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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 지옥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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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의 지옥은 윤회를 기다려 벗어날 수도 있다.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한번 발을 디디면 영원히 죽지 못해 살아야 한다. 어쩌면 그 공포가 서양역사를 만들었다. 서구에서는 무수한 지옥 풍경화가 생산됐다.지옥도는 서양인 최대의 공동프로젝트였다. 미국 저널리스트 앨리스 터너는 '지옥의 역사'(전2권·동연출판사)에서 지옥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념의 변화를 풍성한 자료로 재구성했다.그러고보니 지옥관(觀)을 통해본 서양의 사회문화사가 됐다. 동시출간된 '천국의 역사'(전2권)에 그려진 천국은 진주빛 대문과 하프소리와 둥근 후광이 빛나는 정신적 이미지라면, 지옥은 육감적이다. 지옥에서는 고문과 추잡한 몸뚱이가 드러나 관음증을 충족시킨다.서양 최초의 '죽은 자의 땅'에 대한 묘사는 이집트 '사자의 서'에 나온다. 죽은 자의 심장이 정의의 저울에 놓여 죄가 무거우면 작은 괴물 암미트가 먹어치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저승방문을 다룬다. 그곳에서 시시포스는 둥근 돌을 끝없이 굴리고 있으며, 티튀오스는 독수리의 공격에 시달린다. 플라톤에 따르면 죽은 자의 영혼(푸쉬케)은 길잡이(헤르메스)의 안내로 고뇌, 불, 탄식, 망각(레테)의 강 등을 건너가야 한다.지옥의 역사는 중세에 풍성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묘사했듯이 사제들은 신앙을 배반하면 지옥에 간다고 겁주면서 지옥의 모습을 앞다투어 그려냈다. 1149년 당시의 그런 협박과 공갈이 집대성된 아일랜드 수도사의 작품 '툰달의 환상'은 15개 언어로 번역됐다. 툰달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자 마귀떼거리가 달려든다. 이어 살인자들이 석쇠 위에서 고통당하는 등 파노라마가 이어진다.중세를 피로 물들인 이단재판이 채찍이었다면 당근은 연옥이었다. 연옥은 효과적인 선전도구였다. 천국에서 소외당했던 민중이 구원의 희망을 얻었다. 연옥은 1253년 교황의 친서에서도 언급됐지만 트렌토 공의회(1545∼63)에 이르러 확정된다.“독실한 자들의 영혼은 한동안 연옥의 불길 속에서 정화된 후, 마침내 더러운 것들은 들어올 수 없는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있다” 천당이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사교클럽인 관계로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아기들과 예수이전에 태어난 죄로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플라톤과 같은 명예로운 이교도들이 구제됐다.르네상스에 이르러 단테는 '신곡' 중 '지옥편'에서 지옥을 심미적, 비평적인 음미대상으로 전환시켰다. 단테는 지옥의 공학적인 지형도를 그려놨다. 지하세계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모든 자들이여, 희망을 버릴진저 ”라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 볼테르는 “가난한 자가 염소 몇 마리를 훔쳤다고 영원히 불에 타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당시의 한 풍자소설에서는 지옥을 “술래잡기 놀이에서 붙잡힌 사람들이 끌려가는 장소, 재봉사들이 옷감을 버리는 장소”라고 비꼰다.19세기 사드나 위고, 포 등은 이제 지상의 지옥을 다룬다. 현실의 강간, 향락, 폭력, 감금, 고문이 지옥일 뿐이다. 19세기 후반에는 지옥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용서받는다는 만인구원론이 등장한다.근대작가들에게 지옥은 종교적 교화 기능이 아니라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은유로서 살아남았다. 생지옥은 바로 무수한 양민학살과 인종청소가 이루어지는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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