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쌓는 보물 (마6:19-24)
본문
우리는 세상적이라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상적인 눈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세상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세상적이란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적일 수가 없는 것일까요? 세상적이라는 말의 반대말은 경건하다, 희생적이다, 또는 거룩하다 등과 같은 말이 있겠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고 기대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매우 세상적인 삶을 사는 수가 많습니다. 종교적 행위 속에서도 세상적인 모습이 있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주 세상적으로 하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책망하신 내용이 바로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하고 그래서 칭찬받으려고 하는 선행과 종교적 행위들, 이것이야말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래서 도무지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적인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형태가 바로 위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대단히 경건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매우 세상적인 동기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경건에 이르지 못한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많은 헌금을 하고 종교적 열정도 누구보다 뛰어나고 선행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아주 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요.
세상적이냐 세상적이 아니냐를 아주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세상으로부터 보상을 얻으려고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상급을 기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 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하고,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세상에서 크게 이름을 떨치려는 것은 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려 애쓰고,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기대하는 사람은 세상적이 아니라 하늘나라적이라고 해야겠군요. 이처럼 우리가 세상적인가 하늘나라적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아주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하는 것이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적으로 했던 것이라면, 세상 일을 하면서도 세상적이지 않고 하늘나라적일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바로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돈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살면서도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세상적이지 않고 하늘나라의 가치관과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돈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돈 얘기가 나오면 긴장부터 하게 돼요.
왜냐하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돈이 없으면 당장 굶어죽게 되잖아요? 또 돈이 많으면 좋은 점이 많거든요.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돈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문제가 이 돈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이 돈이 미치는 나쁜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바울사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까지 했을까요? 그러니까 돈을 옹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돈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물은 재물, 즉 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땅에 쌓는 것은 세상적이고 하늘에 쌓는 것은 하늘나라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보물을 땅에 쌓는다는 것은 돈을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뭐예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 아닙니까? 더 편안하게 살고, 더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더 좋은 옷 입고, 더 좋은 집에 살고… 이런 모든 것이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돈을 은행에 비축해 놓았을 때 안심이 되고 자신만만하게 됩니다. 투자한 주식의 값이 오르고 물려받은 땅값이 치솟을 때 우리는 장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높아져가는 재산의 가치가 우리의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기쁨과 소망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안한 것입니까? 주식에 투자한 것이 실패해서 자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20대 주부가 은행강도를 하다 잡혔더군요.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했는데 그게 완전히 실패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크게 성공해서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는 것처럼 우쭐대다가 갑작스러운 기업환경의 변화에 의해 하루아침에 망해서 길거리에 내몰리는 수도 있습니다. 금고에 돈다발을 잔뜩 감춰놨다고 마음이 든든할까요? 요즘에는 고관이나 부자집만 골라 터는 전문도둑들이 설치는데, 많은 돈이나 귀중품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못한다더군요. 돈으로 기쁨과 소망을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입니까?
이처럼 이 세상은 우리의 보물을 쌓아 놓을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곳입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도 못합니다. 잠시 누리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예비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만 살고 말 것이라면 사는 동안 돈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바르고 살다가 죽으면 정말 잘 살았다고, 의미있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 세상은 잠시 사는 곳일 뿐입니다. 그 잠시 사는 삶을 위해서 영원한 삶을 희생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돈 가지고 영원한 삶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돈을 불에 태워서 함께 장사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승에 돈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져간 돈 써먹을 수나 있을까요? 저승에 가면서 그렇게 돈을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 살면서 지금부터 하늘에 저축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만일 우리가 하늘에 저축을 많이 해 놓으면 나중에 천국에 가서 잘 살 수가 있겠군요.
그러면 어떻게 하늘에다 저축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구좌번호 가르쳐달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송금해야 할까요? 교회에 갖다 바치는 돈은 모두 하늘에 저축이 될까요? 필요 이상으로 헌금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어떤 교회들에서는 교회에 바치는 헌금을 하늘에 쌓는 보물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쁘게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하늘에 쌓이는 보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헌금 강요하기 위해서 이 귀하신 주님의 말씀을 갖다가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당연히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많지는 않겠지만 헌금에 짓눌려 사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억지로 헌금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믿음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할 수도 없고, 믿음 좋다고 하면서 헌금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많은 헌금 시킨다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 억지로 강요하는 헌금의 경우, 사실은 믿음의 문제와 상관없이 정당성을 결여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을 잃게 만들고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우리 인생인데, 그리고 이 돈이래야 언젠가는 다 없어져 한줌의 재로 변할 것인데, 이것 가지고 우리의 영원을 예비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금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찌 허비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하면 이 썩어 없어질 돈을 하늘의 보물로 쌓아 우리의 영원을 예비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많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상을 주실까요? 이것은 우리가 이 순간 잠깐 고민하다가 잊어버려도 될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가지고 씨름해야 할 문제입니다.
돈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는 주님의 말씀은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많은 돈을 투자했을수록 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떠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은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고 삽니다.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상급을 소망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매우 당연한 사실을 부인하고 모르는 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때가 많아요. 왜 그렇습니까? 눈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 돈이 가져다주는 쾌락과 기쁨에 그만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돈이 약속해주는 화려한 삶의 유혹에 속아서 그야말로 어두캄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저희의 신은 배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빌 3:19)라고 했습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신의 자리를 차지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믿습니다. 돈의 힘을 믿고 돈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래서 돈에 의지하고 돈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처럼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실 자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돈에 관심 끊고 살라는 말입니까? 예수 믿는다고 돈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예수 믿으면서도 돈 많이 벌어서 잘사는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헌금도 하고 가난한 이웃도 돕고 선교사 후원도 하려면 악착같이 돈 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 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돈을 섬기는지 하나님을 섬기는지 쉽게 판가름이 날 테니까요.
한번은 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아와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젊은이는 영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원을 사모했어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이 젊은이를 기특하게 보시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런데 이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젊은이의 주인은 무엇입니까? 과연 이 젊은이가 돈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그렇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있었나요? 그 젊은이에게 돈이 없었더라면 영생을 얻는 일에 훨씬 쉽게 나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돈은 영생을 향한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가 돌아간 후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마 19:16-24)
물론 우리가 모두 재산을 다 포기해야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땀흘려 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방식으로 그 돈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에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최소한 우리가 돈에 관해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거기에 따라 돈을 쓸 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적일 수가 없는 것일까요? 세상적이라는 말의 반대말은 경건하다, 희생적이다, 또는 거룩하다 등과 같은 말이 있겠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고 기대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매우 세상적인 삶을 사는 수가 많습니다. 종교적 행위 속에서도 세상적인 모습이 있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주 세상적으로 하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책망하신 내용이 바로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하고 그래서 칭찬받으려고 하는 선행과 종교적 행위들, 이것이야말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래서 도무지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적인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형태가 바로 위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대단히 경건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매우 세상적인 동기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경건에 이르지 못한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많은 헌금을 하고 종교적 열정도 누구보다 뛰어나고 선행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아주 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요.
세상적이냐 세상적이 아니냐를 아주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세상으로부터 보상을 얻으려고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상급을 기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 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하고,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세상에서 크게 이름을 떨치려는 것은 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려 애쓰고,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기대하는 사람은 세상적이 아니라 하늘나라적이라고 해야겠군요. 이처럼 우리가 세상적인가 하늘나라적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아주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하는 것이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적으로 했던 것이라면, 세상 일을 하면서도 세상적이지 않고 하늘나라적일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바로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돈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살면서도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세상적이지 않고 하늘나라의 가치관과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돈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돈 얘기가 나오면 긴장부터 하게 돼요.
왜냐하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돈이 없으면 당장 굶어죽게 되잖아요? 또 돈이 많으면 좋은 점이 많거든요.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돈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문제가 이 돈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이 돈이 미치는 나쁜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바울사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까지 했을까요? 그러니까 돈을 옹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돈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물은 재물, 즉 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땅에 쌓는 것은 세상적이고 하늘에 쌓는 것은 하늘나라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보물을 땅에 쌓는다는 것은 돈을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뭐예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 아닙니까? 더 편안하게 살고, 더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더 좋은 옷 입고, 더 좋은 집에 살고… 이런 모든 것이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돈을 은행에 비축해 놓았을 때 안심이 되고 자신만만하게 됩니다. 투자한 주식의 값이 오르고 물려받은 땅값이 치솟을 때 우리는 장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높아져가는 재산의 가치가 우리의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기쁨과 소망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안한 것입니까? 주식에 투자한 것이 실패해서 자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20대 주부가 은행강도를 하다 잡혔더군요.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했는데 그게 완전히 실패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크게 성공해서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는 것처럼 우쭐대다가 갑작스러운 기업환경의 변화에 의해 하루아침에 망해서 길거리에 내몰리는 수도 있습니다. 금고에 돈다발을 잔뜩 감춰놨다고 마음이 든든할까요? 요즘에는 고관이나 부자집만 골라 터는 전문도둑들이 설치는데, 많은 돈이나 귀중품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못한다더군요. 돈으로 기쁨과 소망을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입니까?
이처럼 이 세상은 우리의 보물을 쌓아 놓을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곳입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도 못합니다. 잠시 누리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예비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만 살고 말 것이라면 사는 동안 돈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바르고 살다가 죽으면 정말 잘 살았다고, 의미있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 세상은 잠시 사는 곳일 뿐입니다. 그 잠시 사는 삶을 위해서 영원한 삶을 희생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돈 가지고 영원한 삶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돈을 불에 태워서 함께 장사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승에 돈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져간 돈 써먹을 수나 있을까요? 저승에 가면서 그렇게 돈을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 살면서 지금부터 하늘에 저축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만일 우리가 하늘에 저축을 많이 해 놓으면 나중에 천국에 가서 잘 살 수가 있겠군요.
그러면 어떻게 하늘에다 저축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구좌번호 가르쳐달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송금해야 할까요? 교회에 갖다 바치는 돈은 모두 하늘에 저축이 될까요? 필요 이상으로 헌금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어떤 교회들에서는 교회에 바치는 헌금을 하늘에 쌓는 보물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쁘게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하늘에 쌓이는 보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헌금 강요하기 위해서 이 귀하신 주님의 말씀을 갖다가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당연히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많지는 않겠지만 헌금에 짓눌려 사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억지로 헌금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믿음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할 수도 없고, 믿음 좋다고 하면서 헌금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많은 헌금 시킨다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 억지로 강요하는 헌금의 경우, 사실은 믿음의 문제와 상관없이 정당성을 결여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을 잃게 만들고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우리 인생인데, 그리고 이 돈이래야 언젠가는 다 없어져 한줌의 재로 변할 것인데, 이것 가지고 우리의 영원을 예비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금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찌 허비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하면 이 썩어 없어질 돈을 하늘의 보물로 쌓아 우리의 영원을 예비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많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상을 주실까요? 이것은 우리가 이 순간 잠깐 고민하다가 잊어버려도 될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가지고 씨름해야 할 문제입니다.
돈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는 주님의 말씀은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많은 돈을 투자했을수록 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떠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은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고 삽니다.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상급을 소망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매우 당연한 사실을 부인하고 모르는 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때가 많아요. 왜 그렇습니까? 눈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 돈이 가져다주는 쾌락과 기쁨에 그만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돈이 약속해주는 화려한 삶의 유혹에 속아서 그야말로 어두캄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저희의 신은 배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빌 3:19)라고 했습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신의 자리를 차지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믿습니다. 돈의 힘을 믿고 돈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래서 돈에 의지하고 돈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처럼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실 자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돈에 관심 끊고 살라는 말입니까? 예수 믿는다고 돈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예수 믿으면서도 돈 많이 벌어서 잘사는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헌금도 하고 가난한 이웃도 돕고 선교사 후원도 하려면 악착같이 돈 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 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돈을 섬기는지 하나님을 섬기는지 쉽게 판가름이 날 테니까요.
한번은 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아와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젊은이는 영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원을 사모했어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이 젊은이를 기특하게 보시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런데 이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젊은이의 주인은 무엇입니까? 과연 이 젊은이가 돈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그렇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있었나요? 그 젊은이에게 돈이 없었더라면 영생을 얻는 일에 훨씬 쉽게 나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돈은 영생을 향한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가 돌아간 후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마 19:16-24)
물론 우리가 모두 재산을 다 포기해야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땀흘려 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방식으로 그 돈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에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최소한 우리가 돈에 관해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거기에 따라 돈을 쓸 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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