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 (벧전2:18-25)
본문
일년중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뜻 깊은 절기를 맞이 하면서 이시간 예수님의 고난이 주는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를 느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가 기독교의 본질을 푸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고난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올바른 예배 행위를 가질 수 있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의를 위한 고난입니다. 본문 20절에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보면 대부분이 자기 개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행위의 대가로 받는 고난들입니다(약 1:15).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정욕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만족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따르는 고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고난은 의로운 고난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산상보훈 가운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5:10). 세상에서 예수님의 행하신 일은 어느 것 하나도 선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씀이나 행적은 모두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들어 임금을 삼자고 하기도 하였고(요 6:15), 측근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권세를 위해서 일하시는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었습니다.(마 20:21, 요 7:4).
2. 대속의 고난입니다. 본문 22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를 재판했던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 앞에서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요 19:6)라고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무죄하신 주님께서 죄인의 허물을 맡으시고 죄인이 받을 형벌을 받으시며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으니 이것이 곧 대속의 고난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강조하면서 그 죽음의 효력을 통하여 구원 얻은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러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어주신 그 죽음은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속죄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죄인을 구속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증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 5:8)고 하였습니다.
3. 본이 되는 고난입니다. 본문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통한 고난과 특히 십자가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바 있는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의 고난임을 강조하면서도 또다른 의미로서는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사실상 세상과는 구별된 기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깨끗하고 거룩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고 우리들을 죄와 죽음에서 대속하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자기의 교회와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1. 의를 위한 고난입니다. 본문 20절에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보면 대부분이 자기 개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행위의 대가로 받는 고난들입니다(약 1:15).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정욕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만족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따르는 고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고난은 의로운 고난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산상보훈 가운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5:10). 세상에서 예수님의 행하신 일은 어느 것 하나도 선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씀이나 행적은 모두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들어 임금을 삼자고 하기도 하였고(요 6:15), 측근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권세를 위해서 일하시는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었습니다.(마 20:21, 요 7:4).
2. 대속의 고난입니다. 본문 22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를 재판했던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 앞에서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요 19:6)라고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무죄하신 주님께서 죄인의 허물을 맡으시고 죄인이 받을 형벌을 받으시며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으니 이것이 곧 대속의 고난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강조하면서 그 죽음의 효력을 통하여 구원 얻은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러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어주신 그 죽음은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속죄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죄인을 구속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증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 5:8)고 하였습니다.
3. 본이 되는 고난입니다. 본문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통한 고난과 특히 십자가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바 있는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의 고난임을 강조하면서도 또다른 의미로서는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사실상 세상과는 구별된 기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깨끗하고 거룩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고 우리들을 죄와 죽음에서 대속하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자기의 교회와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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