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엡5:22-33)
본문
즐거워야 할 추석연휴를 인간에 대한 절망과 공포로 몰아넣은 20대 조직범죄자들 지존파의 엽기적인 살인 행위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차거운 냉소와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그들의 저주의 밑바탕에는 어떤 불행한 경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두목 김기환을 비롯하여 문상록,강문섭,백병옥,김현양 이들의 공통적인 불행한 경험은 양친부모의 따듯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이들은 대개 홀어머니 밑에서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일찍부터 노동판에서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것이 이토록 인간을 저주스럽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온전한 부부관계는 온전한 자녀를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사회의 기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의 피난민 같은 심정입니다. 이 무질서하고 불안한 사회가 잘 정돈되고 안정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통령이 제 2의 개혁의 칼을 들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기반은 그 사회요, 그 사회의 기반은 가정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주역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잘돼야 자식이 잘되고 사회와 나라가 잘 되는 것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이혼이 4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조만간 선진국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혼자 사는 가구가 15년간 3.6배나 증가,1백만 가구를 넘어서고 소년 소녀가장도 지난해 7천3백22명으로 8년 전보다 50%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부의 이혼율의 급증하고 독신주의자가 많아지고 결손가정의 늘어나는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앞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벧엘동산교회 성도 여러분, 부부사이가 잘 되고 있습니까 사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원만한 부부관계를 이루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분들은 부부관계에 상처와 아픔을 겪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이 설교가 오히려 상처를 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오히려 치료와 격려의 축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우리 교회의 모든 부부관계가 이 말씀으로 해결되고 치료되고 보완되어 가정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되게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온전한 부부,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방하는 부부가 되십시오. 그래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부부관계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결혼하셨습니다. 성도인 우리들과 부부관계의 인연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부요, 예수님은 신랑입니다(마25장,사54:5,렘3:8). 먼저 아내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I.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22절)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우리 나라 여성들은 지금까지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의하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죽기까지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복종은 유교적인 맹목적인 것이었으므로 부조리와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 남녀평등시대가 되었으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제는 여성 상위시대,여성 인권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으로부터 되찾자는 목소리가 큽니다. 부부싸움에서도 부인에게 매맞는 남편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여자들만이 가는 술집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혼도 여성쪽에서 먼저 요구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얼마나 많이 진출해 있습니까 여성장관,사장,국회의원,목사,국가원수 등.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한 여성일지라도 일단 결혼하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엡 5:22-24)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3: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벧전 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추호도 모순이 없습니다. 항의할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엡 6: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obey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submit 1아래에 두다. 예속시키다.규율에 따르다.(사병이 장교의 관계) 하나님의 명령인 아내의 복종은 성령충만한 결과입니다. 에베소서 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명령하신 다음 그 다음 구절에서 개인생활의 변화가 나옵니다. <“찬송하는 마음”→19절 “감사하는 마음”→20절 “복종하는 마음”→21절> 그 다음이 바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헌신을 많이 해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면 결코 성령충만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계속 바랍니까 가정에서 남편의 졸병이 되어 복종을 하십시오.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를 예속시키고 낮추어 따르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주석가 매튜 헨리는 하나님이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에서 취해 만드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남성의 머리뼈로 만듦으로써 남성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셨고, 여성을 남성의 발 근처의 뼈에서 만듦으로써 남성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에서 만듦으로써 남성의 사랑을 받도록 만드셨다 갈비뼈는 품안에 있는 뼈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품을 때에는 가슴으로 품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을 때에도 가슴으로 꼭 안아 줍니다. 아이들이 좋은 선물을 받으면 가슴에 품고 좋아하고, 연인들도 가슴으로 포옹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에서 취해서 만들어진 데에는 여성이 남성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즈음은 여자들이 가정과 남편의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결혼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자유를 누리므로 잠시 홀가분 할 수는 있어도 참된 여성의 행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ex)얼마전 미국에 있는 잘아는 여집사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형제를 위하여 60평생 독신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이제 멋진 남자를 만났는데 결혼에 이르도록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분이 결혼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사랑받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의 복종이란 말은 남존여비 사상과 얼마나 거리가 먼것입니까 여성의 지위를 회복하려면 남성의 사랑을 듬뿍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 받기를 버리고 복종하기를 거절할 때 그 가정은 불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보호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남편이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고 싶어도 아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요”(요일 4: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일까요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아서 그 사랑을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불순종의 죄는 결코 용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에게 복종치 않는 아내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사랑해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 아내는 외롭고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행복할 때는 아내가 자기에게 복종할 때입니다. 적어도 집에 들어오면 내가 왕이다라는 만족감이 있을 때, 남자들은 가정을 좋아하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내는 사랑을 받음으로 행복하지만 남편은 섬김을 받음으로 행복을 누립니다. 여성은 사랑에 목숨을 걸지만 남성은 명예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남편을 왕으로 섬기면 아내는 왕비가 되고, 자녀는 왕자와 공주가되고 가정은 궁전이 된다 고 하지 않습니까 남편을 전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벧전 3:1-2)아내 된 자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남편을 조종하려면 바가지로 안됩니다. 복종하십시오. 복종하므로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 것 같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모방합시다. 흉내내 봅시다.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함입니다.
Ⅱ.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이(25절) (남편에게 주시는 권면)
사실 남편이 아내의 복종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듬뿍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내어 주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생명을 바친 사랑을 주셨습니다. 25절을 읽어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사랑→“아가페”<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결혼을 하면 아내는 남편만을 바라보며 가정에만 온 주의를 집중시키는데 비해 남편들은 좀 다릅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도 더 이상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고 사업이나,직장,친구관계 등 바깥 활동에만 신경을 쓰고, 그래야만 남자다운 남자인양 착각하고 살게 됩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는 가정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사내 대장부라고 생각했고, 호걸은 적어도 첩을 몇명 쯤 거느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남자는 참 불쌍한 남자입니다. 현명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이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받쳐 보혈의 피를 흘려 속죄하셨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신 사랑 때문에 오순절 초대교회는 태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전부가 교회를 위하여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도 교회를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바로 우리들을 아끼고 보존하신다는 말입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이 이와같으라고 하십니다(25절). 사랑은 관심과 보호입니다. 아내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내의 몸과 마음을 읽고 있습니까 아내의 행복이란 남편이 생활비를 많이 벌어다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언제나 확인 될 때, 행복한 것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말씀으로 사랑하십니다. 오늘 남편들의 아내 사랑도 말로써 표현되기를 바랍니다.
1.말로 나타내는 사랑(26-27)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요, 그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믿음을 주시고 험한 세상에 나가 성도를 지키고 거룩하게 보존 하십니다.
1)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보존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더럽혀진 성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보존하십니다. 대개 우리 남편들의 사랑은 마음에 숨겨져 있습니다. 말로 표현합시다. 매일 한번씩 사랑을 고백합시다. 여보,사랑해요 이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은 온갖 일에 시달려 힘들다가도 깨끗하게 씻겨져 거룩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무뚝뚝한 남편들의 언사는 아내의 마음에 외로움을 주고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버릇이 되어버린 남편들의 언사를 고쳐야 합니다. 고함치는 말, 무시하는 말, 그래서 아내들이 TV연속극에 빠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출연하면 거기에 홀딱 빠집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는데 남편들이여! 말로써 아내의 마음을 씻어 남편만 바라보는 거룩하게 구별된 여자가 되게 합시다.
2)말씀으로 티나 주름잡힌 것 없이 거룩하게 보존하십니다(27). 티→점,얼룩(죄악의 더러움) 주름→구겨짐(슬픔,불안,두려움)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죄악의 더러움과 슬픔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터 해방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내의 마음을 읽어보십니까 어떤 걱정이 있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대화를 가집시다. 아내와의 다정스러운 대화, 차 한잔과 다정한 대화 더구나 분위기까지 만들어놓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아내의 마음이 밝아야 가정이 밝습니다. 마음의 티,마음의 주름은 얼굴에 티과 주름이 됩니다. 요즈음 진흙으로 팩을 하는것이 유행이라는데…, 아내의 얼굴의 주름은 남편 탓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주님앞에 서도록 남편이 보존해주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교회를 보존하듯이 말입니다.
2.몸으로 나타내는 사랑(28-31) 대개 남편들은 이기주의자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이기주의자는 아이입니다. 왜, 남자를 ‘사나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살아있는 아이’라는 뜻입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이기주의에 빠진 어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벧엘동산교회의 남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를 모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제몸 같이 아끼는 사랑(28절). 이웃 사랑의 출발은 ‘제몸 같이’입니다. 하물며 아내 사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의 몸을 아끼셨기에 친히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쳐 그 모진 고통 감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내의 몸을 아낍니까 여자는 몸이 연약합니다. 자주 아픔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과업을 맡기셨습니다. “잉태와 출산”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여성의 몸을 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여성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심을 맨 처음 보고 증거한 것도 여성입니다(요20:11-18). 수많은 여성들이 하나님에 의해 놀라운 일을 수행하는 성령의 도구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와 같이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존재를 감히 누가 함부로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받는 갖은 폭력을 보십시오. 우리 남편들이 아내의 몸에 대하여 얼마나 무심한지요.얼마나 귀찮아 하는지요. 그러나 자기 몸이 아프면 얼마나 엄살이 심한지요. 오히려 가끔 아내에게 폭력을 행하지는 않습니까 부엌에서 그릇을 다룰 때 연약한 그릇일 수록 더 조심히 다룹니다. 아내는 조심히 다루어야 할 그릇입니다. 연약한 그릇일 수록 잘 깨집니다. 그릇이 깨지면 소리가 요란합니다. 집에서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는 사실 ‘내 그룻이 깨졌다는 신호’입니다. 쉬는 날엔 빨래도 좀 해주고 집안 청소도 같이 좀하고 수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남자의 몸이 여자보다 힘이 센 것은 아내를 두드려 패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보호하고 아끼라고 주신 것입니다.
2)한몸 같이 합한 사랑. 부부는 두 사람이 합하여 한 몸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맞이하여 지른 첫 환호성은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창 2:23)입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를 사랑하시되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한 몸’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요15:5) 성령충만한 상태, 주님과 합하여 한 몸을 이룬 상태입니다.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살을 섞어야 행복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부부의 성생활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서로 각방을 쓰거나 등돌리고 주무시지 말고, 한 이불 덮고 주무셔야 합니다. 가운데 누구도 끼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 몸이 잘되는가 아닌가, 테스트 방법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의 칫솔을 사용할 수있는가 → “위생상 운운…”, 문제있는 부부입니다. 한 몸을 잘 이루려면 (31절)을 보십시오. 먼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마미보이 남편 ,친정 중독 아내 그 아내와 연합해야 합니다.→마음의 연합, 신앙의 연합 그래야 그 둘이 한 육체가 잘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몸이듯이 남편과 아내는 한몸입니다. 서로 부족한 약점을 감싸주는 배우자입니다. 갈라서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Ⅲ.부부생활의 비밀이 크도다(32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 받는 부부의 생활의 말씀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고 감탄을 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부부생활의 신성함에 놀랐습니다. 부부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만남입니다.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연장인 것입니다. 부부 생활은 교회 생활의 연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부부는 행복할 수 없고, 부부를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힘쓰는 만큼 부부생활에 힘써야 하고 부부생활이 중요한 만큼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보이는 예수님은 내 남편입니다. 보이는 교회가 내 아내입니다. 믿음없는 배우자를 위하여, 끝까지 기도하고 사랑합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합시다. “연애는 사람이 해도 결혼은 하나님이 시키신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남편이라도 감사하며 섬기며 복종하며 삽시다. 부족한 아내라도 내 짝이거나 감사하며 사랑합시다. 우리 학생들은 장래에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야 합니다.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이성교제는 반드시 결혼을 목적으로 신성하게 해야 합니다. 부부는 신성한 것입니다. 결혼식은 반드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해야 합니다. 결언: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각각 능력을 주셨습니다.(33)을 보십시오. 못난 남편을 만나서 고생하는 아내여! 용기를 내십시오. 미련한 아내 때문에 한숨짓는 남편이여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십시오. 교회를 보십시오. 그리고 실행해 보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연습삼아 하십시오. 실패해도 또 해 보십시오. 흉내내는 것입니다. 닮아가려고 반복해 보는 것입니다. 또 해보고, 또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아내를 내몸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남편을 하나님같이 그리스도같이 경외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부부가 서로 행복합니다. 목석 같은 남편이 연애시절의 남자로 돌아갑니다. 무심한 아내가 세심한 연인으로 변합니다. 돌아섰던 부부가 다시 만나 화기애애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무한한 안정을 누립니다. 다시는 지존파와 같은 살인마의 자식들이 이 땅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벧엘동산 성도의 모든 부부에 이러한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I.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22절)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우리 나라 여성들은 지금까지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의하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죽기까지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복종은 유교적인 맹목적인 것이었으므로 부조리와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 남녀평등시대가 되었으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제는 여성 상위시대,여성 인권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으로부터 되찾자는 목소리가 큽니다. 부부싸움에서도 부인에게 매맞는 남편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여자들만이 가는 술집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혼도 여성쪽에서 먼저 요구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얼마나 많이 진출해 있습니까 여성장관,사장,국회의원,목사,국가원수 등.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한 여성일지라도 일단 결혼하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엡 5:22-24)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3: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벧전 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추호도 모순이 없습니다. 항의할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엡 6: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obey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submit 1아래에 두다. 예속시키다.규율에 따르다.(사병이 장교의 관계) 하나님의 명령인 아내의 복종은 성령충만한 결과입니다. 에베소서 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명령하신 다음 그 다음 구절에서 개인생활의 변화가 나옵니다. <“찬송하는 마음”→19절 “감사하는 마음”→20절 “복종하는 마음”→21절> 그 다음이 바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헌신을 많이 해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면 결코 성령충만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계속 바랍니까 가정에서 남편의 졸병이 되어 복종을 하십시오.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를 예속시키고 낮추어 따르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주석가 매튜 헨리는 하나님이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에서 취해 만드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남성의 머리뼈로 만듦으로써 남성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셨고, 여성을 남성의 발 근처의 뼈에서 만듦으로써 남성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에서 만듦으로써 남성의 사랑을 받도록 만드셨다 갈비뼈는 품안에 있는 뼈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품을 때에는 가슴으로 품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을 때에도 가슴으로 꼭 안아 줍니다. 아이들이 좋은 선물을 받으면 가슴에 품고 좋아하고, 연인들도 가슴으로 포옹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에서 취해서 만들어진 데에는 여성이 남성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즈음은 여자들이 가정과 남편의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결혼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자유를 누리므로 잠시 홀가분 할 수는 있어도 참된 여성의 행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ex)얼마전 미국에 있는 잘아는 여집사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형제를 위하여 60평생 독신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이제 멋진 남자를 만났는데 결혼에 이르도록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분이 결혼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사랑받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의 복종이란 말은 남존여비 사상과 얼마나 거리가 먼것입니까 여성의 지위를 회복하려면 남성의 사랑을 듬뿍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 받기를 버리고 복종하기를 거절할 때 그 가정은 불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보호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남편이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고 싶어도 아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요”(요일 4: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일까요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아서 그 사랑을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불순종의 죄는 결코 용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에게 복종치 않는 아내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사랑해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 아내는 외롭고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행복할 때는 아내가 자기에게 복종할 때입니다. 적어도 집에 들어오면 내가 왕이다라는 만족감이 있을 때, 남자들은 가정을 좋아하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내는 사랑을 받음으로 행복하지만 남편은 섬김을 받음으로 행복을 누립니다. 여성은 사랑에 목숨을 걸지만 남성은 명예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남편을 왕으로 섬기면 아내는 왕비가 되고, 자녀는 왕자와 공주가되고 가정은 궁전이 된다 고 하지 않습니까 남편을 전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벧전 3:1-2)아내 된 자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남편을 조종하려면 바가지로 안됩니다. 복종하십시오. 복종하므로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 것 같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모방합시다. 흉내내 봅시다.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함입니다.
Ⅱ.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이(25절) (남편에게 주시는 권면)
사실 남편이 아내의 복종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듬뿍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내어 주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생명을 바친 사랑을 주셨습니다. 25절을 읽어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사랑→“아가페”<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결혼을 하면 아내는 남편만을 바라보며 가정에만 온 주의를 집중시키는데 비해 남편들은 좀 다릅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도 더 이상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고 사업이나,직장,친구관계 등 바깥 활동에만 신경을 쓰고, 그래야만 남자다운 남자인양 착각하고 살게 됩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는 가정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사내 대장부라고 생각했고, 호걸은 적어도 첩을 몇명 쯤 거느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남자는 참 불쌍한 남자입니다. 현명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이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받쳐 보혈의 피를 흘려 속죄하셨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신 사랑 때문에 오순절 초대교회는 태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전부가 교회를 위하여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도 교회를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바로 우리들을 아끼고 보존하신다는 말입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이 이와같으라고 하십니다(25절). 사랑은 관심과 보호입니다. 아내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내의 몸과 마음을 읽고 있습니까 아내의 행복이란 남편이 생활비를 많이 벌어다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언제나 확인 될 때, 행복한 것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말씀으로 사랑하십니다. 오늘 남편들의 아내 사랑도 말로써 표현되기를 바랍니다.
1.말로 나타내는 사랑(26-27)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요, 그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믿음을 주시고 험한 세상에 나가 성도를 지키고 거룩하게 보존 하십니다.
1)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보존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더럽혀진 성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보존하십니다. 대개 우리 남편들의 사랑은 마음에 숨겨져 있습니다. 말로 표현합시다. 매일 한번씩 사랑을 고백합시다. 여보,사랑해요 이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은 온갖 일에 시달려 힘들다가도 깨끗하게 씻겨져 거룩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무뚝뚝한 남편들의 언사는 아내의 마음에 외로움을 주고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버릇이 되어버린 남편들의 언사를 고쳐야 합니다. 고함치는 말, 무시하는 말, 그래서 아내들이 TV연속극에 빠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출연하면 거기에 홀딱 빠집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는데 남편들이여! 말로써 아내의 마음을 씻어 남편만 바라보는 거룩하게 구별된 여자가 되게 합시다.
2)말씀으로 티나 주름잡힌 것 없이 거룩하게 보존하십니다(27). 티→점,얼룩(죄악의 더러움) 주름→구겨짐(슬픔,불안,두려움)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죄악의 더러움과 슬픔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터 해방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내의 마음을 읽어보십니까 어떤 걱정이 있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대화를 가집시다. 아내와의 다정스러운 대화, 차 한잔과 다정한 대화 더구나 분위기까지 만들어놓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아내의 마음이 밝아야 가정이 밝습니다. 마음의 티,마음의 주름은 얼굴에 티과 주름이 됩니다. 요즈음 진흙으로 팩을 하는것이 유행이라는데…, 아내의 얼굴의 주름은 남편 탓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주님앞에 서도록 남편이 보존해주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교회를 보존하듯이 말입니다.
2.몸으로 나타내는 사랑(28-31) 대개 남편들은 이기주의자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이기주의자는 아이입니다. 왜, 남자를 ‘사나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살아있는 아이’라는 뜻입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이기주의에 빠진 어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벧엘동산교회의 남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를 모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제몸 같이 아끼는 사랑(28절). 이웃 사랑의 출발은 ‘제몸 같이’입니다. 하물며 아내 사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의 몸을 아끼셨기에 친히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쳐 그 모진 고통 감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내의 몸을 아낍니까 여자는 몸이 연약합니다. 자주 아픔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과업을 맡기셨습니다. “잉태와 출산”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여성의 몸을 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여성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심을 맨 처음 보고 증거한 것도 여성입니다(요20:11-18). 수많은 여성들이 하나님에 의해 놀라운 일을 수행하는 성령의 도구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와 같이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존재를 감히 누가 함부로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받는 갖은 폭력을 보십시오. 우리 남편들이 아내의 몸에 대하여 얼마나 무심한지요.얼마나 귀찮아 하는지요. 그러나 자기 몸이 아프면 얼마나 엄살이 심한지요. 오히려 가끔 아내에게 폭력을 행하지는 않습니까 부엌에서 그릇을 다룰 때 연약한 그릇일 수록 더 조심히 다룹니다. 아내는 조심히 다루어야 할 그릇입니다. 연약한 그릇일 수록 잘 깨집니다. 그릇이 깨지면 소리가 요란합니다. 집에서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는 사실 ‘내 그룻이 깨졌다는 신호’입니다. 쉬는 날엔 빨래도 좀 해주고 집안 청소도 같이 좀하고 수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남자의 몸이 여자보다 힘이 센 것은 아내를 두드려 패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보호하고 아끼라고 주신 것입니다.
2)한몸 같이 합한 사랑. 부부는 두 사람이 합하여 한 몸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맞이하여 지른 첫 환호성은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창 2:23)입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를 사랑하시되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한 몸’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요15:5) 성령충만한 상태, 주님과 합하여 한 몸을 이룬 상태입니다.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살을 섞어야 행복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부부의 성생활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서로 각방을 쓰거나 등돌리고 주무시지 말고, 한 이불 덮고 주무셔야 합니다. 가운데 누구도 끼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 몸이 잘되는가 아닌가, 테스트 방법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의 칫솔을 사용할 수있는가 → “위생상 운운…”, 문제있는 부부입니다. 한 몸을 잘 이루려면 (31절)을 보십시오. 먼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마미보이 남편 ,친정 중독 아내 그 아내와 연합해야 합니다.→마음의 연합, 신앙의 연합 그래야 그 둘이 한 육체가 잘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몸이듯이 남편과 아내는 한몸입니다. 서로 부족한 약점을 감싸주는 배우자입니다. 갈라서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Ⅲ.부부생활의 비밀이 크도다(32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 받는 부부의 생활의 말씀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고 감탄을 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부부생활의 신성함에 놀랐습니다. 부부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만남입니다.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연장인 것입니다. 부부 생활은 교회 생활의 연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부부는 행복할 수 없고, 부부를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힘쓰는 만큼 부부생활에 힘써야 하고 부부생활이 중요한 만큼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보이는 예수님은 내 남편입니다. 보이는 교회가 내 아내입니다. 믿음없는 배우자를 위하여, 끝까지 기도하고 사랑합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합시다. “연애는 사람이 해도 결혼은 하나님이 시키신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남편이라도 감사하며 섬기며 복종하며 삽시다. 부족한 아내라도 내 짝이거나 감사하며 사랑합시다. 우리 학생들은 장래에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야 합니다.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이성교제는 반드시 결혼을 목적으로 신성하게 해야 합니다. 부부는 신성한 것입니다. 결혼식은 반드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해야 합니다. 결언: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각각 능력을 주셨습니다.(33)을 보십시오. 못난 남편을 만나서 고생하는 아내여! 용기를 내십시오. 미련한 아내 때문에 한숨짓는 남편이여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십시오. 교회를 보십시오. 그리고 실행해 보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연습삼아 하십시오. 실패해도 또 해 보십시오. 흉내내는 것입니다. 닮아가려고 반복해 보는 것입니다. 또 해보고, 또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아내를 내몸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남편을 하나님같이 그리스도같이 경외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부부가 서로 행복합니다. 목석 같은 남편이 연애시절의 남자로 돌아갑니다. 무심한 아내가 세심한 연인으로 변합니다. 돌아섰던 부부가 다시 만나 화기애애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무한한 안정을 누립니다. 다시는 지존파와 같은 살인마의 자식들이 이 땅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벧엘동산 성도의 모든 부부에 이러한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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