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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눈물 (마9:35-36)

본문

예수께서 오늘 이 땅에 서울에 오셨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 섞여서 청담 사거리에 나타났다. 그저 시골에서 올라 온 보통 청년 또는 외국에서 온 이방인의 모습일수도 있다. 그는 패션 의 거리를 걸어서 올라올 것이다. 이 길은 넓고도 아름답다. 건물들도 세련되었구나.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깨끗하고 잘 생겼구나. 그는 이 거리를 걸어올라오다 아름다운교회를 본다. "아름다운 교회라. 이름이 아름답구나." 그리고 마침 예배 시간이 되어서 들어왔다. 깨끗한 교회당에 예배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직 삼분의 일 밖에 차 지 않았다. 그리고 제 시간이 지나서야 자리는 거의 채워졌다. 아름다 운 찬송과 빛나는 얼굴, 과연 아름다운 교인들임에 틀림 없었다. 그는 감회가 깊을 것이다. 몇십년 전만 해도 폐허였던 서울 거리, 그리고 논밭에 불과했던 이 지역이 이렇게 훌륭해지다니. 그리고 사람 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잘 살며 또 열심히 살며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가정주부들은 자부심 속에 가정을 이끌어가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키우려 노력한다. 주께서 확실히 이 사람들을 보면서 칭찬할 것이다. 잘들 하고 있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들하니 참으로 훌륭하다. 이렇게 말하는 그 의 눈은 눈물이 가득할 것이다. 기쁨인가, 슬픔인가. 성경을 보니 그는 사람들을 향해서 연민이 가득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볼 때, 민망하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그리스도였다.
왜 눈물을 흘리시는가 주가 웃었다는 귀절은 성경에 한 군데도 없다. 그는 눈물을 흘리셨다.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고 있 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장 무서워하는 표현이다. 양처럼 약한 동물이 어디 있을까. 양 한 마리가 길잃고 다닌다면 곧 들짐승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양은 눈이 어두워서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쉽다. 목자 없는 양, 이것이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인간은 저주에 대해 무방비의 상태이다. 얼마 전에도 멀쩡하던 사람이 차 사 고로 사라졌다. 가족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상태이다. 분명히 있었던 사람이, 그 사람이 내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점심을 사주기도 했었는 데 그 사람이 사라졌다. 마치 양이 절벽 아래로 사라진 것처럼. 미국의 한 산골 마을에서 다섯 살된 여자 아이를 잃어 버렸다. 아 무리 찾아도 소용이 없자 젊은 부부는 마을의 목사를 찾아왔다. 목사는 종을 쳐서 온 동네 사람을 부르고 부탁을 하였다. 사람들은 산 속 으로 흩어졌다. 밤은 깊어가고 바람 소리는 거세졌다. 동물의 울음소 리 들리는 산속에서 사람들은 불안했다. 과연 아이가 살아 있겠는가 새벽이 되었을 때 산골짜기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작은 음성이 들렸다. "찾았다!" 산 속을 헤매던 다른 사람들은 함께 합창을 했다. "찾았다. 찾았다." 아이를 업고 내려와 그들은 교회 마당에 모 였다. 종을 치고 또 쳤다. 그리고 집에 가서 음식들을 내왔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면서 기뻐하였다. 오랫만에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목사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 "여러분, 오늘의 축제는 마치 하늘나라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돌아왔을 때 모든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열성에 감사합니다. 어린 소 녀는 여러분이 살렸습니다. 하지만 육신을 위해서는 이렇게 모두다 나 서는데 정작 영원히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사람들은 깨달았다. "사람을 잃어버린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영원히 잃어버린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적으로 길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무관심하기만 할까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모두 나서는 것처럼 그렇게 영혼을 구원한다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 그리스도는 왜 눈물을 흘리시는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금 버려진 상태요 죽어가는 상태라는 말이다. 육체를 가진 것은 기 회다.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바로 육체이다. 그 기회를 육체를 위해서 마구 사용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이 무지한 인간들은 매 순간 하는 언어 행동이 자신을 망치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 작년 한 해 죽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만 290만명이었다. 하루에 7900명이 죽었다. 크게 잡아 주어서 25퍼센트가 신자라고 한다면 5천 9백명이 불신자로서 죽는다. 즉 우리나라에서만도 매일 6천명이 지옥 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앉아서 차를 마시는 매 분마다 4명이 지 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무서운 숫자이다. 지옥이 어떤 곳인가 한 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을 상상해 보라. 일본군이 중국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껍질을 벗겼다. 소 가죽을 벗 기듯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무서운 형벌이라도 지옥 에 비하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기회를 주고 돌아오도록 기다리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인간이 당하는 고통이야 말로 다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잔인하신가 아니 인간의 악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또스토예프스키는 [까라마죠프의 형제]에서 지옥을 묘사했다. 죽은 영 혼은 자기가 대항했던 그리스도를 본다. 평생을 악하게 살았던 자신을 위해 쏟았던 사랑을 보고는 고통의 불길이 마음에서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러한 인간은 아무리 좋은 곳에 데려다 놓아도 그곳이 지옥이다. 음부에 떨어진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물을 한 모금만 달라고 하였다. 그것과 다른 모든 요청이 거절 당하자 그는 물어보았다. "내가 이 속에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합니까 천년도 만년도 내가 나갈수만 있다 면 기다리겠습니다." 대답이 들린다. "아들아, 너는 거기 천년 있지 않는다. 만년 있지도 않는다. 너는 거기 영원히 영원히 있는 것이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우리가 구원할 대상이 누구인가 지나 다니는 거지인 가 모르는 사람인가 아니 우선 내 주위의 사람들이다. 내 부모요 내 가족이다. 친척이요 이웃이요 친구요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거늘 내가 어찌 발을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는가 내가 아는 권사님은 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애를 썼다. 자신이 늙 고 무식하므로 어떻게 하면 전도할 수 있을까 궁리하였다. 이상한 일 이다. 기도하고 나가면 꼭 전도할 사람을 만났다. 할 말도 저절로 나왔다. 전혀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기뻐했던지!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맛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던지. 전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것을 나누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이 우리도 그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두루 다니시 며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천국이 사람들 속에 주어지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천국이 그들의 삶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처럼 된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삶에 누린다.
그러므로 병자는 나음을 받고 마음 은 치료를 받는다. 그리하여 삶 전체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산다.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산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 병고침인가 의를 행함인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고 우리에게 용기를 준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하신 일의 결과일뿐이다. 그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했다. 그래서 지옥을 면하게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고침을 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일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그것이 천사도 흠모하는 일이다. 그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참된 복은 영혼에 생명을 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 영혼이 하나님을 받 아들이면 그때부터 살게 된다. 그리고 고침은 그때부터 나온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하늘나라에 가지 않는다. 이 제 각자가 그리스도로서 세상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그리스도로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상한 심령을 위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 계속 머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않그러면 시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우리는 그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스도의 눈물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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