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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라 (히4:14)

본문

주석자의 해석에 의하면 믿는 도리란 그리스도인 개인이 믿는 신앙의 진리가 아니라 교회가 공동으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문을 말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일찍부터 세례받기 원하는 자에게 교회가 공동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제시하고 이를 그대로 승인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고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도신경은 이런 신앙고백 중의 하나로 세례받기 원하는 자에게 그대로 외우게 했고 그리고 예배 시 마다 신앙고백 문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에서 처음에는 지극히 간단한 고백형식으로 있던 것이 연륜을 쌓으면서 고백문도 발전하여 4,5세기에 누구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는지는 모르나 초대교회의 것을 바탕으로 완성되어 교회가 이를 신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제정한 신조가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과 그 고백적 형식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4장을 지칭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창조, 영원한 안식,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등으로 그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초대교회에서 받아들여야 할 도리로 요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이들이 간혹 이상한 소리를 하여 하나님은 죽었다느니 하나님은 없는 것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고 믿는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늘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우리가 믿는 신앙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검토하게 합니다. 원래 설교란 신학도 아니고 교리도 아닙니다. 설교란 순전히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에 입각하여 사람의 심령을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하고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명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혼란된 사상, 주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는 더욱 힘듭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참된 신앙의 진리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꼭 붙잡아야 한다는 엄청난 사실이 본문의 요구입니다.
1. 하나님 성경에 “하나님은 계시니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렇게 성서는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의 증명을 문제 삼지 않았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삼았습니다. 학문하는 누구에게나 물어보십시오. 전제 없는 학문이 어디 있습니까? 전제를 합리적으로 증명해 놓고 그 전제 위에 모든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학문입니다. 전제는 기하학에서 공리와 같아서 증명할 수 없으면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합니다. 예를 든다면 2+2=4는 증명할래야 증명할 수 없으면서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 전제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영원한 사실입니다. 신앙입니다. 하나님이라는 기본전제 없이는 우리는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인간이 어떻게 존재 하는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근본전제 없이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도 설명할 수 없고 우리 인간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은 시대도 변하고 장소에 따라 윤리도 다소 변해가고 심지어 공산주의 세계는 종래의 윤리도덕을 근본적으로 파괴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나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는 근본적인 인륜 대로는 변할 수 없습니다. 변하는 사람이 변치 않는 천지 대로인 도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진리란 발견되는 것이지 사람이 만들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변하는 사람이 불변하는 도덕을 발견하고 그대로 지켜 나갈 뿐이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뜯어 고치며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란 근본 전제 위에 설 때만 우주는 설명될 수 있고 진리라든가 도덕이라든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질병에서 고생하는 사람, 임종하는 사람에게 가보면 인생의 허무를 깊이 느낍니다. 인생은 풀과 같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한 베드로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주시대에 화성까지 정복하는 인간을 보면 인간보다 강자가 세상에 다시없는 것 같이 느껴지나 병과 죽음 앞에 있는 인간처럼 허무한 것도 없습니다. 작년에 대 홍수를 만났습니다. 하늘을 정복하고 바다를 정복하던 위대한 과학이 대 홍수를 만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두 발로 버티고 천지간에 서있는 것 같이 여길지 모르나 생각하면 사람의 목숨처럼 하잘것없는 것도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생의 터전을 주지 않았다면, 환난 중 피난처가 되어 주지 않았다면, 비통한 날에 위로가 되어 주지 않았다면, 암흑과 절망의 날에 빛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생을 승리자로 마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성서는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터전이 되고, 피난처가 되고, 반석이 되고, 방패가 되며, 우리의 빛이시요, 우리의 구원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 사람은 태어나면서 고귀한 이성을 가지고 나는 동시에 누구의 지배와 간섭도 받지 않는 자주적인 행동을 취하고 생활하려는 자율적인 존재로 났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율로 하나님이 그 생의 터전이 되었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어기고 그의 생활 하나님의 지배와 간섭을 받아야 한다는 이 타고난 엄숙한 사실을 반역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만의 위대한 건설을 해보고 누구의 지배와 간섭도 없는 자유로운 자기만의 행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던, 그가 꿈꾸던 세계가 아니라 전혀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고 도리어 그의 반역의 행동으로 온 세계는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땅에 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비극이 왔습니다. 요컨대 사람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보니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죄 밖에 된 것이 없었습니다. 늦게나마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모든 죄악에서 생활을 고쳐보고 마음을 고쳐보고 성격을 고쳐보고 행동을 고쳐보려고 하지만 이제는 죄가 그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를 않고 그가 하는 모든 사교와 행동이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죄악의 수렁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7:19, 24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자신의 이런 심각성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뱀의 어금니에 물린 개구리가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더 뱀의 입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죄악의 어금니에 물린 사람이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더 죄악의 무서운 수렁 속에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시궁창에 빠진 사람에게 구원은 다른데서부터 와야 합니다. 그와 같이 죄악의 수렁에 빠진 사람에게도 구원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온다는 것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안식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을 때 처음에는 아름답고 선한 것이었지만 인간 의 타락으로 세상은 저주를 받아 세상은 모든 것이 변화되는 유한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영원이란 시간을 초월하고 죽음과 죄악이 침범치 못하는 세계를 말하는데 그 세계만이 영원이요 구원입니다. 성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새로운 영원한 세계가 우리에게 온다고 가르쳐 줍니다. 성서가 가르쳐 주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진리의 하나가 이 영원한 안식의 세계입니다. 이 영원한 안식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이 죽고 새로 지음 받은 자에게만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뺀다면 설 수가 없고, 만약 우리가 어느 하나라도 굳게 잡지 않고 버린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나와서 별의별 소리를 다해 우리를 유혹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했습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이 위대한 구원의 진리를 굳게 잡고 이상한 유혹과 설득에 빠져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더욱더 절실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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