야 할 말이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입술에 올려야 할 기도이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 부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자연을 주셨으며,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때에 째째하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보세요, 물을 주셔도 풍성하게 주셨고, 하늘의 별도 무궁무진 주셨으며, 꽃만해도 그렇고,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의 양을 계산할 수있습니까 이렇듯 풍요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앞에 우리는 기쁨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은 감격속에 말하기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롬8:32)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도 있고, 재능도 있고, 열심히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주옵시고’하여야 합니다.
약 1: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우리는 생활 속에서 속지마십시오. 이 땅의 풍성함과 축복은 나의 노력과 재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분께 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 ‘주옵시고’라는 말은 매우 단순함을 띠고 있습니다. 참으로 대담함과 직선적인 요구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힘을 내어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여야 합니다.
예)베브 콕박사-“빵의 배후에는 희 눈같은 밀가루가 있고, 밀가루의 배후에는 방아간이 있고, 방아간의 배후에는 밀과 비와 햋빛과 하나님의 의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면서 모든 것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에 우리의 삶은 풍성하여 지며, 또한 하나님이 주셨다는 감격있는 뜨거운 신앙과 감사의 신앙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스코크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어떤이들은 음식을 가졌으나 먹을 수가 없고, 또 어떤이는 먹을 수는 있으나 먹을 것이 부족한대 우리는 음식도 있고, 먹을 수도 있으니 주께 감사할 찌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구하며 삽시다.
헛된 세상의 욕심에 빠져 잘못된 인생을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함으로 간절함으로 ‘주옵시고’ 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는 무엇이든 구할수있는 권리가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은 무엇이든 줄 수있는 능력과 풍성의 분이심을 다시 한번 감사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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