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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 얍복 → 이스라엘 (창32:24-32)

본문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보게됩니다. 특별히 시편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냥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난 주간에 제가 할 일이 없어서 세어보았더니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시편에만 12번이나 기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당히 억울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렸던 사람이고,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에 한 마디 말도 없이 순종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전혀 다릅니다. 믿음도 없고 순종도 없는 사람입니다. 남을 속이는 일을 밥먹듯이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야곱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순종의 사람 이삭과 같은 반열에 두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의 차이점입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학생을 뽑을 때에 커트라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점수를 정해놓고 그 기준 이상이 되면 합격을 시키고 기준에 미달되면 탈락을 시킵니다. 실력을 보고 학생을 뽑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하십니다. 우선 뽑아놓고 그 다음에 실력 있는 학생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처음에 입학할 때에는 수준이 제 각각이지만 나중에 졸업할 때보면 전부다 우등상을 받으며 졸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전혀 알지 못하던 아브라함은 75세 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생각을 묻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언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습니까?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야곱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야곱의 다른 점이 있다면 아브라함은 말로 할 때 척 알아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데, 야곱은 맞아서 뼈가 부러져야 알아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환난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렇게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든지 끝내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야곱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가를 살펴봅니다.

먼저 야곱이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봅니다. 야곱은 에서라는 형과 함께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에 에서가 먼저 나가려고 하니까 발뒤꿈치를 붙잡고 따라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곱이라는 이름의 어원인 아캅이라는 단어는 '계략을 써서 빼앗다. 사기를 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일생을 보면 야곱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고픈 형을 충동질해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서는 삼촌의 재산을 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삼촌의 두 딸도 자기 아내로 만들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 그대로 평생 가로채고 속이고 빼앗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살만해지자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전 재산을 다 모아서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원수를 갚지 않으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던 시대입니다. 그러니 에서가 복수를 해 올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찰병을 보냈더니 과연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야곱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꾀를 내었습니다. 우선 엄청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소, 양, 염소, 나귀, 이런 짐승들을 550마리나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셋으로 나누어서 1진, 2진, 3진, 이렇게 보냅니다.
에서가 야곱을 공격하러 오다가 짐승을 한 떼 만납니다. '이것이 누구의 것이냐?' 물으면 야곱의 종들이 '예, 우리 주인이 형님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에서가 '나쁜 놈, 내가 그까짓 선물을 받고 너를 용서할 줄 알았냐?' 그리고 계속 달려갑니다.

그런데 또 다시 한 떼를 만납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이냐?' 물으면 '우리 주인이 형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대답합니다. 그러면 에서가 약간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 선물에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지.' 그리고는 다시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또한 떼를 만납니다. '이것은 누구 것이냐?' 물으면 '우리 주인님이 형님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에서가 완전히 마음이 누그러져서 '네 죄를 사하노라.'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야곱이 짜놓은 각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각본을 짜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먼저 강 건너 보내 놓고는 혼자 남았습니다.

본문 24절을 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이렇게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하였습니다. 먼저 씨름을 걸어 온 것은 야곱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 혼자 남아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다는데 어떻게 하나? 내가 보낸 선물을 받고 형의 마음이 누그러졌을까? 아니라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걱정을 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는 다짜고짜로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아마 야곱은 '아, 이 사람은 형 에서가 보낸 자객이구나. 나를 아예 찍 소리도 못하게 죽여버리려고 하는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나님이셨습니다. 30절에서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혼란을 겪으실 것입니다. 야곱과 씨름한 사람이 천사라고 하면 이해가 가지만 하나님이셨다고 하는 것은 잘 이해가 안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살렘왕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렘이라는 단어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살렘왕은 '평강의 왕'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이라는 단어는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살렘왕 멜기세덱은 '평강의 왕,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살렘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살렘은 도대체 어떤 나라입니까? '살렘'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는 '이레'와 '살렘'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 '이레살렘'이 '예루살렘'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레'라는 단어는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평강을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평강의 왕, 의의 왕은 누구입니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만나신 것입니다.
여기에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셨다는 것입니다. 언제 만났습니까? 바로 창세기 14장에서 살렘왕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는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사건이 여러 곳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도 바로 성자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살던 야곱, 하나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직 욕심을 이루기 위해 분주히 살아 온 야곱,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속이고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 온 야곱, 큰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는 인간적인 꾀를 사용하는 야곱,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거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49장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야곱처럼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더러운 죄를 지으며 살아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잊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야곱이 홀로 있을 때에만 나타나셨습니다. 오래 전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고향을 떠날 때,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외로이 누워 있을 때,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혼자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두 사람의 아내와 12명의 자녀들, 수많은 종들, 그리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물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떠나간 적막한 얍복 강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고독에 싸여서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홀로 있는 그 시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고독을 느낄 때, 아무도 내 곁에 없이 나 혼자 있는 것 같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홀로 있는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다짜고짜로 야곱을 치십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꼼짝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야곱은 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본문 25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많이 오해되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라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겼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야곱이 열심히 기도를 해서 드디어 하나님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이 말은 야곱이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꾀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얍복' 이라는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신 얍복이라는 지명은 '비운다. 쏟아 붓는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자신을 비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기 힘으로 살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노력만 하면 안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각본을 짜서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외삼촌 집에 가서는 7년 동안 죽도록 일을 해서 부인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밤 지내고 보니 자기가 원했던 여자가 아닙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포기했겠지만 야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7년을 일해서 원하던 여자를 부인으로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외삼촌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열심히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얍복이라는 말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우고 쏟아놓기를 원하셨습니다. '너는 더 이상 네 지혜와 네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말씀했습니다. 환도뼈란 허리에서 다리로 연결되는 부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뜨려서 허리를 못쓰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싫어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고 있는데 부러진 다리를 가지고는 도망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다시 붙듭니다. 본문 26절의 말씀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제 야곱은 자기를 비웠습니다. 자신의 교만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호세아서 12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을 붙들고 울면서 간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얍복의 나루터에 서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비우는 얍복의 나루터에 서기를 바랍니다. 혹 여러분들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환도뼈를 부러뜨리신 것으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 지혜를 의지하고, 내 재물을 의지하고, 내 능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며 살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얍복의 나루터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달려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붙드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27절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 사기꾼입니다. 계략을 써서 빼앗는 자입니다.' 야곱의 입을 통해서 이 고백을 듣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어느 집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매일 놀기에 바빴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말을 안 들어먹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버지가 설득을 하러 아들 방에 들어갔습니다. 두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꼼짝도 안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못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 더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 이제 더 이상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하고 나오는데 아들이 갑자기 눈물을 쏟으면서 아버지 발을 붙드는 것입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가 이긴 것입니까? 아버지가 이겼습니까? 아들이 이겼습니까? 아들이 이겼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힘으로 싸워서 얻은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함으로 얻은 승리입니다. 나의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과 교만함과 불순종을 내어 던지고,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야곱과 에서가 눈물로 화해합니다. 야곱을 공격하러 왔던 에서의 군대가 이제는 야곱을 호위하는 군대로 바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승리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능력을 믿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얍복강가에서 자신을 비웁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버립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승리자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얍복강가에 서서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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