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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결단력 (왕상18:20-21)

본문

참 신과 우상을 가리게 될 결전장이 된 갈멜산은 지중해 연안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742피드의 높이를 가진 산입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숨 막히는 대결이 벌어지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조국을 사랑하며 조국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나아가서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인 엘리야는 이 어리석은 관람자들에게 무관심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결단의 초청입니다. 왼편도 아니고 오른편도 아닌 중간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진로를 택하라는 독촉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결정권을 주었습니다. 상식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 대결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쪽은 엘리야 한 명이요, 우상을 섬기는 쪽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으로 합해서 850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왕후의 막강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대 850의 이 대결은 엘리야의 승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다 구비하였어도 결단력이 없으면 외관상으로는 훌륭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는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정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취한다는 태도가 아니라 더 나은 편을 택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는 말씀을 듣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 마르다 보다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결단력이 부족하였습니다. 불타 버리고 있는 소유물에 애착을 두었다가 천하보다 더 귀한 자기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끊어버려야 할 것을 단호히 끊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정할 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야 선지 당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아서 모든 예식은 형식만 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말씀은(法文) 뿐이었습니다. 여호와를 공경하는 체만하고 이방의 모든 신을 공경하다가 신앙의 타락과 의리의 패배를 당하여 필경에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룩한 나라라는 국호까지 잃고 가련한 민족으로 지금까지 각국에서 방황 유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저 인생이 세상에 처하여 살아가다가 미로에서 주저하는 것처럼 가련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에서 주저할 것이 무엇이며, 가나안 복지에서 육신과 영혼의 무한한 복을 받은 유대 민족이 주저할 것이 무엇이며,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과 권능을 목도한 유다가 주저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고 하신 말씀이 과연 옳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도 주저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저하는 것에 대하여서 본문의 말씀에 아합 왕과 이세벨은 바알신을 참 신이라고 전파하고, 엘리야는 여호와를 참 신이라고 전파하는데 모든 민족은 바알과 여호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저하여 패망을 자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옛날의 핍박시대도 지나가고 의심시대도 지나갔으니다만 남은 것은 은혜요, 복음이요, 믿는 것뿐입니다. 누구든지 주저할 것 없이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갈멜산상에 모인 어리석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아직도 머뭇머뭇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이 혹 계신다면 그런 분들을 위하여 성경 가운데서 몇 귀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약 1:8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 가 되지 말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 6:24에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구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야고보 사도는 약 4:4에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고 하였고, 요 1서 2:15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데마라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딤후 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말은 성경과 함께 영원히 존속되어 데마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혀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정욕과 세상 것은 다 없어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한 수명을 누린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여호와와 바알이 다 진리일 수 없으므로 그 가운데하나를 택해야만 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일찌기 여호수아도 이런 결단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촉구했습니다. 수24:14-15에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네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신앙의 결단을 하십시요. 그리고 이웃에게 결단을 촉구하십시오. 하나님과 세상 안락,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려는 위험한 생각도 다 버리십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려서 거룩한 성도의 생애로 일관하여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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