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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3)

본문

오늘은 부모님 주일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님의 은공을 설명하면 자 녀들 보고 부모를 잘 섬기고 효도하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여 가르치는 주 일입니다.
그런데 지난 5월 4일자 정부 발표를 보면 이러한 설교를 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요보호아동은 9천292명으로 97년의 6천734 명보다 38%가 늘어났으며 유형별로는 기아 및 사생아 5,774명, 미 아 277명, 비행.가출.부랑아
3,241명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기아 및 사생아는 97년의 3천205명에 비해 무려 80% 증가했읍니다. 기아(棄兒)란 부모로 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의미합니다. 사생 아(私生兒)는 여자가 정당한 혼인관계 밖에서 낳은 아이를 말합니다. 중 학생이나, 고등학생등 젊은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연히 그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경제위기이후 경제난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늘어난 데다 낙태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미혼모들이 사생아를 출산하는 경우가 급 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렇게 한해에 5,774명이나 아이들이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해에 자식을 버리는 사람이 아버지 어머니 합해서 11,548명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관계된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합하 면, 어린 아이를 버리는데 동조한 사람이 무려 34,644명이나 됩니다.
이런 숫자는 유일회적인 숫자가 아니라, 매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 린이들을 버리는 것과 관계되어 있고 그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모들이 자식들을 헌신짝 처럼 쉽게 버리는 현실속에서 과연 자식들에게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설교할 수 있을까 " 이것이 오늘 부모 님 날을 맞이해서 설교를 해야할 저의 고민이였습니다. 부부 사이는 무촌 이라고 계산을 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는 1촌으로 계 산을 합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는 거리가 없이 부부는 한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부모 와 자식의 거리는 1이라고 한 것은 부부 사이를 무촌으 로 했기 때문에 1 촌이라고했지, 사실은 부모와 자식 같도 무촌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무슨 거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부부 간에도 갈라서는 것이 식은 죽 먹기고, 부모가 자식을 버 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인 이런 현실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명 령을 하실까 " 이 음성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우리의 가정문화는 잘못되어가 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문화는 아닙니다. 마 귀 사단이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게 위하여 가져주는 가정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세상 사람이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시간 부모님 주일을 맞이하여,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할"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했던 사람들은 먼저 순종을 배웠던 자들입니다. 어떻게 순 종을 해야하며,(how th obey) 누구에게 순종해야 하며,(whom to obey) 언제 순종해야 하는가 (when do obey)를 배워서 알고 있던 자들입니다. 순종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쓰임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순종할지 모르는 자를 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순종할 줄 모르는 자가 필요한 곳은 한 곳도 없읍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 르쳐야 합니다. 정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1) 그럼 어떻게 순종을 해야 할까요 자녀들보고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순종은 어떻게 하는 것 이 순종일까요 순종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한 선교사 통역관이 "순종"이란 말을 어떻게 통역해야 할까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당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같은 선교사 팀들이 집에 왔을 때, 개가 보이지도 않는데 개를 불렀다. 그러자 그 개가 그 소리를 듣고는 곧 달려왔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동포가 "당신의 개는 당신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군요"(be all ears)하고 말 을 했다. 이 말이 통역관에게 복종이란 말을 통역하는데 필요한 말을 생각나게 했다. 그 통역관은 순종이란 말을 "열심히 귀를 기울이다"(be all ears)라고 번역을 했다. 순종이란 부모님에게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무어 라고 말씀을 하실까 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순 종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 로 "잔소리"란 말입니다. "잔소리"란 말은 "잔말"이란 뜻인데, 이 "잔말" 이란 쓸데 없이 데풀이하는 말이란 뜻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잔말로, 잔소리로 듣습니다. 그래서 한 귀 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냅니다. 이것은 순종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열심히 귀를 기우리고 듣는 것이 순종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우린다는 것은 부모님께 열심히 관심을 갖는다는 말씀입니다. 늘 부모님을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밥을 먹을 때에는 부모님은 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굵고 계시지는 않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옷을 입을 때에는 부모님의 의복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 이 옷은 갈아 입으셨는가 갈아 입을 옷은 있는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돈을 쓸 때에는 부모님의 돈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지 갑에 돈은 있는가 내가 추울 때에는 부모님의 추위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방은 춥지 않는가 부모님의 집에 귀뜨라미 보일러는 설치 했는가 내가 더울 때에는 부모님의 더위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집에 에어컨은 있는가 여기 있는 이 목사도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종하 라는 것은 이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부모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늘 부모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2) 누구에게 순종을 해야 할까요 순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것에 순종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것에 순종하는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순종하는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란 말씀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어린이들은 TV에 순종을 합니다. 텔레비젼에서 어떤 것을 선전하면서 사라고 하면 다 삽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다 텔레 비젼에 순종을 합니다. 텔레토비 인형 사라고 하면, 다 사야합니다. 삐삐 사라고 하면 다 사 야합니다. 핸드폰 사라고 하면 다 사야합니다. 머리 물들이라고 하면 다 물들여야 합니다. 이렇게우리 자녀들이 텔레비젼에 순종을 하기 때문에 다 텔레비젼에 효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텔레비젼이 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들은
첫째 하나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주 안에서" 순종하고 하셨습니다. 부모보다도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들로 키워야 합니다.
둘째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합니다. 텔레비젼 보다는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합니다.
셋째 순종은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이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자년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이것이 거꾸로 되었읍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순종을 합니다. 자식들이 명령하는대로 부모는 다 합니다. 이것은 자식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도 망하고 자기도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자식을 누구에게 순종하는 자로 키우겠습니까 텔레비젼에 순 종하는 자식으로 키우겠습니까 돈에 순종하는 자식으로 키우겠습니까 세상에 순종하는 자식으로 키우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 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식들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과 부모에게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언제 순종을 해야 할까요 순종은 즉시 해야 합니다. 순종은 연기하면 불순종이 됩니다. 그래서 순종을 연기하는 것은 불순종의 형제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명령이 떨어졌을 때 즉시 해야 합니다. 연기하면 불순종입니다. 주인이 불렀을 때 개가 즉시 달려 온 것과 같이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할 때 즉시 해야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추도식 때마다, 우리 둘째 큰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상석을 하고, 돌로 축대를 쌓을 터이니, 돈들을 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상석과 돌로 축대를 쌓는다고 하는 것이 우리 할아버지가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지금까지 30년이 지났는데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즉시 해야 합니다. 연기하면 못합니다.
그래서 명심보감 효행편을 보면 子-曰 父母 在(어서든) 不遠遊(하며) 遊必有方(이니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무모가 살아계시거든 머 리 떨어져 놀지 말 것이며, 놀 때에는 반드시 그 가는 곳을 알여야 하느니 라"고 하셨다. 또 子-曰 父-命召 (어시든) 唯而不諾(하고) 食在口卽吐之(니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속히 대답하여, 머뭇거리지 말 고, 음식이 입에 있거든 곧 밸고 대답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즉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은 배워야 합니다. 순종은 배운 자가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효도도 배운 자가 하듯이, 순종도 배운 자가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은 배운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순종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더라도 자식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 쳐야합니다. 어린 소녀 두명이 같이 놀다가 한 소녀가 친구에게 자기와 같이 소풍가 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잠간 기다려 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물어보고 말해줄께"하고 집으로 갔다. 그녀가 돌아 왔을 때, 그녀는 같이 소풍을 못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엄마가 갈 수 없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 소녀는 "다시 한번 가서 엄마에게 가겠다고 떼를 써바"하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니야, 우리 엄마는 '안돼'하고 대답을 하면, 절대 로 엄마의 마음을 바꾸지 않아. 우리 엄마는 나에게 제일 좋은 것을 아 셔.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 말대로 해"하고 대답을 했다. 한 소녀는 순종하는 것을 배운 소녀고, 한 소녀는 순종을 배우지 못한 소녀입니다. 순종을 배운 소녀는 부모를 힘들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순 종을 배우지 못한 소녀는 부모를 힘들게 합니다.
왜냐하면 떼를 쓰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자식을 순종하는 자식으로 만들려면, 부모가 자식에게 믿음이 있 어야 합니다. 이 소녀가 우리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만 말씀하신 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기 때문에, 이 소녀는 엄마의 말에는 무엇이나 순종 을 합니다. 만약 엄마가 평소에 딸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그 소녀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엄마의 말 한 마디에 포기하겠습니까 평 소에 엄마가 딸에게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엄마의 명령에 순종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복종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고, 믿는 사람만이 복종한다"고 말을 했다.(Only those who obey can believe and only those who believe can obey) 부모님 주일입니다. 자녀들은 늘 주안에서 부몬에게 순종하는 자녀들 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왜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하는가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 규범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목적론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행동 규범이 거의가 목적론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따져서 행동을 합니다. 아무리 옳 은 것이라도 손해가 되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한 것이라도 이익만 되면 행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신앙생활에도 들어 왔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 목적 론적인 이유 때문에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기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다. 이들은 신앙생활 을 "자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등동물의 수준입니다. 기독교의 행동원리는 아닙니다.
둘째는 의무론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하는 것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 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면 나쁜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옳은 일이라면 아무리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쁜 일이라면 아무리 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안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 못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우선 그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즉 부보에게 순종하는 것은 목적론적인 것이 아니 라, 의무론적인 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이 있어서 부모에게 순종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가 되어도 그 일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순종해 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손해가 되어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손해 본다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이익이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 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은 유익이 되기 때문에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리해서 같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며 살면, 손해를 보기도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같이 모시고 효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옳 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해야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중 인간들과 관계된 첫번째 계명인 5번째 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격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해야 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들 보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행동 규범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옳은 일이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에 가장 좋은 본을 보여 준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은 하나님과 본체이시나,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 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시고, 사람의 모양으 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것은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 아 닙니다. 비록자기에게는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버리는 손해가 있지만, 그것이 옳은 길이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행동의 동기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가 순종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었습니다.
(1) 두려워서 복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fear) 복종하고 싶지 않아도 복종하는 것은 만약 복종하지 않으면 두려운 일이 우리에게 생기기 때문에 복종을 합니다.
(2) 보상 때문에 복종하는 경우가 있다.(reward) 이것은 목적론적인 이론 과 같습니다.
(3) 사랑하기 때문에 복종하는 경우가 있다.(love)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순 종이 가장 바람직한 순종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님께 순 종하는 것입니다. 수복 후 여러해 전에 신문에 보도됐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피 난가서 기르던 아주 영리한 개를 갖고 돌아 왔다. 이 영리한 개는 심부름 도 혼자 잘 하던 개였다. 서울로 올라온 직후이기 때문에 개가 시장을 잘 몰라서 주인과 함께 시장엘 갔는데, 그만 너무 복잡해서 주인과 개가 헤어 지고 말았다. 주인은 며칠이 지나도 개가 돌아오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개가 시장 바구니에 썩은 생선을 담아 가지고 돌아 왔다. 발에는 피가 나고 몸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 알고보니 개가 시장을 모 르니까 전에 피난가서 살던 그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 가지고 왔다. 수백리 길을 걸었기에 몸은 지치고, 발은 부르더서 얼마 후 죽고 말았다. 이 개가 그의 사명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에, 자기에게 아무 런 유익이 없고, 큰 손해가 난다고 하더라도, 수백리 길을 달려갔다가 온 것같이 우리도 비록 큰 손해가 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 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효도입니다.
3.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가 받는 상급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상급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옳은 일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잘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잘되는 복을 주십니다. 잘 된다는 것이 바로 복이란 뜻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 게는 만사가 형통한 복을 받습니다.
둘째는 장수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 셨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복이 장수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 장수의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이 땅에서도 받는 복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받는 복들은 대개 영적인 복입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 받을 복입니다. 우리는 그 복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충성을 합니다. 그러나 효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은 이 땅에서도 누리는 복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이런 귀한 복을 주십니다.
III. 저는 지난번에 신문에 났던 참으로 아름다운 효도에 관한 기사를 말씀드 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명문대인 고려대 합격생이 만성 간경화증으로 투병중인 부친의 수술비 를 대기 위해 입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간 일부까지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강민군(19살 서인천고 졸업,인천 계산동). 오군은 올 입시에서 고려대에 합격했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살던 집까 지 경매에 부쳐져 수술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자 등록금으로 준비했던 2백60 만원을 치료비로 쓰기로 결정했다. 만성 간경화증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놓이자 오군은 그동안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을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수술에 적합한 간 기증자 를 찾기 어렵다'는 소식을 접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러던 중 서울 중앙병원으로부터 자신의 간 조직이 수술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지난달 13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체부분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생체부분 간이식' 수술이란 3분의 2를 떼어내도 다시 자라는 간의 특성 을 이용, 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간이 완전히 손상된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법이다. 수술을 집도한 이승규 과장(50살 일반외과)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 나 오군의 부친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아버지를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신체 일부를 떼어낸 효심은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는 신세대에게 귀감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오군은 "대학입학을 포기했을 때 마음이 아팠지만 아버지의 생명보다 중 요한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면서 "다시 대학에 합격하게 되면 외교관의 꿈을 이뤄 아버지에게 효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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