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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게 미친 자 (고후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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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친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 우리보다 4년 선배인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는데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도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일년동안 집에서 놀고 있는데 여름방학을 통하여 서울에서 농촌 활동을 왔던 어느 대학생이 그를 동정하여 중학교에 진학시킨다고 서울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인지 모르게 서울로 올라간지 한달 만에 정신이 이상해 져서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그는 늘 노래를 부르며 희죽희죽 웃고 다니게 되였고, 시골에게 가난하고 늙은 부모는 그를 제대로 치료도 못해주었고 그는 부모님의 짐이 되여서 그가 20세쯤되였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온양에 가서 짜장면을 시켜주어 먹게 한 다음 버리고 도망 와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온양을 지날 때 마다 그 사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좋은 사람인데 미쳐버려서 폐인이 되고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미치면 쓸모 없는 폐질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사도바울도 “내가 미쳤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미쳤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은 미친사람이였습니다. 그도 미친 사람이였기에 가족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친구들과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미친 자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 하나 깊히 생각해 볼 때 무엇인가 미쳐서 산다고 말해도 과히 잘못된 말이 아닌 것입니다. 조금은 표현이 지나칠 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미쳐서 돈이 없으면 죽는 줄로 알고 돈 돈 돈 하면서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밥은 굶으면서도 술은 하루도 쉬지 않고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처 자식 보다도 술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건강보다도 술을 더 좋아합니다. 이 사람은 술에 미쳐서 삶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마약에 미친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나 권력에 미쳐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운동경기에 미친 사람도 있어서 우리 나라에는 없지만 브라질과 같은 남미에는 사람들이 온통 축구에 미쳐버려서 축구경기만 하면 사람들이 정신이 이상해서 날 뛰게 됩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우승 후보라고 장담했던 콜롬비아가 미국과의 경기에서 한 선수가 실수로 자살꼴을 넣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골롬비아는 미국에게 패했고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콜롬비아로 돌아가서 축구에 미친 사람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축구에 미쳤으면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에 미쳐서 일주일 내내 일하고 하루만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이 교회에 나와 있으십니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피서다 여행이다 모두 떠나 버린 무더운 이 도시에 남아서 이 교회에 나와 있으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증거입니다. 행26:24을 보면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가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가이사랴에 2년간 옥살이를 하던 사도바울은 베스도 총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너무나 힘차게 전파했습니다. 이 설교를 듣던 베스도 총독은 말하기를 “바울아 너는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학문 때문에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미친 사람이였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미친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습니까
1. 미친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미친사람은 슬픔을 모릅니다.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그 것은 이성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미친사람은 아무 곳에서나 옷을 벗고 춤을 추며 희죽희죽 웃고 다니며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돈에 미친사람, 권력이나 명예에 미친사람 어떤 성질의 것이 간에 미친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작년 대선 때 정주영씨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여 선거를 할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유치하고 추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그는 권력에 미친 사람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큰 소리치고 다녔습니다. 오늘날 지금 이 시간에도 무엇인가 미쳐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큰 소리치고 남을 의식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였던 사도바울은 롬1:16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믿고 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미친사람이기에 안디옥의 지하 감옥에 갇혀서도 힘차게 찬송을 부를 수 있었고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서 유대인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시 일어나서 성으로 들어 갔다가 이튼날 96Km떨어진 데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전 날 수 없이 매를 맞고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240리 길을 걸어 와서 다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온전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온전히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미친사람은 정상인 보다 힘도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바울 만큼은 못하지만 예수님깨 마친사람들이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속회예배 또한 여러가지 교회봉사 이런 일들을 보면 교회에 미친사람들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서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술에 취한사람들 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미친사람이 되려면 온전히 미친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미친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면 이는 온전한 성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데 대담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이며 당당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여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물리학자 “알키메데스”는 그가 목욕탕에서 물속에 몸을 잠그고 목욕을 하는 중에 저 유명한 비중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쁘고 흥분하여 벌떡 일어나 벌거벗을 줄도 모르고 알몸으로 거리로 뛰어다니며 “알았다 알았다 내가 알았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학문에 깊이 빠져 미친사람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은 예수님께 미친사람이기에 가족도 버리고 학문도 버렸고 명예나 권세도 버렸으면 좋은 친구도 버렸습니다. 우리도 이왕에 예수를 믿기로 하였다면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에 온전히 미쳐서 구원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한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며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미친사람은 항상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을 각오를 하고 두려움없이 너 죽고 나죽자고 덤벼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금은 다른 말이기는 하지만 정신이 나간 미친사람은 두려움이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미친사람은 산중 깊은 곳을 걸어가도 두려움이 없이 즐겁기만 합니다. 미친사람이 어느 한 구석 두려워 하는 점이 보인다면 이는 온전한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온전히 미쳐버린 사도바울은 많은 위험에 직면해 있었지만 그는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고전11:23에서부터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정신 빠진 사람같이 말합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40에서 하나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은 세번이요 파선을 당하여 고생을 한 것도 세번이며 풍랑을 만나서 24시간 바다에 떠다니기도 하였고 여러번 여행하는 동안 강물의 위험과 빈 들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들의 위험을 당했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리며 여러 밤을 새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끔찍한 환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 버렸기 때문에 입니다. 일제시대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를 하였고 6.25때에도 공산당의 핍박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쳤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도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사리원 감리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는 이성봉 목사님이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서 취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매를 맞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할 때 마다 “이 부족한 내가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위하여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하니 기쁘고 감사하다.” 하면서 싱글벙글 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을 취조했던 악명 높은 호시 경찰 부장도 “이성봉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이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목사님이 진짜 정신병자 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성령님 받은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미친 사람이였기 때문에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토다스 박사는 “신앙과 공포는 공존할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진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성도는 걱정이 없습니다. 현대를 가르켜서 공포의 시대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빠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랑하는 것 같지만 저는 제 개인 통장에 현재 10만원도 들어 있지 못합니다. 은행에 정기적금을 들은 것도 없고 생명보험을 들을 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교회에서 제 이름을 빌려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대부분 목사들인 세상에서 경제적으로는 빈 껍기로 살면서도 걱정없이 큰 소리만 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두려움이 없는 신앙 때문입니다. 사41:10을 보십시요. 모두 찾으셔서 밑줄을 치십시요. 이 말씀을 써서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봉독하겠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왜 제가 두려움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오른손으로 나를 붙잡고 계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두려움 없이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두려워하는 자, 근심하는 자, 염려하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눈동자 같이 살피시고 오른 손으로 붙잡고 계시며 인도하시고 동행하신 다는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뒤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하나님의 빽이 있습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시고 두려워 마시고 기도하면서 여러분의 일을 성실하게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4. 미친 사람은 내 것이 없고 아까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참으로 많은 사람이였습니다. 그의 족보는 베냐민 지파로 자랑거리였고. 학벌은 최고 학부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율법의 박사였습니다. 그의 지위는 지금의 국회위원에 상당한 사람이였고 종교적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으로 율법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근본주의자들이였으며. 그의 권력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둘 수 있는 사람으로 이러한 특권을 마음대로 누리고 살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그렇게 귀하게 여겨오고 자신의 육신의 삶 속에서 귀하던 무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미련없이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이 쉬운 것이지 귀한 가문, 좋은 학벌, 많은 지식, 높은 권세와 권력, 좋은 친구, 선배 후배 등을 많은 사람들은 가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얻기 위하여 평생의 정력을 투자하여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솔직히 이야기 해보십시요 우리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우리에게 많은 재물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싫다고 거절하는 사람이 몇명이 되겠습니까 우리들에게 돈 10만원이 생기는 일이 오늘 있다면 우리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리로 달려 갈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가졌던 귀중한 것들을 미련없이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가 정신병자 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소중했고 귀하던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얻었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가문이나 학벌, 지식, 권력, 재물 보다도 귀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미치고 빠진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중에 “내 것” 이라고 고집하는 것들이 없습니까 그러나 영원히 내 것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잠시 맡아 가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자랑거리가 문벌이나, 학벌, 건강 지위, 사업, 재물, 자녀들, 현금이나 예금통장도 그 것은 내 것이 아닌데 우리들은 그 것이 영원히 내 것인냥 생각하고 더 가지려고 하고 이미 가진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귀다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대 부자였던 알비치 야데스가 소크라데스에게 찾아와서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그 많은 토지에 대하여 한바탕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 때 아무말도 없던 소크라데스는 세계지도를 펴놓고 “그러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어느 곳에 있는지 이 지도에 표시를 해보십시요” 했습니다. 그 때 야데스는 당황하여 “아무리 내 땅이 많기로 세계지도에 표시가 되겠습니까 농담하지 마시오” 했습니다. 이에 소크라데스는 은근히 핀잔을 주면서 말하기를 “당신의 토지가 지도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그까짓 것을 가지고 뽑낼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것은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인데 이 것들을 더 가지려 오늘도 전쟁을 치고 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어린아이들의 땅따먹기 놀이와 같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번 비디오로 보았던 원종수 권사의 간증에서도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마당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합니다. 조금더 가지려고 싸움을 하듯이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온 정신이 그 놀이에 빠져 한 뼘씩 넓어지는 자기 땅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저녁을 준비한 어머니가 문밖에 서서 “애야 손 씻고 저녁먹으라” 라고 부르면 그동안 정신없이 놀던 아이들이 손을 털고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빼앗아 넓여 놓았던 땅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지금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께서 부르시면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을 주님을 위하여 버릴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것을 주님께 드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쓰다가 남은 부스러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정성으로 준비된 가장 귀한 것을 들리고도 아까운줄 모르고 기뻐하는 신앙이 바로 예수님께 미친 신앙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미친사람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러나 현대에는 무엇엔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빠져서 자신을 바쳐 일하고들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왕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눈이 멀고 마음을 다 빼앗기는 예수님께 미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미친 사람이였기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두려움도 모르고 자신 모두 버리고도 아까운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살아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못되고 이상한 데 미치면 그 인생이 망치고 영혼도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미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고 하늘나라의 영생을 얻고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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