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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연합 (롬6:1-23)

본문

로마서 6장에 접어들어서는 바울의 본격적인 복음의 진수가 나타나 있습니다.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바울이 말하는 복음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합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여야 합니다.연합이라는 말은 함께하다,하나가 되다 라는 의미인데 연합의 개념은 ,특히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개념은 이성적으로 알수 있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체험적으로 알수 있는 개념입니다.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느끼는 개념이며 그냥 그렇게 아는 개념입니다.우리가 결혼을 하면 한몸이 되었다,연합되었다고 표현합니다.두 남녀가 하나가 된것을 여러분은 어덯게 설명할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남녀가 사랑으로 연합한 것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굉장히 복잡해 지고 또 무미건조해질 것입니다.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부는 서로가 하나되었다는 것을 그냥아는 것입니다.마주보고만 있어도 눈빛만으로도 알아지는 것입니다.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어덯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바울은 그 깨달음을 가지고 답답하게 신앙생활하는 로마교인들을 향하여 그리고 지금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은 먼저 앞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많다는 말을 받고 있습니다.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으니 은혜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죄를 더 많이 짓자라는 논리를 펼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또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지금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신앙은 사변의 대상이 아닙니다.이상한 논리를 전개하여서 그럴듯한,그러나 결국에는 황당무계하고 복음의 정신에서는 완전히 빗나간 생각과 말을 우리가 할수가 있습니다.신앙을 이성으로 접근하려할 때,사변적으로 접근할 때,신앙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을 때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는 현상들입니다.따라서 우리는 조심하여야 합니다.말씀앞에 겸손하여야 합니다.그럴수 없느니라라는 본문의 표현은 아주 강한 부정의 표현입니다.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그렇습니다.그런일이 우리안에는 결코 일어 나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은혜받고 축복받으러 나왔지 이상한 궤변을 가지고 자기도 망치고 상대방도 미혹하게 하기 위하여 여기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진리를 현혹케하는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가르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에서 죄는 구체적으로 죄와의 관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죽은 이라는 말은 부정 과거형으로 이미 결정적으로 죽은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죽음이라는 말에는 완전히 떨어져 나가다 단절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즉 이 말씀을 풀어서 써 보면 <죄와의 관계에서 이미 완전히 단절되고 떨어져 나간 우리>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제가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여러분은 죄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단절되고 떨어져 나가셨습니까 글쎄요 아직 아녜요,아니면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3절의 말씀을 보십시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그는 이미 죄를 모든 죄의 형벌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10절에는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한사람 아담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세상에 들어온 이 원죄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이미 해방시키신 것입니다.4절에서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지금의 세례는 약식으로 베풀지만 그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는 침례의 예식이 베풀어진 것 같습니다.세례받는 사람을 완전히 물에 잠기게 하였다가 다시 일으키는 의식입니다.세례는 이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었다가 그리고 다시 살았습니다.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공유하였다는 말과도 같습니다.즉 내가 그리스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내안에 있는 상태입니다.그리스가 죽었을 때 나도 죽었으며 그리스도가 사셨을 때 나도 살았습니다.이것은 신비스러운 일입니다.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 하기 어렵습니다.그러나 사실입니다.우리 모두는 영으로 영적인 눈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느낄수 있으며 그렇게 고백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입니다.내가 그리스도안에 그리스도가 내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습니다.죽은 것은 무엇이고 살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6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죽은 것은 우리의 옛사람이었습니다.우리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실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것은 새생명,거듭난 생명,새로운 나,구원받은 생명인 것입니다.여기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믿음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로마서 11장에서는 <접붙임>이라는 단어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모두 죄라고 하는 원죄의 나무에서 살던 가지드이었습니다.죄라는 큰 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갖가지 죄를 지으면서 살아왔습니다.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내 맘대로 고집하며 내 멋대로 살아왔었습니다.그래서 우리 모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입니다.그것은 바로 이 원죄의 나무에서 우리가 완전히 단절되어서 바울은 11장에서 찍힘을 받았다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완전히 단절되고 찍어서 잘라내어서-이것이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생명나무에 우리를 접붙였다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8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것을 반드시 믿어야합니다.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복음의 모든 것입니다.여기에서 우리의 모든 신앙과 고백이 비로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10절이하를 보십시요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찌어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여기는 것입니다.나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다 라고 여기고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사탄은 자꾸 우리에게 의혹의 영을 불어 넣습니다.자꾸 사변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몰고 갑니다.형식적으로 몰고가고 복음의 진리에 접근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사탄은 우리가 아직도 죄인임을 자꾸 이용하고 있습니다.사실 그렇습니다.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아직도 우리의 마음에는 악한 생각이 있습니다.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안에 악한 생각이 남아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본질적으로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만하면,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의 은총을 받기만하면 우리는 이미 본질적으로 신분이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17절에는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우리는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본래는 죄의 종이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종이 죽었다는 말입니다.종은 죽기전에는 주인으로부터 자유할수 없습니다.그러나 종이 죽으면 그때는 완전한 자유입니다.그것이 18절의 말씀입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바울은 지금 설명하거나 설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얼마나 우렁찬 선포입니까 천년만년 내려온 우리의 꽉 맺힌 답답함을 한순간에 풀어주는 폭포수와도 같은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에게서 해방된 것입니다.이제는 의의 종입니다.더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요한사도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바울은 로마서 8장 서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선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얼마나 우렁찬 선포입니까 이제 우리는 죄에게서는 죽었고,그리스도가 죽었을 때,그리고 그의 부활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생명나무에 접붙임을 당한 하나님의 종,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과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이것이 분명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부럽지 않습니다.그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날마다의 삶이 감사와 감격의 삶이며 날마다의 예배가 기쁨이며 축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13절 하반절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는 모두 의의 병기입니다.이미 의의 병기가 된자들입니다.우리의 신분에 대하여 분명한 확신을 우리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 선하게 씌임받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로마서는 총 16장까지 있는데 이제 6장을 강해하였습니다.로마서에는 복음의 진수가,복음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교회사적으로도 시대가 어렵다던가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또는 새롭게 도약할 때 교회는 항상 로마서를 가르쳤습니다.종교개혁시대에도 그랬고 19세기 말에도 그러했습니다.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다시 로마서를 공부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할일이 참으로 많습니다.장막도 넓혀야 하고 기도원도 세워야 합니다.어찌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우리 모두 말씀으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지금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말씀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2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연합된 영생의 축복이 이제부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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