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같이 고문당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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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는 33세의 나이에 천주교를 믿게 되어 가산을 팔고 친척과 벗들을 다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문모 신부에게세례를 받았으며, 1827년 전라도에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는이웃을 위로하며 권면하였다. 그가 산속에서 9년을 지냈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포교들에게잡혔으나 오히려 기쁜 낯으로 "오늘 걸어가는 이 길을 위하여 하나님께감사한다"고 하자 그를 믿는 자의두목이라고 하며 더 심한 고문을 하였다.그는 다시 대구 경산 감사앞에 섰다. 감사는 "이 여러 죄수는 모두 너에게 유혹되었으니 그책임은 네가 지고 마땅히 중형을 받아야 할것이다"하며 사형선고를 내려 옥에 가두었다.그런데 그의 아들 박사심도 잡히고 말았다. 사심은 어릴 때부터종교생활에 물들어 있었고 아버지게 감화를 받아 열렬한 믿음과효성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심도 아버지와 같이 대구감옥에 갇혔다.국법에는 부자(부자)를 같은 장소에서 심문하지 않는데, 사심은 아버지가 고문으로 인해 약해질까봐 염려되어 잠시도그 옆을 떠날 수 없어서재판관에게 간청하여 함께 심문당하고 고문당하였다. 사심은 이같이 아버지께 효성을 다하고 또한 하나님께도 효성을 다하며 끝까지 갖가지 고문을 견디고 믿음을 증거하다가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아버지와 함께순교의 영광을 받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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