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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시는 일 (요9:1-12)

본문

임상교류분석에서는 인간의 유아기때부터 몸에 익숙해진 기본적인 태도를 중요시 여기게 되는데 스기다 미네야스가 쓴 책 중에 임상교류분석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인간에게는 4가지의 기본적인 태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4가지라 함는 것은
1.나는 옳지 않고 너는 옳다.(I'm not OK,You're OK)
2.나는 옳고 너는 옳지 않다.(I'm OK, You;re not OK)
3.나는 옳지 않고 너도 옳지 않다. (I'm not OK, You're not OK)
4.나도 옳고 너도 옳다.(I'm OK, You're OK)
1의 사람은 보통 우울해 지기쉽고,
2의 사람은 자기애가 강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비판하며 이러한 사람들 중에 이혼률이 가장 많다.
3의 사람은 인생을 비관하며 친구를 못사귀고 심한경우 생활에 관심을 잃고 무기력해지고 자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4의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남을 존중하며 건설적인 태도를 갖는다. 이러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며 기독교인이 취하여야 할 태도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취한 태도와 예수님이 취한 태도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사람을 보자 대뜸 하는 말이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오늘의 본문에 등장한 한 맹인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일생을 어둠에서 살아야 합니다. 괴로움과 고통이 그를 얼마나 괴롭혔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의 괴롬움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이러쿵 저렇쿵 하는 일 일 것입니다.
적어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병고치는 이적을 많이 보았으며, 그의 능력을 알았을찐대 이렇게 말해야 옳지 않을까요 “예수님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 사람을 고쳐 보게해 주십시오. 이 사람을 좀 도와 주십시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런 말이 그들에게 나와야 했는데 그들은 그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고는 누구 죄 때문에 저런 벌을 받았느냐고 수근거리고 있습니다.
이 제자들의 태도는 2번 사람들의 태도 입니다. 남의 고난을 비판적 시각에서 봅니다. 남을 도와줄 것이 무엇인가하는 시각이 아니라, 남을 나보다 낮추고 남을 판단하는 시각으로 보려는 태도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이러한 태도를 너무나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태도는 남의 고난을 볼 때에 비판적인 태도로 보거나, 무시하고 잘못을 들추어 내는 태도를 가지면 안됩니다. 오히려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태도와 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종교개혁자 칼빈목사는 말하기를 우리는 남의 고난을 볼 때에 세가지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고 합니다.
1.그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정죄합니다. 불행과 죄를 직결시켜 버립니다.
2.남의 고난에 대해서 이해심이 없습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어려울까 얼마나 고통 스러울까’하는 깊은 고통을 이해하거나 관대한 눈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심판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3.자기를 예외시 합니다. 나와 고난당하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생각해 버립니다. 나도 또한 저러한 고통을 받을 수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이러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시가의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삶에서 고난이란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릇된 사고 때문입니다. 고난이란 필요한 것이다. 고난이란 우리의 삶에서 떼어 낼수없는 값진 것이다 하는 의식이 있다면 그 고난을 그렇게 도외시하거나 잘못을 범한 사람이 받는 벌로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난이란 하나님편에서는 의미있고 값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 맹인을 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얼마나 멋집니까 죄 때문이 아니고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 즉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4번째 사람의 태도인데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보실 때에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하여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나 불행한 일을 당할 때에 단순한 슬픔과 염려로 절망하고 낙심하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들어내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을 잃거나 돈을 잃으면 괴로워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잃은 것보다도 그것을 통하여 용기를 잃고 소망을 잃고 나아가서 믿음을 잃고 하나님을 잃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예)풀턴 쉰주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괴로워할 때에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고난을 만났때에 그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시고 용기와 소망을 잃지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문제의 고난을 긍정적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드러나고 영광이 되며 더욱 큰 은혜를 받을 것임을 확신 하십시오.
인간편에서는 문제가 고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문제가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낼 절호의 기회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제자들은 그 맹인을 보면서 과거에 붙잡혀 있습니다.
누구 죄 때문입니까 누구 잘못입니까 그들은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논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래적인 눈을 여십니다. 지금부터 이루어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예)지금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누가 그랬느냐, 어떻하다가 이런 실수를 했느냐, 그것을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됐지 하면서 과거의 문제만을 들추어 내고 있다면 큰일 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논쟁과 질못을 들추는 일은 그만두고 빨리 힘을 모아 불을 꺼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삶에는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만났을 때에 과거에 멈추어 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문제를 통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도록 미래를 향한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에)클라리렛부른 분의 간증속에서-LA폭동사건을 만나 빈 털털이가 되었다고 하면서 울었다. 그러면서 거기 올때 빈 털털이었는데 다시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운전하다가 사람을 쳐 죽였다. 교도소에서 1년정도 있었는데 그때부터 술을 입에대고 점점 패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과거이야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라는 말을 멈추세요, 무엇때문이었다는 후회도 멈추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도전하여야 합니다.
-고난당하였다고 하나님이 무조건 그 고난을 통하여 축복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여기에서 주목하여야 할 말씀은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니’입니다.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된 삶의 역사를 위하여서 뛰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자를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고 과거에 묻혀 살지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일어서서 달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나타내시며 축복하십니다.
이 일은 시급합니다.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없느니라’ 우리의 인생에는 일할 수있는 시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밤이 오기전에 일하여야 합니다.
영원히 젊음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건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황혼이 있고 그 황혼조차 저물어 밤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인생의 밤이 오면 더 이상 일 할 수 없으며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아직 낮일 때에 일하세요, 아직 건강이 있고, 힘있고, 아직 젊었을 때에 일하세요,
아직 태양이 빛나고 아직 비구름이 몰려 오기 전에 방주를 만드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분의 하시는 일을 이루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기고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는 순종합니다. 눈먼 채로 순종합니다. 실로암 못가까지는 약 10리의 거리입니다. 그 먼길을 순종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내 눈에 아무것도 아니뵈어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 아직 확실한 그 무엇이 내 손에 잡히지 않아도 순종으로 도전하는 사람, 그 고난의 쓰라림과 아픔 속에서도 인내하며 순종으로 찬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도 그 일을 부정적으로 보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대하거나 또한 자신을 대할 때에 조차도 ‘나도 옳고 너도 옳다’고 하는 그러한 긍정적인 믿음으로 함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 그 영광을 인한 더욱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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