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호와 우리의 신앙(6) (출17:8-16)
본문
많은 성도들이 늘 어려움을 겪는 문제 중의 하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여러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흔히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일일이 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작 어떤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이겠는지를 알기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인 어떤 구체적인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려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세밀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히 알수록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시겠는지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은 늘 새로운 옷을 입고 닥쳐 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반복해서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지를 향해서 직선적으로 진행하여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관이 날로 새로워져야 역사의 진행 속에서 늘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시겠는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지식이 대강 큰 사실 몇가지에만 그치면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크라이티리어(Criteria)가 없기에 방황하게 되고, 제 멋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대강 큰 사실 몇 가지만 알아가지고는 세미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게 됩니다. 따라서 늘 새로운 옷을 입고 닥치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점(Criteria)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세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날로 새롭게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러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려고 할 때에 여러 가지 점에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선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의 하나님의 성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시행과 품성 발휘의 어느 한 면을 접하고서 하나님께 대해서 부른 이름도 있고,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이 시행하신 통치나 발휘하신 품성의 어느 면을 들어서 계시하신 이름도 있습니다. 어떻든 하나님의 성호들은 다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시행하신 통치나 발휘하신 품성의 어느 면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호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어덯게 시행되고 품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알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계시의 자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호들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시행하시고 발휘하시는 통치와 품성의 다양한 면을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하나님에 대한 너무 많은 오해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호들이 특수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불려진 이름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하나님에 대해 배울려고 할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어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바른 의미를 담아서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고, 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성호들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힘을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떤 자태를 취하게 되는지를 생각해 왔습니다. 오늘은 “여호와 닛시”(나의 깃발이 되신 여호와)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역사적인 배경
1. 르비딤 전투에 이르기 까지의 광야 여정에서 보인 이스라엘의 모습
‘여호와 닛시’라는 성호는 출애굽기 17:15에 나옵니다. 그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길을 걸었을 때 쓴 물을 만나서 원망할 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쓴 물을 단물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의 규례를 세워 시험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애굽에 내리셨던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치료하신 여호와”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이 엘림에 이르렀을 때 물샘 열 둘과 종 칠십주를 만났습니다. 엘림을 떠나서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는 애굽에서 나온 후 두달 반이 되어서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되었다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셨고, 아침에는 이슬같은 만나를 보내셔서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또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왜 애굽에서 인도해 내서 여기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면서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게신가 아닌가 시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장로들을 데리고 호렙산 반석 앞으로 가게 하셔서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넘으로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 약 3개월 동안 물이 쓰다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다고,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며,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가 아니 계시는가를 의심할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능력을 체험하고도 쓴물로 인해 원망했고,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신 능력을 체험하고도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게 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또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며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니 계시는지를 의심했습니다.
이렇게 출애굽 1세대들의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살펴보면 한다디로 배은망덕(背恩忘德)이었고, 불신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쉽게 망각해 버리고, 적은 어려움만 닥쳐도 원망하며, 그렇게도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니 계시는지를 의심했습니다.
2.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얻은 교훈
이런 모습을 하고 르비딤 광야를 행진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말렉’ 사람들입니다. 르비딤에서 오합지졸인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한 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한번도 전쟁을 위한 훈련을 받아 본 일이 없는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맹렬하게 공격해 온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모세의 전략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기상천외하는 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하고, 자기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데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서 양손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자꾸 내려가니까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거기에 앉게 하고, 한 사람은 오른 손을 도 한사람은 왼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으므로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다시 없는 기상천외한 전법으로 아말렉과 싸워 이긴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세와 아론, 훌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깨닫게 되었겟습니까 모세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지팡이가 높이 올라가야지만 이겼던 것을 모고서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야지만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수백년 동안 조상 대대로 노예생활을 해오면서 노예근성이 찌들어 있는 모습으로 출애굽한지 불과 석달도 되지 않아 전혀 전투를 위한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는 오합지졸들이, 그것도 전쟁에 필요한 변변한 무기도 갖지 못하고 나가서 싸웠는데도 승리하게 되었고, 그것도 모세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지팡이가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가면 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림으로 승전하게된 그들로서는 싸움의 승패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3.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기록하여 기념케 하신 하나님의 배려
1) 왜 아말렉과의 승천한 역사를 책에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출애굽 이후 오합지졸들을 거느리고 처음 벌어진 전투에서 멋진 승전을 장식하고난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르비딤 전투에서 지팡이와 손을 높이 들어 승리하게 된 역사적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셨을까요 아말렉과의 전투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초로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어 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기념비적인 사건을 체험하고도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백성의 전력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명의 보고를 듣고서 겁을 먹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을 보면, 기념비적인 사건을 다 잊어 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받은바 은혜와 깨닫은 교훈을 쉽게 망각하는 그들을 위해서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귀한 교훈을 기억하도록 배려해 주셨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망각하게 버린 것입니다.
2) 왜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을까요
또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전투의 기록을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행진을 방해했던 적 아말렉과 하나님께서 싸워서 없에 버리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왜 여호수아의 귀에 아말렉과의 전투에 관한 기록을 외워 들리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모세의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들어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맡기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을 것이고, 특히 모세를 통해서 외워 들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배려(配慮)에 의해서 그의 기억속에 깊이 인각(認刻)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배려를 힘입어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잊어버리고 열명의 정탐군의 애기를 듣고서 겁을 먹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으로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후에 출애굽 2세대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휼룡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훗날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전투에서 얻게 하신 교훈을 여호수아의 귀에 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기억에 인각(認刻)시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교훈이나 은혜를 오래 오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교훈이 크라이티리어(criteeia)가 되어서 나중에 그와 관련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부른 것은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교훈과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어떤 특별한 면을 체험하고서 얻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그 땅에다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해서 어떤 이름을 붙이든지, 아니면 단을 쌓아서 그 단에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적으로 나옵니다. 이를톄면 아브라함이 준비하시는 여호와를 체험하고서 모리아산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라고 불렀고,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까지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말이 전해 내려 왔습니다(창22;14). 그리고 다음 시간에 생각하겠습니다만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고서 죽을까 두려워 하고 있을 때에 여호와로부터 죽지 아니할 것이니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서 거기서 여호와께 단을 쌓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한 일이 있습니다(삿6:22-2
4). “여호와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서 알게 된 그 면을 들어서 기념하기 위해서 이름을 부른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라고 하는 이름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려서 승리하는 역사를 체험하고서 모세가 단을 쌓고서 부른 이름입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은 군악대나 군단의 맨 앞에 게앙된 군기로써 행군의 노선을 알리거나 집결 지점을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깃발은 적진을 점령하고 나서 승전을 알리기 위해서 꽂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전쟁에서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깃발이라는 의미요, 깃발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에 승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라는 깃발 아래 다 마음을 모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진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고 부른 것입니다.
둘째, 아말렉 전투에서 계시된 ‘여호와 닛시’ 교훈의 적용
1. 영적인 성전(聖殿)과 관련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는 성호는 물리적인 전쟁과 관련해서 나온 성호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는데 있어서 물리적인 전쟁의 의미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또 아말렉과 같은 적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성전(聖殿)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할 때에는 영적인 성전(聖殿)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엡6:12)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과 관련해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2. 아말렉과의 전투는 신약 성도의 영적인 전투의 모형으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1)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의 추격을 받으며 홍해를 건널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구원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홀로 담당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만을 통해서 은혜로 구속하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말렉이 공격해 왔을 때, 모세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가서 아말렉을 대항하여 싸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영적인 모형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요,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가 나가서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고, 또 앞으로 벌어질 가나안 족속과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싸워야할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를 가르켜서 전투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천국에 이르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영적인 전쟁을 치뤄야 할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자기의 힘만 의지해서 싸우면 패하게 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싸워야지만 이길 수 있다는 모형입니다.
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가서 싸우지만 모세가 지팡이와 양손을 들어서 이김속에서 우리의 영적인 전쟁과 관련된 또 하나의 모형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바로 이같은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피곤하여 지팡이를 든 그의 팔이 내려갔을 때 적들이 우세하여지고 이스라엘은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교훈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싸움에서 진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지만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싸움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아니하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후에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발하였던 아이성 전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성과 같이 작은 성이었지만,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나가서 싸우려고 할 때 패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지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바울 사도의 고백을 통해서도 듣게 됩니다.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셋째, ‘여호와 닛시’와 우리의 신앙
이제 하나님을 ‘여호와 닛시’ 즉 ‘나의 깃발’(승리의 깃발)로 믿는 사람은 어떤 신앙의 자태를 드러내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겠습니다.
1. 전투의식을 가지고 육신의 적들과 끊임없이 영적인 전투를 합니다.
영적으로 많은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게되고, 그러한 공격을 느끼면서 거기에 대처해 싸우면서 살아갑니다. 자기 안에 있는 육신적인 요소들과 싸우고, 세상의 풍습과 유혹에 대해서 싸우고,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싸웁니다. 원수 마귀나 육신, 세상과 같은 적들과 타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적해서 싸웁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전투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전투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대장되신 주님의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살아갑니다.
2.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싸웁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싸웁니다. 주께서 늘 힘주시기를 구하고, 그 힘을 받아서 싸웁니다. 세상 나라적인 힘을 끌어다가 하나님 나라의 전투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고유의 힘을 가지고 싸웁니다. 자기가 자기의 각오와 결심으로 육신의 생각을 제어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육신적인 생각을 제어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맺는 말
여러분이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늘 영적인 전쟁에서 폐하게 되는 이유는, 싸우려는 의지가 없든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대장되시고,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싸워야지만 육신의 정욕이나 세상의 풍습, 그리고 사탄의 맹렬한 공격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주님을 의지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실질이 있는 성도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특히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은 늘 새로운 옷을 입고 닥쳐 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반복해서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지를 향해서 직선적으로 진행하여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관이 날로 새로워져야 역사의 진행 속에서 늘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시겠는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지식이 대강 큰 사실 몇가지에만 그치면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크라이티리어(Criteria)가 없기에 방황하게 되고, 제 멋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대강 큰 사실 몇 가지만 알아가지고는 세미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게 됩니다. 따라서 늘 새로운 옷을 입고 닥치는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점(Criteria)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세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날로 새롭게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러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려고 할 때에 여러 가지 점에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선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의 하나님의 성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시행과 품성 발휘의 어느 한 면을 접하고서 하나님께 대해서 부른 이름도 있고,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이 시행하신 통치나 발휘하신 품성의 어느 면을 들어서 계시하신 이름도 있습니다. 어떻든 하나님의 성호들은 다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시행하신 통치나 발휘하신 품성의 어느 면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호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어덯게 시행되고 품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알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계시의 자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호들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시행하시고 발휘하시는 통치와 품성의 다양한 면을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하나님에 대한 너무 많은 오해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호들이 특수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불려진 이름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하나님에 대해 배울려고 할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어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바른 의미를 담아서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고, 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성호들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힘을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떤 자태를 취하게 되는지를 생각해 왔습니다. 오늘은 “여호와 닛시”(나의 깃발이 되신 여호와)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역사적인 배경
1. 르비딤 전투에 이르기 까지의 광야 여정에서 보인 이스라엘의 모습
‘여호와 닛시’라는 성호는 출애굽기 17:15에 나옵니다. 그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길을 걸었을 때 쓴 물을 만나서 원망할 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쓴 물을 단물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의 규례를 세워 시험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애굽에 내리셨던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치료하신 여호와”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이 엘림에 이르렀을 때 물샘 열 둘과 종 칠십주를 만났습니다. 엘림을 떠나서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는 애굽에서 나온 후 두달 반이 되어서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되었다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셨고, 아침에는 이슬같은 만나를 보내셔서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또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왜 애굽에서 인도해 내서 여기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면서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게신가 아닌가 시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장로들을 데리고 호렙산 반석 앞으로 가게 하셔서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넘으로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 약 3개월 동안 물이 쓰다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다고,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며,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가 아니 계시는가를 의심할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능력을 체험하고도 쓴물로 인해 원망했고,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신 능력을 체험하고도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게 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또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며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니 계시는지를 의심했습니다.
이렇게 출애굽 1세대들의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살펴보면 한다디로 배은망덕(背恩忘德)이었고, 불신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쉽게 망각해 버리고, 적은 어려움만 닥쳐도 원망하며, 그렇게도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니 계시는지를 의심했습니다.
2.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얻은 교훈
이런 모습을 하고 르비딤 광야를 행진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말렉’ 사람들입니다. 르비딤에서 오합지졸인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한 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한번도 전쟁을 위한 훈련을 받아 본 일이 없는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맹렬하게 공격해 온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모세의 전략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기상천외하는 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하고, 자기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데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서 양손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자꾸 내려가니까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거기에 앉게 하고, 한 사람은 오른 손을 도 한사람은 왼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으므로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다시 없는 기상천외한 전법으로 아말렉과 싸워 이긴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세와 아론, 훌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깨닫게 되었겟습니까 모세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지팡이가 높이 올라가야지만 이겼던 것을 모고서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야지만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수백년 동안 조상 대대로 노예생활을 해오면서 노예근성이 찌들어 있는 모습으로 출애굽한지 불과 석달도 되지 않아 전혀 전투를 위한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는 오합지졸들이, 그것도 전쟁에 필요한 변변한 무기도 갖지 못하고 나가서 싸웠는데도 승리하게 되었고, 그것도 모세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지팡이가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가면 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림으로 승전하게된 그들로서는 싸움의 승패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3.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기록하여 기념케 하신 하나님의 배려
1) 왜 아말렉과의 승천한 역사를 책에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출애굽 이후 오합지졸들을 거느리고 처음 벌어진 전투에서 멋진 승전을 장식하고난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르비딤 전투에서 지팡이와 손을 높이 들어 승리하게 된 역사적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셨을까요 아말렉과의 전투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초로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어 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기념비적인 사건을 체험하고도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백성의 전력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명의 보고를 듣고서 겁을 먹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을 보면, 기념비적인 사건을 다 잊어 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받은바 은혜와 깨닫은 교훈을 쉽게 망각하는 그들을 위해서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귀한 교훈을 기억하도록 배려해 주셨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망각하게 버린 것입니다.
2) 왜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을까요
또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전투의 기록을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행진을 방해했던 적 아말렉과 하나님께서 싸워서 없에 버리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왜 여호수아의 귀에 아말렉과의 전투에 관한 기록을 외워 들리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모세의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들어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맡기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을 것이고, 특히 모세를 통해서 외워 들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배려(配慮)에 의해서 그의 기억속에 깊이 인각(認刻)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배려를 힘입어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잊어버리고 열명의 정탐군의 애기를 듣고서 겁을 먹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으로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후에 출애굽 2세대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휼룡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훗날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전투에서 얻게 하신 교훈을 여호수아의 귀에 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기억에 인각(認刻)시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교훈이나 은혜를 오래 오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교훈이 크라이티리어(criteeia)가 되어서 나중에 그와 관련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부른 것은 아말렉 전투에서 얻은 교훈과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어떤 특별한 면을 체험하고서 얻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그 땅에다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해서 어떤 이름을 붙이든지, 아니면 단을 쌓아서 그 단에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적으로 나옵니다. 이를톄면 아브라함이 준비하시는 여호와를 체험하고서 모리아산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라고 불렀고,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까지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말이 전해 내려 왔습니다(창22;14). 그리고 다음 시간에 생각하겠습니다만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고서 죽을까 두려워 하고 있을 때에 여호와로부터 죽지 아니할 것이니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서 거기서 여호와께 단을 쌓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한 일이 있습니다(삿6:22-2
4). “여호와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서 알게 된 그 면을 들어서 기념하기 위해서 이름을 부른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라고 하는 이름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려서 승리하는 역사를 체험하고서 모세가 단을 쌓고서 부른 이름입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은 군악대나 군단의 맨 앞에 게앙된 군기로써 행군의 노선을 알리거나 집결 지점을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깃발은 적진을 점령하고 나서 승전을 알리기 위해서 꽂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전쟁에서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깃발이라는 의미요, 깃발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에 승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라는 깃발 아래 다 마음을 모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진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고 부른 것입니다.
둘째, 아말렉 전투에서 계시된 ‘여호와 닛시’ 교훈의 적용
1. 영적인 성전(聖殿)과 관련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는 성호는 물리적인 전쟁과 관련해서 나온 성호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는데 있어서 물리적인 전쟁의 의미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또 아말렉과 같은 적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성전(聖殿)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할 때에는 영적인 성전(聖殿)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엡6:12)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과 관련해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2. 아말렉과의 전투는 신약 성도의 영적인 전투의 모형으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1)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의 추격을 받으며 홍해를 건널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구원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홀로 담당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만을 통해서 은혜로 구속하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말렉이 공격해 왔을 때, 모세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가서 아말렉을 대항하여 싸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영적인 모형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요,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가 나가서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고, 또 앞으로 벌어질 가나안 족속과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싸워야할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를 가르켜서 전투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천국에 이르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영적인 전쟁을 치뤄야 할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자기의 힘만 의지해서 싸우면 패하게 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싸워야지만 이길 수 있다는 모형입니다.
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가서 싸우지만 모세가 지팡이와 양손을 들어서 이김속에서 우리의 영적인 전쟁과 관련된 또 하나의 모형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바로 이같은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피곤하여 지팡이를 든 그의 팔이 내려갔을 때 적들이 우세하여지고 이스라엘은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교훈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싸움에서 진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지만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싸움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아니하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후에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발하였던 아이성 전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성과 같이 작은 성이었지만,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나가서 싸우려고 할 때 패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지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바울 사도의 고백을 통해서도 듣게 됩니다.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셋째, ‘여호와 닛시’와 우리의 신앙
이제 하나님을 ‘여호와 닛시’ 즉 ‘나의 깃발’(승리의 깃발)로 믿는 사람은 어떤 신앙의 자태를 드러내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겠습니다.
1. 전투의식을 가지고 육신의 적들과 끊임없이 영적인 전투를 합니다.
영적으로 많은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게되고, 그러한 공격을 느끼면서 거기에 대처해 싸우면서 살아갑니다. 자기 안에 있는 육신적인 요소들과 싸우고, 세상의 풍습과 유혹에 대해서 싸우고,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싸웁니다. 원수 마귀나 육신, 세상과 같은 적들과 타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적해서 싸웁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전투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전투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대장되신 주님의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살아갑니다.
2.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싸웁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싸웁니다. 주께서 늘 힘주시기를 구하고, 그 힘을 받아서 싸웁니다. 세상 나라적인 힘을 끌어다가 하나님 나라의 전투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고유의 힘을 가지고 싸웁니다. 자기가 자기의 각오와 결심으로 육신의 생각을 제어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육신적인 생각을 제어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맺는 말
여러분이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늘 영적인 전쟁에서 폐하게 되는 이유는, 싸우려는 의지가 없든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대장되시고,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싸워야지만 육신의 정욕이나 세상의 풍습, 그리고 사탄의 맹렬한 공격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주님을 의지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실질이 있는 성도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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