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3:31-36)
본문
신구약 성경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어디일까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을 확대한 것이 신구약 성경말씀이고, 이 말씀을 더 확대한다면 바로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대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경의 중요 요절은 요한복음 3:16절인 셈이다. 그래서 흔히 요3장은 구원장, 영생장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은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로 시작된다. 니고데모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율법교사였고,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으며, 전통과 정통성을 자랑하는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날 밤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왜 밤에 예수를 찾아 왔을까요 그의 지위와 체면과 자존심이 가져다 준 소극적인 자세, 소극적인 신앙 때문입니다. 오늘날 니고데모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을 돌아봅시다.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히 땀흘려 일합니까 요즘처럼 부도가 나는 때는 더 힘들 것입니다. 더 많이 연구와 노력 직장에서 인정받고 진급하기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합니까 휴일을 반납하고, 밤늦도록 일해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합니까 뜨거운 여름도 없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잡니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결과가 오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확신도 생기고, 믿음이 성장하며, 기도응답이 있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영적무지 니고데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진리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와서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세상에서 유식하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하고, 풍부한 경험이 있고,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졌다 하더라도 진리를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생이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무지자입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알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소경입니다. 본문 36절에 그것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람은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는 사람, 물통을 들고 약수터를 찾아가는 사람, 헬스클럽에 가는 사람, 등산을 가는 사람,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 수영하러 다니는 사람, 요가를 하는 사람, 그런가하면 많은 돈을 들여 보약을 먹는 사람, 영양식을 먹는 사람, 약을 먹는 사람, 수시로 건강진단을 하는 사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뱀, 개구리, 지렁이, 결국 이런 행동은 죽음을 뒤로 하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의지에 의한 노력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고 인간이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건강하다는 것도, 오래 산다는 것도, 잘 산다는 것도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죽게 됩니다. 죽음에는 예외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에 놓고 사람이 취하는 태도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공포적인 태도요, 다른 하나는 의연하고 초연한 자세를 취하는 초월적인 자세입니다. 어떻해서 한 가지인 죽음 앞에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는 생각을 가지면 죽음처럼 허무하고, 슬프고, 호전하고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왜 죽음 앞에 두려움을 갖는가 사람 안에 있는 영은 죽음 후에 있는 영원한 심판과 지옥에대해서 알기 때문에 죽음 앞에 떨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며, 관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 자체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 뒤에 오는 것이 영생이며 영원한 천국인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죽음 때문에 두 눈을 감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화) 윌리엄 빌 멕켈리스트의 장례식 윌리엄 빌 멕켈리스트는 태국에 평신도 선교사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난 선교사. 그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재산을 모두 희생하여 바친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가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의 장례식을 알리는 초청장이 평소 그를 아끼고 존경했던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배달되었다.
그런데 이 초청장이 이색적이다. 그것은 멕켈리스트의 “삶의 축하식”에 귀하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슬픈 장례식 부고장이 아니라 아름답게 꾸민 삶의 축하식 초청장이었다. 그날 그의 장례식은 멕켈리스트의 고귀하고 아름다웠던 삶을 축하하고 높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단지 그의 약력을 보고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아름다웠이던 모습을 축하하고 높이는 순서로 5명이 축사를 하였다. 그의 딸과 찬구들의 축사는 그의 아름다운 생애를 축하했고, 영생에 들어간 그의 삶을 축하했다. 엄격한 의미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은 장수하고 죽는 것, 고통 없이 죽는 것, 자손들이 번창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아니다. 가장 행복한 죽음은 그가 살아 오는 동안에 이룩한 아름답고 고귀한 삶의 내용들 때문에 축하를 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에 축하를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잘 죽었다’ ‘꼭 가야할 사람이 갔다’ ‘그 사람이 가니 이제 숨통이 뜨인다’고 수근댄다면 그 죽음이야 말로 부끄럽고 서글픈 죽음입니다. 사람에게는 3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느냐” 이 문제의 답은 바로 본문 36절에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1. 믿으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는다 만일 영생을 돈을 주고 산다면 천국은 눈꼴 사나운 사람들로 메워질 것입니다. 거기서도 돈 많이 낸 사람이 저마다 힘을 자랑하며 의시댈 것입니다. 만일 천국이 권력으로 간다면 거기서도 권력 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호령했던 최악의 독재자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네로,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등이 그곳에서 활보하게 될 것이다. 만일 천국에 공부를 많이 하고, 얼굴 예쁜 사람만 들어 간다면 미스 코리아나 박사들이 천국에 득실 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조건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의 돌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서 수천번 오르락 내리락해야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많이 닦고, 적선을 많이 해야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보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 쉽고 간단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천국은 오직 예수 믿고 영생 얻은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이다.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데 엡2:8에 이것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자질 구레한 것들은 사먹지만 큰 것들은 거저 먹습니다. 채소, 고기, 기름, 옷 등은 사야 합니다. 그러나 산소, 햇빛, 물 등은 공짜로 먹습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우리는 평생 번 돈을 그 값을 치루는데 써야 합니다. 아니 그것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저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생은 무엇으로 값을 치룰 수 없기에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영생은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입니다.너무나 큰 선물이기에 그 값을 지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물이란 말은 “네데”라는 말로 썼는데 그것은 “아낌 없이 내어 던지다”, “쇼하드”-속전을 주고 몸을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영생은 주님이 자신이 아낌없이 내어 던지시고, 그 대신 우리를 건져내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누구든지 믿으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영생을 간직한 성도는 “영생을 품은 삶”을 살아갑니다.
예화) 영생을 품은 크리소스톰 4세기의 교부 크리소스톰이 체포되어 로마 황제 앞에 끌려 갔을 때 황제의 질문과 크리소스톰의 대답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나는 너의 재산을 몰수하겠다.저의 재산은 하늘에 있습니다.너를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떼어 놓겠다. 너는 평생 외토리가 되는거야.저의 친구는 예수님입니다.너를 이 나라에서 추방하리라.저의 나라는 하늘나라입니다.너의 목숨을 끊어도 좋으냐저의 생명은 벌써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팔에 안겨 있습니다. 황제 폐하, 당신이 나에게서 빼앗을 것은 한가지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2.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물질의 차이를 중요시 여깁니다. 지식의 차이를 중요시 여깁니다. 권력의 차이를 중요시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가장 큰 차이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입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데 반하여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진노는 멸망과 심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형벌로 이어집니다. 특히 그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멸망과 심판과 저주와 형벌이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떠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눅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는 잘 입고, 먹고,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었기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은 후에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들어갔고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먹을 것이 없고 온 몸은 상처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었기에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통당하는 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얘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건너올 수 없답니다. 이것은 지옥에서 영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역사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영생과 진노를 두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는데 바람이 불어오자 한배는 동쪽으로 또 다른 한 배는 서쪽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동쪽으로 가는 배가 영생으로 가는 배라고 한다면 서쪽으로 가는 배는 영멸로 가는 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어느 배에 타고 있습니까 만일 지금 이 시간 내가 죽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곳은 나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의 피 공로를 믿고 죄사함을 받을 때 얻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은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로 시작된다. 니고데모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율법교사였고,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으며, 전통과 정통성을 자랑하는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날 밤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왜 밤에 예수를 찾아 왔을까요 그의 지위와 체면과 자존심이 가져다 준 소극적인 자세, 소극적인 신앙 때문입니다. 오늘날 니고데모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을 돌아봅시다.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히 땀흘려 일합니까 요즘처럼 부도가 나는 때는 더 힘들 것입니다. 더 많이 연구와 노력 직장에서 인정받고 진급하기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합니까 휴일을 반납하고, 밤늦도록 일해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합니까 뜨거운 여름도 없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잡니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결과가 오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확신도 생기고, 믿음이 성장하며, 기도응답이 있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영적무지 니고데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진리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와서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세상에서 유식하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하고, 풍부한 경험이 있고,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졌다 하더라도 진리를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생이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무지자입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알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소경입니다. 본문 36절에 그것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람은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는 사람, 물통을 들고 약수터를 찾아가는 사람, 헬스클럽에 가는 사람, 등산을 가는 사람,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 수영하러 다니는 사람, 요가를 하는 사람, 그런가하면 많은 돈을 들여 보약을 먹는 사람, 영양식을 먹는 사람, 약을 먹는 사람, 수시로 건강진단을 하는 사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뱀, 개구리, 지렁이, 결국 이런 행동은 죽음을 뒤로 하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의지에 의한 노력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고 인간이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건강하다는 것도, 오래 산다는 것도, 잘 산다는 것도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죽게 됩니다. 죽음에는 예외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에 놓고 사람이 취하는 태도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공포적인 태도요, 다른 하나는 의연하고 초연한 자세를 취하는 초월적인 자세입니다. 어떻해서 한 가지인 죽음 앞에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는 생각을 가지면 죽음처럼 허무하고, 슬프고, 호전하고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왜 죽음 앞에 두려움을 갖는가 사람 안에 있는 영은 죽음 후에 있는 영원한 심판과 지옥에대해서 알기 때문에 죽음 앞에 떨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며, 관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 자체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 뒤에 오는 것이 영생이며 영원한 천국인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죽음 때문에 두 눈을 감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화) 윌리엄 빌 멕켈리스트의 장례식 윌리엄 빌 멕켈리스트는 태국에 평신도 선교사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난 선교사. 그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재산을 모두 희생하여 바친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가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의 장례식을 알리는 초청장이 평소 그를 아끼고 존경했던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배달되었다.
그런데 이 초청장이 이색적이다. 그것은 멕켈리스트의 “삶의 축하식”에 귀하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슬픈 장례식 부고장이 아니라 아름답게 꾸민 삶의 축하식 초청장이었다. 그날 그의 장례식은 멕켈리스트의 고귀하고 아름다웠던 삶을 축하하고 높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단지 그의 약력을 보고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아름다웠이던 모습을 축하하고 높이는 순서로 5명이 축사를 하였다. 그의 딸과 찬구들의 축사는 그의 아름다운 생애를 축하했고, 영생에 들어간 그의 삶을 축하했다. 엄격한 의미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은 장수하고 죽는 것, 고통 없이 죽는 것, 자손들이 번창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아니다. 가장 행복한 죽음은 그가 살아 오는 동안에 이룩한 아름답고 고귀한 삶의 내용들 때문에 축하를 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에 축하를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잘 죽었다’ ‘꼭 가야할 사람이 갔다’ ‘그 사람이 가니 이제 숨통이 뜨인다’고 수근댄다면 그 죽음이야 말로 부끄럽고 서글픈 죽음입니다. 사람에게는 3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느냐” 이 문제의 답은 바로 본문 36절에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1. 믿으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는다 만일 영생을 돈을 주고 산다면 천국은 눈꼴 사나운 사람들로 메워질 것입니다. 거기서도 돈 많이 낸 사람이 저마다 힘을 자랑하며 의시댈 것입니다. 만일 천국이 권력으로 간다면 거기서도 권력 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호령했던 최악의 독재자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네로,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등이 그곳에서 활보하게 될 것이다. 만일 천국에 공부를 많이 하고, 얼굴 예쁜 사람만 들어 간다면 미스 코리아나 박사들이 천국에 득실 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조건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의 돌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서 수천번 오르락 내리락해야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많이 닦고, 적선을 많이 해야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보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 쉽고 간단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천국은 오직 예수 믿고 영생 얻은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이다.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데 엡2:8에 이것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자질 구레한 것들은 사먹지만 큰 것들은 거저 먹습니다. 채소, 고기, 기름, 옷 등은 사야 합니다. 그러나 산소, 햇빛, 물 등은 공짜로 먹습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우리는 평생 번 돈을 그 값을 치루는데 써야 합니다. 아니 그것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저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생은 무엇으로 값을 치룰 수 없기에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영생은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입니다.너무나 큰 선물이기에 그 값을 지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물이란 말은 “네데”라는 말로 썼는데 그것은 “아낌 없이 내어 던지다”, “쇼하드”-속전을 주고 몸을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영생은 주님이 자신이 아낌없이 내어 던지시고, 그 대신 우리를 건져내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누구든지 믿으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영생을 간직한 성도는 “영생을 품은 삶”을 살아갑니다.
예화) 영생을 품은 크리소스톰 4세기의 교부 크리소스톰이 체포되어 로마 황제 앞에 끌려 갔을 때 황제의 질문과 크리소스톰의 대답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나는 너의 재산을 몰수하겠다.저의 재산은 하늘에 있습니다.너를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떼어 놓겠다. 너는 평생 외토리가 되는거야.저의 친구는 예수님입니다.너를 이 나라에서 추방하리라.저의 나라는 하늘나라입니다.너의 목숨을 끊어도 좋으냐저의 생명은 벌써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팔에 안겨 있습니다. 황제 폐하, 당신이 나에게서 빼앗을 것은 한가지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2.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물질의 차이를 중요시 여깁니다. 지식의 차이를 중요시 여깁니다. 권력의 차이를 중요시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가장 큰 차이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입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데 반하여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진노는 멸망과 심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형벌로 이어집니다. 특히 그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멸망과 심판과 저주와 형벌이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떠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눅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는 잘 입고, 먹고,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었기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은 후에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들어갔고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먹을 것이 없고 온 몸은 상처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었기에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통당하는 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얘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건너올 수 없답니다. 이것은 지옥에서 영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역사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영생과 진노를 두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는데 바람이 불어오자 한배는 동쪽으로 또 다른 한 배는 서쪽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동쪽으로 가는 배가 영생으로 가는 배라고 한다면 서쪽으로 가는 배는 영멸로 가는 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어느 배에 타고 있습니까 만일 지금 이 시간 내가 죽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곳은 나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의 피 공로를 믿고 죄사함을 받을 때 얻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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