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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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던 신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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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을 나설 때 마다 가끔 작은 갈등을 겪는다. [어떤 신발을신을까] 를 해결하기 위한 짧은 시간동안의 갈등이다. 대부분의 경우나는 이 갈등을 신던 신발에 두 발을 넣음으로 일단락 짓곤 한다.뭐 그렇다고 내가 어느 나라의 누구처럼 수많은 신발을 가졌다는얘기는 아니다. 원래부터 신던 신발 못 버리는 나인지라, 신발장에 몇년전부터 신던 신발이 죽 놓여있다. 그래서 굽이 닳아 빠지거나 잔뜩 주름지거나 때로는 찢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는 때가 많은데 특별한 뜻을 두어서도 아니다. 그저 신던 신발이 편하다는 생리적인 판단이 나를 지배해서 일 것이다.이런 내가 딱해 보였던지, 장신대 신대원 동기생 중에 전국 여전도회 연합회 간사로 있는 친구가 내게 직접 구두표를 준 일이 있다. 그런데 그 얼마 후에 다시 만났을 때도 내가 낡은 신발을 신고 있으니까 그분은 아예 나를 앉혀 놓고, 신발 한 켤레를 사다가 신겨 준 일이 다 있을 지경이다.그 동기생은 {아니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이라는 동요도 안 불러 보고 크셨어 새 신발을 신었을 때의 기쁨도 새 옷 못지 않게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즐거움도 있는 법인데 어쩌자고 그렇게 헌 신만을 고집하는 거냐}고 하면서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에 {동기생이 왜편한데, 헌신처럼 어딜가나 무슨 얘길 하나 부담없이 만날 수 있고 편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어서 아냐} 했더니 그 동기생은 {내 정성을 생각해서 이 신발만은 못 신을 때까지 한번 신어보라}고 하곤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그후 그야말로 동기생의 정성을 생각해서 오늘까지 신고 다니면서 몇 번씩이나 새끼 발가락과 뒤꿈치가 물집이 잡히는 고통을 치루어야 했다. 이렇게 새신을 신을 때마다 치루는 대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싶었다. 새 신발만은 누구라도 좋으니 신고 다니다가 벗어서 날 주면 고맙겠다. 신던 신발이 얼마나 편안한 필수품인가! 아무리 편한 신발을 새로 사 신은들 신발이 거기서 거기지 별 대수가 없지 않던가! 헌 신은 어딜가나 무엇이 묻을까 걱정도 없고 부담도 없다. 공식석상에 나갈때 입은 옷과 좀 안 맞아서 탈인것 빼고는 정말 새 신보다는 헌 신처럼 좋은게 없다.사람은 이렇게 스스럼없고 편안한 사람이 있다. 언제 만나 무슨 말을 하든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함께 공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런 사람은 만나면 우선 느낌이 참 좋다. 온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가장나 답게 내가 있을 수 있어서 그렇다. 이런 친구가 많은 사람은 누가뭐라해도 행복한 사람이다.결혼 주례 해 준것이 감사하다고 한 형제가 오병이어 거리의 가족을 위한 식판 2백개와 구두 한 켤레를 사들고 우리집에 찾아 왔다. 티켓 사줘봐야 새 신을 골라 신는 사람이 아니라고 내 발 사이즈에 꼭 맞는 새신을 사 왔다.그 고마운 마음 잘 알고 이미 기쁘게 받았기에 오늘 아침에집을 나서며 새 신발의 임자를 맘 속에 정해 두고 신던 헌 구두에 발을 넣었다. 그 편안함 속에 나도 다른 이에게 이렇게 편안한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최일도 목사, 다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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