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 (사53:2-7)
본문
사람들은 항상 편한 것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이란 나에게 아무 어려움이 없는 것이고 불행은 나에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불행이라 합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고 나에게 어려운 일이고 나에게 고난이 닥치는 일은 있으면 이일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라 말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결정하는 기준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기준은 세상의 사람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정신박약아 수용 시설에 위문 온 사람 가운데 하나가 경박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니 라고 물었답니다. 그로 인해 분위기는 침울해진 가운데 말 못하는 소녀가 분필을 들고 “우리들이 이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답니다. 이번에는 질문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소녀의 마음속에는 그런 상태를 통하여서 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염원이었던 것이다. 맹인 목사인 양정신 여사를 통해 울진 삼척 사태때 부상을 당해 하반신 마비 가된 김석재 목사를 통해 뇌성마비 소녀 송명희 양을 통해서-하나님의 불완전함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몸이지만 주님을 모신 마음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만족함을 누릴 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인 아들이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느 영광을 자기를 위하여 취하거나 어떤 자기의 몸을 위한 일을 하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고난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은 불행이라고 한 번도 생각 해본 일도 없으실 것이고 이것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당연한 일이고 이 일을 함으로 만족함을 누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참 행복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이고 불행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준으로 불행과 행복을 말 하는 것입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피알 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는데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숨기고 남에게 알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 이 시면서도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구세주 이 시면서도 주님은 그 백성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으시고 존경을 받기보다는 싫어 버린바 된 자와 같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습은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구원 역사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에서 한 일은 신앙인의 모범된 삶을 살아 우리의 본을 보여 주신 것과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신 구원사역외에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전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했고 공생애 기간에는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인간적인 어떤면중 어느 곳을 바라 볼 지라도 어느 만족할 만한 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흠모할 만한 것이 없고 징계를 받아 버림받은 자와 같은 사람 같은 모습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얼굴을 봐도 죄를 범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얼굴이었습니다. 언젠가 꿈을 꾸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한 번 보여 주시는데 그 얼굴이 너무도 못생겼더군요 물론 당시 나의 어떠한 상황에 따라 얼굴이 바뀌고 응답이 바뀌는 것은 인정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얼굴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여인이 있었으나 스캔들에 걸리지 않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하여 마음 상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알리지 않고 간고를 많이 당하시고 질고를 당하심으로 질고를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어떠한 행위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정받으려 하고 남에게 보이려 하는데 예수님은 숨기고 나타내지 않으려 하심으로 남과 차이가 있으니 자연히 남에게 소외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행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하고 말씀 하고 있고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세상에는 원수가 되는 일이고 믿는 우리에게는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은 자기들이 이긴 줄로 알고 기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위는 세상과 정 반대 되는 일입니다. 세상은 남에게 나타내고 자기가 영광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일을 악하다 함으로 세상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주님을 모르는 자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하고 그 예수님도 미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자기 행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요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하고 세상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무덤에 묻히심을 기뻐 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 백성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역시 세상에서 구별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진리를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요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이제는 고난이나 불행을 당해도 주님께 감사할줄 아는 성도 가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보면(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1] 우리를 위하여 사람에게 버림당하시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음은 바로 우리를 위한 고난이요 버림당하심이요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병에서 낳음을 입었습니다.
(1)그가 찔림과 상함으로 우리 죄 사함과 평화를 누립니다. 허물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 사망에 이르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님의 찔림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외인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의 모습은 죄의 종이였습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종의 허물을 완전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죄의 허물이나 습관이나 향기에 젖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죄악을 즐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죄를 즐기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죄악을 사모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비록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많은 돈을 번다면 우리는 약간의 죄는 묵인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맛보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값비싼 댓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2)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침밷음을 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성경에 보면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병에서 놓임을 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고난 당하심을 믿고 주님의 채찍에 맡음을 생각하면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채찍에 맡음을 믿고 주님을 의지 할 때 우리는 병에서 낳음을 입게 됩니다. 거기에 대한 인간의 닶은 6절의 말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하는 인간의 무성의와 외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지금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가르고 자기 마음에 받지 않는다고 함께 기도하지 않고 함께 예배드리지 않고 함께 교회를 이루지 않고 자기의 혼자 예배를 드리려 하고 자기 혼자 기도 할려 하고 주님의 보혈을 생각지 않고 자기 의도에 맞게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리는 양과 같이 지금도 자기의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이란 나에게 아무 어려움이 없는 것이고 불행은 나에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불행이라 합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고 나에게 어려운 일이고 나에게 고난이 닥치는 일은 있으면 이일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라 말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결정하는 기준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기준은 세상의 사람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정신박약아 수용 시설에 위문 온 사람 가운데 하나가 경박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니 라고 물었답니다. 그로 인해 분위기는 침울해진 가운데 말 못하는 소녀가 분필을 들고 “우리들이 이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답니다. 이번에는 질문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소녀의 마음속에는 그런 상태를 통하여서 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염원이었던 것이다. 맹인 목사인 양정신 여사를 통해 울진 삼척 사태때 부상을 당해 하반신 마비 가된 김석재 목사를 통해 뇌성마비 소녀 송명희 양을 통해서-하나님의 불완전함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몸이지만 주님을 모신 마음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만족함을 누릴 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인 아들이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느 영광을 자기를 위하여 취하거나 어떤 자기의 몸을 위한 일을 하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고난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은 불행이라고 한 번도 생각 해본 일도 없으실 것이고 이것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당연한 일이고 이 일을 함으로 만족함을 누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참 행복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이고 불행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준으로 불행과 행복을 말 하는 것입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피알 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는데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숨기고 남에게 알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 이 시면서도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구세주 이 시면서도 주님은 그 백성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으시고 존경을 받기보다는 싫어 버린바 된 자와 같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습은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구원 역사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에서 한 일은 신앙인의 모범된 삶을 살아 우리의 본을 보여 주신 것과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신 구원사역외에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전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했고 공생애 기간에는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인간적인 어떤면중 어느 곳을 바라 볼 지라도 어느 만족할 만한 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흠모할 만한 것이 없고 징계를 받아 버림받은 자와 같은 사람 같은 모습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얼굴을 봐도 죄를 범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얼굴이었습니다. 언젠가 꿈을 꾸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한 번 보여 주시는데 그 얼굴이 너무도 못생겼더군요 물론 당시 나의 어떠한 상황에 따라 얼굴이 바뀌고 응답이 바뀌는 것은 인정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얼굴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여인이 있었으나 스캔들에 걸리지 않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하여 마음 상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알리지 않고 간고를 많이 당하시고 질고를 당하심으로 질고를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어떠한 행위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정받으려 하고 남에게 보이려 하는데 예수님은 숨기고 나타내지 않으려 하심으로 남과 차이가 있으니 자연히 남에게 소외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행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하고 말씀 하고 있고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세상에는 원수가 되는 일이고 믿는 우리에게는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은 자기들이 이긴 줄로 알고 기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위는 세상과 정 반대 되는 일입니다. 세상은 남에게 나타내고 자기가 영광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일을 악하다 함으로 세상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주님을 모르는 자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하고 그 예수님도 미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자기 행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요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하고 세상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무덤에 묻히심을 기뻐 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 백성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역시 세상에서 구별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진리를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요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이제는 고난이나 불행을 당해도 주님께 감사할줄 아는 성도 가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보면(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1] 우리를 위하여 사람에게 버림당하시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음은 바로 우리를 위한 고난이요 버림당하심이요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병에서 낳음을 입었습니다.
(1)그가 찔림과 상함으로 우리 죄 사함과 평화를 누립니다. 허물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 사망에 이르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님의 찔림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외인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의 모습은 죄의 종이였습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종의 허물을 완전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죄의 허물이나 습관이나 향기에 젖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죄악을 즐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죄를 즐기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죄악을 사모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비록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많은 돈을 번다면 우리는 약간의 죄는 묵인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맛보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값비싼 댓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2)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침밷음을 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성경에 보면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병에서 놓임을 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고난 당하심을 믿고 주님의 채찍에 맡음을 생각하면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채찍에 맡음을 믿고 주님을 의지 할 때 우리는 병에서 낳음을 입게 됩니다. 거기에 대한 인간의 닶은 6절의 말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하는 인간의 무성의와 외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지금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가르고 자기 마음에 받지 않는다고 함께 기도하지 않고 함께 예배드리지 않고 함께 교회를 이루지 않고 자기의 혼자 예배를 드리려 하고 자기 혼자 기도 할려 하고 주님의 보혈을 생각지 않고 자기 의도에 맞게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리는 양과 같이 지금도 자기의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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